[구술로 엮는 현대불교사]
다음 생에는 부처밖에 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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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적(최동순) / 2024 년 5 월 [통권 제133호] / / 작성일24-05-04 23:00 / 조회1,531회 / 댓글0건본문
묘엄스님 ⑤
▶ 봉암사 결사 때 공주규약이 제정된 것으로 아는데 과정을 알고 계신지요?
내가 아는 것으로는 기록을 해서 수칙을 만든 것보다도 우선 말로써 대중공사를 합니다. 공사를 하는 것은 의논하는 것이거든요. 대중이 모여서 누구는 입승, 누구는 도감, 누구는 부전, 전부 다 소임을 맡기고 그것을 관리하는데 성철스님이 늘 부처님을 내세웠어요. “이러이러해서 우리가 생사 해탈의 길을 바르게 걸어 가야 되지 않겠나!”며 독려하셨어요.
엄격한 포살과 치열한 법거량
보름마다 자운스님이 법상에 올라가서 『범망경』을 읽습니다. 보살계니까 비구, 비구니, 보살, 불佛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보살이란 다음 세대에 부처밖에 될 게 없답니다. 승속이 없는 게 보살이거든요. 우리가 비구로서 보살계를 익혀 보살행을 하는데, 자리自利도 하지만 이타행利他行을 해서 중생을 교화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 단계는 부처밖에 못 된다는 겁니다. 자운스님은 “우리가 보살 노릇도 못하면서 계행을 지키지 못하면 되겠느냐. 그러니까 비구, 비구니 계를 철저히 지켜서 보살이 된 다음,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걸으려면은 반드시 포살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중국의 총림에서부터 전해져 왔으니까 “좋은 것은 외국 것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봉암사에서는 보름마다 포살布薩을 했습니다.
▶ 당시 성철스님하고 향곡스님이 법거량法擧量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법거량이라는 것은 그건 전부 선종禪宗의 생활에 있어요. 강종講宗이 아니고 선종으로 전부 수행하고 모여서 살고, 아침저녁 선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옛날 도인 스님들이 뭐 한마디 아래[言下]에 깨달음을 얻은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그때 스님하고 성철스님하고 계시는데 4·8일 가까운 보름날이었는데, 비가 철철 내렸습니다. 포살일인데 대중들이 모두 나와 있어요. 그때 법문을 한 다음 할喝을 하고, 몽둥이로 두드려 패고 이런 게 법거량이죠.
달리 법담이라고도 하는데 그때 붙들리면 두드려 맞았거든요. 잡히기만 하면 몽둥이로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향곡스님과 성철스님이 하는 거 보니까 오늘 누가 잡히기만 하면 두드려 맞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뒤쪽으로 드나드는 문이 따로 있었는데 거길 놔두고 내가 앞쪽 전면에 문 있는 데 가서 있었어요. 얼른 달아나려고, 안 붙들리고, 안 맞을라고.
달아나기 위해 종이 있는 쪽에 가 있었어요. 동그란 종인데 그 앞에 가서 신발을 들고 서 있었어요. 향곡스님이 기다란 육환장 막대기를 들고는 큰방 문 앞을 왔다 갔다 거닐고 있었어요. 그때 성철 큰스님은 극락전에서 무슨 게송을 지단하게 읊고 계셨어요. 그러는데 향곡스님이 “내가 한마디 한다.” 그러면서 “중생衆生은 시아친是我親이요.”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의미는 모르고 그 말만 익혔어요. “중생은 나의 친한 이고, 제불諸佛은 시아원是我遠이라”. 향곡스님의 음성이 참 좋으십니다. 그래서 게송을 지단하게 읊고 ‘나무아미타불’하고 법문하는 격식이었어요.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듣고 나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중생은’ 소리는 알아도 ‘시아친’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냥 외우기만 했지요.
내가 그걸 외우고 있는데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번개같이 성철스님이 들어오시더라고요. 그러면서 향곡스님의 멱살을 쥐고는 그 비가 철철 내리는데 밖으로 끌고 나가더라구요. 마당을 한참 지나가야 대문이 나오거든요. 그 대문을 활짝 열고는 향곡스님을 대문 밖에다가 밀쳐서 패대기를 치더라고요. 그리고는 문을 딱 잠그고 들어오셨어요.
내가 생각하기를 “향곡스님이 멱살 잡혀서 끌려나가시는구나. 대체 무얼 잘못하셨나.” 그래 그 소리가 ‘제불은 시아원’이라는 그 말이 잘못됐는가 그리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고 성철스님이 들어오시더라고요. 들어오셔서 나를 보시면서 “너, 이리 와!” 이래요. 그래서 내가 스님을 따라서 극락전에 올라가니까 “아까 향곡이가 뭐라 하드노?” 이래요. 그래서 내가 “중생은 시아친이요, 제불은 시아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듣고 있던 성철스님은 “그게 무슨 의미인고?” 하고 물으셨어요. 내가 “중생이나 제불이라는 말은 알겠는데 뒤에 두 마디는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 그러니까 성철스님은 아무 말도 안 하시더라고요.
총구를 들이대고 사상 검증하던 시절
▶ 그 당시 산중에는 빨치산들이 나타나던 시대가 아닙니까?
6·25전쟁이 나기 직전입니다. 백련암에서 내려와 산채를 뜯으러 산에 흩어져서 나물을 뜯고 있었어요. 큰절에서는 우리가 산채 뜯는지 모르지요. 큰절 가까이서도 뜯고, 산골로 백운대 올라가서 뜯고 그럽니다. 내가 나물 이만큼 담아 가지고 일어서니까 황토칠을 잔뜩 한 사람이 총을 탁 가지고 와서 내 여기다 딱 대더라고요. 우리에게 총을 딱 들이대고는 “따라 가자!”는 거라요. “우리가 밥해 먹을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따라가서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그래 자기는 “빨치산이다.” 이러면서 우리더러 같이 가자고 그래요. 처음에는 눈이 캄캄하더니 새로 정신을 차려 가지고 “당신 누구냐?”고 그러니까 “나는 빨치산이다. 여기 남조선에서 말하는 빨갱이다.” 이러더라고요.
그때 내가 순진했지요. 열여덟 살이니까. 그래 “부모 형제 다 버리고 도를 닦으려고 출가한 사람인데 당신네들 따라가자 한다고 줄줄 따라가지 않을 거다. 날 여기서 죽이라.” 그랬어요. 그 빨갱이가 여기에 총을 겨누고 해도 내가 “죽어도 따라갈 수 없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말싸움하는데 또 한 사람이 숲속에서 나오더라고요. 그래 둘이서 나를 끌고 가려고 했어요.
그때 묘찬스님이라는 이가 초등학교 교편 잡다가 남편이 죽고 출가를 했어요. 청담스님이 순회법문을 할 때 ‘인생과 우주’라는 설법을 듣고 출가했어요. 내가 어떤 남자하고 실랑이하는 소리를 듣고, 묘찬스님이 나물 뜯다가 쫓아와서 “왜 이러느냐?”고 그러니까, 내가 “이 사람들이 밥하고 빨래하러 따라가자 합니다.” 묘찬스님이 나보다 네 살 더 먹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자기 목적을 달성을 해야 되는데 묘찬스님이 “나는 시집도 갔고 애도 낳아 봤고 그러니까 나를 데리고 가라.”고 도반을 위해서 자기가 가겠다는 거라요. “나를 데리고 가지, 이 사람은 수행하도록 놔두시오.”라고요. 그러다가 묘찬스님이 마구 울었어요. 날 놔두고 지 데리고 가라고 하는데 “만약 안 간다고 하면 너희 둘 다 죽이겠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죽이려면 죽여라.”고 그랬는데 그이가 총 끝을 내 머리에 대더라고요. 대니까 그만 천지가 새카매지더라고요. 놀라고 무서운 경우에 닿으면 천지가 깜깜해진다는 소리를 체험했어요.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고요. 내가 이래서 안 되겠다 하고는 마음으로 능엄주를 열심히 하고 또 화두를 생각했어요. 능엄주와 화두가 범벅이 되었지요. 이제는 죽었다, 꼼짝없이 죽는 거라요.
나는 못 따라가겠다고 하고, 묘찬스님은 자기가 가겠다고 하면서 “이 이는 좀 놔두라.”고 실랑이를 했지요. 그래 “그 총을 놓으라.”고 그랬는데 그 시간이 참 길었어요. 사실 잠깐인데. 이제 그 사람이 총을 놓고 웃으면서 “사실은 내가 경찰이요.” 이러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묘찬스님이 그만 그 경찰 뺨을 착 때렸어요. “그래 사내새끼가 요런 비겁한 걸로 우리들 사상을 점칠라고 그랬느냐?”고. 그러니깐 그 경찰이 죄송하다고 하면서 “여기에 별난 사람들이 모였는데, 비구도 그렇고 비구니도 그렇고 별난 사람들이 봉암사에 모여 산다고 해서 내가 그 사상을 시험해 보려고 와서 이렇게 했다.”고 그러면서 “아우 장하시다, 장하시다.”고 하면서 “미안하다.” 하고 “다음에 정식으로 경찰 옷을 입고 사과하러 오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옷을 입어서 절에 못 들어가겠다.” 이러고 헤어졌거든요. 그래 둘이서 털썩 주저앉아서 막 울었어요 서로 쳐다보면서.
진주시청이 불타서 한 살 더 먹고
▶ 스님께서 1931년에 출생하셨는지요?
1932년이 임신년인데, 6·25사변이 나고 그 뒤에 진주시청이 불탔어요. 시청을 새로 짓고 호적관리를 하는데 소실 증명을 받고 승적도 해야 했어요. 그때는 대처한 스님들이 비구나 비구니의 승적을 관리를 했습니다. 그때는 분한증이라는 승려 증명을 해줬어요. 그럴 때에 호적을 떼 오라 그래서 멋모르고 윤필암에서 살다가 6·25가 터졌어요. 그 뒤에 인제 내가 19살 때 소실 증명서를 받으러 진주에 갔거든요. 그때 내 형부가 있었는데 그 형부가 소실 증명 지원서를 내면서 1931년으로 했어요. 실제로는 32년 임신생입니다.
내가 태어난 데는 진주시 수정동 장새미 골목에 있는 석류나무집에서 태어났어요. 나중에 어머니가 시집에서 딸 둘을 데리고 나와 옥봉동으로 간 것 같아요. 옥봉동 599번지입니다. 할머니가 계신 곳은 섭천이라는 동네인데 진주 다리를 건넙니다. 어려서 할머니 옆에 많이 가서 살고 또 집에도 오고 해서 처음에 그때 일제시대는 국민학교라 그랬거든요. 그때 머리를 땋고 있었는데 시내 읍으로 나와 가지고 머리를 자르고 단발을 했습니다. 내가 국민(초등)학교 들어가기 위해 어머니가 계신 옥봉동으로 왔어요.
내가 어릴 때는 청담스님을 찬호라고도 하고 순호라고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혼을 한 뒤에 나를 낳으니까 일제 강점기 호적에는 사생아가 돼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호적을 고치라고 하는데, 재판을 해야 돼요. 우리 어머니가 혼자 살기 때문에 관청 일을 잘 몰랐지요. 고만 호적을 안 고치고 놔뒀어요. 재판해야 되고 하니까. 그래서 내가 외갓집 성으로 창씨개명을 할 때도 외갓집은 스기야마 상이고 우리 청담스님 사촌들이 네 명이 있습니다. 그 작은 아버지들은 마쓰야마 상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모하고 나하고 둘이 걸어가면 이모인데 이모는 스기야마고 내가 외갓집 성을 따랐으니까 나도 스기야마거든요. 친구들이 “너의 아버지 성을 따르지 왜 이모 성을 따르느냐?”고 그랬어요. 그런 말을 들어도 예사로 들었지 심각하게 듣지를 안 했습니다. 그때는 어리니까 부끄럽지도 않고요. 그랬는데 호적이 1년 당겨졌고 고치지 않아서 그렇고, 지금은 내가 독호적입니다.
그때는 일제시대라서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전부 일본말로 배워서 일본말 상용 과정이라는 팻말을 상으로 줬는데, 그것을 집 대문짝에 붙이도록 하는 정책을 썼거든요. 그래서 누구도 한국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서 일본말을 어떻게 배우느냐 하면, 요만한 카드 열 장씩 줍니다. 그런데 한국말을 한 번 하면 카드 하나씩 뺏기게 되고, 나중에 성적이 떨어져요. 나는 점수를 안 주고 그래서 열심히 배웠지요. 그래서 국어(일본말) 상용 과정에서 상을 타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일본말 다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해서 어머니나 외할머니도 밤에 야간학교를 나오라고 해요. 그래 나가면 마을 동회에서 일본말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할머니도 능숙하게 하지는 못해도 일본말을 해서 우리 집도 국어 상용 과정이라는 상을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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