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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로 엮는 현대불교사]
성철스님께 사미니계를 받은 유일한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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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순  /  2024 년 2 월 [통권 제130호]  /     /  작성일24-02-05 10:54  /   조회52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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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로 엮는 현대불교사 17 | 묘엄스님 ② 

 

 

▶ 대승사에 오셔서 사미니계를 받을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시죠.

어렸기 때문에 나는 뭔지도 모르고 “이름도 성까지 다 가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에게 ‘묘엄’이라고 법명을 지어주셔서 그거를 「천수다라니」 외우는 책갈피에다가 딱 넣어놓고 날마다 한 번씩 들여다보고 그랬어요. 그런데 날마다 안 달라져요. 

 

성철스님으로부터 받은 사미니계 


내가 계를 받는데 오신 분은 성철스님하고 청암스님이라고 연세 많은 분인데 수덕사 스님입니다. 그 스님들하고 또 청담스님, 홍경장육弘經藏六(1899~1971) 스님 이렇게 네 분이 오셨습니다. 성철스님이 “내가 아직 법상에 올라간 적이 없고, 아직은 법상에 올라갈 마음도 없고 그랬는데, 청담스님의 딸이고 또 모처럼 어린 사람이 되고 해서 내가 특별히 사미니계를 설하겠다. 묘엄이란 이름도 내가 지었고.” 

 

사진 1. 출가 초기 묘엄스님과 출가 당시 청담스님이 써 준 명심불망銘心不忘 내용.

 

그래서 윤필암에서 커다란 상을 갖다 놓고 그 위에 올라 앉으셨는데, 그게 법상인데 내가 볼 때는 커다란 상이더라고요. 거기 앉아서 스님이 사미니 십계를 설해 주고 ‘영산정로靈山正路’라고 써 가지고 조목조목 제목 붙이고 해석하고 해 주셨어요. 또 비구니 팔경계八敬戒를 끝에 적고 영산정로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영산회상靈山會相의 바른길, 그래서 바를 정正 자, 길 로路 자입니다. 그런데 영산정로라는 그 말이 내 맘에 너무 좋아요. “아 이걸 보고 이대로 할 거 같으면 부처님 당시의 영산정로에까지 도달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받아 지녔지요.

 

사진 2. 「영산정로」의 표지와 내용.

 

그때 청담스님이 진주 고향 집에 편지를 써서 어머니에게 보내어 “아무개(이인순)가 그날 계戒를 받으니까 올라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대승사 윤필암으로 올라오셨더라고요. 올라오셔서 내가 계 받는 데 어머니가 참석했습니다. 성철스님이 계를 주시고 법상에서 내려오시면서 우리 어머니에게 말씀하시기를 “암만 딸이라도 부처님 제자가 되었으니까 절을 세 번 하라.”고 해요. 그래 불자佛子가 됐으니까 “어머니로서 안 된 거지만, 불자가 된 기념으로 절을 세 번 하라.” 그래서 내가 그 절을 받고는 울었습니다.

 

7일 만에 능엄주를 외우다

 

어머니는 딸이 계 받는 걸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윤필암에 남아 있으면서 날마다 달라지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달라지지가 않아요. 큰절(대승사) 성철스님에게 가서 “왜 오늘도 고만 내일도 고만 이럽니까? 법문을 듣고 뭔가 달라지는 게 있어야 하는데, 내가 나를 살펴보니까 달라지는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쩌면 달라집니까?” 하고 여쭈었지요.

 

사진 3. 묘엄스님의 모친 대도성 보살.

 

스님이 웃으시면서 “그래, 달라지기로 하는 것은 자기를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그것은 참선을 해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아직 네가 참선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디 취직을 하려면 많이 배워 가지고 그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을 갖춰야 합격하듯이 우선 네가 할 일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다 보니 1년이 지나갔어요.

 

성철스님이 능엄주를 주시더라고요. 해인사판인데 그 능엄주 책을 주시면서 이것을 외우라 하시더라고요. 생전 처음 보는 책이었어요. 산스크리트가 있고, 한문이 있고 그 다음에 한글이 있는 해인사 장경각에 있는 장경각 판입니다. 그 능엄주를 내가 일주일 만에 외웠습니다. 얼른 달라지려고요. 그래 일주일 만에 외워서 성철스님 앞에서 강을 바쳤거든요. 문수보살은 한 번만 듣고도 외웠는데, 성철스님도 한 번 듣고 외웠다고 해요. 성철스님은 “요새 근래에 네가 일주일 만에 능엄주를 외우니까 참 신통하다!”고 그러시면서 “능엄주를 가지고 기도하라.” 그래요. 그래서 내가 기도를 시작해서 능통하게 이제 갓 외웠기 때문에 가끔 깜빡 할 때도 있고 그래요.

 

사진 4. 능엄주 판본 일부.

 

윤필암 스님네들이 내 기둥이었어요. 정신적 기둥인데, 스님네들이 하라고 하기 때문에 그대로 하는 겁니다. 성철스님이 내가 능엄주를 익히는 방법으로 윤필암 대중들에게도 능엄주 기도를 시켰어요. 그때는 그냥 대중에게 능엄주 하라는 줄 알았는데, 그 뒤에 다시 생각하니까 “아, 스님이 내가 능엄주가 숙달해지도록 하는 방법으로 그때 대중들에게 능엄주 기도를 하도록 했구나!” 싶었어요. 그때 스무하루 즉 3.7일간 능엄주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내가 꽤나 달라지더라고요. 숙달해져요.

 

사진 5. 묘엄스님에게 붓글씨를 가르친 홍경스님.

 

능엄주를 그렇게 익히고 나서 한 이태 지나고 나서 해인사 총림을 한다고 그래요. 그때 내가 붓글씨를 배우러 홍경스님한테 다녔거든요. 큰절(대승사)에 배우러 다녔지요. 가서 붓글씨 연습을 하는데, 붓글씨는 하루도 쉬지 않아야 하며 놀면 안 된다고 그래요. 그래서 하루도 쉬지 않고 붓글씨를 써서 배웠습니다. 

 

영산회상도를 그리던 성철스님

 

스님네가 ‘총림’이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영산회상靈山會相, 영산회상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게 무슨 소린가, 부처님 당시를 말하는 건가, 그냥 말만 들었지 내용은 하나도 모르지요. 그래서 영산회상을 만드는데 커다란 종이를 놓고 그거를 전부 그리더라고요. “산 너머에는 비구니가 사는데 그래 그것은 나중 문제다.” 그러더라고요. 비구니는 나중 문제고 우리(비구)부터 해야 되는데, 그것을 해인사 가서 하자. 법보종찰이니까 해인사 가서 하자 그래요. 

 

사진 6. 묘엄스님은 윤필암에서 불을 지필 때나 잠자리에 들 때나 심지어 화장실에 가면서도 능엄주를 염송했다.

 

그때는 ‘비구’나 ‘대처’라는 말이 없을 때입니다. 그래서 전부 짐을 싸 짊어지고 싹 다 해인사로 가시더라고요. “니(묘엄)는 어찌해라.” 하는 말도 안 남기고 짐을 싸서 짊어지고요. 그때는 스님네가 전부 보따리를 짊어지고 들고 그렇게 다녔어요. 지금처럼 차 불러서 짐 싣고 가는 그런 법이 없었거든요. 그래 다 해인사로 가는데 내가 “나는요?” 이랬어요.

 

사진 7. 1년간 대승사에 주석하셨던 동산스님(30대 시절 금강산마하연 선방에서).

 

“나를 여기 두고 가느냐, 나는 어찌할까요?” 그러니까 “너는 우리가 밥숟가락을 바로 들어간 뒤에 그다음 문제다.”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돌아도 안 보고 싹 다 가시더라고요. 내가 온 천지가 비더라고요. 싹 다 비워버렸어요. 큰스님네가 해인사로 다 가고 나니까 내 마음의 의지처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그때 그 심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대승사 큰절은 비워졌어요. 그때 하동산 스님이 오셨는데, 범어사를 잠깐 비우고 오셨어요. 1년 동안 대승사 조실을 하면서 선방을 운영해 나갔어요.

 

대승사 조실로 오신 동산스님과 금오스님

 

그런데 그때 내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큰절 사무실이 종무소지요. 대승사 쌍련선원 선방에 가서 깨 다섯 홉, 기름 두 병을 배급 타가지고 와요. 그거 먹고 없으면은 또 가서 배급을 타오고 그런 형편이라서 “선방을 운영하기가 참 어렵다.”고 동산스님이 말씀하셨어요. 큰절에서 동산스님을 조실로 모셨거든요. 그래서 내가 인사하러 가니까 “그래, 네가 묘엄이냐?”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예, 묘엄입니다.” 그러니까 그 이름을 잘못 지었다 이래요.

 

사진 8. 대승사 쌍련선원 조실로 계셨던 금오스님.

 

내가 “아이고, 제일 좋은 이름인데요!” 그러니까 아니라고 “엄할 엄자를 하지 말고 소리 음자 ‘묘음妙音’이라고 해야 앞으로 크게 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런데 내 마음에는 성철스님, 청담스님만 꽉 차고 다른 사람 말은 들어올 여지가 없어요. 그래서 큰스님께서 지은 거라서 못 고친다고 하니까 “아, 그 큰스님이 성철이냐? 내 상좌야, 그러니까 내가 할애비다. 내가 고칠 수 있다.”고 그러면서 꼭 고치라고 해요. 엄할 엄자 보다도 소리 음音자가 좋은 거라고. 그래서 내가 “안 고칠겁니다.” 이러니까 꼭 고쳐야 한다고 막 야단을 치시더라고요.

 

1년 계셨는데 동산스님이 왜 대승사에 오셨는지는 모릅니다. 계시다가 가시고 나니까 또 금오스님이 오시더라고요. 금오스님이 대승사 선방에 오셔서 조실로 한 1년 넘게 계셨습니다. 한 2년이나 지나니까 청담스님이 오셨어요. 그때는 순호[李淳浩] 스님이라고 했어요. 순호스님이 오셨는데 마음으로 반갑지만 반가운 표현도 다 못하겠고.

 

사진 9. 일제 강점기 시절 해인사 대적광전.

 

큰절(대승사)에 오신다 해서 가니까 금오스님이 내보고 웃으면서 “느그 껍데기 왔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무슨 소린가 하고 “예?” 그러니까 “느그 껍데기 왔다!” 해요. 그때 그 반가운 마음은 뭐라고 할 수도 없어요. 해인사에서 여기 남은 짐을 가지러 대승사로 오셨던가 봐요. 그랬는데 며칠 있으니까 또 성철스님도 오시더군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해인사에서 식량을 대주지 않으려고 그랬대요. 

 

봉암사 결사도량 지정 배경

 

총림을 하려는 그 말만 들었지 세밀한 내용은 내가 잘 모릅니다. 왜 해인사 총림하러 가셨다가 나오셨는지는 자세히 몰라요. 나중에 들으니까. 해인사에서 비구스님들에게 식량을 조달해 주지 않으려고, 외호를 잘해 주지 않으려고 해서 (총림을) 못 하고 해인사를 나오셨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 사람 통해서 들은 소리니까요.

 

나중에 들은 소린데 봉암사로 어떻게 오시게 됐느냐, 그러니 거기도 사중 재산이 없거든요. 그런데 거기 옛날 대처승 주지가 말하길 “식량이 없어서 (해인)총림 못 하고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봉암사에 오라고 했답니다. 논도 몇 마지기 있고 밭도 여러 마지기가 있고 하니까 그거를 하고 또 신도들에게 시주도 좀 받고 그러면은 봉암사에서 살 만하다고. 그래서 거기를 맡아 들어가셨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 봉암사의 결사를 실제로 기획하고 준비했던 곳은 대승사라고 봐야 되겠군요?

 

봉암사 결사 준비 과정으로 영산회상도를 그린 곳은 대승사고요. 우리가 실천할 때 중국 총림을 조금 본 따기도 하고, 부처님 당시 기원정사를 회상하고 해서 그린 거지요. 그때는 대처승을 사판승이라고 불렀습니다. 거기에는 사판승이 없으니까 우리 뜻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우리의 이상을 한번 펴보자 그런 곳이 바로 봉암사입니다.

 

사진 10. 성철스님과 청담스님.

 

그때 봉암사 생활할 때 하루 두 짐씩 나무를 했습니다. 오전에 한 짐 또 오후에 한 짐. 산에 일꾼이 나무를 베서 이만한 토막을 지어 놓으면 그걸 우리 몸에 맞도록 일꾼들에게 시켜서 지게를 수십 개 만들었어요. 그래서 지게에다가 각자 이름을 적었어요. 누구누구의 지게다 하는 이름을 적어서 헛간에 둬요. 절에 들어가면 문간에 머슴들 사는 방이 있거든요. 무슨 글자인지는 모르고 그것을 신방이라 그랬어요. 거기에 머슴도 살고 일하는 사람들도 살고, 그래서 봉암사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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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순
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역임. 현재 불교무형문화연구소(인도철학불교학연구소) 초빙교수. 저서로는 『원묘요세의 백련결사 연구』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호암당 채인환 회고록의 구술사적 가치」, 「보운진조집의 성립과 그 위상 연구」 등 다수.
obudd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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