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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부처는 의지함이 없는 데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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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3 년 3 월 [통권 제119호]  /     /  작성일23-03-03 12:02  /   조회4,34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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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27 |임제종 ② 

 

임제종을 건립한 의현義玄(?~867)은 조사선에서 주목해야 할 상당히 많은 선사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중국에서 임제종의 법맥이 현재에도 계승되고, 한국과 일본에도 현재에 그 법맥이 유지되고 있다. 의현이 제시한 선사상은 매우 다양하지만 자신의 깨달음으로부터 제시하는 선리禪理와 그를 학인들에게 가르치는 제접提接의 방식이라 하겠다. 이는 조사선에 있어서 대부분 선사가 남긴 어록의 구성이다. 따라서 임제의현의 선사상에 대하여 그의 문인들이 편찬한 『진주임제혜조선사어록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불성으로서 무위진인

 

모든 선사의 사상은 바로 ‘불성佛性’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점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임제어록』에서 불성에 대한 의현의 이해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상당上堂하여 설하였다. “붉은 고깃덩어리 위에 무위진인無位眞人이 하나 있다. 항상 너희들을 쫓아 여러 사람의 얼굴 앞에 출입하나 아직 증거가 없으니 보아라, 보아라!”라고 하였다. 그때 어떤 승려가 나와 묻기를, “어떤 것이 무위진인입니까?”라고 하자, 선사는 선상禪床에서 내려와 붙잡고 이르길, “말하라! 말하라!”라고 하였다. 그 승려가 헤아리려고 하자 선사는 손을 놓으며 말하기를, “무위진인이 무슨 마른 똥막대[幹屎橛] 같은 것인가!”라고 하고 바로 방장실로 돌아갔다.(주1)

 

여기에서 의현은 불성을 ‘무위진인’으로 보고 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위진인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를 윤회를 주재하는 ‘아我’라고 해석한다면 불교의 기본적인 교의敎義에도 맞지 않고, 나아가 조사선의 입장에도 절대로 계합契合될 수 없는 이해이다. 불교에서 우리 존재에 절대적 ‘자아自我’라든가 윤회를 유지하는 ‘영혼靈魂’과 같은 ‘주체아’를 부정함을 선사가 몰라서 그것을 의미하는 것을 무위진인이라고 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붉은 고깃덩어리 위’라고 분명하게 ‘무위진인’의 소재를 밝히고 있다. 이는 명확하게 『단경』의 “자신의 색신[自色身] 가운데 사견邪見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미망迷妄이 있지만, 또한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깨달음의 성품[本覺性]’도 있다.”(주2)라는 말과 연계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를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우리의 색신을 떠나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위진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서 의현이 사용하는 무위진인은 바로 『단경』에 등장하는 “세상 사람들의 성품[世人性]은 본래 스스로 청정한 것으로 만법이 자성自性에 있다.”(주3)라고 하는 그 ‘자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도 자성을 단지 ‘자신이 구족한 성품’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을 앞의 『단경』의 선사상을 논할 때 언급했는데, 그것은 돈오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의현은 “아직 증거가 없으니, 보아라, 보아라!”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다른 말로 하자면 돈오를 통하여 그를 명확하게 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음의 문구를 살펴본다면 더욱 분명해진다고 하겠다.

 

사진 1. 하북성 정정현 소재 임제사의 선당禪堂.

 

무엇이 법을 설하고 법을 듣고 이해하는 것인가? 네가 눈앞에서 분명한 하나의 형단形段이 없이 홀로 밝음이 법을 설하고 법을 들음을 이해함이다. 만약 이처럼 보았다면 바로 불조佛祖와 차별이 없는 것이다.(주4)

 

지금 눈앞에 뚜렷이 홀로 밝게 듣는 것, 이 사람은 곳곳에서 막힘이 없어 시방十方에 관통하고, 삼계三界에 자재自在하며, 모든 경계에 들어서 차별이 돌아서 바뀔[回換] 수 없다.(주5)

 

위의 문구에서 말하는 ‘형단形段’은 바로 ‘신단身段’과 동의어로 명확하게 ‘개체아個體我’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형단이 없이 홀로 밝음’이란 우리 자신의 아집我執으로서 육신肉身에 얽매이지 않고서 깨달음의 상태에서 법을 이해하라는 의미이다. 이를 앞에서 말한 “붉은 고깃덩어리 위에 무위진인이 하나 있음”을 연계하여 이해한다면 비록 우리 존재는 육신을 바탕으로 하여 그를 떠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에 집착하여 ‘형단’에 빠지지 말고 법을 이해하라는 의미라 하겠다. 그리고 “곳곳에서 막힘이 없어 시방에 관통하고, 삼계에 자재하며, 모든 경계에 들어서 차별이 회환回換될 수 없음”은 그대로 돈오의 경계를 설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의현이 무위진인을 불성으로 논하는 밑바탕에는 철저한 돈오가 개입되어 있다고 하겠다.

 

무의도인은 제불의 어머니

 

의현은 이 무위진인을 ‘무의도인無依道人’으로도 설하고 있다.

 

오직 법을 듣는 사람,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는 도인[無依道人]은 제불諸佛의 어머니이다. 따라서 부처는 의지함이 없는 데서 생겨난다. 만약 의지함이 없음을 깨닫는다면 부처라는 것도 또한 얻을 것이 없다. 만약 이같이 볼 수 있다면 이는 진정한 견해見解이다.(주6)

 

여기에서는 불성을 ‘무의도인’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제불의 어머니’라고 설한다. ‘제불의 어머니’는 반야부 경전에서 자주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주7) 특히 『문수설반야경文殊說般若經』에서는 “무념無念하고 무작無作하기 때문에 바로 일체 제불의 어머니이며, 일체 제불이 발생하는 까닭이다.”(주8)라고 설한다. 주지하다시피 동산법문을 창립한 도신道信은 『문수설반야경』을 소의경전으로 채택하여 오문선요五門禪要를 제창한 바 있다.

 

사진 2. 『임제혜조선사어록』.

 

동산법문을 계승한 것이 홍인이고, 홍인의 문하에서 혜능의 남종선이 출현하였고, 의현은 바로 남악계南岳系의 마조도일馬祖道一―백장회해百丈懷海―황벽희운黃檗希運을 계승하였으므로 당연히 반야부 경전을 중시하고 있음을 여실하게 알 수 있다. 더욱이 『단경』은 명확하게 『반야바라밀경』을 설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음이다. 따라서 의현이 ‘무의도인은 제불의 어머니’라는 연원은 명확하게 반야부 경전, 특히 『문수설반야경』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의현은 또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부처의 경계는 자칭 내가 부처의 경계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의도인無依道人은 경계를 타고 나온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와서 나에게 부처를 구한다면, 나는 청정한 경계에서 나와서 응하고, 어떤 사람이 나에게 보살을 묻는다면, 나는 바로 자비慈悲의 경계에서 나와서 응하며, 어떤 사람이 나에게 보리菩提를 묻는다면, 나는 바로 정묘淨妙의 경계에서 나와서 응하고, 어떤 사람이 나에게 열반涅槃을 묻는다면, 나는 바로 적정寂靜의 경계에서 나와 응한다. 경계는 바로 수많은 차별이 있지만, 사람은 바로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에 응하여 형상을 나타내는 것은 마치 물속에 비친 달과 같다.(주9)

 

여기에서 의현이 강조하는 것은 무의도인의 길이다. 앞에서 위앙종潙仰宗을 논할 때 조사선에서는 더는 ‘불경계佛境界’를 추구하지 않음을 밝혔는데, 그것은 이미 『단경』으로부터 ‘당하즉시當下卽是’와 ‘본래현성本來現成’이 논증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의현의 무의도인 역시 본래현성의 입장임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라 하겠다. 그리고 ‘사람은 바로 차별이 없음’이라는 구절로부터 인간에 대한 절대적 긍정을 엿볼 수 있다.

 

인혹人惑을 받지 말라

 

이처럼 의현은 불성을 ‘무위진인’, ‘무의도인’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불성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의현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한다.

 

산승山僧이 사람들에게 지시指示하는 것은 다만 너희들이 인혹人惑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쓰고자 하면 바로 쓰게 되니, 다시 머뭇거리거나 의심하지 말라. 지금 배우는 자가 얻지 못하는 것은 병이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병은 스스로 믿지 못하는 곳에 있다. 네가 만약 스스로 믿지 못하면 곧 망망한 대지에서 일체의 경계를 돌아서 바뀌게[回換] 되며, 다른 모든 경계에 회환되어 버리기 때문에 자유를 얻지 못하게 된다.(주10)

 

사진 3. 임제사 전경.

 

여기에서 의현이 강조하는 것은 ‘인혹人惑을 받지 않게 함’이다. 『유마경』에서 “인혹을 이해함으로 인하여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는다.”(주11)라고 하는데, 이는 모든 사견의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인혹임을 밝히는 말이라 하겠다. 의현은 ‘인혹을 받지 않음’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는 데 그와 관련한 문구들은 다음과 같다.

 

진정한 도인道人과 같이 염념念念의 마음에 끊어짐이 없게 하라.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서토西土로부터 온 것은 다만 인혹을 받지 않는 사람을 찾았을 뿐이다.(주12)

 

너희들이 여법如法한 견해를 얻고자 한다면, 다만 인혹을 받지 않게 하라. 안에서나 밖에서나 만나는 것을 바로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가 권속을 만나면 친가 권속을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벗어나 자재自在하게 된다.(주13)

 

대기大器의 사람은 바로 인혹을 받지 않고, 처하는 곳에서 주主가 되고,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가 현현한 곳이지만 다만 오는 자가 모두 받을 수는 없다.(주14)

 

이로부터 의현은 조사선의 핵심이 바로 인혹을 받지 않는 것임을 명확하게 한다. 특히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라는 두 번째 구절은 상당히 잘 알려진 것인데,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불법조차도 인혹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혹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야 “처하는 곳에서 ‘주’가 되고,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가 현현한 곳[隨處作主, 立處皆眞]”이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수처작주 입처개진’은 상당히 유명한 구절로 많은 이들이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의현이 사용하는 ‘주主’의 의미는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입처개진의 조건이 바로 돈오인 점을 고려하면, ‘주’는 자성, 의현의 논리로는 무위진인과 무의도인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의현의 제접법 가운데 ‘방할제시棒喝齊施’와 ‘사빈주四賓主’ 등에서는 ‘주빈主賓’ 관계를 엄격하게 논하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간략하게 임제의현의 선사상에서 무위진인과 무의도인 등을 고찰하였다. 그런데 의현은 무엇보다도 “병은 스스로 믿지 못하는 곳에 있음”에 초점을 두어 ‘자신自信’을 극도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스스로 믿음’은 ‘인혹을 받음’과도 관련이 있고, 나아가 전체적인 선사상과도 연계되어 있다고 하겠다. 그에 따라 이에 이어서 자신과 관련된 부분과 임제종의 제접법 등을 고찰하고자 한다.

 

<각주>

(주1) [唐]慧然集,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47, 496c), “上堂云: 赤肉團上, 有一位無位眞人, 常從汝等諸人面門出入, 未證據者, 看, 看! 時有僧出問: 如何是無位眞人? 師下禪床, 把住云: 道, 道! 其僧擬議, 師托開云: 無位眞人是什麽幹屎橛! 便歸方丈.”

(주2)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9b), “自色身中, 邪見煩惱, 愚癡迷妄, 自有本覺性.”

(주3)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9a), “世人性本自淨, 萬法在自性.”

(주4) [唐]慧然集,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47, 497b), “是什麽解說法聽法? 是你目前歷歷底, 勿一個形段孤明, 是這個解說法聽法. 若如是見得, 便與佛祖不別.”

(주5) 앞의 책(大正藏47, 498b), “卽今目前歷歷孤明地聽者, 此人處處不滯, 通貫十方, 三界自在, 入一切境差別不能回換.”

(주6) 앞의 책(大正藏47, 498c), “唯有聽法無依道人, 是諸佛之母. 所以佛從無依生, 若悟無依, 佛亦無得, 若如是見得者, 是眞正見解.”

(주7) [西晉]無羅叉譯, 『放光般若經』 卷15(大正藏8, 78b), “般若波羅蜜者是諸佛之母, 世間明導.”

(주8) [梁]僧伽婆羅譯, 『文殊師利所說般若波羅蜜經』 卷2(大正藏8, 738a), “無念無作故, 卽是一切諸佛之母, 一切諸佛所從生故.”

(주9) [唐]慧然集,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47, 499a), “佛境不能自稱我是佛境. 還是這個無依道人乘境出來. 若有人出來問我求佛, 我卽應淸淨境出; 有人問我菩薩, 我卽應慈悲境出; 有人問我菩提, 我卽應淨妙境出; 有人問我涅槃, 我卽應寂靜境出. 境卽萬般差別, 人卽不別. 所以應物現形, 如水中月.”

(주10) 앞의 책(大正藏47, 497b), “僧指示人處, 秖要爾不受人惑. 要用便用, 更莫遲疑. 如今學者不得, 病在甚處. 病在不自信處. 爾若自信不及, 卽便忙忙地徇一切境轉, 被他萬境回換, 不得自由.”

(주11) [姚秦]鳩摩羅什譯, 『維摩詰所說經』 卷中(大正藏14, 550a), “因以解人惑, 而不墮邪見.”

(주12) [唐]慧然集,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47, 502a), “如眞正學道人念念心不間斷. 自達磨大師從西土來, 秖是覓箇不受人惑底人.”

(주13) 앞의 책(大正藏47, 500b), “你欲得如法見解, 但莫受人惑. 向裏向外逢著便殺. 逢佛殺佛, 逢祖殺祖, 逢羅漢殺羅漢, 逢父母殺父母, 逢親眷殺親眷, 始得解脫. 不與物拘, 透脫自在.”

(주14) 앞의 책(大正藏47, 499a), “大器者, 直要不受人惑, 隨處作主, 立處皆眞, 但有來者皆不得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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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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