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석굴형 기념관 건립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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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3 년 9 월 [통권 제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180회 / 댓글0건본문
큰스님께서 세납 80을 넘기자 기력이 쇠약해지시는 것이 눈에 띄일 정도였습니다. 어느 해 겨울, 부산에 머무시던 중 걸린 감기가 금방 급성폐렴으로 전이돼 동아대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금방 퇴원하시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일 주일, 이 주일로 입원기간이 길어졌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으론 은근히 이런저런 걱정이 밀려 왔습니다. 큰스님께서 한번씩 “젊었을 때 향곡 스님이 내 오도송을 듣고는 참으로 좋아하고 신나했었지!”하는 말씀을 흘러듣기만 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시 읊으셨던 큰스님의 오도송을 듣고 싶습니다.’고 여쭈어나볼 걸 그랬다.”는 아쉬운 생각이 점점 커져 왔기 때문입니다. 편찮으신 지금 “스님의 오도송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고 물었다가는 심려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쭈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일마가 지금까지 안 묻던 것을 와 갑자기 묻노? 내가 죽을까봐 걱정되나? 일마!”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당시 해인사 총무 소임을 맡고 있던 때라, 틈틈이 해인사에서 부산의 병원까지 다녀오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큰스님이 쾌차를 보이고 굉장히 기분이 좋으신 듯 해 “향곡 스님께서 그렇게 좋아하고 칭찬하셨다는 스님의 오도송을 어디에 두셨습니까?”하고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큰스님께서 “그건 와 묻는데?”하시는 표정이시더니 더는 말씀하시지 않고, “백련암에 가거든 장경각에서 찾아봐라! 거기에 붓글씨로 써 놨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속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장경각을 열고 여기저기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찾지 못했습니다.”고 말씀드리니, “니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하시며 노트에 오도송이라 제목을 붙이신 다음, 동화사 금당(29세) 〔於桐華寺金堂(二九歲)〕라고 써 주셨습니다.
황하서류곤륜정(黃河西流崑崙頂)
일월무광대지침(日月無光大地沈)
거연일소회수립(遽然一笑回首立)
청산의구백운중(靑山依舊白雲中)
황하수 서쪽으로 거슬러 흘러
곤륜산 정상에 치솟아 올랐고,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져 내리도다.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
오도송을 써주시고 난 그 후 어느 날 큰스님께서 출가송도 써주셨습니다.
미천대업홍로설(彌天大業紅爐雪)
과해웅기혁일로(跨海雄基赫日露)
수인감사편시몽(誰人甘死片時夢)
초연독보만고진(超然獨步萬古眞)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구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이렇게 글을 써주시고 3년여 뒤 열반에 드셨습니다. 만약 그때 여쭙지 않았더라면 천고에 후회를 남길 뻔 했다는 아찔한 생각에 가슴을 졸이기도 했는데, 다행히 친필 기록과 구술 등 모든 것이 남아 있어 영결식이 더욱 장엄스럽게 진행됐다는 기억이 새롭습니다.
성철 스님 오도송 친필
그런데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어느 날, 남기신 자료들을 정리하다 12여 수의 선시를 써놓은 20cm×35cm 크기의 한지를 찾았습니다. 큰스님이 직접 써주신 오도송도 거기에 실려 있었는데 세 글자가 다름을 알게 됐습니다. 즉 ‘청산의구백운중(靑山依舊白雲中)’이 ‘청산의구삽천벽(靑山依舊揷天碧)’으로, 다시 말해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가 ‘청산은 예대로 푸른 하늘에 꽂혀 있네!’로 쓰여 있었습니다. “‘삽천벽(揷天碧)’으로 고쳐야 하나 ‘백운중(白雲中)’으로 그대로 써야 하나?”하고 생각했으나, 이제 큰스님께 여쭐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겁외사 건너편에 불사중인 ‘성철대종사 추모 석굴형 기념관’ 정면 좌우에 오도송과 출가송을 모시려는데, 어느 것을 새겨야 할지 어려움도 생겼습니다. “‘삽천벽(揷天碧)’의 의미가 깨달음 순간의 격정을 잘 표현하신 듯하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만, 손수 써 주신 ‘백운중(白雲中)’을 지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는 소식을 전해드리며 고민의 일단을 털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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