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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세계]
불상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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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18 년 6 월 [통권 제6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26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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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행상!

 

현재의 파키스탄 지역은 기원전 부처님께서 활동하던 시기에는 북인도에 해당했다. 이곳에는 북쪽에서 내려온 유목민이 세운 쿠샨제국이 기원 후 1세기에서 4세기경에 번성했으며, 그리스 문화인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미술을 꽃피웠다.

 

간다라 미술의 중심지는 현재 파키스탄 서북 변경주의 주도인 페샤와르를 중심으로 펼쳐진 남북 약 70km, 동서 약 40km의 분지이다. 이 외에도 그리스와 로마 양식의 조각들이 출토되는 페샤와르 주변의 여러 지역들, 즉 서쪽의 카불 분지와 잘라라바드, 북쪽의 스와트, 남쪽의 탁실라 등을 포함한다.

 

파키스탄의 라호르박물관에는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고행상이 있다(사진 1).
 


사진 . 고행상, 간다라(2~3세기), 라호르 박물관 

 

 

하루에 먹는 것 참깨 알 하나 日食一麻米
형체는 지극히 파리하였네 形體極消羸
건너지 못한 것을 건너려 하였으나 欲求度未度
갈수록 미혹하고 더욱 아득해졌네 重惑逾更沈
(김달진 번역, <붓다차리타>, 문학동네, 2008, 233쪽)

 

“하루에 먹는 것 참깨 알 하나, 형체는 지극히 파리하였네”라는 마명보살의 글을 반영하듯 싯다르타 태자의 얼굴과 상체는 고행의 흔적이 뚜렷하다. 움푹 들어간 두 눈과 돌출된 광대뼈 그리고 덥수룩하게 자란 턱수염, 뼈와 살이 서로 붙고 강줄기처럼 온몸으로 생명수를 전달하는 혈관의 표현은, 수행자가 고행 중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호흡의 억제와 단식에 의한 매우 마른 고행상은 해부학적으로는 정확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지만, 조각가의 목적은 보살의 힘든 고행을 잘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지적은 무의미하다. 길상초가 깔려 있는 대좌에는 중앙의 향로를 중심으로 여섯 명의 수행자가 마주보며 합장하고 있다.

 

이들은 6년 동안 함께 고행하다가 싯다르타 보살이 고행을 포기하자 그의 곁을 떠난 이들로, 성도(成道) 후 녹야원의 첫 설법 도량에서 부처님의 첫 제자가 된 5명의 승려들이 아닐까. 이런 사실은 앞으로 전개될 보살의 깨달음과 교단의 창시를 암시한다.

 

헬레니즘 영향이 강한 간다라 불상

 

인도의 초기 불전 미술에서는 석가여래는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보리수 · 법륜 · 금강보좌 · 불탑 · 불족적 등의 상징으로만 표현되었다. 상징을 사용한 표현법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인류 보편적인 표현 방법이다. 원시시대부터 태양은 생명 · 빛 · 에너지의 원천으로 숭배되어 여러 민족의 신으로 숭배되었는데, 석가여래의 설법을 상징한 법륜도 이 태양 이미지에서 유래했다.

 

깨달음을 상징한 불교의 보리수는 태양과 함께 여러 민족에게 가장 널리 숭배된 성수(聖樹)신앙에 기원을 두고 있다. 나무는 잎 · 꽃 · 열매의 생성 과정을 수반하는 것으로, 불사(不死) · 재생(再生)에 대한 인간의 기원이 담겨 있기 때문에 널리 신앙의 구심점이 되었다. 석가여래의 일대기와 나무는 깊은 연관이 있는데 불교미술에서 석가여래의 탄생은 무우수(無憂樹), 깨달음은 보리수, 열반은 사라수 등으로 흔히 묘사된다.

 

  

사진 . 불입상, 간다라(1-2세기), 페샤와르 박물관

 

 

불교 미술에서는 기원후 1세기경을 전후로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바로 불상의 탄생이 그것이다. 이후 신앙의 중심은 석가여래의 사리신앙인 불탑 신앙에서, 관불(觀佛) 중심의 불상 중심으로 신앙의 중심축이 이동하게 되었다. 불상이 처음으로 출현한 지역은 고대 서북 인도의 간다라와 중인도의 마투라이다.

 

불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간다라 설, 마투라 설, 간다라와 마투라 동시설 등 100여 년 동안 동서양의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현재는 마투라에서 불상이 탄생하여 간다라에 영향을 주었다는 마투라 발생설이 차츰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불상의 간다라 기원설에는 서구인들의 제국주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서구 우월주의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스 영향으로 간다라 불상이 창시되었다는 간다라 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는 프랑스의 알프레드 푸쉐(Alfred Foucher, 1865-1952)이다.

 

유럽 학자들이 주도하는 학계에서 한동안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던 ‘그리스 기원설’은 불상이 인도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 신상 조각 전통의 영향을 받아 인도 서북 변방이었던 간다라 지방에서 등장했다는 견해다.

 

간다라 기원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간다라 불상은 페샤와르 박물관에 소장된 불입상이다(사진 2). 물결모양의 풍성한 머리카락은 위로 묶어 상투를 틀었고, 크게 뜬 두 눈에는 눈동자가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콧수염이 표현된 얼굴은 남성다운 이미지가 강하다.

 

아쉽게도 부러진 목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고개를 약간 위로 들고 있는 인상이다. 두 어깨를 감싼 골이 깊은 옷 주름과 물결치는 머리카락은 그리스와 로마의 인물상과 유사하다. 부러진 오른손은 위로 들어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 초기 불상에서 표현된 모든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였을 것이고, 왼손으로는 유행(遊行)하기 쉽도록 가사 자락을 잡았을 것이다.

 

헬레니즘과 간다라, 알렌산더가 만난 불상

 

사진 . 부처님을 호위하는 금강역사, 간다라(1-2세기), 베를린 아시아미술관
알렉산더에 의해 전파된 그리스 문화 즉 헬레니즘은 간다라 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간다라 미술 속의 헬레니즘은 석가여래의 호위 무사였던 금강역사상에 잘 나타나 있다. 금강역사는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하는 신장(神將)으로 간다라 불전 미술에 등장하는데, 금강저(金剛杵, Vajra)를 들고 호위한다고 하여 ‘집금강신(執金剛神, Vajrapani)’이라고도 한다.

 

간다라 미술 속의 금강역사는 석가여래께서 간다라 지방에 불법(佛法)을 전파하러 갈 때 아난존자 대신 금강역사를 대동하고 갔다는 에피소드를 반영한 산물이다.

 

  

사진 . 불입상, 간다라(3-4세기), 페샤와르 박물관  

 

 

독일 베를린 아시아미술관에는 석가여래의 뒤를 따르는 금강역사가 있다(사진 3). 오른손에는 종자(從子)의 상징인 불자(拂子)를 들고 있고, 왼손에는 어떤 것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금강저를 꽉 잡고 있다. 파도모양의 머리카락과 턱수염, 근육이 표현된 노출된 다리 등에 헤라클레스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금강역사는 사천왕 또는 제석천보다 신격이 낮지만, 간다라 인들은 석가여래의 호위 무사로 그를 수용하면서 힘의 상징인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차용하였다.

 

간다라 불상 가운데 그리스의 영향이 강한 불상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소장된 불좌상이다(사진 4). 언뜻보면 불상이라기보다는 그리스나 로마의 신상 또는 황제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머리카락을 상투 틀어 만든 육계(肉髻)와 오른손과 발에 표현된 연꽃모양은 부처님의 손과 발에는 천개의 바퀴살이 있는 수레바퀴 즉 천폭윤상(千輻輪相)이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표시이다.

 


사진 . 불좌상, 간다라(1~2세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사진5. 불입상. 간다라(3-4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 박물관

 


여러 개의 빛줄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두광은 로마시대 동전에 등장하는 아폴로 신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간다라 불상이 대부분 돌인 것과 달리 이 불상은 청동으로 제작된 점이 주목된다(국립중앙박물관, <고대불교조각대전>, 2015, 59∼60쪽).

간다라 불상 가운데 독특한 모습을 한 상은 오른팔을 옷 속에 넣고 있는 불상이다(사진 5).

 

처음 페샤와르 박물관에서 이 불상을 보고 ‘어, 깁스한 부처님이네’ 하고 혼잣말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러한 자세는 델로스 섬에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디오스쿠리데스의 저택 펠리스타일에서 발견된 기원전 140년경에 제작된 디오스쿠리데스의 상과, 시리아의 팔미라 유적에서 출토된 2세기에서 3세기경에 제작된 토가(Toga)를 두른 인물상과 유사하다.

 

이처럼 간다라 미술 속의 헬레니즘 영향은 다양하여 동서미술의 교류 속에 꽃핀 미술이 바로 간다라 미술임을 알 수 있다.

 

인도인의 모습을 한 최초의 삼존불상


 


사진 . 범천권청, 간다라(1세기 경), 높이 38.8cm, 베를린 아시아미술관

 

간다라의 최초 불삼존상은 중앙의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범천과 제석천이 배치된 범천권청(梵天勸請)을 표현한 것이다. 석가여래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자신이 깨달은 바가 너무 심오해서 중생들에게 법을 설해도 그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을 염려해 설법을 주저했다. 범천이 세 번에 걸쳐 간곡하게 설법해 줄 것을 청하자 설법을 결심했다는 것이 범천권청 에피소드이다.

 

독일 베를린의 아시아미술관에 소장된 범천권청 불전도는 불상의 기원에 새로운 학설을 제공하고 있는데, 파키스탄 스와트의 붓카라 사원지에서 발견된 것이다(사진 6). 중앙에는 선정인(禪定印)을 한 석가여래 좌상이 있고, 향좌측에는 법을 청하는 수행자 풍의 범천과 향우측에는 왕의 모습을 한 제석천이 합장하고 서 있다. 중앙의 석가여래는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두 발을 노출시킨 요가 자세의 마투라 불상의 모습이다.

 

간다라 기원설을 주장한 알프레드 푸쉐는 서구적인 이미지가 강한 간다라 불상일수록 조성 시기가 올라간다고 보았다. 제작 연대가 표기된 불상이 존재하지 않는 간다라에서 유럽의 많은 학자들은 서구적인 용모를 양식 편년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발굴을 통한 체계적인 유물의 수습으로 인해 이 방법론은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스와트 붓카라 사원지의 기원전후 1세기 토층에서 발견된 「사진 6」이 바로 그것을 입증한다. 이 조각을 연구한 네델란드의 미술사학자 로후이젠 드 레후(J. E. van Lohuizen-de Leeuw)는 마투라의 영향으로 간다라에서 불상이 창시되었다는 불상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제기함으로써, 마투라 발생설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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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간다라 불전도상佛傳圖像의 연 구」로 문학박사학위 취득,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불교미술전공 초빙교수,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 저서에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 기록 연구』, 공동 저서로 『치유하는 붓다』·『간다라에서 만난 부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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