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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시스템적 사고와 육상원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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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8 년 6 월 [통권 제6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62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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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적 사고(思考)

 

현대문명은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지만 그 대가로 심각한 환경위기를 초래했다. 관점에 따라 위기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생태철학자들은 인간중심주의가 문제라고 진단한다. 인간중심주의는 자연과 인간을 별개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기초해 있다. 하지만 존재의 실상을 보면 모든 존재는 서로 밀접한 상호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생태학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19세기 독일 생물학자 헤켈(E. Haeckel)은 생태학을 ‘유기체와 그 유기체들을 둘러싼 외부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생태계의 모든 존재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체는 생태계라는 시스템 속에서만 비로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존재가 상호관계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바라보는 이런 인식을 시스템적 사고 또는 유기체적 사고라고 한다.

 

지난 시간까지 살펴보았던 화엄의 십현문(十玄門) 역시 온 우주를 유기적 관계성으로 통찰하는 시스템적 사유라고 할 수 있다. 화엄사상에는 십현문 말고도 육상원융(六相圓融)이라는 교설도 등장하는데 이 역시 유기체적 사유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 볼 때 개별적 사물 자체만을 보지 않고 전체적이고 유기적 관계성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육상원융에서 육상(六相)이란 ‘여섯 가지 특징’이라는 뜻으로 하나의 존재를 총(總)・별(別)・동(同)・이(異)・성(成)・괴(壞)라는 여섯 가지 측면으로 조망하는 것이다. 총별은 전체와 부분, 동이는 같음과 다름, 성괴는 성립과 해체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여섯 가지 특성들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고, 상호 소통하기 때문에 원융(圓融)이라고 했다. 육상은 전체적으로 보면 여섯 개의 측면으로 구분되지만 서로 대조적인 두 개의 특성들이 한 쌍을 이루기 때문에 크게 세 가지의 테마로 볼 수 있다.

 


 

 

하나의 현상에 담긴 여섯 가지 특징

 

첫째는 총별(總別)로 전체[總]와 부분[別]이라는 측면이다. 하나의 존재나 현상을 전체라는 관계적 특징과 부분이라는 개별적 특징으로 나눠 보는 것이다. 개체는 전체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의미를 띠지만 그렇다고 개별적 특성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각각의 개별적 모습들도 부분적 의미뿐만 아니라 전체만큼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어떤 존재나 사안에 대해 전체적 측면만 보고 개별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개별적 측면만 보고 전체적 관계성을 간과해도 반쪽짜리 안목이 되고 만다. 전체적 위상과 부분적 의미를 동시에 통찰해야만 어떤 존재나 사안의 의미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

 

성철 스님은 육상원융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집을 비유로 설명한다. 총이라는 전체가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집이라면 별이란 기둥, 마루, 방과 같이 개별적이고 부분적 구성요소들을 말한다.

 

기둥이나 마루 또는 방을 제외하고 집이라는 전체가 있을 수 없지만 반대로 집이라는 전체를 제외하면 기둥과 마루, 방이라는 개별적 특성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둥과 마루, 방이라는 부분이 곧 집이라는 전체가 되고, 집이라는 전체는 기둥이나 방이라는 부분들의 유기적 종합이다.

 

전체라는 총이 곧 부분이라는 별이 되고, 부분이라는 별이 곧 전체라는 총이 된다. 따라서 이 둘은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은 특성을 띠게 된다. 개별적 특성인 별상은 총상 속에 내재하고, 전체적 특성인 총상은 별상 속에 내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은 십현문을 통해서도 살펴 본 바 있다. 총의 개념에 해당하는 것은 「동시구족상응문」이다. 모든 요소들이 동시에 갖추어져 집이라는 전체를 구성함을 설명한 대목이다. 반면 별상에 해당하는 것은 「광협자재무애문」이다. 넓음과 좁음은 개별적 특성에 갇혀 있지 않고 총은 총대로, 개별적 요소들은 또 개별적 요소대로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다.

 

둘째는 동이(同異)로 같음[同]과 다름[異]이라는 측면이다. 이 또한 집을 비유로 해서 설명할 수 있다. 서까래도 집을 구성하는 일부이고, 기둥도 집을 구성하는 일부이고, 기와도 집을 구성하는 일부이다. 이들 부분은 모두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이라는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모두 동일한 특성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둥은 기둥으로서의 독자성을 갖고 있고, 서까래는 또 서까래로서의 고유성을 갖고 있고, 기와는 기와로서의 특성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방과 거실, 부엌과 대청도 모두 집의 일부지만 각자 나름의 개별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런 관계는 국가나 민족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성립된다. 무수한 개인들은 한 나라의 구성원이고, 어떤 민족의 구성원들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구성원들은 모두 동일한 특징 즉 동상(同相)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동일성만 강조하면 개별성과 개체의 자유는 억압되고 만다. 같은 민족 구성원 속에서도 각각의 개인들은 성격이 다르고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이 보장되어야 건강한 나라가 되고, 유기적 통합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동상(同相)과 이상(異相)은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또한 같은 중도(中道)의 관계에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동질성 속에 서로 다른 특성이 내재되어 있고, 다름 속에 또 동질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성괴(成壞), 즉 이루어짐[成]과 무너짐[壞]이다. 성상(成相)은 어떤 현상이 성립되는 특성이고, 괴상(壞相)은 무너지고 해체되는 특성을 말한다. 집이라는 전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기둥이나 서까래를 만들어야 함으로 나무를 베어야 한다. 나무를 베는 행위에는 성상과 괴상이라는 두 가지 모순적 특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기둥이라는 개별적 관점에서 보면 나무를 베는 것은 집을 짓는 재료를 확보하는 것이므로 성상에 해당한다. 하지만 나무의 관점에서 보면 나무라는 개체는 집을 위해 파괴되어야 함으로 무너짐, 즉 괴상이 된다. 따라서 성상과 괴상은 서로 대립적 특성이지만 이 두 개념은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고 있다.

 

성상과 괴상의 이런 관계는 모든 존재나 현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봄날 씨앗이 발아하는 것은 새싹이라는 하나의 존재가 생성되는 성상이다. 그러나 씨앗의 관점에서 보면 새싹을 틔우기 위해 씨앗이라는 개체는 해체되고 사라짐으로 괴상이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결국 씨앗의 해체도 아니고, 새싹의 탄생도 아니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중도가 된다.

 

어디 그 뿐이랴. 우리가 음식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분명히 에너지를 얻고 개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므로 성상이다. 하지만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 다른 생명을 잡아먹어야 하고, 살아 있는 야채를 먹어야 한다. 모든 생명현상은 한편으로는 존재를 유지하는 성상이지만 또 먹이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이 희생되어야 함으로 괴상이다. 이렇게 보면 사는 것이 곧 죽는 것이고,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 삶은 죽음에 기대어 있고, 죽음은 삶에 의지해 있다.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개체의 삶은 성립도 아니고 무너짐도 아닌 불생불멸이다. 성립하면서 동시에 무너지고, 무너지면서 동시에 성립되는 중도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의 생명활동 역시 중도이며, 중도의 원리에 의해서 성립되고 무너지고 있다. 결국 육상원융은 부분과 전체, 상호 대립적 특성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존재의 중도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육상원융은 이상과 같이 존재론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현실적 가르침도 담고 있다. 우리가 어떤 사안을 고민하고 가부를 판단을 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총별(總別)」에 대한 안목을 갖는 것이다. 총별은 전체적으로 사안을 살펴보되, 그것에 매몰되지 말고 개별적 의미를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별적 사안에 매몰되어 전체적 특성을 간과하거나 반대로 전체적 측면에만 매몰되어 개별적 사안의 중요성을 놓치곤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듯이 부분을 간과하면 작은 돌부리에 걸려 전체를 망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둘째는 「동이(同異)」에 대한 안목을 갖는 것이다. 자신과 동일한 입장에 있는 사람 즉 내부자의 시선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모든 구성원들의 자기 동일성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들의 관점에만 매몰되어 차이와 다양성을 간과하면 독단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상대방의 시선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이는 차이의 관점에서 자신들을 돌아보고 문제를 보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성괴(成壞)」에 대한 안목을 갖추는 것이다. 성상의 측면은 해당 사안이 갖는 긍정적 측면, 낙관적 측면을 보는 눈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만 보면 곤란하다. 하나의 측면이 갖는 괴상, 즉 부정적 측면에 대한 고려도 반드시 해야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하나의 존재나 현상을 종합적으로 통찰하려면 이상과 같은 세 가지 범주에 담겨 있는 여섯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협소한 생각에 갇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 볼 수 있는 지혜의 안목이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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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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