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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사상]
상입相入하고 창발創發하는 도약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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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  2020 년 12 월 [통권 제92호]  /     /  작성일20-12-30 10:07  /   조회6,22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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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 요소라고 여겨졌던 원자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 기적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의 수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하늘을 날고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통화한다. 좀 특별한 사람은 계수나무가 있다는 땅을 걷기도 한다. 200년 전의 사람이 본다면 이 모든 게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면 기적은 없을까? 이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이 우리 주변에서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무엇인가?

 

원자와 세계 사이의 기적, 글자와 문명 사이의 기적 

 

 자연 상태에서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는 92개뿐이다. 원소의 수는 백여 개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세계가 펼쳐진다. 꽃이 피고 새가 날며 해와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 세계가 단지 92가지만의 원소로 이뤄진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 놀라운 일은 원자와 세계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글자와 문명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한글이나 영어가 모두 서른 자 미만이고 아라비아 숫자는 단지 10개뿐이다. 열 개의 숫자로 모든 수를 다 쓰고, 서른 자가 안 되는 글자로 우주와 인류사회의 모든 것을 다 기록한다. 수십 개의 문자만 있으면, 그 많은 도서관의 책을 다 쓸 수 있고 문명의 성과를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정보를 모두 저장할 수 있다. 원자와 세계 사이에서, 글자와 문명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 기적이 어떻게 가능한가? 

 

원자와 분자에서의 상입相入

 

 우리가 마시는 물을 통해 원자와 분자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자.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공유결합을 하면서 물 분자 하나가 형성된다. 공유결합을 하는 세 원자는 서로의 전자를 공유하고, 각각의 원자에 속해 있던 전자는 세 원자 사이를 넘나든다. 그러면 수소 원자의 전자 일부는 전자 친화도electron affinity가 상대적으로 큰 산소 원자 쪽으로 옮겨간다. 그 결과, 수소 원자의 영역은 전자를 잃으면서 양의 전기를 띄게 되고, 산소 원자의 영역은 전자를 얻으면서 음의 전기를 띄게 된다.

 

 이렇게 전자를 공유하면서 물 분자는 극성을 얻는다. 이 극성 때문에 물 분자는 하나의 분자 상태로 존재하지 못하고, 서로 간의 전기적 결합을 하면서 수십 개의 물 분자가 무리를 이루어 존재하게 된다. 물이 전기적 극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마이크로 오븐에도 이용된다. 전기장을 빠르게 바꿔주면 극성을 가진 물이 전기장에 따라 요동치면서 온도가 올라가므로 수분이 포함된 음식물을 데울 수 있다.

 

 물 분자의 극성은 수소 원자에도 없고 산소 원자에도 없다. 그래서 수십 개의 물 분자가 무리를 이루는 물의 속성은 수소나 산소 원자를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나타나지 않는다. 물의 속성은 구성 원자의 속성에서 그대로 나온 것도 아니고, 구성 원자의 속성을 단순히 합한 것도 아니다. 그건 수소와 산소 원자가 공유결합을 하면서 얻어지는 속성이다. 서로의 전자를 주고받으면서 공유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속성이고 만들어지는 속성이다.

 

 원자의 상입과 창발로 이루어지는 분자 

 

 수소와 산소 원자가 공유결합을 하면서 물 분자가 형성되는 과정의 의미를 살펴보자. 서로의 전자를 공유한다는 것은 물 분자를 구성하는 세 원자가 서로 침투한다는 것이다. 수소 원자가 산소 원자에 침투하고 산소 원자가 수소 원자에 침투한다. 이런 상호침투를 화엄에서는 상입(相入, mutual penetration)이라고 한다.

 

 수소 원자가 산소 원자에 침투하면서 산소 원자가 변하고, 산소 원자가 수소 원자에 침투하면서 수소 원자가 변한다. 상호 침투와 변화의 과정을 거치므로 물 분자를 구성하는 산소 원자는 구성 이전의 산소 원자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상호침투와 변화의 과정은 어떤 분자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다르므로, 물 분자를 구성하는 산소 원자는 산소 분자를 구성하는 산소 원자와도 다를 수밖에 없다.

 

 분자의 속성은 원자가 서로 침투하고 변화하는 상입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창조적으로 발현된다. 상입의 과정을 거치면서 창발emergence한다. 상입과 창발을 통해 분자의 속성이 새롭게 나타나기 때문에, 원자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분자의 속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언어와 문자에 나타나는 상입과 창발 

 

 상입과 창발의 의미는 언어와 문자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영어 단어 ‘by’와 ‘bye’를 살펴보자. 두세 글자가 모여서 한 단어를 이뤘지만, 단어를 구성하는 글자 자체에 단어의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 글자 자체는 단어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지만 글자가 모이면 단어의 의미가 새롭게 나타난다. 단어를 구성하는 글자가 어떻게 연결되느냐, 단어를 구성하는 글자가 서로 어떤 의존과 연관의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창조적으로 발현된다. 창발이다.

 

 더욱이 글자 ‘e’ 하나가 있고 없음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왜 그런가? 단어 ‘bye’에서 ‘b’와‘y’는 ‘e’와 연관의 관계를 맺으면서 ‘e’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다. ‘b’와 ‘y’가 상입하면서 상호 연관과 의존의 관계를 맺으면 ‘by’가 되고, ‘b’와 ‘y’와 ‘e’가 상입하면서 상호 연관과 의존의 관계를 맺으면 ‘bye’가 된다. ‘by’와 ‘bye’에서 성립되는 연관과 의존의 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글자 하나가 추가되면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 이유는 ‘b’와 ‘y’와 ‘e’의 글자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상입하면서 어떤 연관과 의존의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창조적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상입과 창발은 단어가 모여서 형성되는 문장에서도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오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아프다.”라는 문장을 보자. 한 문장에 ‘다리’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오면서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지만, 의사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왜 그런가?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앞의 ‘다리’는 ‘건너오다가’와 연결돼 있고, 뒤의 ‘다리’는 ‘넘어져서’와 ‘아프다’에 연결돼 있어서다. 앞의 ‘다리’는 ‘건너오다가’와 상입하고, 뒤의 ‘다리’는 ‘넘어져서’와 ‘아프다’와 상입하기 때문이다. 이 상입에 의해 “건너오다가”가 침투한 ‘다리’는 ‘교량’이 되고, ‘넘어져서’와 ‘아프다’가 침투한 ‘다리’는 신체의 한 부분이 된다.

 

 이처럼 철자가 같은 단어가 한 문장에 등장하더라도 어떤 술어가 그 단어와 상입의 연관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 뿐이 아니다. 이 상입의 연관관계에 의해 “다리를 건너오다”나 “다리가 아프다”라는 문장은 ‘다리’나 ‘건너오다’나 ‘아프다’라는 각각의 단어가 갖지 못하는 문장의 의미를 갖추게 된다. 이는 한편으로는 각각의 단어가 서로 침투하면서 각각의 단어에는 없던 문장의 의미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문장 전체의 의미가 각각의 단어에 스며드는 것이기도 하다. 

 

 연기-상입과 창발의 보편성

 

 상입과 창발의 관계는 앞에서 논의한 예뿐 아니라 아주 보편적으로 성립한다. 이는 우선 인과 관계에서 언제나 성립해야 한다. 씨앗과 싹의 관계가 한 예다. 씨앗이 있어야 싹이 나오지만, 씨앗이 있다고 싹이 반드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싹이라는 과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분, 토양, 햇빛 등의 무수한 연緣이 씨앗이라는 인因에 침투해야 한다. 이 상입에 의해 물은 이전의 물이 아니고 씨앗은 이전의 씨앗이 아닌 것으로 변한다. 이 상입에 따른 변환으로 씨앗과 물은 싹으로 새롭게 나타난다. 이는 상입과 창발이 개입돼야만 연緣의 도움으로 인因이 과果로 변하는 시간적 인과의 연기緣起가 성립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잎에서 논의한 원자와 분자, 글자와 단어, 단어와 문장의 관계는 상호 연관과 의존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연기緣起를 보여준다. 이 연관과 의존의 관계가 끝없이 전개되는 세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원자가 모여 분자를, 분자가 모여 생명물질을, 생명물질이 모여 세포를, 세포가 모여 생명을 이룬다. 이 생명 중의 하나가 인간이다. 개별적인 인간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가 문화를 만들어내고 문화의 누적적 발전으로 문명이 형성된다. 이 각각의 단계가 모두 상입에 의한 연기의 과정이고 창발을 통한 도약의 과정이다.

 

상입 창발 그리고 다양성 

 

 상호 침투하여 함께 변화하는 상입을 통해 새로운 속성이 창조적으로 발현되면서 하위 존재자의 단순 합 이상의 상위 존재자가 출현하는 도약이 일어난다. 하위 존재자에 없던 속성이 상위 존재자에서 새롭게 발현되기 때문에, 분자가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원자를 이해했다고 해서 분자를 이해할 수 없다. 세포가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원자에 대해 이해했다고 해서 세포를 이해할 수 없다. 세포로 이루어진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문명이지만 세포를 이해했다고 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생물학적 인간을 이해했다고 해서 문명을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상입과 창발 때문에 물리학으로 세상을 모두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상입하는 연기로 인해 상위 존재자의 속성이 창조적 발현하기 때문에 무한히 다양한 세계가 펼쳐진다. 상입과 창발의 연기 때문에 92가지의 원소만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 안에 백만 종 이상의 생명종이 존재할 수 있고, 24자의 자모음만으로 구성된 한글과 10개의 숫자로 우주의 모든 정보를 다 기록할 수 있다. 작은 수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그 원소들의 어우러짐으로 나타나는 놀랄만한 다양성이 전개되는 기적의 공간에서 우리는 숨 쉬고 있다.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243호. 통일신라. 대구시 팔공산로 동화사. 9월 26일 박우현 거사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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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고려대학교 과학기술대학 물리학과 교수. 연구 분야는 양자정보이론. (사)한국불교발전연구원장.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 (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양형진의 과학으로 세상보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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