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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처방전에 매달리지 않고 약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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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4 년 9 월 [통권 제137호]  /     /  작성일24-09-05 12:29  /   조회51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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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란 과연 무엇일까요? 불교佛敎란 불佛, 즉 부처님의 가르침[敎]입니다. 부처[佛]란 ‘깨친 사람’이란 뜻이고, 불교란 모든 것의 본원本源 자체를 바로 깨친 사람인 부처의 가르침이므로 결국 깨달음에 그 근본 뜻이 있습니다. 만약 불교를 이야기하면서 깨친다[覺]는 데에서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면 그것은 절대로 불교가 아닙니다. 일체를 총괄적으로 표현하여서는 법성法性이라 하고, 각각 개별적으로 말할 때는 자성自性이라고 하는데, 그 근본에서는 법성이 바로 자성이고 자성이 바로 법성이니 자성이라 하든 법성이라 하든, 이 본원 자체를 바로 깨친 사람을 부처라 합니다.

 

부처님은 만법의 본원을 깨친 분

 

2,500여 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을 보시고 정각正覺을 이루셨으니 이것이 불교의 근본 출발점입니다. 부처님은 많은 지식을 얻었거나 절대신의 계시를 받아서 부처가 된 것이 아니라 보리수 아래에서 스스로 선정禪定을 닦아 자기의 자성을, 다시 말하자면 일체 만법의 법성을 바로 깨쳐서 부처님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출발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들과 모든 조사祖師 스님들이 자기 성품, 자기 마음을 깨쳐서 부처를 이루었지 절대신이나 언어 문자에 의지해서 부처를 이룬[成佛]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불교의 근본 생명선이자 영원한 철칙이며 만세의 표준입니다. 

 

사진 1.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다가야 대탑 앞에서 독경하는 티베트 스님들. 사진: 알록 제인.

 

그런데 내가 이렇게 부처가 어떻고 선이 어떻고 교리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본질에서 이야기하자면, 사실 여러분에게 바른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약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사람 죽이는 독약인 줄 바로 알 것 같으면 그런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불법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부처 되려는 병, 조사祖師 되려는 병, 이 모든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성을 깨쳐서 모든 집착을 벗어나면 참으로 자유자재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서는 집착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이 바른 사람이라면 부처님이나 달마조사가 와서 설법을 한다 하여도 귀를 막고 달아나 버려야 합니다.

 

예전에 무착문희無着文喜(820〜899) 스님이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공양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큰 가마솥에 팥죽을 끓이고 있는데, 그 팥죽 끓는 솥 위에 문수보살이 현신現身하였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문수보살을 직접 만나뵈었다고 대중을 모으려고 야단했을 터인데 무착스님은 팥죽을 저었던 주걱으로 문수보살의 뺨을 후려치면서 말했습니다.

 

문수는 그저 문수일 뿐이며 무착은 나 무착일 뿐이다.

 

그와 같이 여러분 중에서 “성철은 그저 성철일 뿐이고 나는 나다. 긴 소리 짧은 소리 무슨 잠꼬대가 그리 많으냐?” 하고 달려드는 진정한 공부인이 있다면 내가 참으로 그 사람을 법상 위에 모셔 놓고 한없이 절을 하겠습니다. 그런 무착스님의 기개가 참으로 출격장부出格丈夫이며 펄펄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내 밥 내가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어째서 남의 집 밥을 구걸하느냐 말입니다. 부디 내 밥 내가 먹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언어문자로는 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느냐면서 6바라밀행을 닦아 만행하면서 정각正覺을 성취하는 것은 안 되느냐고 흔히 수좌들이 묻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전 조사스님들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만행을 하며 6바라밀행을 닦아 성불하려고 하는 것은 송장을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다.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송장을 타고 바다를 건너가겠습니까? 6바라밀행이 보살행으로서 아무리 좋다고 하지만 이것으로는 자기 자성을 깨치지 못합니다. 

조선시대 서산西山(1520〜1604)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히려 일생 동안 어리석은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승文字僧이 되길 바라지 않느니라.

 

물론 공부를 할 때는 이론과 실천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경전을 배우면서 참선을 하고, 참선을 하면서 경전을 배우고 조사어록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언어문자는 산 사람이 아닌 종이 위에 그린 사람인 줄 분명히 알고 마음 깨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진 2. 오대산 문수성지. 중국 산시성의 북동쪽에 있는 산으로 문ㅅ후보살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우리들의 마음을 깨치려고 하면 여러 방법이 있지만 언어문자를 버리고 바로 깨치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예전 스님들이 깨달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네가 비록 억천만 겁 동안 여래의 온갖 법문을 기억하여도 하루 동안 선정禪定을 닦느니만 못하느니라.

 

옴 오른 여우 새끼는 사자굴에 머물 수 없다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아난존자가 총명하고 지해知解가 뛰어나서 언어문자를 기억하는 것으로만 생명으로 삼고 실제 선정을 닦지 않으므로 부처님께서 너무나 딱하게 여겨 아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외에도 부처님께서 언어문자만 기억하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아난에게 타이르신 일이 많습니다.

 

너와 나는 저 과거 무수한 시간 동안 같이 발심發心하여 성불하려고 공부하였다. 그러나 너는 다만 언어문자만 따라가서 그것만 기억하고, 나는 틈만 있으면 선정을 닦았다. 선정을 닦는 것은 밥을 먹는 것이요, 언어문자를 기억하는 것은 밥 얘기만 하는 것이니 어찌 배가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언어문자란 처방전이다. 거기에 의거해서 약을 지어먹어야 병이 낫는 것이지 처방전만 열심히 외어 보았자 병은 낫지 않는다. 너는 처방전만 기억하고 있으니 중생병이 낫지 않은 것이고, 나는 약방문에 의지해서 약을 먹었기 때문에 부처를 이루었다.

 

이처럼 늘 언어문자를 기억하는 것을 능사로 삼지 말고 깊이 선정을 닦으라고 간절하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나, 아난은 부처님 생전에는 그 병을 고치지 못하고 마음으로 깨침을 얻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가섭존자가 중심이 되어 대중들을 모아 부처님께서 생전에 하신 법문들을 수집·정리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아난존자도 참석하였습니다. 아난존자의 총명·지해는 물을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 부을 때 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붓듯이, 그렇게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던 만큼 부처님 법문을 수집하는 일에도 빠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가섭존자가 생각해 보니 아난의 총명이 뛰어나 부처님 법문을 다 기억은 하고 있으나 마음으로 깨치지를 못하였으므로 실제의 부처님 법은 모르니, 그런 사람을 대표로 내세워 결집結集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금강산 안내문을 잘 외워 자기가 본 것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하여도 실제로 금강산을 본 사람과 못 본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부처님 법문을 결집하는 데도 참으로 자기가 눈을 뜨고 자기가 법을 보고 자기의 마음을 깨친 후에 부처님의 법을 소개해야만 부처님 법문이 산 법문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녹음기 틀어 놓듯이 말로만 전하는 것만으로는 근본 생명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섭존자는, 아난이 없으면 부처님 법문을 결집하지 못한다는 대중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여기는 사자굴이니 너같이 마른 지해 때문에 몹쓸 병이 든 여우가 어찌 이 사자굴에 들어올 수 있겠느냐?” 하면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러자 아난이 애걸복걸하며, “제가 어리석어서 언어문자에만 집착하여 마음의 근본을 깨치지 못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떠나실 때 이제 누굴 의지하여 공부해야 하겠습니까? 라고 여쭈니, 부처님께서 ‘나의 대법大法을 가섭에게 전했으니 너는 내가 떠난 뒤 가섭을 의지해서 대법을 성취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사형師兄이 나를 쫓아내시면 나는 누굴 의지해서 대법大法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울면서 간절히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래도 가섭존자는 “너는 지해 총명으로 몹쓸 병이 든 여우 새끼이니 이 사자굴에는 살 수 없다. 부처님 법문을 결집하는 이 회상會上에 꼭 참석하려면 깨쳐서 오너라.” 하고 기어이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렇게 쫓겨났으나 아는 것이 많으니 신도들이 와서 예배하고 큰스님이라고 받드니, 쫓겨난 것도 다 잊어버리고 마른 지해로써 다시 대중들 앞에서 법문을 했습니다.

 

그때 또 다른 부처님 제자인 밧지[跋耆] 비구가 조용한 처소에서 공부만 하고 있었습니다. 아난존자가 와서 법문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번잡해져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어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타일렀습니다.

 

고요한 나무 밑에 앉아

마음은 열반에 들어

참선하고 게으르지 말라

말 많아 무슨 소용 있는가.

 

그제서야 아난존자가 정신이 번쩍 들어 ‘아! 큰일났구나. 가섭존자에게 쫓겨나 여기 와 있는 신세인데 이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가’ 하고 크게 반성하고는 그때부터 부처님이 생전에 그렇게 부탁해도 하지 않던 선정을 열심히 닦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선정을 익혔는지 그 기간은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앉으나 서나 밤낮으로 침식을 잊고 열심히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저녁 너무나 피곤하여 좀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목침을 베려는 순간에 확철히 마음을 깨쳤습니다. 다시 가섭존자를 찾아가 인가印可를 받고 부처님 법문을 결집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내가 이렇게 들었노라.”로 시작되는 경전들이 편찬된 것입니다.

 

아난존자와 여시아문

 

불교 역사상 부처님 법문을 모은 경전은, 물론 그 뒤에 성립된 것도 많이 있지만, 대개는 아난존자가 구술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난존자같이 부처님 법문을 잘 기억해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지만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같은 부처님 제자이면서도 가섭존자에게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였으니 이는 곧 불교의 생명이 언어와 문자를 기억하는 총명에 있지 않고 마음을 깨치는 데 있음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는 사실史實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이 근본 생명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 없는 사람은 송장입니다. 그러니 송장 불교가 아닌 살아 있는 불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으로 부처님 진리를 깨쳐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항상 말하는 것인데 팔만대장경 속에서 불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얼음 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팔만대장경에 무슨 잘못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언어문자에 집착되어 그러한 언어문자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죄가 있을 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흔히 스님들이나 불교인들이 “선, 선, 하는데 부처님 당시에도 참선을 시켰나? 선이라는 것은 불교 역사상 후대에 발달한 것이 아닌가?” 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부당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시대와 가까운 때의 경전으로 인정받는 팔리어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공부하는 길로 선을 주장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늘 하신 말씀은 “공부는 좌선坐禪을 하라. 좌선을 하다가 피로하거든 행선行禪, 즉 경행經行을 하라. 행선을 하든지 좌선을 하든지 선을 해야지 선을 하지 않고서는 성불하는 길이 멀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불교의 근본 수행으로 선을 가르치셨다는 사실이 경전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성철스님 화두참선법』(장경각, 2016)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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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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