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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사상]
선禪 수행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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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4 년 12 월 [통권 제140호]  /     /  작성일24-12-05 12:50  /   조회10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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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학자의 불교 이야기 12 

 

요즘 한국에 명상이 대세입니다. 여기저기 명상센터가 생기고 명상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상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불교에서 가르치는 선禪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회에 선이 불교의 울타리에서만 있어야 하는가? 심지어 선이 종교인가? 선이 불교나 종교의 외피를 벗고 일반인들에게 하나의 정신수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떤가? 선의 적극적인 대중화가 바람직하거나 가능한가? 하는 등의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선은 종교인가?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종교사상가 중에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오랫동안 선禪을 연구한 끝에 결론적으로 선은 ‘아무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무엇’이라고 했습니다. 머튼에 의하면 선과 그리스도교를 비교하는 것은 마치 ‘수학과 테니스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선이 서양에서 알려진 어떤 범주에도 속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진 1.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 1968).

 

“선은 삶에 대한 조직적 설명도 아니다.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세계관도 아니다. 계시나 구전의 신학도 아니다. 완전을 향한 금욕적 수행법도 아니다. 서양에서 이해된 대로의 신비주의도 아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범주에도 맞아떨어지지 않는 무엇이다. 따라서 그것에 ‘범신론’, ‘정적주의’, ‘펠라기아니즘’ 따위의 딱지를 붙여 폐기 처분하려는 우리의 어떤 기도도 완전히 부적절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선 제기되는 질문은 선이 단순히 종교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머튼에 따르면 선은 종교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 특히 선을 서양에 소개하는 데 크게 공헌한 D. T. 스즈키 같은 이들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불교적 해답이라면 예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대답은 ‘예스’이면서 동시에 ‘노’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은 종교가 아니다

 

스즈키는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짧은 글에서 선이 종교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거기에 자기 나름대로 대답을 합니다. “선은 일반적으로 이해된 대로의 종교라는 의미의 종교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선이 종교냐 아니냐 하는 것이 결국 ‘종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즈키에 의하면 선이 종교가 아닌 이유가 “거기에는 섬겨야 할 신도, 준수해야 할 예식도, 죽은 사람들이 들어가 살 미래의 거처도,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지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영혼과 그 불멸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진 2.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

 

종교라는 것이 스즈키가 말한 요소를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것이라면 일단 선이 종교가 아니라는 그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유신론적 신관에서 이해된 대로의 신을 섬기는 것, 일정한 예식을 준수하는 것, 혹은 개인의 최후 운명으로서의 천국이나 극락, 지옥 등을 믿는 것이라면, 분명 선은 ‘그런 종류의 종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머튼이 말한 것처럼 “선은 신에 대해 그리스도교에서처럼 그런 데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은 종교다

 

그러나 종교라는 것이 반드시 이런 외부적 요인들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다른 생각도 가능해집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종교를 ‘궁극 관심’이라 하고, 종교학자 프레데릭 스트렝(Frederick J. Streng)은 종교를 ‘궁극적 변화를 위한 수단’이라고 했는데, 이런 정의에 의한다면 선은 분명 이런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즈키 자신도 선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진 3. 프레데릭 스트렝(Frederick J. Streng, 1933〜1993).

 

“선이 종교가 아니라고 하는 점은 오직 외부로 나타나는 점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종교적인 사람들은 선에서 나타나는 거친 선언들 속에 들어 있는 종교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종교란 것이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과 직접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스즈키가 선이 종교라고 주장하는 것은 “선 수행을 통해 존재의 이유 그 자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慧眼을 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선의 핵심은 ‘깨침’으로서, 깨침이 없는 선이란 빛과 열이 없는 태양과 같다고 했습니다. 선 체험은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고도 보았습니다. 선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종교가 ‘궁극 관심’이라든가 ‘궁극 변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종교 정의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편선의 대두

 

선이 종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종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면 이제 선이 무엇인가, 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데 따라서도 다른 대답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낸시 로스(Nancy Wilson Ross)라고 하는 분은 그의 책 The World of Zen 『선의 세계』에서 ‘보편선(Universal Zen)’이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이분은 세계 여러 문헌에서 ‘선과 같은 식의 보는 법, 관찰법, 느끼는 법의 실례들’을 함께 모은 다음 결론적으로 ‘세계 모든 문화에서 시인들, 신비주의자들, 예술인들, 철학자들이’ 선이 가리키는 “실재의 본성에 대한 특수 체험을 다 같이 공유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선 체험은 불교나 어느 특정 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진 4. 낸시 윌슨 로스(Nancy Wilson Ross)의 책, 『선의 세계(The World of Zen)』.

 

이처럼 종교적 배경을 불문하고 선 수행에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특수 인식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상가들은 부지기수입니다. 특히 그리스도교 전통에 속한 이들에게 선적 체험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몇 명을 예로 들면, 토마스 머튼, 윌리엄 쟌스턴, 돔 그레엄, 틱낫한, 브라이언 피어스 등입니다.

 

누구보다도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은 선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가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음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망각되고 사장死藏된 요소들을 재발견하는 데” 특히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에 의하면 선이 그리스도교에 공헌할 수 있는 점은 다섯 가지라고 하는데, 그중 두 가지는 ‘모든 존재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인식과 육체에 대한 새로운 강조, 그리고 마음을 조용히 하는 것과 각자 자신의 심령 깊이 직관적으로 내려가는 집중 훈련’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유’라고 하고, 선을 통해 바로 ‘해방’을 체험할 수 있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을 위한 선 수행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은 선이 불교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좋은 것인가?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선이 현대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적 양식’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에리히 프롬, 앨런 왓츠, 에이브라햄 매슬로 등등입니다. 특히 에리히 프롬은 선이야말로 ‘비종교적 종교’로서 정신분석과 마찬가지로 일반 사람들에게 ‘무의식을 의식하게 함’으로써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소외와 단절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그들의 안녕과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사진 5. 한스 큉(Hans Küng, 1928~2021). 스위스의 천주교회 사제이자 기독교 신학자.

 

선이 이처럼 현대인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선 수행이 불교나 어느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닌가 여겨집니다. 선이라고 해도 물론 상관 없지만 일반인들에게 더욱 친근감을 줄 수 있는 이름은 ‘명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근에 젊은이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템플스테이에서도 거기에 명상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은 좋은 시도라고 봅니다. 오대산 월정사 부근 ‘자연명상마을’처럼 ‘선방’이라는 이름 대신 명상마을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도 일반인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초두에서 언급한 대로 최근 ‘명상’이라는 것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서양에서도 틱낫한 스님의 ‘마음챙김mindfulness’이나 미얀마 출생 인도인 고엔카로 시작된 위빠사나Vipassana, 매사추세츠 의과대학 존 카밧진(Jon Kabat-Zinn) 교수가 개발한 ‘마음챙김에 기초한 스트레스 감소(MBSR)’ 등도 전통적 불교적 색채가 짙게 들어나지 않은 명상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 6. 존 카밧진(Jon Kabat-Zinn, 1944〜). 미국 메사추세츠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스트레스감소클리닉(the Stress Reduction Clinic)의 창시자.

 

한국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현상은 카이스트(KAIST)에 미산스님이 ‘선 센터’라는 명칭 대신에 ‘명상과학연구소’를 개설하고, 속명인 김완두라는 이름까지 쓰시면서 명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또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성해영 교수가 개설한 ‘명상과 수행’이라는 과목에 백 명 이상의 학생이 등록하는데, 그중 많은 학생들이 종교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안상수 디자이너가 세운 파주타이포그라피 학교(PaTI)에서 ‘명상과 수행’을 강의하는 성소은 선생도 학기 도중 종교와 관계없는 학생들이 명상에 접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등 변화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고 합니다. 특히 성소은 선생은 최근 펴낸 『반려명상』이라는 책을 통해 명상이 절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처럼 우리와 가깝게, 우리의 일상과 늘 함께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가면서

 

이제 불교가 오늘을 위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선禪이 불교만의 무엇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선이라 불리든, 명상이라 불리든, 그 무엇으로 불리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내면을 꿰뚫어 보게 하여 정신적 힘을 기르도록 하는 데, 심지어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 가능하도록 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말했습니다. “이름에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장미라고 하는 그것은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향기는 마찬가지.” 

 

 

※지금까지 1년간 『고경』에 올린 제 글, ‘비교종교학자의 불교 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분

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올린 글은 제가 쓴 책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현암사, 2006)라

고 하는 책을 근간으로 하여 ‘비교종교학적’ 관점을 가미하면서 꾸며진 것임을 밝힙니

다. 독자 여러분의 청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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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 석사,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화엄 법계연기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취득.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저서로는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도덕경』, 『장자』, 『세계종교 둘러보기』,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종교란 무엇인가』, 『예수는 없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생각』 등. 번역서로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예수의 기도』, 『예언자』 등.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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