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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는 지금]
미국의 주요 사찰과 명상센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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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광 김형근  /  2024 년 10 월 [통권 제138호]  /     /  작성일24-10-05 13:54  /   조회18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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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는 지금 21_ 미국     

 

미국불교사에서 1960년대는 지식으로 진행되던 불교가 수행으로 전환되었다고 평가는 받는 시기이다. 필자는 1844년 동부에서 초월주의 그룹이 불교를 소개한 것이 미국불교의 출발점이고, 60년대를 미국불교사의 기준점으로 생각한다. 60년대부터 미국에 불교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2010년까지 불교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미국의 조동종 사찰들

 

60년대는 케네디 대통령과 킹 목사의 암살이 있었고,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 격동의 시대였다.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오늘날의 MZ 세대라고 할 수 있는 히피세대들의 근거지였다. 그들은 기존 세대의 문화를 거부하는 반문화 운동의 핵심이었다. 이들이 불교 사찰을 찾아 선수행을 하면서 미국불교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수행중심으로 전환되었다. 아시아에서 온 스님들이 수행을 지도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사진 1. LA선원에 걸린 현판.

 

사진 2. 타이잔 마애즈미 스님.

 

아시아에서 온 스님들이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미국인들에게 선 수행을 지도한 경우도 있지만 일정 기간 적응할 시간을 가졌다. 미국불교에 바람을 일으킨 사찰 중에는 일본 조동종의 중요한 사찰로 스즈키 순류Shunryu Suzuki(1904~1971)가 건립한 샌프란시스코 선원과 타이잔 마애즈미Taizan Maezumi(1931〜1995)가 창건한 로스엔젤레스 선원이 있다. 로스엔젤레스 선원은 한인타운 안에 있는데, 마애즈미 스님은 숭산, 범주스님 등 한국 스님들과 교류가 있었으며 그의 제자 중에는 버나드 글래스맨, 존 다이도 누리 스님 등 뛰어난 제자들이 많다.

 

샌프란시스코 선원의 시작과 전개

 

이 중에서 샌프란시스코 선원은 미국에 불교 바람을 일으킨 근원지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를 받는다. 스즈키 순류 스님의 미국 도착에서부터 샌프란시스코 선원으로 가는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려 한다.

 

1959년 5월 스즈키 스님은 일본 조동종 소코지 상항사桑港寺(소코는 샌프란시스코, 지는 사찰이라는 뜻) 6대 주지로 부임하였다. 이 사찰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을 위한 사찰이었는데, 그가 부임하기 전부터 몇 명의 미국인들이 소코지 법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일차적인 임무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일본인 신도들의 신행 지도였다.

 

사진 3. 샌프린시스코 소코지 상항사桑港寺.

 

그는 좌선 지도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 교민들은 선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스즈키가 주지로 부임하면서 소코지에 나오는 미국인들을 위해 조그만 방에서 아침에 참선을 시작하였는데, 참석자는 대부분 비일본인이었다. 이 방 이름을 샌프란시스코 선원이라고 하였다. 2〜3년이 지나자 이 모임에 참가하는 미국인들의 숫자는 눈부실 정도로 증가하였다. 이들이 증가하면서 일본인 신도들과 백인 신도들 사이에 미묘한 문제가 시작되었다.

 

사진 4. 샌프린시스코 소코지에 걸려 있는 스즈키 스님 사진. 재임기간이 1959〜1969이라고 써 있다.

 

미국인들은 장소를 따로 마련하지는 않았지만 1962년에 샌프란시스코 선 센터(S.F. Zen Center)로 등록하였다. 이것은 사실상 독립을 뜻하며, 수표를 이 이름으로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1966년 가을이 되자 이곳에서 좌선을 하고 법문을 듣는 사람의 수가 150명이 되었고, 50~60명은 매일 적어도 한 번씩, 80명 정도가 7일 정진에 들어갔다. 이것은 65년의 두 배가 되는 숫자였다.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 스즈키를 돕는 조동종 스님들이 왔다.(주1)

 

타사하라 선원 개원

 

이렇게 미국인들이 몰려들고 좌선하는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 스즈키는 산이나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의 한적한 곳에 전통적인 선원을 세우고 싶어졌다. 이러한 조건의 선원을 찾는 일은 1970년에 스즈키 후계자로 지명된 하바드 대학교 출신의 리처드 베이커Richard Baker(1936~)가 앞장을 섰다.

 

사진 5. 타사하라 선원.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3시간 걸리는 곳에 있는 타사하라 온천(Tassajara, 타사하라는 스페인어로 고기를 말리는 곳이라는 뜻)이 매물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은 깊은 협곡에 자리 잡은 곳이었다. 이곳은 유황온천이 있는 곳이었다. 이곳을 구입하기 위해 1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기부금을 보내왔고, 기금모금전시회와 공연을 했다. 이곳에 산중선원을 마련한다는 소식은 전 미국 불교계의 큰 관심사였다. 여러 곳에서 격려와 지원이 쇄도했다. 

 

사진 6. 타사하라에 있는 스즈키 스님 부도. 그 오른쪽 밑에 쵸감 트룽파 린포체 사리를 묻은 조그만 부도가 보인다.

 

타사하라 선원은 1966년 7월 개원했다. 스즈키 선사가 이끄는 그룹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첫 번째 선원이었다. 타사하라 선원은 일본 수도원과 비슷했는데, 한 가지 차이는 남녀가 함께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시아 불교 전통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 선원은 미국 최초의 한국 사찰인 카메 삼보사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강청화 스님이 삼보사에 주석하면서 수행할 때는 한국 스님들과 신도들이 이 선원을 방문하거나, 1년 혹은 몇 개월을 이곳에서 수행하는 스님과 신도들이 있었다. 취재를 위하여 혹은 안내를 하려고 이곳을 방문했을 때 몸을 담갔던 유황 냄새 그윽한 온천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사진 7. 타사하라 제빵 관련 책.

 

1970년 미국에 온 티베트인 쵸감 트룽파 린포체는 이곳을 방문하여 스즈키 스님을 만났다. 이 만남을 통하여 그는 스즈키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곳 산 중턱에는 스즈키 부도 옆에 트룽파의 유골이 있는 조그만 부도도 있다. 에드 브라운이 이곳의 식단에 관해 쓴 책 『타사하라  빵 만들기』와 『타사하라 요리법』이 1970년 샴발라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책은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선원 구입

 

스즈키 스님은 샌프란시스코 선원을 이끄는 스님 이전에 조동종 소코지(桑港寺)의 주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인 신도들은 스즈키 스님에 대한 불만이 많아졌다. 내가 그동안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아시아 이민자들과 미국인들의 불교신앙 행위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미국인들은 수행 위주이지만 아시안 이민자들은 전통문화와 2세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불교라는 같은 종교이지만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방향의 신행생활을 하면 갈등이 생겼다.

 

사진 8. 샌프란시스코 선원 건물. 

 

사진 9. 샌프란시스코 선원 선방.

 

미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일본인들의 행사와 미국인들의 행사를 소코지에서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다. 1969년 샌프린시스코 소코지 이사회는 스즈키가 일본계 미국인 회원보다 서양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찰의 사제직을 사임할 것을 요청했다. 즉 스즈키에게 나가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스즈키는 10년간의 소코지 주지직을 사임하였다.

 

1969년 스즈키와 그를 따르는 미국인들은 현재 샌프란시스코 선원 건물을 구입하게 되었고, 즉시 소코지에서 나왔다. 이들이 구입한 건물에는 넓은 호텔식 부엌, 식당, 2층과 3층에 7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방이 있고, 정원 같은 안마당이 있었다. 지하에는 큰 선방을 만들었다. 1층에는 강당 겸 법당, 사무실 등이 있고, 2층, 3층에는 스님과 세 들어 살고 있는 회원들의 방이 많이 있었다. 미국 사찰에서는 신도들에게 방을 세를 주는 경우는 많고, 그 방세는 사찰의 중요한 수입 이었다. 이 선원은 1960년대 미국에 선불교 바람을 일으키는 진원지가 되었다.

 

사진 10. 샌프란 선원 1층 법당.

 

좌선은 스즈키 순류의 핵심적 가르침이었다. 그는 아시아 전통을 미국에 맞게 조정하였다. 좌선 자체도 불성의 표현이다. 스즈키는 도겐 선사의 말을 인용하여 “불법에 따르면 몸과 마음은 본래 하나다. 실체와 형체는 둘이 아니다.”, “좌선 자체는 그 좌선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 마음의 자세와 다르지 않다.”라고 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이 자세는 옳은 마음 상태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 자세를 취하는 자체가 올바른 마음 상태를 갖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저 앉아라!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웅대한 청사진도, 지적되거나 추구되어야 할 어떤 놀라운 발전 따위도 없다. 좌선은 시작하기는 쉬워도 계속하기는 힘든 법이다. 좌선은 오락으로서의 가치가 별로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핵심이다.”(주2)

 

사진 11. 리차드 베이커.

 

1970년에 리차드 베이커는 스즈키의 법 계승자가 되었고, 선원의 2대 주지로 취임하였다. 스즈키 저서 『선심초심(Zen mind, Beginner’s Mind)』이 출판되어 큰 호응을 받았다. 1971년 12월 병을 앓던 스즈키 스님이 입적하였고, 그 뒤를 베어커가 이었다. 그리고 베이커는 1972년 그린걸치 농장(Green Gulch Farm)을 구입했다. 

 

그린걸치 농장 구입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다리를 건너서 캘리포니아 해안가 1번 도로를 타고 꼬부랑꼬부랑 산길을 따라간다.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차로 30분 거리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유칼립투스Eucalyptus 나무의 향내에 기분이 좋아진다. 농장에는 넓은 밭을 비롯해서 여기저기 크고 작은 건물들이 많이 있다. 농장 안에는 선방, 종각, 회의실, 주거용 건물, 게스트하우스, 가게, 공방, 창고 등 많은 건물들이 농장 안 구석구석에 있다. 평소에는 70~80 명 정도 거주하고 이 농장에서 수련회도 많이 한다.

 

사진 12. 그린걸치 선방.

 

그린걸치 농장(Green Gulch Farms)은 7~8에이커(만 평) 규모의 유기농 채소농장과 1~1.5에이커 규모의 과일, 허브, 꽃밭 등이 있다. 야채 농장은 그린걸치 지역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채소와 작물들은 이 농장과 샌프란시스코 선원에 사는 사람들과 수련회와 행사 참가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배당된다. 선농일치에 입각하여 일도 하고, 명상수련회 외에도 일본 다도 및 정원 가꾸기에 관한 수업과 워크숍이 제공된다. 

 

그린걸치 농장이 제대로 운영되면서 시내에 있는 선원, 타사하라, 그리고 그린걸치는 미국불교의 본보기요 진열장 역할을 하였다. 미국불교에 대한 공부를 하거나 취재를 하다 보면 쵸감 트룽파 린포체 제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다음으로 많은 것은 샌프란 선원 출신들이었다. 미국불교에서 샌프란 선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사진 13. 그린걸치 농장.

 

그러나 어느 단체나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10년 넘게 베이커 로시가 선원의 주지를 맡으면서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그린걸치 잡화상, 타사하라 제과점, 자수점, 샌프란시스코 채식 식당 등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그 규모와 운영은 엄청나게 커졌다. 하지만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윤리 문제로 인하여 1984년 베이커는 주지직을 사임하고, 샌프란시스코 선원을 떠났다. 베이커 사태 이후 선원에는 남녀 공동 주지직도 생겼다. 

 

2020년부터 23년까지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그전과는 다른 세상이 되었다. 샌프란 선원은 지금 내부 수리 중이다. 수리를 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맞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10년 전에 《미주현대불교》에서 샌프란 선원을 심층 취재하여 보도하였던 기사에서 일부 인용하여 소개한다.

 

사진 14. 그린걸치 농장 경내.

 

명상수련 교육과정

 

명상수련 과정의 체계는 초급자 및 입문과정, 전문과정과 고급 및 심화과정으로 구분되어 있다. 입문과정은 센터를 방문하거나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하여 불교와 참선參禪 수련의 기초를 공부하며, 토요일, 수·목요일의 공개강좌를 수시로 방문 참석하여 기본지식을 배우는 단계이다. 초심자는 스님이나 강사 스님과의 이메일, 전화 및 면담 등을 통하여 언제라도 질문과 답변이 가능하다.

 

수련 인원 및 운영 예산

 

샌프란시스코의 명상 수련센터 세 곳에서 수행되는 교육과정은 연간 230여 개의 각종 교육과정이 진행되고 있으며, 모든 교육과정은 기본적으로 20불 내외의 기본 수강료가 부과되고 있으며, 노년과 학생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수강료 조정이 있으며, 모든 수강자는 자기가 희망하는 과정을 현재 수강료를 지불하지 않고서도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강의 수업 외에 회원 기부, 식당 운영 등 다양한 수익사업을 통하여 조직 운영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명상센터의 성직자는 약 50여 명이며, 여성, 비일본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교육 인원은 연간 15,000여 명을 상회하고 있다. 센터의 연 예산은 약 500만 달러(70억 원)에 이르며, 80% 자금이 강의 수입이며, 나머지는 회원 기부금 및 다양한 수익사업으로 충당되고 있다. 

 

미래의 비전

 

깨어 있는 마음을 간직하고, 그 마음을 일상생활로 가져가는 것.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불법佛法을 전한 스승, 스즈키 순류 선사의 한결같은 가르침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명상 수련센터의 미래 비전은 조동종 승가를 미국 사회에서 계승 발전시키며, 명상수련과 법회 활동을 통하여 사람들의 자성을 밝혀 주고, 나아가 자리이타의 보시행을 서원하는 명상 수련자를 양성하는 임무를 수행하여 그들의 지혜를 증장시키고 수련조직을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스즈키 순류 선사의 가르침과 조동종의 종지를 발전 교육시키는 기관으로서 인종, 나이, 성별과 출신 배경에 관계없이 명상센터를 개방하여 교육을 제공한다. 

 

사진 15. 샌프란시스코 선원 안내 게시판.

 

부가적으로, 현재의 명상센터의 운영규모를 유지 발전시키며, 미래에 노인세대를 위한 명상 및 호스피스 시설을 건립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명상 수련 및 교육사업을 통하여 자성의 해탈과 중생의 보호에 대한 서원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주3)

 

<각주>

(주1) 릭 필즈, 『이야기 미국불교사』에서 인용.

(주2) 릭 필즈, 『이야기 미국불교사』에서 인용.

(주3) 송광섭, 「샌프란시스코 젠센터의 운영현황」, 《미주현대불교》, 201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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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광 김형근
미주현대불교 편집인 및 발행인. 전북 김제가 고향으로 전북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9년 뉴욕에서 월간 잡지 『미주현대불교』를 창간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0년부터 사단법인 ‘kore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을 설립하여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남북불교교류 활동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북한사찰순례단을 조직하여 2005 년부터 4차례에 걸쳐 단체로 북한사찰순례를 하면서 북한불교를 소개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정부의 북한 여행 금지로 인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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