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한 그루의 나무가 부처님으로 현신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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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4 년 3 월 [통권 제131호] / / 작성일24-03-04 10:28 / 조회1,717회 / 댓글0건본문
목조각장 한봉석(경기도무형문화재 제49호)
어느 사찰이나 그 중심에는 여래상, 보살상, 시왕상, 나한상 등 부처님의 형상인 불상이 자리한다. 붓다루파(Buddharupa)는 ‘깨달은 자의 형상’ 또는 ‘부처의 형상’을 이른다. 경건하고 장엄한 불상을 마주하노라면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속세의 시름과도 멀어지는 듯하다.
나무에 절차탁마切磋琢磨하다
불상은 나무로 만든 목조불, 돌로 만든 석조불, 철이나 동으로 만든 금속불, 흙으로 만든 소조불, 옻칠과 삼베로 겹겹이 붙여 만든 건칠불 등 자연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재료들이 부처의 모습으로 현신한다.
불교 조각은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제작되어 예배의 대상으로 봉안되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불상은 목조불상이다. 나무는 비교적 다른 재료에 비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점과 알맞은 재질의 우수한 나무를 고르기만 하면 다른 재료에 비해 훨씬 다루기 쉬웠기 때문이다. 물론 높은 수준의 조각기법과 조형성이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다.
같은 목조불상이라 하더라도 제작 방법에 따라 만드는 방식을 달리한다. 불상을 한 개의 나무로 조각하는 일목조一木造와 여러 개의 나무를 부분적으로 잘라 조각한 후 결합하는 접목조接木造로 나눈다. 나무의 종류와 규격 등을 고려한 것으로 일목조는 작은 크기의 불상에, 접목조는 중형 이상의 대규모 불상 제작에 사용되었다. 입상의 경우에는 주로 일목조의 형태로 제작하지만, 좌상의 경우는 대체로 접목조로 만들고 있다.
불상의 속을 파는 이유는 복장을 넣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무의 갈라짐을 방지하고 오래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중요하다. 접목조의 경우 목재의 단단한 결합을 위해 나비조임목으로 파인 부분을 끼워 접목한다.
나무 공정이 끝나고 나면 옻칠 작업과 모시 베바르기, 불상 개금 작업이 이어진다. 여러 번 옻칠을 하고 모시를 입히는 것을 ‘베바르기’라고 하고, 옻칠할 때는 모시결이 없어질 때까지 토회 작업을 한다. 그 뒤 다시 옻칠과 사포질을 9회 이상 반복하니 지극한 정성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물 사포질로 마무리를 한 후 정제옻으로 여러 번 칠하고 다시 고운 사포질 후 금박을 붙이는 것이 전과정이다.
목조불상에서 옻칠은 9~15회 반복하는데, 이 정성스러운 과정을 통해 수분의 출입에 따른 치수 변화는 물론 곰팡이, 해충에 의한 피해를 줄여 조각품을 장기 보존하게 된다. 옻칠 한 번에 건조 2일 정도 걸리기 때문에 옻칠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목조불상의 제작과정은 나무에서 시작하지만 장인의 끊임없는 손길 안에는 정성과 불심이 가득 깃들어 있다.
목조각의 시작은 나무의 이해로부터
평생 끌과 정을 손에서 놓지 않고 나무 위에서 시간을 보낸 한봉석 목조각장을 만나 보았다. 경기도 이천 백사면 불국조각원 작업실. ‘타앙 타앙~’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나무 쪼는 망치질 소리에 굳이 명패가 없어도 목조각이 이루어지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균일하고 일정하게 울리는 끌치는 소리는 묵직하면서도 경쾌하다.
마치 산사에서 울리는 북소리 같기도 하고, 도량을 청정하게 하는 목탁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소리의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나무 부처님은 한 걸음씩 속세의 우리 곁으로 다가오게 된다. 한봉석 장인은 2025년 완성 예정으로 작업하고 있는 월정사 화엄변상도華嚴變相圖 대작 작업이 한창이다. 전체 길이가 20미터 이상 되기 때문에 규모도 크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한쪽에는 스케치한 밑그림이 잔뜩 펼쳐져 있다. 그림에서부터 조각조각 다듬어져 나무로 입체화되는 과정이 경이롭다. 나무에도 종류가 많기 때문에 적절한 선택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등이 목재로 많이 사용됩니다. 참나무나 느티나무는 결이 아름답고 단단하여 오랫동안 그 형태를 보존하기 때문에 가구재 등 여러모로 많이 사용됩니다. 하지만 나무가 단단하기만 하면 오히려 부러지기 쉽습니다. 강하면서도 신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건물의 기축이 되는 대들보의 경우, 긴 길이의 나무로 건물 무게를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단단하면서도 신축성을 함께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소나무를 찾게 되는 거지요. 기둥 재료로 참나무, 느티나무가 가능하지만 ‘보椺’를 올릴 때에는 소나무가 적합한 것이죠. 나무의 물성을 잘 알고 그것에 맞는 쓰임으로 사용하는 것이 완성도 높은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실제로 조선시대 목불의 경우, 여래상이나 보살상 같이 법당의 상단에 봉안하는 불상에는 단단하면서도 해충에 강하고 나무결이 고와 조각하기 좋은 은행나무를 주로 사용하였다. 중단에 봉안되는 시왕상이나 나한상에는 주로 소나무를 썼다. 상단 봉안불에 있어서 불상의 몸체, 별조한 손, 바닥면, 대좌 등에 각각 다른 수종의 목재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불상을 만든 장인들이 목재가 갖는 재료적 성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수종의 목재를 부재별로 활용하는 것은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갈라짐 현상이나 변형이 적은 목재를 선택하게 된다.
한봉석 장인도 나무의 물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쓰임에 맞게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무의 물성을 안다는 것은 나무의 성장 과정은 물론 나무가 가지고 있는 생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소나무가 송진松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소나무를 만지다 손에 송진이 묻으면 끈끈한 점액이 잘 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한다. 송진은 방수성과 점착성이 뛰어나 천연 보존제로도 활용되고, 깊은 솔향을 가지고 있어 향수나 천연향료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고대부터 전통 의학에서 풍비風痺와 악풍나창[모진 풍병과 나병에 의한 창증], 두창, 전염성 피부병 등에 사용되었고, 예술가들에게는 악기를 오래 관리하는 데 사용되었으니 사람과 사물의 치료제로 쓰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소나무에 일률적으로 송진이 포진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진 5. 현재 작업 중인 화엄변상도.
“소나무에 송진이 분포되는 것을 ‘수지구樹脂溝’라고 합니다. 나무가 힘들고 아플 때, 상처가 있을 때 수지구가 늘어납니다. 송진은 일종의 소나무가 자가치유하는 방식이죠. 그러나 송진이 많으면 목재로써의 용도가 떨어집니다. 소나무의 일부에 송진이 몰려 뭉쳐 있다면 그 나무는 많이 아픈 것이죠. 이런 나무를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접착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표면의 결도 거친 느낌을 가집니다. 이런 연유로 조선 초기 불상에는 소나무가 주로 사용되다가 이후로는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은행나무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나무가 목재 선택의 폭이 넓고 탄력 있고 내습성이 강한 장점을 가진다면, 은행나무는 세포조직이 균일하고 단단하면서 해충이 먹지 않는 성질이 있으니 상황에 맞추어 나무를 선택하는 것은 제작자의 몫이다. 한봉석 장인은 다양한 나무를 소재로 작업을 시도해 본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새로운 목재를 구해 다양한 시험을 해 본다. 칼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단단한 나무를 사용할 때는 더 작은 조각칼을 사용하게 된다. 때문에 손이 훨씬 더 많이 가지만 완성된 작품에서는 무게감과 안정감이 얻어진다. 작업이 어려울 정도의 강도의 나무라면 기화성 액체를 사용하면서 단시간에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결과물을 위해서라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겪는 실패쯤이야 도전할 만하다고 한다.
한봉석 목조각장은 1993년 불국조각원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오대산 북대 미륵암의 19미터에 이르는 오백나한목각탱, 서울 봉은사 사천왕상, 원주 구룡사 대웅전 삼존불과 닫집, 서울 관악산 성주암 삼존불과 후불 목각탱, 대구 북지장사 닫집, 수원사 불단과 닫집을 비롯해 다수 작품을 봉안했다. 1994년 불교미술대전에 입상했고, 2004년 불교미술대전에 특상을 받았다. 이후 문화재청장 공로상을 수상했고, 현재 충북대학교 문화재학과 겸임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현장 작업의 체계를 갖추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 실전과 이론 공부의 끈을 놓지 않는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전통미술 공예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이천시에 불국조각원 터를 잡고 이천 시민을 대상으로 목공인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한 장인은 우리 문화재에 애정도 각별하다.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를 재현해 유출 문화재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2021년에는 해외 유출 문화재 환수운동의 마중물 노릇을 하려고 해외 반출 문화재 재현 전시회를 열었다. 우리 문화재를 아끼고 잘 지키는 일도 새로운 문화재를 만드는 일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로서 연륜을 쌓은 그이지만 한봉석 스타일의 디자인을 창출하기 위한 고심이 깊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방식과 주제로 작업해 왔으나, 차후에는 현대적인 해석과 감각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새로운 방식의 불상 작업을 하고자 한다. 전통에 기반을 두되 디자인의 관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하는 한 장인의 의지가 뜨겁다. 그러기 위해 다른 장르의 작품들도 많이 접하고, 해외 명작, 전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의 방식이되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불상 작품을 구현하는 것이 한봉석 장인의 오랜 염원이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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