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함께 하는 인생이야기]
해인사 원당암 용맹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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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2019 년 10 월 [통권 제78호] / / 작성일20-05-29 10:19 / 조회6,686회 / 댓글0건본문
박원자 | 불교전문 작가
8월 초 해인사 원당암에서 있었던 용맹정진에 다녀왔다. 10월말까지 단행본 원고를 탈고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서 몇 번이나 망설이던 끝에 다녀온 정진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너무나 잘 다녀왔다 싶다.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16시간 정진을 해야 하는 용맹정진에 남녀 불자 120여 명이 참여했고, 용맹정진에 처음 참여해본 나는 그 속에서 그간의 내 수행을 돌아볼 수 있었다.
혜암 큰스님과의 인연
원당암에서 매해 여름과 겨울에 열리는 용맹정진은 해인사 방장과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혜암 큰스님 생전 때부터 재가불자들을 위해 마련된 수행정진이다. 요즘 혜암 큰스님의 평전을 준비하면서 큰스님을 뵈었을 때 화두를 받고 정진하지 못한 것을 몹시 후회하고 있다.
혜암 큰스님과 처음 인연이 된 것은 큰스님이 해인사 방장이 되시면서다. 월간 ‘해인’에 방장 스님의 법문을 실었는데, 테이프에 녹음된 스님의 법문을 풀어서 원고매수에 맞게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인연이 되었다. 한 달에 한번 스님의 법문 테이프를 들으면서 얼마나 신심이 쑥쑥 올라왔는지 모른다. 불자라면 마땅히 참선을 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씀이 얼마나 간곡했고 확신이 차 있는지, 정말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얼마 후 스님을 취재할 기회가 생겨 처음 뵙게 되었다. 칠십대 중반의 스님은 깡마른 자그마한 체구에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참 맑아보였다. 마치 소년을 대하는 것처럼 맑고 순수해보였던 것이 스님에 대한 첫 인상이다. 스님은 경쾌한 음성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역시나 우리의 삶에 참선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들려주셨다. 그런데 둔근기인 나는 스님을 그렇게 몇 번이나 뵙고도 끝내 참선공부를 시작하지 못했다.
큰스님은 2001년 한 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 세연을 다하셨고, 입적하시고 몇 년 뒤 여름, 가지런히 잘 정돈된 단정한 필체의 수많은 원고로 스님을 다시 만났다. 문중에서 스님의 법문집을 만드는 데 진행과 교정을 맡게 된 것이다. 공부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였지만 법문을 읽으면서 감동만 했을 뿐, 또 기회를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스님의 평전의 준비하면서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스님의 일생과 법문을 접할수록 참선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어서 빨리 선방에 가 앉고 싶어졌다. 조사어록을 읽고 어서 빨리 걸망을 지고 선방으로 가고 싶었다던 스님들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신심이 차오르던 차에 김홍근 교수님의 『육조단경』 강의는 내게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것이었다.
지난 4월에서 7월까지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씩 진행된 『육조단경』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면 발심의 효과가 크다는 것이었다. 앞뒤 다 떼어버리고 간명하게 선불교만을 얘기하는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흠뻑 참선의 매력에 빠졌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선불교에 대한 개념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고, 혜암 큰스님이 하신 법문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조사어록을 읽는 데도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혜암 큰스님의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어 더할 수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발심에 불을 지핀 『육조단경』 강의
강의의 핵심 내용은 ‘우리는 본래 깨달아 있다’ 는 것, 그러니까 우리는 그 사실은 깨우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무엇 때문에 그리도 번뇌 속을 헤매었던가. 한 생각, 즉 분별 때문이었다. 선불교에서는 분별을 망상이라고 불렀다. 언제나 대상을 인식할 때 옳고 그르고, 길고 짧고, 있고 없고로 분별하는 그 한 생각이 망상의 주범이었음을 깨달은 것만으로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열한 번의 강좌가 끝나고 마지막 이틀 동안 하루 12시간 진행되었던 집중 실참 수련은 그간의 내 수행을 돌아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불교에 입문한지 40여 년이 넘는 동안 진정한 나를 찾는 정진에 얼마나 시간을 보냈던가, 진지하게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처음 동국대 교수 이기영 박사님의 불교 개론 강의를 들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강의도 있구나 싶었고, 그 후 여러 강좌를 들으면서 불자가 되었지만 수행으로 깊이 들어가진 못한 채 지금까지 왔다. 참선수행을 하지 않으면 참 불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던 혜암 큰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그동안 껍데기만 두들겨 온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박원자님?”
수련회 장에서 여러 사람 속에 앉아있는 내게 김 교수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예!”
“‘예!’ 라고 대답하는 그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입니다.”
나는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생각 이전의 자리, 즉 내 본성이 답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대답을 할 수 있다면 그건 답이 아닙니다.”
그리고 김 교수님이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박원자님?”
“예.”
“그 ‘예’라고 대답하는 놈이 누구입니까?”
“......”
무엇이 ‘예’라고 대답하는 것일까. 깜깜했다. 김 교수님은 참석자 전부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이틀 동안의 집중 수련 내내 ‘예’라고 대답한 그 놈을 찾았다.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내가 익혀왔던 모든 불교 지식들을 떠올리며 사유하기도 했고, 왜 지혜롭게 살지 못했는가, 왜 그토록 공부에 게을리 했는가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오로지 ‘예’ 하는 그놈이 무엇인가를 물어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생각들이 차츰 사라지고 알 수 없는 그 곳으로 마음이 집중되면서 앉아있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질 즈음 이틀의 수련 시간이 끝났고, 일주일 뒤 나는 원당암 용맹정진에 참석하기로 결심하고 기차표를 예매했다.
‘나는 누구인가’
8월 초, 원당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일주일 용맹정진의 이틀이 지나고 있었다. 입승 스님께 양해를 얻고 선방의 한 자리를 얻어 앉았다. 밖으로 멀리 보이는 가야산과 뜰 앞의 소나무 몇 그루가 정다웠고,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속에서 정진하는 행운을 만끽했다. 오전 1시부터 밤 11시까지 오전 오후 4시간씩 16시간을 정진하는 해인사 원당암의 용맹정진은 제방에 소문이 날 정도로 강도가 높다. 참석하는 분들도 오랫동안 수행정진한 분들이라고 들었다.
집중수련 때 3시간 동안 일어나지 않고 좌선을 한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45분 정진하고 15분 쉬는 것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문제는 저녁 시간에 쏟아지는 졸음이었다. 혜암 스님께서는 먹는 것과 잠자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수행하기 어렵다며 적게 먹고 오래 자지 말 것을 명하셨다고 하는데, 덜 먹으면 허리가 꼿꼿이 펴지질 않고 덜 자면 졸음이 쏟아져서 화두는 십만 팔 천리로 달아다니, 스님의 명을 따를 수가 없었다. 출가하는 날로부터 수십 년 동안 장좌불와를 멈추지 않고, 하루 한 끼만을 드셨다는 혜암 큰스님이 정말 독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앉자마자 수많은 번뇌가 요동을 쳤다. 그럴 때마다 ‘본래의 자리를 가리는 이 한 생각!’ 하고는 화두로 의식을 돌리고 또 돌렸다.
“여기까지 이 몸을 끌고 온 나는 누구인가?”
정확히 사흘이 지나자 화두에 집중이 되기 시작했다. 집중이 될수록 앉아있는 것도 수월해지고 잠에서도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했으면 하는데 일주일 정진이 끝났다. 아쉬운 마음으로 도반과 해인사 일주문 밖 숲길을 걷는데 몸이 정말 가볍게 느껴졌다.
“복이 없는 사람은 참선 공부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해요!”
혜암 큰스님의 말씀이다. 오랜 길을 돌아와 이제 비로소 길을 찾은 느낌이다. 원당암을 떠나오자마자 온데 간 데 없이 화두는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가끔씩 오며가며 화두를 떠올리곤 한다. 분명한 것은 참나를 찾는 참선공부가 나로 하여금 주인공으로서의 진정한 삶을 살게 할 것이란 것이다. 이 확신만으로도 좋은 출발이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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