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전등의 시작, 염화미소와 여시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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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3 년 8 월 [통권 제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018회 / 댓글0건본문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이건 철학으로 받아들이건 공통의 관심사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라는 법문을 전해주기 위해 부처님은 오랜 세월 수고를 하셨다. 태생이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혼자 놀기를 좋아하였을 분이 승단을 만들어 전법(傳法) 사업(?)을 한다는 것이 성가신 일이었을 것이다. 법을 전할까, 말까 고민하셨다는 내용이 경전에 실려 전해진다. 법을 전하기로 결심한 뒤에는 남은 인생을 모두 전법에 바치셨다. 그중에는 눈만 마주쳐도 알아차리는 가섭 같은 제자도 있고 매일 따라다니면서 법문을 듣고 외워도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아난 같은 제자도 있었다. 열반하시기 전에 부처님은 ‘법등명 자등명’이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다. 남기신 법은 가섭과 아난을 위시한 오백 아라한 제자들의 결집에 의해 오늘까지 전해져서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심전심의 근기, 가섭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남겨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법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누가 이 일을 떠맡을 것인가’였을 것이다. 모든 전등사서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인물은 가섭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인정받는 장면은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는 이야기에 의해 잘 알려져 있다. 꽃을 들어 보였더니 빙그레 웃었다는 이야기, 앉았던 자리를 나누어 같이 앉혔다는 이야기, 돌아가시고 나서 도착하여 애통해 하는 가섭에게 관 바깥으로 발을 내보였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보통 사람이 듣기에는 좀 싱겁거나 믿기 힘든 이야기다. 염화미소(拈花微笑) 에서는 가섭이 단박에 알아차리는 근기임을, 다자탑전반분좌(多子塔前分半座)에서는 부처님이 가섭을 십분 인정하였다는 점을, 곽시쌍부(槨示雙趺)에서는 이 법이 가섭을 통해 이어질 것임을 시사한다. 세 가지 이야기 중에 어느 하나도 말을 통해 전한 예는 없다. 그리하여 삼처전심이 전등사(傳燈史)의 초석이 되었고 교외별전이 전법의 공식이 되었다.
걸어 다니는 외장하드, 아난
가섭에 비하면 아난이 법을 얻는 장면에 대해서는 선가에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아함경』에 기초하여 당시 아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그려볼 수 있다.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에 마하가섭의 주재로 결집회의가 열렸다. 부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이 회의에는 번뇌가 다 없어져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한 제자들만 입장할 수 있었는데 그때 아난은 아직 그 경지를 체득하지 못하여 참석할 수 없었다. 부처님의 시자였던 그는 가장 가까이에서 설법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타고난 총명으로 설법의 내용을 다 외우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가 참석하지 못한다면 결집은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잠을 설치며 번민하였지만 도를 얻을 수 없었다.
그는 크게 낙담한 채로 어느 선배 아라한을 찾아갔다. 선배는 그에게 날이 샐 때까지 한쪽 발을 들고 나머지 한쪽 발로 서서 명상하라고 마지막 비법을 일러 주었다. 그는 선배가 일러준 대로 한쪽 발을 들고 서 있었다. 발목이 끊어질 듯 아파 왔다. 며칠을 번민으로 지새운 터라 졸음이 쏟아지고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왔다. 종아리와 허벅지의 근육도 돌처럼 굳어져서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몸이 휘청거려서 넘어질 뻔했지만 겨우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참고 기다리는 동안에 깨달음은 오지 않았다. 시간은 점점 흘러서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 날이 샌다면 결국 아라한이 되지 못하고 결집에 참석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평생을 그림자처럼 모신 부모님 같은 분에 대하여 이보다 더 큰 불효가 있겠는가.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하여 견딜 수 없는 번뇌로 들끓어 올랐다. 그 고통의 막바지에서 이윽고 닭이 울었다. 날이 밝으면 모든 것은 이대로 끝나 버릴 것이다. 아난은 모든 것을 단념하였다. 아라한이 된다는 것도, 결집대회에 참가해야만 한다는 것도, 부처님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것도.
모든 것을 단념하고서 힘들게 버티고 있던 한쪽 발을 천천히 내렸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조금씩 근육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면서 천천히 침상으로 다가갔다. 심호흡을 하면서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두 다리를 펴고 몸을 뉘었다. 긴장과 고통, 불안과 초조 그리고 들끓던 모든 번뇌가 사라졌다. 이렇게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 결집에 참석한 500명의 아라한 중 마지막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다문총지(多聞摠持), 불법의 걸어 다니는 외장하드였던 그가 읊어낸 ‘여시아문…’은 팔만사천의 바다를 이루었다.
법희와 선열의 바다
그런데 도력미달로 쫓겨났던 아난에게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깨달은 소식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팔만 사천의 법문 안에 있는가. 아니면 밖에 있는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난의 깨달음은 가섭의 삼처전심과 형식상 달라 보인다. 그것은 아난의 별처전심(別處傳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법의 등불을 전해 주고 전해 받은 분들은 모두 각자의 소식으로 별처전심을 했다고 하겠다.
전등사서에서는 결집의 말석에 겨우 참석했던 아난 보다는 빙그레 미소 한방에 심법을 통째로 삼킨 가섭을 더 위쪽에 두는 것 같다. 그런데 불교를 하는 사람에게 이 두 분은 똑같이 중요하다. 선(禪)과 교(敎)라는 불법의 바다에서 경전을 보면서 법희(法喜)를 느끼고, 선을 하면서 선열(禪悅)을 누리기도 하는, 맛이 다른 두 가지 보물을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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