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과 도자기]
막사발 고려다완 조선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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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 2020 년 1 월 [통권 제8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607회 / 댓글0건본문
김선미 도예작가
얼마 전 도쿄의 미츠이기념미술관에서 기획한 ‘고려다완 특별전’을 다녀왔다. 쉽게 볼 수 없는 국보급 다완들이 많이 나와서 찻그릇을 하는 사람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전시였다. 나는 책으로만 접하던 조선 사발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다른 일정은 일체 잡지 않고 오로지 전시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을 전시장에서 보내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일단 평일이었음에도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이 많았는데 특히 걷기도 힘든 분들이 그릇을 경배하듯이 오랜 시간동안 그릇에 빠져있는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막사발’로 불리던 그릇이 일본에서는 ‘고려다완高麗茶碗’이라는 이름으로 다도에서 천하의 명기名器로 대접 받는다. 고려다완이라고 불리는 것은 고려의 화려한 문화에 대한 환상 때문이라고 한다. 시대와 상관없이 중국의 고급스러운 물건을 당물唐物이라고 칭했듯이 그만큼 고려 문화에 대한 칭송으로 보인다.
다양한 사발들은 순수하게 조선에서 사발로 만들어진 것과, 조선의 남쪽 바닷가에 있는 웅천 의 왜관등지에서 다완으로 사용하기 위한 주문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나누어 전시를 하고 있었다. 일본의 다도계는 왜 조선 사발을 꾸준히 사랑할까?
그 중심에는 센노 리큐千利休가 있다. 천하 제일의 차인이라 불리고 일본의 오랜 다도에서 마음을 찾아내어 형식을 체계화하고, 와비(わび. 순수, 소박, 단순하며 고요하고 청정함)차를 완성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할복을 명령 받고나서 굴복을 권고 받았을 때 “내가 머리를 숙이는 것은 오직 아름다운 것 앞에서 뿐입니다.”라는 풍문도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아름다움임을 ….
고려다완이 사랑받는 이유
일본의 다도구茶道具 선정에는 엄격한 기준이 따르는데, 고려다완이 사랑을 받은 이유는 찻사발로서의 선택기준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우선 크기다. 손에 들고 마시는 말차는 손에 잘 감기는 것이 좋다. 그리고 형태다. 너무 원통형이나 벌어진 것은 차를 탈 수 없기 때문에 적당한 형태가 좋다. 그리고 굽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굽이 찻사발의 균형에 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세밀한 그림이나 울퉁불퉁한 것은 찻사발에 어울리지 않고, 유약의 미묘한 변화와 복합적인 유약 색깔을 좋아하는데 고려 다완은 모든 조건이 여기에 어울린다.
그러니까 차를 마시기에 적합한 모양, 잡았을 때 손으로 꼭 안을 수 있는 크기와 무게, 말차의 녹색과 적절한 대비를 이룰 수 있는 빛깔이야말로 명품 사발에 꼭 필요한 조건들이다.
그리고 다완에는 ‘약속사항’이라는 것이 있다. 형태는 물론이고 유약의 색, 굽의 형태와 크기등 각각의 다완이 가지는 개성 또한 약속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그 기준에 고려다완이 적합하기도 하고 고려다완을 기준으로 약속사항이 생긴 것도 있는 듯하다.
사진: 기자에몬 이도 다완
일본의 국보로 천하 명물로 칭송되는 기자에몬喜左衛門 이도井戶는 오사카성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이도다완은 우리나라 진주근방에서 만들어진 사발로 추정만 될 뿐 시기나 경로 등 어느 것도 확실한 증거는 없어 더욱 신비감을 갖게 한다.
우리 민족 예술품을 높이 평가하며 조선 도자기의 새로운 해석의 시발점이 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교토 대덕사 고봉암에 소장된 ‘기자에몬이도’를 참배한 후 이 그릇에 이런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그것은 평범, 더할수 없는 범기다. 흙은 뒷산에서 파온 것이다. 유약은 화로에서 퍼온 재다. 물레는 축이 흔들거린다. 아무렇게나 깎아낸 그릇이다. 손에는 흙이 묻은 채이다 유약은 쏟아져 고대에 묻기도 했다. 방은 어둡고 도공은 문맹이다 … 이것이 틀림없는 천하의 명기 ‘대명물’의 정체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범범하고 파란 없는 것, 꾸밈이 없는 것, 사심이 없는 것, 솔직한 것, 자연스러운 것, 뽐내지 않는 것, 그것이 어여쁘지 않고 무엇이 어여쁠까!”
그러나 이런 찬사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이도다완을 한번이라고 보았거나 만들어본 사람은 그것이 평범한 범기라는 것은 인정할 수가 없다. 그것은 최고의 기술을 가진 도공이 틀림없고 뛰어난 미감을 가진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그릇이라는 생각이다.
전시 그릇을 하루 종일 집중해서 보다가 배회하다 다른 관람객도 구경하다보니 마음이 좀 무거워졌다. 사발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이 사발들은 최고의 찬사를 받는 명기이고 귀하다 못해 범접할 수 없는 귀하신 몸이다. 그런데 왜 이리 외롭고 쓸쓸해 보일까.
사진 분인다완
말을 걸어오는 듯한 사발
일본인들은 ‘자연체自然体’라는 표현을 즐겨 한다. 자연계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적인 것이 그 안에 자연의 섭리를 담고 있을 때를 이른다. 아마 고려다완으로 불리는 이 사발이 대표적인 자연체라 할 수 있겠지. 나는 내가 느꼈던 초심의 아름다움 그 감각으로 대화를 하고 싶었다. 어쩌면 일본인이 정해놓은 미의식에 갇혀 이 사발도 답답해하지 않을까. 조선의 흙으로 …, 조선의 풀과 나무를 태운 재로 만든 유약 …, 그리고 조선의 소나무로 불을 때 구운 불길이 사발 하나하나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사발이 나에게 전하는 말이 조용히 들어온다. 아! … 이제 어떤 그릇을 만들어야하나 …, 느낌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더 혼란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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