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밝은 달에 메밀꽃이 눈같이 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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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제원 / 2018 년 8 월 [통권 제6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046회 / 댓글0건본문
여름 장마가 끝나니 열대야熱帶夜가 기승을 부린다. 그러나, 고전古典에는 보이지 않는 용어用語다. 기상캐스터이자 수필가인 NHK TV의 ‘쿠라시마 아츠시(倉嶋厚)’가 만든 ‘현대조어現代造語’다. 측정 당일 최저기온이 25℃ 이상이 경우인데, 5℃ 더 올라가면 ‘초超열대야’가 된다. 그러나 습도가 높아지면서 체감온도는 10℃ 내외 더 올라가, 도심 아스팔트 위에 계란 프라이가 익을 정도다.
북한산의 여름 구름. 사진: 박경희 불자 제공
오면 치는 ‘래타송來打頌’의 법거량
속담엔 ‘더위 먹은 소 달을 봐도 허덕인다’고 한다. 한낮 더위가 너무 뜨겁다 보니, 기온이 내려가는 밤에 달만 봐도 더위를 느낄 정도라는 표현이다. 열대야는 해마다 반복되지만, 절기상 입추立秋를 전후해 ‘복날[伏日]’이 찾아온다. 해마다 7월 말부터 8월 중순 사이에 반복된다. 복날은 양력 개념으로, ‘초중말初中末의 3복’이 있다. 통상 열흘 간격의 ‘매복 주기每伏 週期’를 갖지만, 중복과 말복 사이 입추가 있으면 20일 간격의 ‘월복越伏’이 된다. 올해가 월복이다. 초복(7.17)과 27일 중복(7.27)은 ‘10일 간격’이지만, 중간에 입추(8.7)가 개입되면서 말복은 8월16일로 밀렸다. 중복과 20일 간격이 발생했다. 바야흐로 달력 절기는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날씨는 불볕과 찜통으로 대변하는 무더위가 겹치고 있다.
明頭來明頭打(명두래명두타)
밝음에서 오면 밝음으로 치고
暗頭來暗頭打(암두래암두타)
어둠에서 오면 어둠으로 치고
四方八面來旋風打(사방팔면래선풍타)
사방팔면에서 오면 회오리 바람으로 치고
虛空來連架打(허공래연가타)
허공에서 오면 도리깨로 치고
- 보화(普化, 당唐, 9세기 초), 오면 치는 노래[來也打頌]
보화 스님은 거리를 다닐 때, 영탁鈴鐸 즉 방울을 흔들며 행각行脚하면서 ‘래타송來打頌’ 다시 말해 ‘명두송明頭頌’을 불렀다. 당(唐, 618~907) 초중기에 살았는데, 스스로 관속으로 들어가 ‘입적入寂’했다고 전한다. 당시 임제(臨濟, 唐, ?~867년) 스님과 교류가 있었는데, ‘래타송來打頌’에 얽힌 ‘선화禪話’가 있다.
하루는 임제 스님이 시자侍者를 시켜 보화 스님을 간접 검증했다. ‘반야송을 노래하는 보화 스님의 멱살’을 잡고 “그 어느 것으로도 안 올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게 했다. 그러나 대리문답代理問答 현장에서 보화 스님은 임제 스님이 보낸 시자를 밀치면서 “내일은 대비원大悲院에서 재가 있다더군” 하면서 낮은 소리의 혼잣말 형식으로 답변했다. 이 대화 내용을 전해 들은 임제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부터 예사내기는 아니라 여겼더니 과연 그렇구나.”
선사간 법거량法擧量인데, 선화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명두明頭는 밝음 즉 ‘차별’을 이르고, 암두暗頭 즉 어둠은 ‘평등’을 상징한다. 두頭는 의미 없는 조사助辭에 불과하다. 통상, 차별과 평등의 출발점은 ‘분별分別’과 ‘무명無明’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명암은 명암으로 치고, 시방十方은 선풍旋風으로 치고, 허공은 도리깨로 친다. 즉, 분별과 무명이 개입될 소지를 원천 차단하는 ‘주인공’의 본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분별 · 무명 넘어선 주인공
4구句의 상징어 ‘도리깨[連枷]’는 인간이 사용한 가장 오래된 농기구 가운데 하나인데, 곡물의 낟알을 얻는데 사용된다. 볏단도 반드시 쓸모가 있지만, 사람의 생명 유지엔 ‘낟알[粒顆]’이 중요하다. ‘보화 스님의 ‘래타송來打頌’은 밝음과 어둠은 물론 허공과 진공을 관통하는 ‘깨침의 외침’이 아닐 수 없다.
霜草蒼蒼蟲切切(상초창창충절절)
풀들은 서리에 시들고 벌레소리 애절한데
村南村北行人絶(촌남촌북행인절)
촌 마을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도 없다.
獨出門前望野田(독출문전망야전)
홀로 문전에 나아가 들판을 바라보니
月明蕎麥花如雪(월명교맥화여설)
밝은 달에 메밀꽃이 눈같이 희도다.
- 백낙천(白樂天, 당唐, 772~846), 시골 마을의 밤[村夜]
입추와 처서를 지나는 동안 여름 벌레소리가 요란하다. 대표선수는 매미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소리를 내고, 새벽시간 조용히 비워두지 않는다. 매미는 수컷만 소리를 낸다. 암컷은 발성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메밀은 ‘뫼(산)+밀’의 합성어이며, 일부 방언에서 ‘모밀’이라 부르지만, 이 역시 ‘뫼밀’이 변화했다. 메밀꽃은 말 그대로 ‘메밀의 꽃’이지만, 바닷가 어부漁夫는 ‘포말泡沫 즉 물거품’을 말한다. 어부의 표현으로 ‘메밀꽃 일다’는 ‘물보라를 뿌리며 하얀 거품이 일어나는 모양’을 일컫는다. 바다의 ‘파도거품’이 육지에선 ‘메밀꽃’이다. 갈매기 나르는 쪽빛 하늘 아래 펼쳐진 해면海面에 포말이 끊임없이 부서지고 일어선다. 보름달 비추는 우란분절 백중(百中, 음7.15)엔 바람결 따라 ‘달빛을 한 점씩만 담은 메밀꽃밭’이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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