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수]
지금 여기에서 실현하는 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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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스님 / 2021 년 8 월 [통권 제100호] / / 작성일21-08-04 15:40 / 조회5,021회 / 댓글0건본문
법수法數 8. 현법열반現法涅槃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 불교의 궁극 목적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열반을 이 몸 받았을 때, ‘지금·여기’에서 실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완전한 열반은 죽음 이후에 실현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 근본원인은 열반을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으로 구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반을 둘로 구분한 것은 후대에 성립된 것이며, 붓다의 본래 가르침이 아니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은 ‘지금·여기here and now’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는 ‘현법열반(現法涅槃, diṭṭhadhamma-nibbāna)’을 가리킨다. 열반은 금생에 실현하는 것이지 죽은 뒤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열반을 이루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초기불교에서는 죽어서 하늘에 태어나는 것, 즉 생천生天을 이상으로 삼지 않는다. 현법열반은 죽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몸을 가진 상태에서 무지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해탈하기만 하면 곧바로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불교를 신행하는 목적은 ‘지금·여기’에서 최상의 행복인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붓다는 일생 동안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 설했다. 괴로움의 소멸이란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경전에 나타난 붓다의 교설은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금생에 열반을 증득하지 못하면 윤회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소멸인 열반을 증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잡아함경』 제1권 제28경 「현법열반경現法涅槃經」에 의하면, 어떤 비구가 붓다에게 “어떻게 비구가 현법열반을 얻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붓다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여, 색色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소멸하며, 완전히 없애고,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아[不起諸漏] 마음이 바르게 해탈하면, 이것을 비구의 ‘현법열반’이라 한다. 이와 같이 수受·상想·행行·식識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소멸하며, 완전히 없애고,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바르게 해탈하면, 이것을 비구의 ‘현법열반’이라 한다.”[T2, p.6a]
위 내용은 오온五蘊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소멸하며 완전히 없애고,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바르게 해탈하면, 이것을 현법열반現法涅槃이라 한다는 것이다. 현법(現法, diṭṭhadhamma)이란 현세現世, 즉 금생今生을 말한다.
현법과 열반을 합친 ‘현법열반’이란 현세에서 열반을 얻는다는 뜻이다. 이 경에서는 오온을 싫어하고 오온에 대한 탐욕을 여의며 오온에 대한 애착과 번뇌를 멸하여, 다시는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바르게 해탈한 경지를 현법열반이라고 했다. 이 경에 대응하는 니까야[SN22:116]에서는 현법열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는 비구, 법을 설하는 비구”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법을 설하는 비구가 되고, 어떤 것이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이며, 어떤 것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입니까?’ ‘비구들이여, 만일 색色을 염오하고 색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색을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색을 염오하고 색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색을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하면 그를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색을 염오하고 색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색을 소명하였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수受·상想·행行·식識도 이와 같다.’”[SN.Ⅲ.164]
위 경전에서 ‘지금·여기’로 옮김 ‘딧타담마diṭṭhadhamma’를 중국에서는 ‘현법現法’으로 번역했고, 서양에서는 ‘here and now’로 번역했으며, 국내에서는 ‘지금·여기’로 옮기고 있다. 『잡아함경』 제5권 제105경 「선니경仙尼經」에서 붓다는 “현세[現法]에서 애욕을 끊고 탐욕을 떠나 모든 번뇌를 없애면 열반을 얻는다[現法愛斷·離欲·滅盡·涅槃(T2, p.32a)].”고 했다. 이 경에서 말한 열반이 곧 현법열반이다.
『중아함경』 제165 「온천림천경溫泉林天經」에서 붓다는 “부디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마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法],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아느니라[T1, p.697a].”고 했다. 과거와 미래는 ‘지금·여기’에서 당면한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잡아함경』 제16권 제414경에서 붓다는 전생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고 했다.
“비구들이여, 전생에 한 일에 대해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이치에 도움이 되지 않고, 법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범행에 도움이 되지 않고, 지혜도 아니고 바른 깨달음도 아니며, 열반으로 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함께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에 대해 논의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이치에 도움이 되고, 법에 도움이 되며, 범행에 도움이 되고, 바른 지혜와 바른 깨달음이며, 바르게 열반으로 향하기 때문이다.”[T2, p.100ab]
이와 같이 붓다는 제자들에게 전생에 관한 사항은 논의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왜냐하면 전생에 관한 사항은 의義·법法·범행梵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지혜와 바른 깨달음도 아니며, 열반으로 향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붓다는 현세의 즐거움을 버리고 내세의 즐거움을 추구하라고 한 적이 없다. 어떤 사람은 열반을 죽어서 얻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열반은 살아 있는 ‘지금·여기’에서 획득되는 것이며, 사후에 기대되는 낙원이 아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죽어서 하늘에 태어나는 것, 즉 생천生天을 이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 깨달음을 획득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았다. 이것을 ‘현법열반’이라 한다. 현법열반은 죽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몸을 가진 상태에서 무지와 탐욕을 벗어나 해탈하기만 하면 곧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여기’에서보다는 사후에 하늘나라[天界]에 태어나 영원히 행복을 누리겠다는 것은 원래 붓다의 가르침이 아니다.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아라한들은 한결같이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안다[我生已盡, 梵行已立, 所作已作, 自知不受後有].”고 선언한다. 이것을 아라한의 오도송悟道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초기경전에 나타나는 ‘현법열반’과 외도들이 주장하는 ‘현법열반론’을 혼동하고 있다. 비록 ‘현법열반’이라는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브라흐마잘라-숫따(Brahmajāla-sutta, 梵網經)」(DN1)에 의하면, 붓다시대의 사문·바라문 중에서 현세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을 ‘현법열반론자’라고 하는데, 이들은 다섯 가지 경우로 현세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또 이들은 자아가 있어서 그 자아가 초선初禪·이선二禪·삼선三禪·사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고 주장했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런 주장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다. ‘존자여, 이 자아는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을 마음껏 충분히 즐깁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자아는 현세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현세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DN.Ⅰ.36]
이처럼 외도들이 주장하는 현법열반은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야말로 구경의 열반이요, 최상의 행복[至福]이라는 것이다. 요즘말로 표현하면 인과를 전혀 믿지 않는 극단적 쾌락주의자들의 변명과 유사하다. 즉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행복, 즉 현법열반이라고 주장하는 삿된 견해를 말한다.
또 이들의 주장은 자아에 대한 견해, 초기불교에서 거듭 강조하는 유신견(有身見, 자아가 있다는 견해)을 극복하지 못한 사견에 불과하다. 이처럼 무상·고·무아의 이치를 터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초선·이선·삼선·사선을 체험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삿된 견해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지혜로써 제법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해서 자아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은 있다·없다, 영속한다·단멸한다는 견해의 그물에 걸리고 만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이와 같이 외도들이 주장하는 현법열반론과 붓다가 말한 현법열반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따라서 초기경전에 나타난 현법열반과 외도들이 주장하던 현법열반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붓다는 이 몸을 받았을 때 아라한과를 증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세에서 아라한과를 증득한 것을 다른 말로 ‘비구가 현법열반을 실현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붓다는 초기경전에서 한결같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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