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사업을 통한 보시행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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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령 / 2023 년 8 월 [통권 제124호] / / 작성일23-08-04 21:04 / 조회2,073회 / 댓글0건본문
근대일본의 불교학자들 31 |미지마 카이운 2
1916년, 미지마 카이운(三島海雲, 1878~1974)은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도쿄로 상경했다. 그가 재기의 발판으로 삼은 것은 오사카에서 시식한 경험이 있는 요구르트였다. 요구르트 이상의 자양분을 가지면서도 맛있는 유제품을 일본에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때 떠오른 게 몽골을 방문했을 때 경험한 즈히였다. 즈히는 산양에서 얻은 젖을 발효시킨 유산균 크림으로 카이운은 이 몽골식 크림을 석가모니의 깊은 가르침처럼 천상의 맛이라는 의미의 ‘제호미醍醐味’로 명명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카루피스의 성공 요인
국민의 건강을 우선으로 한다는 그의 철학은 단순히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하기에 급급하지 않았다. 우선 교토제국대학 의학부를 방문해 이 몽골식 크림의 효능을 검증받고자 했다. 의과대 교수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카이운은 제호미 합자회사를 설립했다. 제호미는 도쿄에서 큰 호평을 받으면서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문제는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대량생산이 절실했지만 당시에는 낙농이 발달하지 않아 대량생산이 어려웠고 설상가상으로 원가와 수송비가 비쌌다. 그래서 원유에서 크림보다 많이 남는 탈지유를 유산균으로 발효시킨 제호소醍醐味를 1917년에 출시했으나 실패를 맛봤다.
카루피스 음료 개발의 시작은 우연이 가져다 준 행운이었다. 제호소의 실패로 경영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공장장이 우연히 제호소에 설탕을 넣어서 1~2일 방치한 후 마시게 되었다. 그 결과, 공기 중의 효모균에 의해 자연발효가 진행되면서 맛이 풍부한 음료로 바뀌었다. 카이운은 여기에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일본인 식생활에서 부족하기 쉬운 칼슘을 더해 일본 최초의 유산균 음료 카루피스를 완성했다.
여기에서는 카루피스 음료의 기술적 배합, 혹은 상품 소개보다는 불교와의 관련성, 카루피스의 성장배경 등을 이야기하겠다. 우선, 카루피스라는 이름은 카이운 자신이 언급했듯이 불교용어에서 가져왔다. 칼슘의 ‘칼cal’과 불교의 다섯 가지 맛 중 하나인 숙소미熟酥味를 의미하는 사르피스sarpis의 ‘피스pis’를 결합해 카루피스[칼피스]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카루피스가 성공한 요인으로는 적절한 광고의 힘이 컸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광고와는 조금 다르다. 카루피스가 세간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관동대지진과 관련이 있다. 수만 명의 사상자를 냈던 이 대참사로 인해 사람들은 생필품과 함께 물이 가장 부족했다. 카이운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물을 대신해 카루피스를 무상으로 배급했다. 신문들은 지진 관련 기사들을 보도하면서 함께 카루피스의 이야기를 실었다.
“죠조지增上寺 건너편에서 쌀뜨물 같은 액체를 배급하고 있다. 무엇인가 하고 다가가 봤는데, 그것은 얼음을 넣은 카루피스였다. 광고라고 할지라도 너무나 감사했다.”
- <오사카 매일신보>, 1915년 9월 3일.
사진 2. 카루피스 음료. 사진 : 아사히음료 주식회사.
이 사건을 계기로 카루피스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게 되었다. 관동대지진은 수천 명의 조선인 학살이 이루어진 우리에게는 쓰라린 역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였다. 훗날 이때의 행동에 대해 카이운은 『아함경』을 인용해 “모든 행위에 결실이 맺히는 것은 사욕을 벗어난 근본에서 생긴다.”는 말로 대신했다.
다른 하나는 디자인의 효과가 컸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독일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빠져 있었다. 지인으로부터 일본의 1엔이 독일에서는 1조 마르크라는 이야기와 함께 예술가들이 가장 힘든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카이운은 독일 화가들을 대상으로 카루피스 포스터 공모전을 열었다. 공모전은 독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1,400여 점이 응모했고 유럽 사회에 카루피스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3등을 한 인물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안가, 오토 던켈스불러Otto Dünkelsbühler이다. 이 공모전을 계기로 현재까지도 사용하는 카루피스 로고가 완성되었다.
인문학 양성과 보시행
카루피스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추석 선물의 단골 메뉴였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나 톰소여의 모험 같은 세계 명작만화 중간에 나왔던 TV 광고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현재까지도 “지금 막 떠오르는 음료수는?”이란 TV 길거리 인터뷰에서 콜라를 이기고 ‘카루피스’라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 음료수가 100여 년이 넘도록 애용되는 데에는 단순히 잘 팔려서, 광고가 많아서가 아니다. 미지마 카이운의 사회 공헌과 관련이 크다.
카이운은 84세 때인 1962년 전 재산을 기부해 미지마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아함경』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서 “나는 이 구절을 10대 때부터 알았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70이 넘어서 비로소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실행으로서 재단을 설립한다. 아울러 내 재산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모두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라고 설립 이유를 설명했다.
미지마재단의 사회 환원 방식은 학술지원이다. 그가 재단의 방향성을 학문으로 결정한 데에는 회사의 성장 과정과 관련이 있다. 그는 카루피스를 비롯한 식품 개발에 있어서 자연과학 연구자들의 협조와 지원을 받았다. 동양학 연구자들과는 꾸준한 친교를 통해 사람이 해야 할 일, 삶의 의미 등 여러 가르침을 청했다. 따라서 이 두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보답하고, 학술연구의 성과는 미래의 일본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발전할 초석이 된다는 그의 비전이 녹아 있다.
“앞으로의 세상은 학술의 경쟁, 지식의 경쟁사회가 될 것이다. 지식의 경쟁은 훌륭한 학자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학술은 자연과학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을 지탱해 줄 양식, 인문과학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지마재단의 특징이다.”
- 미지마 카이운, 『초연初恋 오십년』(1965) 중
재단은 현재까지도 매년 자연과학과 인문학 분야에서 학술상을 선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세미나나 학술대회, 강연회, 연구회 등 크고 작은 학술활동을 지원해 젊은 인문학자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국민건강 증진에 사명을 가진 카이운은 로얄젤리 성분 분석을 최초로 한 인물이기도 하다. 로얄젤리의 효능을 소수의 사람이 아닌, 수만 명의 사람이 값싸게 애용할 수 있도록 식품 개발을 위해서였다. 카이운의 행보는 자신의 사욕보다 상대를 생각하는 이타심의 발로였다. “일 자체가 상대방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러려면 단순한 모방만으로는 안 된다. 직접 고심하고 새롭게 제안하고 이것을 세상에 물어보아야 한다.”라고 사업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카이운은 말년의 인터뷰에서 “내가 존경하는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신란親鸞이다. 부처님은 무한한 자비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라고 가르치셨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부처님을 존경하는 이유이다. 내가 신란을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그의 정직함과 용기에 감동했다.”라고 언급했다.
카이운 자신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전 생애에 걸쳐 공익을 위한 보시행을 실천했다. 그의 보시행은 단순히 자신의 공덕을 쌓기 위함이 아니었다. 자리이타요, 보시행을 통한 부의 재분배였다. 카이운이 걸어온 길은 동시대 불교학자들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그의 모든 행위와 과정들은 불교가 가르친 실천적인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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