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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기도]
“고마 다 갂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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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1997 년 6 월 [통권 제6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10,91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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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옥(본각성)

 

 

부처님! 큰스님! 인연! 견성! 삭발!
어디선가 비슷한 글자만 봐도 괜시리 눈이 확 떠지고 심장이 빠르게 박동치는 단어들이다. 물론 여느 불자에게도 그러하려니와 오늘은 삼천배 7일 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며늘아기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큰스님의 법향이 초봄안개가 대지를 소리 없이 적셔주듯이 온 집안에 가득히 피어난다.

 

 


 

돌이켜보면, 큰스님과의 인연은 나의 인생행로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맹목적인 신심과 막연한 기대로 부처님의 그윽한 자비의 미소만을 탐할 때, 그저 남들이 모두 큰스님이라고 하기에 또 연로하신 보살님들께서도 거뜬히 3천배를 하신다기에 나도 그렇게 하고 나면 어떤 경계가 나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 같아 당뇨로 불편한 몸을 끌고 3천배를 시도했다. 그리나 3천배를 무사히 성취했을 때, 기대했던 경계조차 확 뛰어넘는 그 환희와 법열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여 나의 먹물들이기의 일상(日常)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내가 나의 일상을 ‘먹물들이기’라고 하는 데는 내 나름대로의 사연과 의미가 있다. 큰스님을 친견하고 기도생활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밤새 3천배를 하고 아침공양을 하기 위해 공양간 앞을 지나다 큰스님을 뵙게 되었는데 “고마 다 깎지, 다 깎아라” 하시는 말씀에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주변이 텅 비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오직 이 대천세계에 큰스님과 나 혼자만이 독대하고 있고, 또 나만을 위하여 고구정녕하신 법문을 하시는 듯하여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래 깎아야지. 이 공부는 깎아야만이 비로소 제대로 할 수 있어. 깎는 것이 견성(見性)의 첩경이야. 나도 필경에는 꼭 깎아야지.’

 

나는 스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나도 끝내는 꼭 깎으리라 다짐하고 아니 깎는다는 것을 나의 큰 서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스님들께서 자신의 생활을 ‘중물들이기’라고 하듯이 스님 말씀 직하에 삭발염의는 못했다 하더라도 큰스님의 가르침대로 나의 세속 일상을 ‘먹물들이기’로 작심하고 오늘도 그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옛 조사 스님들도 선지식과 도반, 도량을 정진․견성의  3대 요인이라 하여 중요시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나는 누구보다도 이 3대 요인이 훌륭하게 구족된 복된 불자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청풍납자들이 선지식을 찾아 풀숲을 헤치고 바람을 가르며 일구(一句)의 해답을 갈구했으리라. 그러나 운이 좋게도 나에게는 항상 태산처럼 여여부동하게 큰스님이 백련암에 계셔서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며 담금질할 수 있으니 선지식 인연은 구족되어 있으며, 큰스님의 골수법문인 ‘다 깎아라’에 고무되어 출가하신 집안의 다섯 분 스님들과 더불어 주부는 가정에서 행복과 가치를 찾아야 한다며 완고하고 편협하기만 했던 우리 처사가 이제는 한 도반으로서 일상의 먹물들이기를 같이 하고 있으니 선우도반도 구족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 가정에도 처사의 갑작스런 실직으로 큰 시련이 닥쳐왔다. 나는 백일기도로 일생의 새 전기를 마련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기도만이 유일한 희망이요 대책이었다. 나는 정성스럽게 기도 준비를 해놓고 “보이소, 기도시간 됐습니다” 하고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처사를 깨웠다. 아직 기도와 절에 익숙하지 않았던 처사에게 새벽 3시 기상과 3천배의 절은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이었다.
하루는 외출에서 돌아온 처사가 “보이소” 하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리 한가운데였고 백주대낮에 지나가던 사람이 무심코 한 얘기였는데 내가 기도하라고 깨우는 줄 알았다고 하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래도 그 “보이소” 소리가 이 세상 어떤 소리보다 더 아름답게 들리고 너무 기뻤다며 기도에 대한 확신과 자신을 보이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않았던 지인(知人)으로부터 사립학교 제안을 받게 되었고, 오늘의 경일학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매일 새벽 5시만 되면 어김없이 4층 법당에서 흘러나오는 “대자대비 만중생 대희대사제함식…” 하는 백팔참회의 향음은 적막한 교정을 여울처럼 퍼져나가 도량을 장엄한다. 게다가 맑은 눈빛을 반짝이며 으젓하게 어깨를 뽐내는 재학생들이 교정을 가득 메울 때면, 저 맑디맑은 눈망울 하나하나가 고통받는 중생들을 제도할 미래의 부처님들 같아 이 도량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가야산 가득히 큰스님의 법음이 메아리치고 있고, 집안의 다섯 분의 스님과 처사가 엄정한 도반이 되어 주고, 2,500여 명이 운집해 지덕(智德)을 갈고 닦는 학교가 청정도량을 이루어 주니 이 세상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오늘도 이 행복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큰스님의 한 말씀 “깎아라”를 실천하기 위해 나의 먹물들이기 일상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나무 대행 보현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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