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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기도]
나의 영원한 재산목록 제1호, 대불정능엄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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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1997 년 3 월 [통권 제5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10,53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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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옥

 

원고 부탁을 받았을 때, 나는 너무나 놀랐고 난감했다. 감히 내가 어떻게. 그러나 곧 마음을 정했다. 잘 쓰지는 못하겠지만, 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발심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기도 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는 소박한 바람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을 툭 털어버리고 감히 두서없이 졸필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불교에 대한 내 생각이나 기도 생활의 잘못된 점이 있다면 지적 받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러니까 내가 백련암을 찾게 된 얘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외아들 창균이가 중1 때 전교생 야외학습을 나가서 야구공에 오른쪽 눈을 맞았다. 대수술을 겨우 면하기는 했지만 나의 머리 속에는 한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천여 명이나 되는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하필이면 왜 내 아들이! 일부러 눈을 맞추려고 마음먹고 던졌어도 어려운 일인데, 그 멀리서 던진 야구공에 어떻게 눈을 맞았을까!’

 

그즈음 우리 부부는 아들과 딸의 정신 교육을 위해 가정의 종교를 정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항상 마음은 불교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 때만 해도 학생법회가 체계적으로 잘 안 되고 있어서 결정을 못하고 차일피일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아들의 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 지난 어느 날 집에 놀러 와서 ‘모든 것이 순탄할 때 미리 닦아야 한다’며 불자가 되기를 권했던 석영이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 부처님께서 아들을 통해 나를 참회시키고 부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심이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부랴부랴 석영이 엄마의 도움을 받아 송광사 수련 4박 5일을 마치고 불자 입문식을 마쳤다.

 

그 뒤 어느 날 모임 자리에서 송광사 수련회 다녀온 얘기를 하다가 “언젠가는 나도 그 해인사 백련암이란 곳엘 가보고 싶어. 그런데 삼천배를 해야만 한다니 참 까마득하네. 언젠가 인연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겨우 108배를 몇 번 해보고 1080배를 한 번밖에 못해 본 햇병아리로서는 당연한 소리인지도 모른다. 초발심자인 나에게는 하늘같이 여겨지는 엄청난 절 삼천배, 그 삼천배가 까마득해서 가고 싶지만 엄두도 못내는 백련암, 그러면서도 감히 친견해 보고 싶은 성철 큰스님. 불자라면 누구든 한 번쯤 가만히 마음속으로 품어보는 꿈이었으리라.

 

그런 푸념 섞인 이야기를 하자 뜻밖에도 ‘정본해’ 보살이 “백련암에 가고 싶으면 매일 108배부터 하세요. 그리고 나랑 같이 백련암 올라갑시다”라는 제의를 했다. 순간 놀랐다. 내가 그 삼천배를 할 수 있을까? 나도 백련암에 갈 수 있을까?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거실에 방석을 펴놓고 108배를 시작했다. 그렇게 108배를 시작한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4,5일쯤 지났던가, 정본해 보살이 ‘같이 백련암에 올라가자’고 전화를 했다. 만배 보살들이 철야로 절을 하러 가는데 끼어서 같이 하면 삼천배를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가겠다고 약속을 해버렸다. ‘키’는 작지만 ‘간’이 컷던지 드디어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에이 모르겠다. 죽으면 썩어 겨우 한 줌의 재가 되고 말 육신인데, 아프면 얼마나 아플라고? 죽기를 각오하는 정신력이면 해내겠지. 똑같은 사람으로 누구는 만 배도 하는데 그 사람들 만배 할 때 그 삼분의 일도 못 되는 삼천배도 못 한단 말인가! 만배보다 칠천배나 모자라는 삼천배다. 해보자.’

 ‘전정옥’ 이라는 이름의 육신으로 38년간을 살아온 1989년 가을! 드디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백련암으로 향했다. 아직 햇병아리 신세인 나로서는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다가온 백련암의 행보가 감당하기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산굽이를 돌아 드디어 내 시야 속에 들어온 백련암의 모습은 이승에서 바라본 그윽한 극락의 모습 같았다. 하나같이 법복을 단정하게 입은 모습의 불자들이 열심히 참회하며 절하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미워지고 눈물이 솟았다.

 

‘나도 꼭 삼천배를 해야지. 큰스님께 불명을 받아서 하산해야지.’ 독한 마음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드디어 정본해 보살이 첫 삼천배를 할 때 입었다는 빛깔이 적당히 바래서 멋스럽다고 느껴지는 법복을 받아 입고 삼천배를 시작했다. 만배 보살들 사이에 끼어서 삼천배의 첫 절을 시작했을 때, 이 만배 보살들의 절 한 템포와 리듬에서 한 순간도 쳐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엎드렸다 일어섰다 하는 순간의 동작이 절 한 배를 만들고 그 순간순간의 한 배가 모여서 삼천배라는 엄청난 참회의 세계를 이룬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열심히 절을 했다. ‘한 순간을 놓치면 삼천배를 놓친다. 삼천배가 이루어 놓는 참회의 바다를 볼 수 없다’는 사무치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시종일관했다.

 

대단한 만배 보살들 덕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리 이천배를 해냈다. 절이 익숙하지 않아서 앞으로 밀리고 밀린 좌복이 불단 밑으로 들어가기를 수십 차례, 그렇게 이천배를 쉬지 않고 하였다. 잠시 쉬는 틈에 한 보살님이 건네는 따끈한 차를 한 모금 넘기는데, 마치 무릉도원에서 받아 마시는 ‘신선차’인 것 같았다. 정말 ‘꿀맛’이었다.

 

다시 만배 보살님의 지심귀명례 소리가 시작되었다. ‘부처님 저의 묵은 때를 닦게 해 주십시오’를 수없이 되뇌이며 한 배 한 배 절을 해나갔다. 이제 남은 천배는 거뜬히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천배를 했으니 벌써 삼분의 이를 한 셈이 아닌가. 만배 보살들의 절 한 순간을 놓칠세라 열심히 엎드렸다 일어났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기니 도반 찰윤이가 걱정되었다. 대수술을 받은 터라 지치고 허약해진 몸으로 힘겹게 절을 해나가고 있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지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일, 내 참회 하나로도 버거운 사람이 아닌가. 체격 좋고 건장한 도반 윤선이와 함께 밤늦게 무사히 삼천배를 마치고 법당 문을 나섰다. 한 잠도 안자고 밤새 절을 한다는 만배 보살들이 존경스럽기만 했다.

 

법당 뜰에 서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는 태고의 신비가 흐르는 듯싶고 참회의 세계가 일렁거리는 성스러운 극락이 조용히 거기에 있었다. 조심스레 심호흡하며 다리를 질질 끌다 시피 절뚝거리며 방으로 내려왔다. 비록 육신은 고통스럽지만 말이나 글로는 다할 수 없는 크나큰 환희심이 밀려왔다. 더없이 맑아지는 내 영혼을 느꼈다. 더없이 평온해지는 내 육신을 느꼈다. 절절 끓는 방에 다리를 펴고 누우면서 온몸으로 퍼지는 행복감을 만끽했다. 눈앞에 반짝 힘에 겨워하는 도반 찰윤이의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나도 모르게 곤하게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깨어 보니 찰윤이도 삼천배를 무사히 마치고 방에 들어와 있었다. 어찌나 감사한 마음이 들던지---. 

 

침예불을 마치고 불명을 받았다. ‘법명선(法明船)’. 받아 든 순간, 이제 나에게는 ‘밝게 환하게’ 살아가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불법을 전하는 밝은 배가 될 수 있도록 원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영원히 잊지 못할 첫 삼천배를 해냈고, ‘법찰윤’ ‘법윤선’과는 첫 삼천배 도반이 되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찌릿해 오는 소중한 인연이다.

 

그날 다리가 아파 어정거리며 겨우 산길을 내려왔지만 내 마음은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온 세상이 그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가슴 뿌듯하게 백련암과의 첫 인연을 맺은 후, 옥천사 백졸스님을 친견했을 때 넌즈시 한 달 천독의 능엄주를 해 보라고 권하셨다. 그 날 이후 한 달에 천독의 능엄주를 하고 있다. 처음엔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계속 노력했더니 이젠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발음조차 하기 힘들었던 능엄주, 그러나 이제 이 능엄주는 영원한 나의 재산 목록 제 1호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돌리기만 하면 되고 꺼내 쓰기만 하면 되는 값진 보물이 생긴 것이다. 영원히 나와 함께 할 ‘대불정능엄신주’. 능엄주가 내 재산 목록 제1호라고 한다면 가족이 모두 백련암에서 큰스님께 불명을 받은 것은 우리 가족의 자랑거리 제1호이다. 남편은 천은(天隱), 나는 법명선, 딸은 요보성(了寶性), 아들 창균이는 천광(千光)이라는 불명을 받은 것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생각하면 할수록 든든한 자부심을 갖게 해준다.

 

내 집에는 아주 자그마한 기도방이 하나 있다. 우리 가족들은 이 방을 ‘부처님 방’이라고 부른다. 이 방에서 아침을 열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겠다는 발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 날의 잘못했던 일을 참회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무리 늦은 시간에 귀가 하더라도 반드시 예불을 보고 잠자리에 드느 것이 나의 생활이 되었다.

 

우리가 밥 먹고 잠자고 화장하고 목욕하고 옷을 차려 입는 등 육신을 가꾸는 일이 당연하듯이 아침 저녁 예불을 올리고 항상 능엄주를 외우는 것은 내 영혼을 매일 닦고 가꾸는 일이다. 우린 육신과 영혼을 함께 닦고 가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에 상처 없는 영혼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기만 상처 있는 사람인 것처럼 괴로워하고 불행하다고 착각하며 산다. 이 순간부터 괴로워하는 그 시간을 능엄주 하는 시간으로 바꾸어 보자. 힘든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능엄주를 시작해 보자. 어떤 상황이 골치 아프게 복잡해지려 하면 능엄주를 챙겨 보자. 번뇌 망상이 어른거리고 마음의 갈등이 생기려 하면 얼른 능엄주를 읊어 보자. 근심 걱정거리가 생기면 능엄주를 하자. 무조건 능엄주를 하고 보자. 어느 새 내 마음은 안정을 찾고 주변은 잘 정리되어 있음에 놀라게 될 것이다.

 

어떤 간장 광고 문구에 ‘맛을 봐야 안다’고 했듯이, 생각만 말고 직접 실행에 옮기는 것이 최고다. 절을 많이 하는 분들은 물론 절 할 공간이나 시간, 여건이 마땅치 않은 분들도 절 많이 못한다고 속상해 하지 말고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시간에 능엄주를 하자. 능엄주를 할 마음을 내어 보자. 입에 올리기만 해도 당장 마장(魔障)이 없어지고 원하는 주파수를 확실히 맞출 수 있는 위대한 힘을 지닌 능엄주를 외우자. 마음이 고요해지고 최고의 해결사인 능엄주를 하자. 바로 이 순간부터 능엄주를 시작하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딸과 마약과 AIDS가 난무하는 환락의 도시 미국으로 유학간 아들이 항상 건강하고 무사히 자기의 갈 길을 잘 갔던 일, 남편의 중장비 사업 현장에서 어마어마한 대형사고가 났는데도 그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했던 일, 마음먹은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일지라도 마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처럼 척척 잘 돌아가고, 타이밍이 맞아 떨어지는 수많은 일들, 자꾸자꾸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되어 감사하고 흐뭇한 일, 정겹고 사랑스러운 일들이 자꾸 나타난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아침 저녁 예불을 올리고 계속 능엄주를 하다 보면 기도하고 노력한 것은 반드시 현실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도는 좋은 인연을 맺게 해 주고 모든 일을 좋은 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라고 감히 말해 본다. 능엄주를 잠자는 가운데도 할 수 있게 되는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능엄주를 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던가. 많이 뿌려 보자, 좋은 씨앗을 거둘 날이 있을지니. 그러나 거두지 않으면 어떠랴. 뿌릴 때 이미 기쁜 마음을 보상 받았거늘.

 

약국에서도 아침, 저녁 향을 꽂으며 기도한다. 약을 사는 모든 이들이 원하는 대로 약효가 있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항상 부처님께서 약국에 계신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한 것을 어찌 말로 할 수 있겠는가. 나만의 느낌!

 

문득 큰스님 생전의 친견 때가 떠오른다. 딸과 함께 큰스님을 뵈었을 때, 큰스님은 나를 가리키며 딸에게 “이기 니 엄마가? 너거 엄마 키 좀 크라 해라 응” 하셨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길은 없지만 잘 나지도 못한 게 까불지 말고 잘난 척하는 마음 버리고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며 살아가라는 뜻으로 감히 풀이를 해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만심이 고개를 들려 하면 그 때 그 말씀을 가만히 떠올리며 나를 다스리는 경구로 생각하고 있다.

 

세월은 돌려놓을 수 없는 것,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바로 이 순간이 과거라는 이름으로 사라지고 미래라는 이름의 내일이 바로 지금 현재로 다가온다. 우리는 매 순간을 절대 현재로 살며 제행무상․회자정리․인과응보․윤회를 생각하며 자신과 부처님의 진리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큰스님께서는 “남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이 얼마나 가슴 뭉클한 말씀인가. 자신에게 넘쳐나는 오욕칠정을 던져버리고 남을 위해 아프게 무릎을 굻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이제 백련암 보살이라면 어딜 가더라도 모범적인 불자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처처법당 사사불공(處處法堂 事事佛供)을 생각하며 절에 못 갈 때 집에서 항상 일과를 하며 마음을 닦는 작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 큰스님의 크고 높은 뜻을 받드는 것이리라.

 

요즈음 난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는 묘한 버릇이 생겼다.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길래 이생에 나에게 이렇게 사랑스럽고 고마운 인연으로 나타났을까? 이 사람과는 어떤 인연이었길래 이 세상에서는 이러이러할까. 그러면 이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며, 이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정작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다가오는 죽음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삶 그 자체인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진정한 불자가 되게 동기를 만들어 준 아들 창균이가 제대를 하고 요즈음 오전에 자기 공부를 하고 오후엔 학원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며 열심히 자기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달려가고 있어서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이 아들과 우리 부부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까.

 

상큼한 가을바람이 가만히 불어온다. 꽃향기가 나의 코끝에 스민다. 훗날 조용한 통나무집에서 고즈넉한 저녁 황금빛 노을을 바라보며 아스라히 멀어져간 이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회상에 잠기겠지. 이제 양귀자씨의 <천년의 사랑>에 실린 ‘송유미’의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는 시 한 편 을 옮겨 적으며 부끄러운 이 글을 접을까 한다.

 

산더미 같이 쌓여진 그릇을 씻기 위해 개수대 앞에 섰다.

밥공기들을 하나하나 ‘퐁퐁’을 묻혀 닦아내다가
문득 씻지도 않고 쓰는 마음이 손바닥에 만져졌다.
먹기 위해 쓰이는 그릇이나 살기 위해 먹는 마음이나
한 번 쓰고 나면 씻어 두어야 다음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라 싶었다.
그러나 물만 마시고도 씻어두는 유리컵 만도 못한 내 마음은
더럽혀지고 때묻어 무엇 하나 담을 수가 없다.
금이 가고 얼룩진 영혼의 슬픈 그릇이여.
깨어지고 이가 빠져 쓸데가 없는 듯한 그릇을 골라 내면서
마음도 이와 같이 가려낼 것은 가려내서
담아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누룽지가 붙어서 좀처럼 씻어지지 않는 솥을 씻는다.
미움이 마음에 눌어 붙으면 이처럼 닦아내기 어려울까.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는 주전자를 보면서
영혼도 이와 같이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게 할 수 없는 일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릇은 한번만 써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뼛속까지 씻으려 들면서
세상을 수십년을 살면서도 마음 한 번 비우지 못해
청정히 흐르는 물을 보아도 때묻은 정(情)을 씻을 수가 없구나.
남의 티는 그리도 잘 보면서도
제가슴 하나 헹구지도 못하면서
오늘도 아침저녁을 종종 걸음치며
죄없는 냄비의 얼굴만 닦고 닦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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