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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봄나물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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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4 년 4 월 [통권 제132호]  /     /  작성일24-04-05 10:36  /   조회1,96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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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들나물의 계절이 도래하였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아주 작은 주말농장을 통해 수확의 기쁨을 누리면서 24절기에 늘 진심입니다. 『고경』을 통해 여러 번 언급하곤 했지만 절기를 통해 깨닫게 되는 지혜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따라갈 수 없는 정서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채화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삼라만상이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 4월입니다.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면서 가장 싱그러운 음식으로 나물을 요리해서 먹어 왔고, 이 계절은 나물의 계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물이 많이 나오는 시기입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라 하여 빈궁한 삶을 표현하는 사자성어가 있지만 음식 포화상태로 온갖 병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풀뿌리와 나무껍질도 약이 되는 시절이니 두루두루 살피지 않을 수 없겠지요. 

 

사진 1. 엄나무순.

 

흔한 게 나물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나물은 한국음식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특유의 음식문화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초청으로 행사가 있었을 때 가장 반응이 좋았던 음식이 바로 묵나물이었습니다. 고사리, 도라지, 취나물, 눈개승마 등 건나물을 불려서 간장과 된장, 들기름과 참기름으로 조물조물 버무린 묵나물의 향연에 많은 사람이 이 음식은 그리움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살고 있는 지인은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나물이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음식들은 현지에서 거의 다 사 먹을 수 있지만 나물류는 늘 아쉽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요리料理, 잘 헤아려 다스림

 

한국 전통음식을 주식과 부식으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부식은 주식을 먹기 위한 반찬인 셈이지요. 요리하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인간이고, 요리란 인간이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요리料理는 음식을 만드는 행동이나 음식 자체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헤아릴 료(料)’와 ‘다스릴 리(理)’가 합쳐져 ‘잘 헤아려 다스림’이라는 뜻입니다.

 

사진 2. 곰취.

 

불과 도구를 활용해서 법제하고 순화해서 소화 흡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거나 먹기 힘든 것을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과정을 요리라고 표현합니다. 요리라고 하는 장르는 우리를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만들었고, 우리를 비로소 인간으로 구분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직접 요리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삶을 살아야 진정한 인간으로 남습니다. 밀키트 시장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배달 음식이 몇 분 만에 도착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서는 직접 조리해서 먹는 것이 바람직한 생활습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진 3. 우산나물.

 

법제法製의 과정

 

4월은 온갖 나물류를 만날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소개하고 싶은 식재료와 요리법이 매우 다양합니다. 어찌 보면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가장 가까이에 있었고 가장 오래된 식재료가 나물이었기에 나물 요리에 관한 이야기가 길어지는 모양입니다. 나물은 겨우내 추위를 이겨내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맛과 향을 만들어 냅니다. 그 독특한 맛과 향은 달리 보면 독이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 4. 박쥐나물.

 

이렇게 놓고 보면 봄나물은 독을 품고 있는 식물입니다. 그래서 물에 우리거나 데치거나 절여서 법제法製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소를 순화하고 간장, 된장, 고추장 양념으로 간을 맞추며 해독을 돕는 것입니다. 청정하고, 유연하고, 여법하게 요리하여 봄의 기운에 박자를 맞추니 자연도, 사람도 생기가 오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청명과 곡우

 

4월에 들어 있는 절기는 청명淸明과 곡우穀雨입니다. 청명에는 본격적으로 봄 농사를 시작합니다. 청명을 거쳐 보름이 지나면 드디어 만 생명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곡우를 맞이합니다. 청명과 곡우가 들어 있는 4월은 1년 중 가장 싱싱하고 싱그러운 달입니다. 자연의 움직임 속에서 우리네 삶을 배우듯 지금 우리가 무엇을 먹어야 할지 자연에서 배웁니다. ‘내가 먹은 음식이 내 몸과 마음을 만든다는 것’을 명심하고 절기에 맞게 섭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겨우내 품은 봄나물의 향기와 겨우내 만들어 낸 맛을 통해 오감을 일깨워 에너지를 충전하시면 좋겠습니다.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나물 캐오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랏 어아리를

일부는 엮어 달고

일부는 무쳐 먹세.

떨어진 꽃잎 쓸고 앉아

병 술을 즐길 적에

아내가 준비한

일품 안주가 이뿐이라.

 

「농가월령가」 3월령(음력)의 일부입니다. 1년 내내 먹을 수 있게 묵나물을 만들기도 하고, 지금 당장 무쳐서 향긋하게 먹어 보자는 내용이 담긴 가사입니다. 시절도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농가월령가」는 때를 일러주기도 하고, 마음도 챙겨줍니다. 시절은 바람처럼 어느덧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긴 조언을 흘려보내지 않고,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자연의 흐름을 인지하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해야 겠습니다. 차례차례 얼굴을 내미는 꽃들과 눈맞춤 하며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 요리의 기본을 생각합니다. 잘 헤아리고 다스릴 수 있도록 갖가지 봄나물과 봄나물 음식을 다정다감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목두채木頭菜 이야기

 

두릅을 일컬어 목두채라고 합니다. 두릅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는데 나무에 가시가 없는 것이 진짜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조선의 실학자 풍석 서유구 선생님이 기록한 채소·약초 백과사전인 『관휴지灌畦志』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음식요리 백과사전인 『정조지鼎俎志』에는 목두채방木頭菜方이라 하여 두릅요리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진 5. 참죽나무순.

 

이 책에 의하면 두릅은 푹 삶은 다음, 물에 한나절 담갔다가 물기를 짜내고 초간장이나 기름 넣은 소금에 먹으면 맛있다고 소개합니다. 두릅의 본초명이 목두채이지만 결국 봄이 되면 나무 끝에 자라나는 새싹들이 모두 목두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엄나무순, 참죽나무순, 옻순, 참두릅 등 모두가 목두채라는 점에서 법제하는 방법이나 조리법은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찻잎을 따서 유념揉捻하듯 봄나물도 법제와 유념의 과정을 거쳐야 향긋하고 싱그러운 봄맛을 선사합니다. 

 

봄나물에 진심

 

사찰음식은 삼덕(청정, 유연, 여법)의 조화로움으로 음식을 만들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조리 시간이 길지 않고 간단하지만, 여법하게 차려내는 음식이 사찰음식의 기본이지요. 봄나물 대부분은 데치거나 절이거나 생으로 먹습니다. 그리고 간장, 된장, 고추장, 들기름, 참기름, 조청으로 간을 합니다. 간을 맞춘다는 것은 사람의 입맛을 돋우고, 영양성분을 섭취하는 방법이자 해독을 해 주는 중요한 약념입니다.

 

사진 6. 두릅과 눈개승마.

 

양념은 약념藥念입니다. 약이 되도록 염두해서 사용하는 양념입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화학 첨가제 없이 순수한 양념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지요. 간장과 된장은 물, 소금, 메주로만 만들고, 조청은 엿기름과 쌀로만 만들고, 고추장은 고춧가루, 찹쌀, 소금, 조청으로만 만들어서 사용하면 됩니다.

 

제철 식재료를 알고 싶을 때는 재래시장을 방문해 보면 좋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추억의 식재료도 만날 수 있고, 착한 가격으로 신선한 봄나물을 가득 안고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도 봄이 되면 절에 가서 며칠을 머물며 56가지의 나물을 먹고 놀았다고 다산의 시문집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산처럼 56가지를 다 먹어 볼 수는 없다 하더라도 봄나물에 사치를 부려 보는 것은 우리의 건강을 위해 착한 소비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7. 두릅물김치.

 

봄나물의 대부분은 조리법이 간단합니다. 그래서 4월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으로는 봄나물의 종류와 약념을 소개하고, 목두채를 활용한 물김치 만드는 법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두릅물김치


재료

두릅 1kg, 채수 1L, 풀 20g, 배 1개, 간장, 소금.

 

만드는 법

1. 찹쌀가루나 밀가루로 풀을 쑤고 식힙니다.

2. 다시마, 무, 말린 참죽나무순, 배껍질 등을 넣고 채수를 우립니다.

3. 끓는 물의 양에 소금 1/4을 넣고 한 김 나가면 두릅을 절여 줍니다.

4. 30여 분 절인 두릅을 찬물에 깨끗이 씻고 물기를 빼 주세요.

5. 식힌 채수에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맞춥니다.

6. 배즙과 풀을 함께 넣어 잘 섞어 줍니다.

7. 두릅을 통에 담고 양념 된 물을 부어 주세요.

8. 실온에 하루 두었다가 냉장 보관하여 먹습니다. 

 

사진 8. 두릅오이김치.

 

TIP.

- 두릅만 넣고 만들어도 좋지만 제철 채소를 함께 사용해도 좋습니다.

- 날씨가 따뜻해지는 시기이므로 풀의 양을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 참죽나무순, 배껍질, 무 등을 말려 두었다가 채수에 사용하면 좋습니다.

- 채수를 만들 때는 기호에 맞게 약재를 사용합니다.

- 김치에 사용하는 풀은 다양한 곡물로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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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궁중음식문화재단 지정 한식예술장인 제28호 사찰음식 찬품장에 선정되었다. 경기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식과 명상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연구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사찰음식전문지도사, 한국임업진흥원, 한식진흥원 교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식물기반음식과 발효음식을 연구하는 살림음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논문으로 「사찰음식의 지혜」가 있다. 현재 대학에서 한식전공 학생들에게 한국전통식문화와 전통음식을 강의하고 있다.
naturesw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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