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다시부의 중심 갱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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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4 년 7 월 [통권 제135호] / / 작성일24-07-05 09:27 / 조회1,548회 / 댓글0건본문
‘다-시-부’는 요즘 테마여행을 좋아하는 MZ세대에게는 익숙한 용어지만 기타 사람들에게는 그리 친숙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도 동북부 지역의 히말라야 남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다르질링+시킴+부탄왕국’을 묶어서 부르는 호칭이기 때문이기에….
다시 갱톡Gangtok으로
필자가 사는 네팔 서북부 안나푸르나에서 출발하면 포카라-카트만두까까라비아타(네)-파니탄키(인)-다르질링-시킴으로 육로가 연결되어 있지만, 아직은 침대버스나 디럭스버스 같은 좀 편한 교통편은 없고 오직 털털이 로컬버스밖에 없다. 만약 나처럼 누군가 이 루트를 통과하려 시도한다면,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우스갯소리를 여러 번 되새기에 될 것이다.
그런데도 역마살은 나로 하여금 툭하면 배낭을 메게 만든다. 물론 이곳은 이런 개고생을 감내할 정도로 확실히 매력적이고 환상적이기는 하다. 어느 독자들은 내가 “안나푸르나에 10년씩이나 살고 있는데, 무슨 욕심을 더 내느냐?”라고 힐문하실 것이다. 하지만 사실 장엄한 강첸중가(Kangchen-Junga)(주1) 설산을 지척에서 바라볼 수도 있는 기대감은 웬만한 어려움 정도는 감내할 만큼 설렘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곳 도처에 산재해 있는 고색창연한 고대사원들의 체취를 맡을 수 있는 뿌듯함과 또한 그곳 원주민들과의 이질적인 접촉에서 오는 신선함 같은 것도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이곳으로 향하게 만드는 키워드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자칭타칭 ‘티베트통’으로 불리는 나만의 확신, 즉 “이곳이 바로 샹그릴라의 실제 무대인 ‘바율 데모종Bayul Demojong’이다.”에서 오는 것이다.
어쩌면 숙세의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무르익어 ‘시간의 수레바퀴’ ‘깔라차크라’의 대문이 내 앞에서 문득 열릴지도 모를 일인데, 어찌 잡다한 세사世事에 얽매여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칠까 보냐? 하는 절박한 심정도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마하트마 간디 광장에서
이번 달의 순례는 ‘다-시-부’의 중심지랄 수 있는 시킴의 주도州都 갱톡이 목적지이다. 시킴주는 지정학적으로 중국령 티베트와 이웃하고 있기에 외국인에게는 ‘여행허가증’(주2)이 필요하지만 그런 약간의 번거로움 때문에 시킴으로의 발걸음을 거둘 수는 없다.
시킴주의 입구 랑뽀Rangpo 체크포인트에서 ‘증’을 받아 들고 급경사를 지그재그로 올라가 밤늦게 데오랄리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숙소들이 몰려 있는 눈에 익은 MG광장으로 올라가 설레임 속에 새로운 아침을 맞는 기분은 집 떠나본 나그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갱톡은 남걀왕조의 마지막 왕이 정도定都한 곳이다. 왕조의 처음 도읍지인 육솜에서 라브텐체-텀롱을 거처 4번째 수도인데, 그런데 못난 위정자의 잘못으로 마지막 도읍지가 되어 버렸고, 지금은 불교적 색채보다는 힌두적 냄새가 나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현재 시킴주의 인구는 통계적으로만 보면 네팔계가 우세하지만, 그래도 15세기부터 이어진 불교왕국의 전통과 역사는 여전히 시킴의 종교,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서 힌두적 느낌보다는 오히려 불교적인 색채(주3)가 강하여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뉴에이지류의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갱톡은 ‘산 꼭대기’라는 뜻을 가진 도시이다. 중심가에 차가 다니지 못하는 중앙광장, MG마르그가 자리 잡고 있는데, 바로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의 이름을 딴 거리이다. 대개의 방문객이 객수客愁를 달래려 모여드는 번화가인데, 밤이면 제법 화려하게 변한다.
이튿날 아침, 시내를 한눈에 바라보기 위해서는 가네시 톡Ganesh Tok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자연적으로 ‘산꼭대기 도시’란 어원이 실감이 나게 만드는 뷰 포인트이다. 가파른 산등성이에 삼나무 숲 사이로 수많은 집들이 게딱지같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너머로 옛 시킴왕궁도 보인다.
갱톡에서 나의 발길을 잡아끄는 곳이 한 곳 더 있다. 세계적인 티베트학의 요람인 남걀티베트학연구소(Namgyal Institute of Tibetology)이다. 데오랄리 터미널에서 구 궁전 방향으로 울창한 숲길을 걸어가면 건물이 나타난다.
이 연구소는 1958년에 문을 열었는데, 수만 권의 티베트 경전과 구 왕실의 소장품을 수장, 전시하고 있는데 세계 최대 규모라고 알려져 있다.
사진 6. 남걀연구소 2층에서 번역 중인 따시남걀연구원.
남걀왕국의 흥망성쇄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히말라야 남쪽 산기슭의 온화하고 풍요로운 바율 땅, 즉 현 ‘다-시부’로
티베트-버마계의 부족인 렙차족이 이주, 정착함으로써 시킴이란 나라가 시작되었다. 후에 겔룩종파에 밀린 닝마종파의 3명의 수행승들이 구루린뽀체의 옛 예언에 따라 이곳으로 들어와 세력을 키워서 국왕을 옹립하여 소박한 왕국을 열었다. 바로 초걀(Chogyal Namgyal)왕조이고, 그 장소는 육솜(Yuksom)(주4)이란 곳이었다.
그리고 수도를 몇 차례 옮겨다니며 3백여 년 넘게 티베트 불교라는 우산 아래 이 왕조는 평화롭게 번성하였지만, 근세기에 들어와서는 역사의 돌풍을 맞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바로 마지막 임금인 팔덴남걀(Palden T. Namgyal) 때에 이르러 국민들의 불만으로 인한 반란이 일어나면서부터였다.
그 배경은 이러하다. 시킴도 여타 봉건적인 불교왕국처럼 토지의 대부분을 사원에서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런 제도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었다가 반란이 일어났다. 물론 미국인 왕비와의 스캔들도 국민들의 마음을 떠나게 만들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주5)
이에 신변에 위협을 느낀 왕은 중국과 인도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인도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하여 국민투표를 거치는 수순으로 시킴왕국이란 나라는 자청해서 인도의 22번째 주가 되고 말았다. 1975년의 일이다. 그리하여 히말라야의 군소왕국들 중에서 라닥왕국은 인도로, 무스탕왕국은 네팔로, 시킴왕국은 인도로 편입되고 말았다. 현재 유일하게 부탄왕국만 독립적인 왕국(주6)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각주>
(주1) 강첸중가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거봉(8,586m)으로 8천m가 넘는 5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 ‘5개(Junga)의 눈의 보고(Kangchen)’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제2봉인 서봉은 8,505m인데 위성봉이면서도 ‘얄룽캉’이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불리며 독립봉으로서 인정받고 있어서 최근에는 로체샤르(Lhoche Shar, 8,382m)와 함께 8천m 이상의 고봉을 의미하는 14좌에 더해 16좌로 불리기도 한다.
(주2) 내부지역 허가증(Restricted Area Permit)은 SNT(Sikkim National Transport) 상의 여러 곳에서 쉽게 만들 수 있다. [여권, 인도비자 사본, 증명사진. 수수료 없음]
(주3) 예로부터 티베트, 네팔의 침입으로 다민족, 다언어 상태로 섞여 살고 있으나 현재는 네팔계가 70%로 네팔어를, 티베트계의 렙차족이 30%로 렙차어를 사용하고 있고,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상류층도 만만찮다.
(주4) 원래 ‘육솜’이라는 지명은 ‘3명의 라마가 만난 장소’라는 뜻이다. 그 후 수도를 육솜-라브텐체-텀롱으로 옮겨 다녔다. 이웃 강대국들과의 지정학적 이유에서였다.
(주5) 시킴의 마지막 왕인 남걀초걀은 미국 여인 호프쿠크(Hope Cooke)를 만나 1963년 결혼을 하여 한때 국제적으로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남걀 초걀이 통치권을 잃자 호프쿠크는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으며 1980년 이혼했다. 그 후 남걀은 암으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주6) 사실은 부탄도 자국의 군대를 갖지 못하고 있는 인도의 보호령 신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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