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가까운 나라 이야기, 지옥의 생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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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7 년 12 월 [통권 제5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284회 / 댓글0건본문
『아함경』부터 『열반경』까지 거의 모든 경에 지옥 이야기가 나온다. 약간씩 표현의 차이는 있으나 내용은 거의 같다. 그중에서도 『장아함경』에 전하는 지옥 이야기는 자세하고 생생하다. 큰 지옥이 여덟 개가 있고 거기에 각각 딸린 지옥이 열여섯씩이나 되고, 별도의 지옥이 또 있으니 그 이름만 열거해도 원고가 꽉 찰 지경이다. ‘되살아나는 지옥’부터 ‘맷돌 지옥’, ‘칼 지옥’, ‘끓는 가마 지옥’, ‘아아 지옥’, ‘어찌하랴 지옥’까지, 이름만 들어도 느낌이 온다. 알바 때문에 할 수 없이 읽었는데, 읽는 동안 지옥 중생들이 겪는 참상이 떠올라 힘들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 그 참상을 함께 하고자 한다. 지옥 중생의 생활방식은, 아니, 생활방식이랄 것도 없다. 그저 틈 없이 갖가지로 달달 볶이는 게 그들의 생활이다. 첫 번째 지옥으로 들어가 보자.
되살아나는 지옥
어째서 되살아나는 지옥이라고 하는가. 거기 사는 중생들은 손에 길고 날카로운 무쇠손톱이 자라난다. 항상 화가 나있어서 다른 중생을 보기만 해도 해칠 마음이 생겨 손톱으로 서로 할퀸다. 손이 닿자마자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간다. 이젠 죽었구나 생각하는 순간 찬바람이 불어와서 가죽과 살이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되살아나는 지옥이라고 한다. 다시 살아난 뒤에도 서로 미움이 가시지 않아 또 트집을 잡고 싸운다. 이번엔 손에 저절로 칼이 들려 있다. 서로 찍고 찌르고 가죽을 벗기고 살을 도려낸다. 몸이 부서져 땅에 떨어진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까처럼 다시 살아난다. 이러기를 반복하면서 오랫동안 죄를 받고 나서 그 지옥을 나온다. 겨우 빠져나와서는 갈팡질팡 달려서 살 길을 찾는데, 그러나 전생의 죄업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제 갈 길로 간다. 다음 지옥이 기다리는 것이다. “어서 와. 이런 맛 처음이지?” 하면서.
되살아나서 거치는 각종 지옥
차례차례 검은 모래 지옥, 끓는 똥 지옥, 쇠못 지옥, 태우고 굽는 지옥, 굶주리는 지옥, 목마른 지옥을 지난다. 그러는 동안 검은 모래 바람에 뼈와 살이 타고 손과 발과 염통에 쇠못이 박힌다. 맷돌에 갈려 몸이 죽탕이 되기도 하고 세찬 불구덩이 속에서 쇠 작살에 꿰어져 세워진 채로 꼬치구이가 되기도 한다. 지옥마다 옥졸이 있어서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나는 배가 고픕니다, 나는 목이 마릅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옥졸이 뜨거운 철판 위에 죄인을 눕힌 다음 쇠 갈구리로 입을 걸어서 벌려놓고 달궈진 철환이나 쇳물을 붓는다. 입술과 혀가 타고 목구멍에서 배까지 통과하면서 내장이 다 물크러진다. 모진 고통에 신음하고 통곡하지만 남은 죄가 끝나지 않아서 죽지는 않는다. 다시 끓는 구리 가마 지옥으로 들어간다.
끓는 구리 가마 지옥
살려달라고 구원을 청하면서 정신없이 달려 도착한 곳이 구리가마 지옥이다. 기다리고 있던 옥졸이 눈을 부릅뜨고 죄인의 발을 잡아 가마 속에 거꾸로 내던진다. 가마솥에는 구리물이 펄펄 끓고 있다. 죄인의 몸은 물이 끓어 번지는 대로 빙빙 돌면서 바닥에서 아가리로 올라왔다가 다시 아가리에서 바닥으로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어떤 자는 가마 중간에서, 어떤 자는 밑바닥에서, 어떤 자는 아가리 근처에서 몸이 푹 익는다. 마치 콩을 삶을 때 물이 끓어 번지는 대로 오르내리면서 콩 안팎이 다 물크러지듯이, 죄인의 형상도 그와 같다. 어쩌다 구리물 바깥으로 손발이 나오기도 하고 허리나 배가 나오기도 하고 머리나 얼굴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 옥졸이 쇠 갈구리로 걸어 올려서 다른 가마 속에 던져 넣는다. 가마 지옥에서 나와서는 다시 짓누르는 지옥, 피고름 지옥, 밧줄 지옥, 절구 지옥 등을 거친다.
읽어 보니, 죽고 싶겠다. 그러나 죽을 수도 없단다. 지구상에 이런 곳이 있을까. 아직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지만, 삶아지는 콩의 비유를 읽다가 문득 부엌이 떠올랐다. 등잔 밑의 지옥이다. 지옥은 또 거리 음식점에도 있다. 지난밤 친구들과 시켜먹은 치킨. 그 중생은 얼마나 많은 지옥을 지나왔을까. 닭 공장. A4용지 한 장 가량의 비좁은 삶터에서, 처음부터 먹이가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 부리를 잘린 채 옴짝달싹 못하고 온갖 주사와 살충제를 맞고 견뎠으니 산 채로 지옥이었을 것이다.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나서는 도끼 지옥, 칼 지옥, 후라이드 지옥, 양념 지옥을 두루 거쳤을 것이다. 집 부엌도 다르지 않다. 그동안 해 먹고 살았던 것들. 아직 물속에 담겨 입을 벌리고 있던 조개, 목살을 바친 돼지, 온몸을 바친 고등어. 그들은 탕이 되고 구이가 되고 찜이 되는 동안 얼음 지옥, 칼 지옥, 불지옥을 다 거쳤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생존이 다른 누군가에겐 지옥인 셈이다.
부처님께서는 「지옥품」 뒷부분에서 이렇게 경고하셨다. “태우고 굽는 짓을 자주 하면서 / 중생을 태우고 굽고 한다면 / 굽고 태우는 지옥에 떨어져서 / 긴긴 세월 태워지고 구워지리라.” 이런 말씀을 들을 때면 그때만 약간 찜찜하다가 곧 잊어 버린다. 번번이 식탁에 오르는 고등어에 대해서 무감각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와 종이 다른 생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범위를 좀 좁혀서 인간 사회에서 찾아본다면, 가까운 데 지옥이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벌써 몇 년 되었는데, 바로 여기가 ‘헬조선’이라는 청년들의 아우성이다. 청년 작가 손아람이 쓴 글은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2년 전의 글이지만 그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지는 않았기 때문에, 읽어보니 아직도 유효하다. 그는 2016년을 새해로 맞이하기 전날 밤, 경향신문에 ‘나라에 바란다’는 뜻으로 ‘망국(望國)선언문’이라는 기고문을 올렸다. 글은 새해 인사로 시작한다. “어려운 한 해 보내셨습니다. 새해 인사 올립니다. 올해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잇는다.
“이곳을 지옥으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미래의 몫으로 더 나빠질 여지를 남겨두는 곳은 지옥이 아닙니다. … 잠시 청년들에게 물어주십시오. 줄줄이 늘어선 초록색 빈 병으로 어지럽혀진 대학가의 술집 취객에게, 외로움을 둘 공간조차 없이 비좁은 고시원의 세입자에게, 자정의 어둠을 몇 달째 지켜온 무표정한 아르바이트생에게, 이 나라에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 주십시오. 그는 서슴없이 멸망을 입에 담을 것입니다. … 청년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으며, 불공평한 생존보다는 파멸을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국호를 망각한 백성들처럼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릅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청년들을 향한 힐링 바람을 비판한다. 그들이 원하는 해결책은 그런 게 아니라고 한다. 그는 이렇게 글을 맺고 있다. “그러니 덧없는 치유의 주술을 그만 거두십시오. 지금 즉시 변화에 동참해 주십시오. 우리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아니라 사정이 나쁜 사람들입니다.”
앗 뜨거. 얼굴이 달아오른다. 지금까지 주위의 젊은이들에게 했던 멘토질이 떠올라 글을 읽는 내내 많이 찔렸다. 지금 이곳을 지옥이라 이름붙이는 이들에게, 문제해결은 못 해줘도 최소한 무례하지는 말았어야 하는 건데. 『장아함경』 「지옥품」을 보다가 헬조선이 생각나서 작가의 문장을 옮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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