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먼 나라 이야기, 북울단월의 생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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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7 년 11 월 [통권 제5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608회 / 댓글0건본문
부처님의 눈으로 우주를 통째로 보았을 때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네 대륙이 있다. 그중 우리가 사는 곳은 남쪽 염부제이고 북쪽에는 울단월, 혹은 구로주라고 알려진 대륙이 있다. 우리와 반대편에 위치한 그곳에 대해서는 『장아함경』 「세기경 북울단월품」에 자세히 나와 있다. ‘울단월’이 ‘가장 좋다’는 뜻인 만큼, 달달 볶이며 사는 이곳 남섬부주와는 아주 다른 세상이다. 번역본으로 열 쪽 가량 되는 분량을 대폭 줄여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환경
그곳에는 산이 많고 그 산기슭에는 누각과 연못들이 있다. 갖가지 꽃이 피고 나무가 울창하여 시원하다. 꽃과 열매가 풍성하고 새들이 서로 화답하며 지저귄다. 산 속에는 여러 갈래 물줄기가 흐르는데 수량이 풍부하고 물결이 잔잔하다. 물 위로 꽃잎이 떨어져 천천히 떠돌면서 떠내려간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에, 어디나 보배가 가득하다. 그 땅에는 구덩이나 도랑이 없으며 사나운 맹수나 해충도 없다. 백 가지 풀이 돋아나는데 바람이 스치면 풀에서 향내가 풍겨온다. 더러운 악취란 없다. 사람들이 대소변을 볼 때면 땅이 열렸다가 일을 보고 나면 땅이 저절로 닫힌다. 숲에는 몸을 굽히는 나무가 있다. 잎이 촘촘하여 비가 새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그 나무 밑에서 잠을 잔다.
사람들의 성격과 생김새
그곳 사람들은 생김새가 비슷비슷하여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염부제로 치면 대략 20세 가량의 잘 생긴 젊은이 모습을 하고 있다. 이가 희고 가지런하며 틈새가 없다. 감청색 머리카락에는 먼지와 때가 없다. 그곳 사람들은 무엇에 미련을 가지는 일도 없고 물건을 쌓아두는 일도 없다. 특별히 계를 받지 않아도 행동이 열 가지 선법에 자연히 맞아서, 생긴 대로 살다가 죽으면 좋은 곳에 태어난다.
먹고 노는 방식
그곳에는 자연생 벼가 자라나므로 농사지을 일이 없다. 쌀에는 겨가 없고 도리천 음식처럼 온갖 맛이 담겨 있다. 땅에는 저절로 생겨난 솥이 있다. 불꽃같은 광채를 지닌 마니구슬이 있어서 그 구슬을 솥 아래 두면 밥이 익는다. 광채가 사라지면 밥이 다 된 줄 안다. 따라서 밥 하느라 수고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는 각종 나무가 자라는데 나무에서 갖가지 생필품이 열린다. 옷 나무, 그릇 나무, 장신구 나무, 과일 나무, 악기 나무, 향 나무 등이 줄지어 있다.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껍질이 터지면서 필요한 물건들이 나온다. 물건이 필요하면 사람들은 나무 밑에 가서 선다. 나무가 몸을 굽혀 가지를 내려주면 향을 따서 몸에 바르고 옷을 따서 입고 장신구를 따서 단장하고 그릇을 따서 과일을 담고 악기를 따서 연주하면서 마음껏 논다. 하루, 이틀, 이레를 논 다음 정처 없이 떠난다. 강에 들어가 놀 때는 먼저 강기슭에 옷을 벗어두고 보배로 된 배를 타고 강 복판에 가서 물에 들어가 헤엄치며 논다. 물에서 나와서는 자기 옷을 찾지 않고 아무 옷이나 입는다. 네 옷, 내 옷 따로 없이 먼저 나온 사람이 먼저 입고 뒤에 나온 사람이 뒤에 입을 뿐이다.
성생활
음욕이 일어나면 마음에 드는 상대를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고 숲으로 들어간다. 눈이 맞은 상대가 숲으로 따라 들어간다.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부모뻘 되는 혈육이어서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될 사이라면 나무가 몸을 굽혀 가려주지 않는다. 그러면 흩어져 제 갈 길로 간다. 관계를 가져도 무방한 사이라면 나무가 몸을 굽혀 가려준다. 그러면 하루, 이틀, 혹은 이레까지 마음껏 즐기고 나서 흩어진다.
임신 출산 양육 장례
마음껏 즐기고 난 결과 임신을 하게 되면 이레나 여드레 만에 몸을 푼다. 낳은 것이 아들이건 딸이건 네 거리 교차로에 놓아두고 가버린다. 그러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손가락을 내어 빨게 하는데 달콤한 젖이 나와서 아이의 몸에 들어간다. 이레만 지나면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 그곳 사람들은 전생에 열 가지 선업을 쌓았기 때문에 긴 수명을 누린다. 1000살을 살다가 목숨을 마치는데, 죽었다고 우는 사람이 없다. 주검을 손질해서 네 거리에 놓고 가버리면 새가 와서 다른 곳으로 가져갈 뿐이다.
이렇게 소개해놓고 보니 북울단월에는 없는 게 많을 것 같다. 의식주가 자동 해결되면 내 것을 따로 챙길 필요가 없으므로 우선 소유욕이 없을 것이다. 물건에 대한 소유욕뿐만 아니다. 언제든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 즐길 수 있으니 사람에 대한 집착도 없을 것이다. 아이를 낳기가 수월하고 아이 키우는 일을 여자한테만 떠맡기지 않으니 산후우울증이 없을 것이다. 긴 육아 때문에 생기는 경력단절도 없을 것이다. 쉽게 태어난 아이들은, 염부제 사람 기준으로 보면, 낳아준 부모의 고마움도 모르는 ㅎㄹ자식이 될 테지만 애초에 효도를 바라는 부모가 없을 것이다. 결혼에 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는 것으로 보아 결혼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소유욕과 집착이 없으니 자연히 그럴 법하다. 또한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누가 그 구속을 일부러 선택하겠는가.
이밖에도 없는 게 많을 것이다.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면 성형외과가 필요 없을 것이다. 먹을 것과 놀 것이 널려 있으니 취업준비생도 없을 것이다. 직장에 노동을 바치고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삼시 세끼 먹고 치우기에 바쁜 하루가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푸어도 없고, 집 한 채 겨우 마련했으나 대출금 갚느라 허덕이는 하우스푸어도 없을 것이다. 죽으면 새가 시체를 처리해주니 상조회사도 필요 없을 것이다. 결론해서 말한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걱정이 없을 것이다.
북울단월은 지상 최고의 낙원이다. 부처님이 그런 데가 있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할 뿐이지, 매일같이 부대끼며 사는 남섬부주 중생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현재 지구상에 이런 곳은 없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비슷한 곳을 찾아본다면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나라들이 아닐까 한다. 예컨대 북유럽의 몇 나라는 미혼모에게 지급되는 양육수당으로 엄마까지 생계가 보장된다.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려진 아이를 먹여 기르는 울단월에 가깝다. 성생활이 자유롭기로는 아이슬란드가 가장 비슷하다. 그곳 남녀들은 첫 만남에서 일단 자보고 사귈지 말지를 결정한단다. 십년 전쯤인가, 결혼 전에 몇 명의 상대와 잤느냐는 설문조사에서 평균 33명으로 아이슬란드가 1위를 차지했다. 어찌 보면 상스럽고 어찌 보면 쿨한 이 나라 사람들은 최소한 ‘자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는 고뇌가 훨씬 적을 것이다.
경에서는 보시 등 공덕을 쌓아서 북울단월에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는 보시를 개인 차원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보시 공덕이 공적으로 발현된 형태가 복지다. 따라서 세금을 잘 냈다면, 또는 복지정책을 잘 써줄 사람에게 투표를 했다면, 벌써 보시를 실천한 셈이다. 그 땅에 태어났다는 자격만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면, 그것이 가져올 좋은 효과는 무엇일까. 우선 인생의 고비마다 떠안아야할 걱정이 덜할 것이다. 또한 죽어라 경쟁하지 않아도 먹고는 사니까 ‘내 팔 내가 흔들고 다니는’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보시는, 베푸는 사람 입장에서는 틀림없이 공덕이 되겠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부족한 복지를 개인의 선의로 메우려는 사회는 아직 북울단월에 가깝지 않다.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걱정이 없는 곳이 더 복된 땅이 아닐까, 『장아함경』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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