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처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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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8 년 7 월 [통권 제6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177회 / 댓글0건본문
아픈 데는 없으셨습니까.
골치 아픈 일은 없으셨습니까.
기거하는 데 불편은 없으셨습니까.
[少病 少惱 起居輕利不]
이 세 마디는 제자들이 부처님께 드리는 인사말이다. 제자들은 다른 데 흩어져 안거를 하다가 결제를 마치고 부처님을 뵈러 왔다. 먼 길을 걸어서 도착한 제자들은 부처님을 뵙자마자 위와 같이 안부를 물었다. 과연 부처님은 편안하셨을까. 아닐 것이다. ‘골치 아픈 일은 없었느냐’는 제자들의 말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부처님 처소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닷새에 한 번씩 비구들의 방을 돌며 별 일 없는지를 살피셨다. 제자들의 공부를 점검하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어디나 사고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라, 율장을 읽어보면 제자들이 부처님의 속을 썩여드린 사건들이 줄줄이 실려 있다. 일이 벌어질 때마다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만드셨다. 제자들은 그것을 지키느라 애쓰다가 실제상황에 맞지 않는 일이 생기면 달려가서 부처님께 알렸다. 그러면 다시 검토하여 부분적으로 고치거나 예외규정을 붙여주셨다. 이렇게 수정에 수정을 가해서 만든 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율장이다.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고치셨을까. 『오분률』에 나오는 사례를 들어보자.
다른 비구의 몸에 손대지 말라 - 폭력금지법
수행처에 방이 부족하여 들어갈 데가 없자 젊은 비구들 몇이서 직접 방을 지었다. 이들은 부잣집에 태어나 고생이라곤 해본 적 없이 출가한 사람들이었다. 나름대로 힘을 들여 자재를 져 나르고 뼈대를 세우고 흙을 발라 매질을 해서 마감해 놓으니 제법 근사한 방이 되었다. 일하기 싫어하는 상좌비구들이 그 방을 보고 탐이 나서, 상좌라는 점을 내세워 방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젊은 비구들이 거절하자 상좌들이 그들을 흠씬 두들겨 내쫓았다. 방을 빼앗긴 젊은 비구들은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그 옆에 다시 방을 만들어 기거했다. 그걸로 일단락이 된 듯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상좌들은 그들이 옆에 있는 것이 싫었다. 거슬려서 두고 볼 수가 없었으니, 이유는 이랬다. “저들은 부끄러운 줄도 알고 삼갈 줄도 안다. 가까이 있으면 우리 허물만 더 드러나게 생겼으니, 멀리 보내버리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대책회의를 하고 나서 그들의 방으로 쳐들어가 또 나가라고 하였다. 젊은 비구들은 두 번이나 부당한 일을 당하자 참을 수가 없어서 심하게 저항했다. 상좌들은 이번에도 폭력을 썼다. 얼마나 심하게 휘둘렀던지, 맞은 비구가 다 죽게 되자 이 일이 부처님께 알려졌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불러다 혼을 내고는 ‘비구는 다른 비구 몸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는 계율을 정해주셨다. 이 법이 정해지자 비구들은 서로 몸이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지냈다. 이걸로 일단락이 된 듯했으나 엉뚱한 데서 일이 터졌다.
하루는 많이 먹고 체한 비구가 있었는데, 숨이 넘어갈 지경이라 옆에 있던 비구한테 등을 좀 두드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비구는 ‘몸에 손대지 말라’는 규정을 들먹이며 그대로 두었다. 급체한 비구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원래 미운 털이 박힌 놈이라, 이때다 하고 보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부처님이 만든 법 때문에 사람이 죽게 되자 이 일을 알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비구는 다른 비구를 화가 나서 고의로 때리지 말라’고 고치고, ‘아픈 비구는 예외로 한다’는 조항을 추가하셨다.
상좌비구니는 제자에게 걸식을 강요하지 말라 - 앵벌이금지법
예쁜 비구니가 있었다. 걸식을 나가면 사람들이 넋을 놓고 쳐다볼 정도로 출중하게 생겼다. 그 마을에 장사꾼이 하나 살았는데 아내를 잃고 상심하다가 걸식을 나온 그 비구니를 보고 욕심이 일었다. 작업을 걸기로 작정하고 맛난 음식을 준비해서 매일같이 보시했다. 서로 친숙해지자 남자는 본심, 아니 흑심을 드러내며 이렇게 물었다. “내가 음식을 주는 뜻을 그대는 알고 있는지요?” “복을 짓기 위해서이겠지요.” “그것 때문이 아니요. 나는 아내를 잃었는데 당신을 보니 몹시 탐이 나오. 나를 따르지 않겠소?” 비구니는 안 될 말이라며 딱 잘라 거절했다.
애가 탄 남자는 자기 아내가 되면 맛난 음식은 물론, 화려한 옷과 비싼 보석들을 부족함 없이 주겠다며 거래를 시도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보다 못한 남자의 친구가 나서서 위협을 했다.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이제까지 음식은 왜 받아먹었냐. 기어코 싫다고 한다면 옷을 벗기고 발우를 빼앗겠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나서서 말렸다. “왕이 부처님을 믿고 존경하는데 이 일을 알게 되면 우리를 엄하게 다스릴 것이다. 비구니를 어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 비구니는 그 자리를 간신히 모면했으나 동네 여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어째서 비구니가 더러운 마음을 가진 남자에게서 음식을 받는가. 사문이 되어가지고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
이렇게 소문이 나자 부처님께서 대중을 불러놓고 그 비구니를 책망하신 뒤에 비구니들을 위한 계율을 정하셨다. ‘비구니는 음심을 가진 남자에게서 음식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비구니들은 상대에게서 수상한 낌새를 느끼면 감히 밥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비구니에게 음심을 갖지 않는 남자가 드물어서 비구니들이 밥을 굶게 생긴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비구 · 비구니들을 소집하여 그 조항을 수정했다. ‘비구니 자신이 음심을 가진 채 음심을 가진 남자에게 음식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렇게 일단락 된 듯했으나 또 다른 일이 생겼다.
어떤 비구니가 걸식을 나갔다가 밥을 주는 남자를 보고 음심을 일으켰다. 그 남자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았다. 밥을 받긴 받았으나 돌아오는 길이 영 편치 않았다. 계율을 어기는 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어서 그 밥을 다른 비구니에게 넘겼다. “이 맛있는 걸 어째서 먹지 않고 나를 주느냐?”고 물으니, “계율을 어길까봐 두려워서 그런다”고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밥을 받은 비구니는 “너에게 두려운 거라면 나에게도 두려운 일이지.” 하면서 그 문제를 부처님께 들고 갔다. 다시 소집회의가 열렸고, 결론이 났다. “자기 손으로 받지 않은 건 문제될 게 없다. 남이 먹는 건 허락한다.”
한편, 아까 그 예쁜 비구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못내 아쉬웠던 장사꾼은 ‘짧은 시간에 너무 서둘러서 일을 망쳤다’고 패인을 분석한 뒤에 ‘오랫동안 공을 들이면 뜻을 이룰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2차 작업에 들어갔다. 그 비구니를 찾아가서 지난 일을 사과하고 참회를 받아달라며 음식을 내민 것이다. 비구니는 “당신 때문에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 그 일로 계율까지 정해졌는데 어째서 또 다시 수모를 겪게 만드느냐”며 남자를 매몰차게 돌려보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비구니의 스승이 제자의 미모를 이용해서 맛난 음식을 얻어먹으려고 욕심을 냈기 때문이다. 제자를 불러 짐짓 이렇게 물었다. “전에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도 얻어오더니 지금은 어째서 그러지 않느냐?” “이러저러해서 그렇습니다.” “네 마음만 깨끗하다면 상관없지 않느냐. 내가 먹을 터이니 얻어 오너라.” 스승의 부당한 처사에 제자는 이렇게 항의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니가 남자와 가까이하는 것을 갖가지로 꾸짖으셨습니다. 어째서 저더러 더러운 마음을 가진 남자에게서 음식을 받아오라 하십니까.” 똑 부러지는 항의에 동료 비구니들이 가세하며 부처님께 이 일을 알렸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수정해 주셨다. “비구니 스승이 제자에게 ‘너만 더러운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되었지, 더러운 마음을 가진 남자의 음식을 받는 것이 무엇이 괴로우냐’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하나하나 주의 깊게 듣고, 법에 맞게 만들고, 상황에 맞게 고치셨다. 한두 번 고친 건 기본이고 여러 번 손질한 경우도 많다. 250조, 380조의 계율을 다 이렇게 만드셨으니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부처님께서는 이러다가 과로사하셨을 것 같다. 불멸후 백년 쯤 지나서 700아라한의 결집이 있었는데, 그때 율을 주관한 상좌비구 네 분의 평균수명이 대략 120세(136, 120, 111, 111)였다고 하니, 부처님이 과로사하셨다고 해도 무리한 추정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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