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큰스님의 저작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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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4 년 8 월 [통권 제1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563회 / 댓글0건본문
“보조 스님이 ‘선으로 교를 포섭하여 선풍을 진작하였다’고 하지만, 보조 스님은 선문을 교종으로 격하하여 진작시킨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왜냐하면 선문의 돈오 견성은 ‘십지(十地)도 견성이 아니다’는 종문철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조 스님은 십신초위(十信初位)를 돈오견성이라고 격하시켰으며, 화엄의 삼현십지(三賢十地)의 차제수습(次第修習)을 선문에 끌어들여 화엄의 점수설로 육조의 돈수(頓修)를 파괴하였으며, 선문의 금탑을 교가의 철탑으로 변조한 장본인이다. 때문에 순수한 선문에서 볼 때 이것은 금사(金沙)와 옥석(玉石)을 구분하지 못한 종문의 이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보조는 일생을 통해 해오(解悟)를 주장하다가 열반하기 직전의 저술인 『절요』에서 해오(解悟)는 지해(知解)임을 지적하긴 하였으나 전체적으로는 해오를 말하였고, 또 『간화결의론』의 끝부분에서조차 해오를 지지함으로써 자기가 지적한 지해의 큰 병을 뿌리 뽑지 못한 것이다. 그 여독은 지금까지 남아 있어 선문을 교란시키고 있으며, 선문의 표준으로 지목되는 『선문촬요』조차 해오사상(解悟思想)으로 가득 차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서 가운데서 해오사상이 배제되어야 하며, 강원의 교재도 시정해야만 선문의 올바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서』와 『절요』를 가르치지 말아야 하며, 『선문촬요』에서의 『간화결의론』 이외의 보조저술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성철 스님의 대표적인 저서인 <선문정로>와 이를 해설한 <선문정로 평석>
1967년 ‘백일법문’때도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를 비판하는 법문이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출간된 책이 없으니 학계에서는 그 내용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큰스님의 보조 점수사상 비판의 일부나마 위의 글이 실린 『한국불교의 법맥』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단초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1981년 1월에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시고 12월에 『선문정로』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출판은 조계종 선방에서 정진하는 대중들은 물론이고 선학계를 강타하는 쓰나미적 충격이 되었습니다. 보조사상을 지지하는 선학연구의 원로들과 교수님들의 격앙된 감정도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큰스님의 보조사상 비판에 대해서는 학술적 논쟁보다 “성철 스님이 어떻게 고려의 국사인 보조지눌 스님의 사상을 비판할 수 있느냐? 성철 스님은 간화선 근본주의자다. 중국의 선사만을 존경하고 자기 조상은 폄하한다.”는 등의 원색적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990년에 ‘보조사상연구원’이 설립되어 순천 송광사에서 ‘불교사상에서의 깨달음과 닦음’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선문정로』의 출간 후 10여년 만에 본격적인 학문적 검토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에 이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조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들이 한국 선학계를 석권하고 있으니 학문적 토론장에서는 큰스님의 ‘돈오돈수사상’이 늘 코너에 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사상을 연구하여 발표할 수 있는 박사가 없었던 현실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은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계시는 서명원 신부님이 2004년 프랑스 파리7대학 동양학과에서 ‘퇴옹성철 선사의 생애 및 전서’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한국 선학계에 ‘퇴옹성철 스님의 이해’에 대한 화두를 던지게 됩니다.
“성철 스님께서 조사스님들의 말씀을 책속에서 상당히 자유롭게 인용하시는데, 그런 식으로 역대 조사들의 글들을 인용하는 것이 모든 중국문화권 큰스님들의 전형적인 인용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성철 스님께서 학자가 아닌 독학한 선수행자이시자 선사이심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모든 선사들이 학계에서 보기는 주관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인용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에 대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왜 그들이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먼저 연구하고 이해하려 하는 자세가 학자들에게 있어 보다 더 건설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사에게 중요한 것은 어록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보다, 그 어록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인용방법을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선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역대 조사들의 인용방식을 간과해 버린다면, 불교계에서는 성철 스님 같은 수행자를 학계의 학자로 보려하거나, 학계에서는 학자적인 저술활동을 기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상당한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오류는 서양에서도 흔히 일어납니다.”
서명원 교수의 이러한 지적은 그 후 한국불교에서의 돈점논쟁에 분명한 기여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 9월 30일에 발행된 <동아시아불교문화> 제15집에는 부산의 동의대 한문학과 강경구 교수의 ‘『선문정로』 문장인용의 특징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선문정로』는 한국불교의 수행현장 및 학문토론의 장에서 지속적으로 화제를 이끌어 온 중요한 문헌이다. 그런데 『선문정로』의 문장인용에는 일반적인 직접인용 외에 문맥 및 의미의 조절, 생략, 추가, 수정, 문장의 재구성 등과 같은 주목할 만한 특징들이 발견된다. 그것은 학문적 논리의 정합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며, 자칫 그 안목에 대한 의혹으로 연결될 수 있는 특징들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에 근거하여 성철 스님의 수행론을 비판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선문정로』의 문장인용에 그러한 학문적 비엄밀성이 발견된다 해서 그것이 그 진리와 수행에 대한 안목의 부재를 증명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책의 문장인용의 특징을 밝히고 그 의미를 고찰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는다. 이를 통해 성철 스님이 종지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더욱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경구 교수님의 논문을 접하고 『선문정로』 연구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말 서명원 교수님이 『가야산 호랑이의 체취를 맡았다』는 책을 출판하면서 그 책속에 영어논문 한편이 실려 있었는데, 그 영어논문의 내용이 지상에 보도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저도 평소의 서명원 교수의 모습과는 달라서, 지난 날 둘이서 학술회의를 마치고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서 교수님! 성철 스님을 연구한 박사는 아직도 교수님뿐이고 보조사상 연구박사는 100여명에 가깝다 합니다. 큰스님의 돈오돈수사상이 어느 세월에 학계에 뿌리를 내리겠습니까?”
“원택 스님! 다리 뻗고 주무세요. 한국불교에서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론을 얘기하면,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론을 빼놓을 수 없게 되었어요. 한쪽에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 산맥이 지나면 맞은편에는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산맥이 지나게 되었습니다.” 하더니만 서명원 교수의 논문은 성철산맥을 더 튼튼히 하기는커녕 손수 나서서 허물어뜨림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불교평론> 여름호에 울산대 박태원 교수의 ‘돈점논쟁, 진리담론(法談)인가 권력담론인가-서명원의 성철 읽기에 대한 비판적 검토’ 논문이 실렸습니다.
“성철의 돈점론과 한국불교의 돈점논쟁은 아직 탐구와 이해의 초기단계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돈점논쟁은 권력담론이기는커녕 강력한 진리담론이라는 생각을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진리담론은 한국불교뿐만 아니라 불교 자체의 미래 전망에도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를 발굴하여 현실에 재귀시키는 것은 학인들의 몫으로 남는다.”
박태원 교수님은 자신의 논문에서 위와 같이 결론을 내리고 계십니다.
요즈음 ‘백일법문’ 25년 만인 1992년 4월에 출간된 책 『백일법문』의 증보판을 준비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1967년의 ‘백일법문’ 중에서 선종편만이라도 당시에 출판되었더라면 1981년 『선문정로』 출간이 한국 선학계에 그렇게 큰 충격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백일법문』이 그 당시 출간되고 이어서 『한국불교의 법맥』, 『선문정로』가 발간되었더라면 대중선방에서나 선학계의 학자들이 그렇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운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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