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겁외사에 출가송 비를 세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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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9 년 10 월 [통권 제78호] / / 작성일20-05-29 10:05 / 조회7,232회 / 댓글0건본문
원택 스님 | 발행인
오늘(9월1일) 이 자리에 서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소납이 처음 이 자리를 찾았을 때는 성철 큰스님 『포영집』을 발간하기 위하여 생가터를 찾아 나섰을 때인 1987년 가을 즈음이었습니다. 당시 대문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200여 평 마당에는 황소가 배를 땅에 대고 한가롭게 되새김하고 있었습니다. 몇 채의 민가와 논밭이 주변에 흩어져 있었고, 경호강변에는 모래밭이 길고 넓게 이어져 있던 모습으로 외딴 산간벽지였습니다.
1993년 11월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5년이 지나 이곳 경호강에 큰 교량이 놓이고 묵곡에서 진주로 넘어가는 지방도로가 뚫렸습니다. 당시 산청군수님의 권유로 불필 스님이 겁외사 창건을 시작해 2001년 3월말 5년 여에 걸친 불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 후 2015년 4월에 ‘성철스님기념관’이 준공되었습니다. 큰스님께서 남기신 출가송, 오도송, 열반송 가운데 출가송을 생가 마당에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성철스님기념관 불사를 회향하고 2-3년이 지날 때 즈음 강대철 작가님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어쩌다 겁외사를 지나다 들러보면 앞마당이나 법당 주변과 기념관 등에는 인적이 이어지는데 생가인 ‘율은고거’에는 인적이 드물어 마음에 늘 서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가상을 모시면 ‘율은고거’에도 인적이 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납이 늘 마음에 품어왔던 생가 마당에 출가송 비를 세우는 것과 출가상을 건립하면 좋지 않을까하는 강 화백님의 생각이 어우러져 오늘 이렇게 ‘출가송 비’와 ‘출가원력 일원상’을 모시게 되었으니, 감개무량한 그 마음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겁외사와 생가복원, 성철 스님 기념관 건립, 출가송 비 제막 등은 단순히 성철 스님 추모에 그치는 기념만은 아닙니다. 이곳을 참배하는 모든 분들이 ‘자기를 바로 봅시다’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담고 부처님 깨달음의 세계에 함께 동참하는 원력을 세우는 성소가 되었으면 하는 문도들의 염원이 그 불사에 담겨 있습니다.
일원상 앞의 동판이 놓인 두루마기, 책 보따리, 신발 등은 지금까지의 생각과 삶으로는 영원한 진리를 찾을 수 없으니 망국의 한을 품고 시대의 험난한 칼바람을 맞으며 만고의 진리를 찾아 결연히 출세간으로 향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일원상은 부처님이 깨친 진리를 상징하며, 진리를 찾아 떠나는 출발과 영원한 진리를 체득하고 돌아오는 기쁨을 함께 표현한 것입니다. 진리를 찾아 떠나는 출발의 당당함은 오석으로 만든 출가송 비에서, 깨침을 성취한 기쁨의 귀환은 일원상에서 각각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웅장하지 않으나 가슴에 와 닿는 간결하고 담백한 좋은 작품을 완성해 준 강대철 작가님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아시다시피 청년 이영주는 20세가 지난 후 비로소 불교에 관심을 가졌고, 24세 후반 지리산 대원사 탑전에서 스스로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 해 40여일 만에 동정일여의 경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로 인해 참선 수행에 크게 환희심을 일으켜 25세인 1936년 출가의 길을 떠나 해인사로 향합니다. 해인사 백련암에 주석하던 조실 동산혜일 대종사의 상좌가 되어 성철性徹이라는 법명을 받고 출가시를 지으며 마침내 수행의 한 길로 매진하게 됩니다. 다음은 성철 큰스님의 출가송입니다.
성철 대종사 출가송
미천대업홍로설彌天大業紅爐雪
과해웅기혁일로跨海雄基赫日露
수인감사편시몽誰人甘死片時夢
초연독보만고진超然獨步萬古眞
하늘에 넘치는 큰 일 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구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70세인 1981년에 제6대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종정에 추대되셨고, 그 후 법정 스님과의 대담에서 “영원한 진리라고 하면 불교가 가장 수승한 것 같다. 나는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한 것은 아니다. 만약에 앞으로라도 불교 이상의 진리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면 또 다시 찾아 나서겠다.”며 본인의 진리관을 밝히셨습니다. 이처럼 큰스님은 영원한 진리를 위해 초연히 고독한 발걸음을 평생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시대를 맞아 바로 이 자리에서, 영원한 진리를 찾아가는 청년 이영주의 그 열정을, 오늘의 젊은이들도 가슴 깊이 새겨 새 인생을 개척해 가기를 바랍니다. 이 인연으로 성철 스님을 추모하고 존경하는 전국 모든 분들의 가정에 만복이 깃들고 깨달음의 저 언덕에 함께 이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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