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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별어]
죄를 덜기 위해 온천수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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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6 년 9 월 [통권 제4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41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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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물에 옥수수를 삶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온천나들이는 백두산이었다. 장백(長白) 폭포 가는 길에 계곡의 수증기 속에서 한 사람이 작업복 차림으로 <서유기>의 저팔계가 사용했음직한 쇠스랑을 손에 쥐고서 뭔가 열심히 바닥을 고르고 있다. 잊을만하면 백두산 용암분출설이 언론을 주기적으로 장식하는지라 “마그마 연구 자료를 채집하고 있나보다.”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지나쳤다. 폭포관광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그 앞을 또 지나간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올 때 보았네!”라는 시처럼 내려가는 길은 아무래도 마음에 여유가 있기 마련이다.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수증기 아래를 자세히 살펴도 마그마의 붉은 빛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뜨거운 물뿐이었다. 알고 보니 인부들은 노천으로 흐르는 온천물을 관리하고 있었다. 관광단지 가까운 지점에 온천물에 계란과 옥수수 삶는 것을 쇼윈도처럼 보여주며 손님을 부른다.

 


덕산 온천 지구유 비 

 

계란 삶는 것은 다른 온천에서도 더러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었지만 옥수수를 삶는 것은 처음 보았다. 옥수수가 많이 나는 만주지방에 살고 있는 주민다운 발상이다. 고온을 자랑하는 노천 열탕 속에서 노란 옥수수 빛깔이 먹음직스러워 몇 개 샀다. 한 개 먹기를 마칠 즈음 온천장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시골 동네 목욕탕이다. “시설은 별로지만 온도와 수질만큼은 정말 좋다.”는 여행가이드의 입에 발린 찬사 뒤에는 ‘한 시간 후에 시간 맞춰 꼭 나오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온천탕에서 백두산 정기를 온몸으로 흡입했다.

 

그 곳에 가면 지구유(地球乳)가 있다

 

마그마 비슷한 것은 일본 큐슈 벳뿌(別府) 온천에서 만났다. 진흙이 발밑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짙은 수증기와 함께 유황냄새가 진동했다. ‘00지옥’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현장감을 더해준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지옥천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한갓 관광 상품일 뿐이다. ‘유노하나(湯の花)’ 제조비법은 ‘중요무형민속문화재’임을 알리는 팻말이 입구에 떡하니 서있다. 온천가스를 짚으로 만든 삼각형의 공간 속에 가둔 후 식히면서 짚에 서려있는 결정체를 모으는 유황채취 기술이었다. 3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것을 상품화한 입욕제를 사용한다면 어느 장소이건 어떤 물이건 유황온천이 된다는 논리였다. 

 

한반도는 지진과 화산이 드문 탓에 온천이 귀하다. 온천이란 명칭은 전국에서 볼 수 있지만 모두가 별다른 개성 없이 고만고만하다. 예산 수덕사 가는 길에 들렀던 덕산 온천에서 1947년에 만들었다는 ‘지구유(地球乳)’ 비석을 만났다. 오래된 ‘산불조심’ 글씨체였다. 지구체내에서 자연 용출되는 온천수는 약수가 되기에 이를 ‘지구유’라 부른다는 설명은 ‘유(乳)’에 대한 해설치고는 별로 성의가 없다. 주석삼아 달아놓은 새 안내판은 ‘지구체내에서 자연적으로 분출되는 온천수는 어머니의 젖과 같은 효과를 지녔다고 해서 지구유라고 부른다’는 설명도 옹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온천광고야 본래 과장법이 심하긴 하지만 지역온천을 지구의 대표온천이라고 이름 붙였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500여 년전 학이 아픈 몸을 치료했다는 그 시절에는 분출되던 온천물이 우유빛이었나 보다.

 

온천수는 참회의 대가였다

 

만약 뜨거운 사막 한복판에서 끓는 물이 분출된다면 제대로 된 오아시스 대접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야자나무도 지면온도가 맞지 않아 시원한 그늘을 만들만큼 무성하게 자라지 못할 것 같다. 이재(理財)에 밝은 아라비아 상인도 생수로 팔려면 효과적으로 식힐 수 있는 추가공정까지 고민할 터이다. 어쨌거나 자연수가 뜨겁게 용출된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다. 

 

<보림전> 권6에는 서진(西晉) 11대왕 무제(武帝)가 궁궐 안 샘에서 뜨거운 물이 흐르는 것을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무렵 바사사다(波舍斯多) 존자가 왕을 만났다. 대화의 내용은 바로 뜨거운 물에 관한 것이다. 궐내 식구들이 목욕하고 씻을 만큼 충분한 양이였다. 그 연유를 물으니 존자는 ‘채탕(債湯)’이라고 답했다. 귀업(鬼業)을 속죄하기 위해 용출된 온천이라는 것이다. 귀업(鬼業)이란 인간이 지을 수 있는 모든 죄를 한꺼번에 지은 최고악업(惡業)을 말한다. 진단 후에는 반드시 처방이 있어야 한다. 존자는 향을 피우고 지극정성으로 ‘죄업소멸’을 기도했다. 얼마 후 샘 주변에서 길이가 1장(丈)인 뱀이 나타나더니 감사의 인사를 올린 후 사라졌다. 자기가 지은 빚을 갚기 위한 방편으로 약탕을 만든 것이다.

“7일 후에 이 탕은 저절로 식을 것입니다(此湯却後七日 常自不熱).”

하지만 오뉴월 곁불도 쬐다가 없어지면 섭섭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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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원철 스님은 해인사, 은해사, 실상사, 법주사, 동국대 등에서 경전과 선어록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그리고 일간지와 교계지 등 여러 매체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춘 글로써 주변과 소통해왔다.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있네』등 몇 권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번역서에는『선림승보전』상·하가 있으며, 초역을 마친『보림전』의 교열 및 윤문작업 중이다. 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해인사승가대학 학장(강주) 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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