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흙이 변하여 황금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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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6 년 4 월 [통권 제3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181회 / 댓글0건본문
금사(金沙)를 만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운남성 여강(麗江,리짱)이다. 시방세계를 마실 다니듯 돌아다닌 진짜 운수납자 스님이 추천한 곳이니 어련하겠는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몇 년 사이에 입소문과 방송을 타면서 널리 알려진 세계적 관광지가 되었다. 지금은 인파에 시달리면서 떠밀려 다니지만 오래 전에 우리가 찾았을 무렵에는 비교적 한가한 고성(故城, 전통마을)이었다. 게다가 비수기에 갔는지라 팔자걸음으로 기와의 처마와 처마가 서로 이어진 골목골목을 느긋하게 어슬렁거릴 수 있었다.
그날 밤, 신시가지의 전통민속 공연장인 ‘금사(金沙)극장’을 찾았다. 이 지역에는 ‘금사’라는 고유명사가 흔하다. 오는 길에 잠깐 트래킹했던 호도협(虎跳峽, 호랑이가 건너 뛸 수 있는 좁은 협곡)은 금사벽류(金沙劈流, 깎아지른 절벽의 급류)로 불렸다. ‘금사’라는 별명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일 것이다. 굳이 금모래를 우리식 표현으로 바꾼다면 사금(沙金)이 된다. 물론 생산지는 강물 혹은 냇물이다. 황금의 나라로 불렸던 신라는 경주 인근에 금광이 없다. “형산강 주변에서 사금을 채취하여 왕관과 팔찌・허리띠 등을 만들었을 것”(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이라고 추정한다. 알고 보면 양과 질에서 가성비가 훨씬 높은 채굴방식이기도 하다.
고대의 황금은 주로 사금이었다
선종 제17조 승가난제는 서천(西天, 인도) 실라벌성 금수(金水)라는 강변 출신이다. 『보림전』 권4에 「판금하품(辨金河品)」’이 나온다. 금하(金河)는 금을 생산할 수 있는 하천일 것이다. 금수(金水)와 같은 지명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제련기술이 별로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광산에서 나오는 금은 거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연이 제련한 금은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면서도 그 품질은 훨씬 높았다. 금광에서 나오는 금덩어리보다도 물에서 건져낸 사금의 품질이 훨씬 뛰어난 이유이다. 자금색(紫金色)으로 불리는 가장 뛰어난 금인 염부단금(閻浮檀金)도 알고 보면 사금이다. 울창한 염부나무 숲속을 흐르는 강물에서 산출되기 때문이다.
인도 기원정사 터 모습
진짜 금은 법보와 승보를 말한다
토지의 공시지가가 비싼 지역을 금싸라기 땅이라고 부른다. 정말 그 땅값만큼 금을 사서 그 위를 덮는 것이 가능할 정도이니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최초의 사찰 기원정사를 건립할 때도 그 토지의 소유주가 동산의 면적만큼 금을 깔아달라는 요구로부터 창건설화는 시작된다. 그래서 사찰을 금지(金地)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그 금은 외형적인 물리적 금의 의미를 뛰어 넘는다. 금값보다 더 비싼 가르침(法寶)과 금보다도 더 빛나는 인재(僧寶)들이 모이는 공간인 까닭이다.
제10조 협(協) 존자의 예언은 이런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이 땅이 변해서 금색이 된다면 성인께서 이 자리에 나타날 것이다”(『보림전』 권3)라는 수기를 내렸다. 얼마 후 땅은 금색으로 바뀌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던 것처럼 제11조 부나야사 존자가 그 자리로 찾아온다.
금바루를 들고서 천상세계로 탁발을 떠나다
탁발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승단은 한 끼 한 끼 해결하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구성원의 숫자는 점점 늘어갔다. 한 공간에서 수백수천 명의 대중이 모여 산다는 것은 무소유를 표방하는 승가로서는 엄청난 물질적소비가 함께 했다. 지역승단의 지도자들은 법력도 법력이지만 ‘복력’이 함께 따라주어야만 했다.
제18조 라후라다의 일화에서 그런 일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존자는 왼손에 빈 금바루를 쥐고서 나타났다. 그날따라 대중들의 탁발성과가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굶길 수는 없는 일이다. 하늘을 향해 뻗은 손이 계속 올라가더니 범천(梵天)까지 이르렀다. 그곳은 언제나 모든 것이 풍족했다. 하늘세계의 먹거리를 금바루에 가득 담아와 땅 위에 있던 모든 대중들에게 나누어 먹일 수 있었다. 혹여 법력이 부족하여 천상세계를 마음대로 오갈 수 없다면 사금이 많이 나는 물가에 수행도량을 짓는 것도 임시방편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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