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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월 거사의 백련암 소식]
‘진리의 등’을 밝히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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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퇴월  /  2018 년 10 월 [통권 제6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79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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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2일 오전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 10시30분 사시예불을 마친 직후 각 당우에서 일제히 들려오는 소리. 낯선 사람으로선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진언이 하늘의 기세와 겨루듯 큰소리로 합송合誦되고 있었다. 백련암 당우는 고심원을 중앙으로 왼쪽의 대적광전, 관음전, 고심원 아래 장경각과 오른쪽으로 원통전, 정념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당우 법당 안을 꽉 채운 신도들. 어림잡아 3백 명이 훨씬 넘어 보인다. 이들은 백팔대참회문을 합송하며 백팔배를 마친 후 장궤합장(주1)으로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자료를 훑어 진언의 정체를 알아내지만 왠지 낯설다. ‘법신진언法身眞言’으로 일컬어지는 이 합송은 30분간 계속된다. 이어 또 다시 알 수 없는 염송念誦이 한참 합송되는 데 절집 이력이 꽤 된다는 필자로서도 생경한 처음 듣는 진언이다. 이 역시 자료를 통해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이하 능엄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기한 것은 『신묘장구대다라니경』보다 긴 이 ‘능엄주’를 합송하는 신도들의 호흡이다. 악보 없는 음악을 연주하듯 ‘능엄주’의 합송은 잔잔한 파도를 몰고 오는 물결처럼 음률의 조화를 이룬다. 또한 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 탓에 신도들이 입은 법복 등줄기에 땀자국이 크게 번지는데도 자리를 이탈하거나 쉬어가는 모습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회향게回向偈를 마치니 약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곤 잠시의 휴식이 주어진다.

 

조화로운 능엄주 합송

 

이것이 아비라 기도다. 아비라 기도는 백련암의 대표적인 기도법으로 알려져 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스님이 한국전쟁 당시 고성 옥천사에 머물고 계실 때 참전한 아들이 실종돼 찾아 온 신도에게 스님은 3천배를 시키셨다고 한다. 성철 스님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낙담과 절망을 호소하는 신도들에게 “우리가 받은 모든 고통과 악업은 과거생으로부터 우리 스스로 지어 온 업장業障의 과보”라면서 “아비라 기도는 업장을 풀고, 화두 참선하는 몸을 만들어 준다”고 강조했다. 이후에도 안정사 천제굴과 파계사 성전암에서도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삼천배와 능엄주 독송, 아비라 기도를 가르치셨다. 스님은 또 몇 차례 산문을 열어 대중들에게 아비라 기도를 가르치며 기복적祈福的 요소가 많았던 한국불교의 기도법을 실천과 수행기도법으로 이끄셨다. 훗날 백련암에 주석하시면서 본격적으로 아비라 기도를 연례적으로 정기화한 것은 1967년이다.그러므로 올해가 51주년이 되는 셈이다. 

 

아비라 기도는 108배 예불대참회⇒법신진언 합송(장궤합장 자세)⇒대불정능엄신주 독송⇒회향게 순서로 이루어졌다. 이는 『선문일송禪門日誦』(주2)에 모두 들어 있는 내용으로 성철 스님이 재가신자들의 기도를 돕기 위해 만든 것이다.

 

먼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의 법신진언에 대해 알아본다. 진언의 첫 글자인 ‘옴’은 모든 범음梵音의 으뜸으로 모든 공덕의 최고를 상징한다. ‘아’, ‘비’, ‘라’, ‘훔’, ‘캄’ 다섯 글자는 법신을 의미하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몸이다. 차례대로 ‘아’자는 대원경지大圓鏡智, ‘비’자는 묘관찰지妙觀察智, ‘라’자는 평등성지平等性智, ‘훔’자는 성조작지成所作智, ‘캄’자는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를 나타낸다. 광명의 상징인 비로자나 법신을 뜻 번역으로는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도 부른다. 비로자나 법신진언을 우주 본체에 대비하면 다음과 같다.(주3)
 

 

5

방향

5

西


 

대원경지는 제8식으로 진리적 지혜를, 평등성지는 제7식으로 대아적 지혜에 해당하며 묘관찰지는 제6식으로 바른판단 지혜를, 성소작지는 제5식으로 이성적 지혜를 뜻한다.(주4)  

 

‘스바하’는 한자로 음역音譯하면 ‘사바하’로 읽는데, 성철 스님이 만국표기 음표에 따라 직접 음역한 것이다.

 

‘능엄주’는 『능엄경』의 정수가 담겨 있는 진언으로 부처님의 상수제자 아난존자가 주술사呪術士인 마둥가의 주술에 빠져 파계 위기에 처했을 때 ‘능엄주’의 위력으로 구제됐다고 전해진다. 이때 부처님께서 정수리에 광명을 발하시어 모든 부처님이 ‘능엄주’를 암송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모든 부처님이 독송한다는 이 ‘능엄주’는 그래서일까? 그 뜻을 모르고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덕을 쌓고 신비한 기운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능엄주’ 독송이 끝나면 모두 일어서서 회향게를 합송한다. 회향게는 우주만물이 모두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해서 아비라 기도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3박4일 기도기간 중 입재일 5회, 이틀과 사흘째 각 8회, 회향일 3회로 총 24회를 하게 된다. 이를 통해 3천배도 자연스럽게 달성한다. 총24회 기도를 통해 108배를 하면 2,592배다. 여기에 매일 사시예불 100배씩 400백배에 예불 봉행시 하는 절까지 더하면 3천배를 훌쩍 넘긴다.

 

아비라 기도는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는 대중 기도다. 개인적으로 하는 기도라기 보다 대중이 모여 함께 호흡하며 기도할 때 그 효과가 크다. 장궤합장으로 법신진언을 합송하다 보면 몸의 고통이 점차 커지지만 서로 의지를 북돋아 주게 된다. 자연스레 대중 공동체의 규율을 엄수하게 되고 일원으로서의 존재감에 자부심을 느낀다.

 

둘째는 경험이 많은 리더 그룹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비라 기도의 특수 요인인 절하기와 ‘능엄주’ 독송은 무엇보다 경험자의 리더가 필요하다. 그래야 호흡이 맞고 일사불란하게 대중기도가 진행된다. 아비라 기도 회장 조여일(법명 宗學, 53세, 대구)씨는 올해로 11년째 된 베테랑이다. 2년간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남자신도들이 자리하고 있는 장경각에서 부드럽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지침이 되고 명령이 된다. 20~30년이 넘은 참가자도 적지 않다. 올해 세수 80세의 도봉거사는 젊은 신도들보다 더 정정하고 쩌렁쩌렁하게 절하고 경을 외운다. “회장의 역할은 입승入繩(주5)의 임무다”는 조여일 회장은 “총무와 불무佛務, 운영위원 6인 등 총 9인이 기도 지원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한다.

 

셋째는 기도 기간이 3박4일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이 가정과 직장을 비우고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오로지 신심과 열정, 그리고 수행하고자 하는 열망이 뒷받침되어야 경험할 수 있는 기도다. 극심한 인내를 필요로 하는 기도인데도 불구하고 부부동반으로도 참석한다.

 

3박 4일간의 기도로 몸 · 마음 완전 정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첫째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3천배에 달하는 기도와 장궤합장 등의 진언합송은 운동으로 다져진 건장한 청년들도 견디기 힘들어 한다는데 신심으로 무장된 아비라 기도 참가 신도들은 거뜬하게 3박4일을 견뎌낸다. 둘째는 신심의 정화淨化다. 마음을 평안하게 갖고 번뇌로부터 자신의 본래 마음을 지킨다. 사회적 물질적 욕망을 제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게 참가자들의 전언이다. 셋째는 삶의 활력소를 키우는 기력충전이다. 아비라 기도는 사회 생활에 활력이 되고 자양분을 대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백련암에 다니며 성철 스님을 친견한 장성욱 교수(동의대 불문학과)는 그의 저서 『성철 스님과 아비라 기도』 표지 첫장에 아비라 기도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단지 3박 4일!
이 짧은 기간 동안의 기도로/ 몸과 마음이 그토록 청정해지고/
깨끗해질 수 있을까?
고통과 지옥!/ 인내와 끈기!
뼈저린 고통 속에서도 법신진언에 몰두할 수 있다면!
죽음 같은 고통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속에서 피는 깨달음과 환희심!
우울증을 앓는 사람/ 정신병을 앓는 사람/
인간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 실연당한 사람/
삶 의욕을 잃은 사람/ 등등 모든 문제 있는 사람과
참선 정진하려는 사람들에게/ 아비라 기도는 특효약이다.
이 기도를 만드신 성철 스님!”

 

아비라 기도를 경험한 신도들은 이 글에 전폭 공감한다. 성철 스님이 만드신 아비라 기도법이 최고라며 누구나 참여하길 권유한다. 그런데 아비라 기도 기간 중 참선에만 몰두하는 신도팀이 있어 눈길을 끈다. 정념당에 자리한 31명의 신도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아비라 일정과 달리 50분 참선, 10분 포행을 한다. 일정도 하루가 더 많은 4박 5일이다. 참선단에 합류하려면 아비라 기도 10년 이상 되어야 한다. 정념당 입승을 보고 있는 노영희(泉雲海, 72세, 부산) 보살은 “원래 아비라 기도가 화두 참선을 바르게 하는 것을 돕는 기도다”면서 “모두가 저마다의 화두를 들고 성철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나를 바로 보기 위해’ 참선 정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선(太玄船, 72세, 경산) 보살은 “나는 지금도 성철 스님이 내려주신 ‘마삼근麻三斤’ 화두를 들고 참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참선에 참여한 사람 중에 가장 막내는 65세다. 따라서 이들은 아비라 기도의 원로에 해당한다.

 

아비라 기도는 일 년에 네 차례 시행되고 있다 선원 안거의 결제와 해제일에 맞춰 결정된 일정은 해마다 음력으로 정월 4~7일, 4월 12~15일, 7월 12~15일, 10월 12~15일이다. 참가비는 15만원. 철저히 신도들 자체 운영으로 일부 봉사자들과 함께 공양과 숙박이 이루어진다. 아비라 기도회는 그래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 비유된다. 엄숙한 질서와 숙련된 수행이력으로 한국불교에 법등法燈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주)

(주1) 두 손을 합장하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허리를 곧추 세워 기도하는 자세. 불문에 귀의한 출가자들이 처음 계를 받을 때 이런 자세를 취한다. 

(주2) 정확한 간행년도와 간행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매일의 독송경전과 그 절차를 기록한 것으로 명나라 지욱선사(智旭禪師. 1599~1655)의 『제경일송諸經日誦』을 정리 증보한 것이다.
(주3) 천제 스님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부처님을 찾아가는 길』, 해인사 백련암 편, p.149.
(주4) 장성욱 저, 『성철 스님과 아비라 기도』, 장경각, 2013년, p.115.
(주5) 불가의 기강紀綱을 맡은 직임. 또는 그 직임에 있는 사람. 주로 안거 기간 중 대중선방의 기강을 맡은 책임자를 입승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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