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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거사선]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밝힌 화엄의 대가 이통현 장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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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  2013 년 11 월 [통권 제7호]  /     /  작성일20-08-12 14:23  /   조회9,10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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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선(禪)의 황금시대’를 구가한 중국의 당송시대에는 방온, 왕유, 이통현, 소동파 등 기라성 같은 거사들이 세간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생활불교의 모범을 보였다. 중생이 살고 있는 현실을 떠난 불교는 자칫 생명력이 없는 좌선 위주의 선정주의(禪定主義)에 빠져 고목사선(枯木邪禪)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마조 스님 이후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표방한 생활선이 확립된 데에는 걸출한 거사들의 역할이 적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재가의 선지식들은 대부분 선(禪)을 바탕으로 참선을 하거나 선문답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분들인데, 이 가운데 특이하게도 교(敎)를 위주로 참구하여 선(禪)의 도리를 체득한 거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통현(李通玄, 635~730) 장자이다.

 

‘화엄선’의 장본인, 이통현

 

통현 장자는 부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설명한, 그래서 ‘경전의 왕’이라 칭하는『화엄경』에 달통하여 소위 ‘화엄선(華嚴禪)’이라는 명칭이 회자되게 한 장본인 중의 한 분이다. 80권본『화엄경』에 대한 그의 주석서인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은 불교계에서 어떤 전통적인 계통은 없지만 화엄의 진리를 누구보다도 가장 특수하게 잘 밝힌 저서로 인정되어 그가 입적한 후 광초, 도광, 혜연, 지녕, 영안, 계환 스님 등에 의해 세상에 널리 유포되었다. 송나라 때의 선승인 계환(戒環) 스님은『능엄경』,『법화경』을 주석한 분으로『화엄경요해』를 저술했는데, 장자의『신화엄경론』에 입각해서 그 내용을 매우 간단하게 잘 정리해 오늘날도 널리 읽히고 있다. 예로부터 선승들이『화엄경』주석에 대해서는『신화엄경론』이 가장 잘 되었다고 찬탄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조백대사 이통현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큰스님들이 통현 장자의『신화엄경론』을 매우 중시해 자주 인용해 왔으며, 현대의 대강백 탄허 스님은 징관 스님의『화엄소』보다는『신화엄경론』이 월등히 뛰어난 저술이라고 강조하고 직접 완역하기도 했다. 특히, 고려 때 보조지눌 국사는 구도과정에서 혜능 선사, 이통현 장자, 대혜 선사의 어록을 통해 세 번의 깨침을 얻었다고 한다. 보조 국사는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라는 통현 장자의 글을 통해 선종과 교종의 이치가 근원적으로 같음을 확신하였다. 보조 국사는『신화엄경론』에 입각해서『화엄론절요』를 썼는데, 통현 장자의『화엄회석(華嚴會釋)』부분을 줄여서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은 그야말로 『신화엄경론』에 입각해서 그 종지와 핵심을 매우 간결하게 잘 밝힌 저서이다. ‘원돈성불론’이란 바로 일승원교(一乘圓敎), 일승돈교(一乘頓敎)의 차원에서 원만하고도 단박에 빨리 성불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그 법을『신화엄경론』에서 밝힌 것을 보조 국사께서 ‘원돈성불론’으로 명명한 것이다.

 

생몰연대와 태어난 곳이 불명확한 통현 장자는 혹은 당나라 종실(宗室)이라고도 하고, 사람들이 물으면 창주 사람이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키가 7척 2촌, 모습이 특이했으며, 고금의 학문을 두루 연구해서 유교와 불교의 경전에 정통했다. 719년(개원 7)『신화엄경』을 가지고, 태원(太原) 우현(盂縣: 현재 山西省에 속함)의 고산노(高山奴) 댁의 옆방에 있으면서 논(論)을 지어 경을 해석했다. 이렇게 3년 동안 마당에 나오지 않고, 매일 대추 10개와 숟가락만한 잣나무잎 떡 하나를 먹었으므로 사람들이 조백(棗栢) 대사라 불렀다. 후에 남곡(南谷) 마(馬)씨의 고불당(古佛堂) 곁에 작은 토막을 짓고, 단정히 앉아 10년 동안 연묵(宴默)했는데, 이것은 깨닫고 난 뒤의 보림공부의 과정으로 추정된다.

 

진여문·생멸문이 모두 중생의 마음에서 벌어졌다

 

그 뒤 경론을 가지고 관개촌 한씨(韓氏)의 집에 이르는 도중에 경론을 호랑이의 등에 싣고, 호랑이의 뒤를 따라 흙벽 돌집 같은 토감(土龕)에 들어가, 두 여인에게서 지묵(紙墨) 등 도구와 매일 먹을 것을 받으면서 논(論)을 지었다는 신비로운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때 지은 논서가 바로『신화엄경론』40권이다. 730년(개원 18년 3월) 토감에서 96세로 입적할 때까지 장자는『결의론(決疑論)』4권과『十明論』1권,『화엄회석(華嚴會釋)』,『십문현의배과석략(十門玄義排科釋略)』등의 저서를 남겼다. 훗날『신화엄경론』은 지녕 스님에 의해서 『신화엄경합론』120권으로 회편되었다.

통현 장자의 깨달음이 문자반야로 녹아 있는『신화엄경론』에서 가장 중요한 게송인 4구게를 통해 그가 주창한 깨달음의 요체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佛是衆生心裡佛(불시중생심리불)

부처는 이 중생의 마음속의 부처이니

隨自根堪無二物(수자근심무이물)

자신의 근기에 감당함을 따라 두 물건이 없다.

欲知一切諸佛源(욕지일체제불원)

일체 모든 부처님의 근원을 알고자 하면

了玆無明便是佛(요자무명변시불)

이 무명이 문득 이 부처임을 알아야 하리.

 

부처가 중생을 떠나서 중생 외에 위대한 어떤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중생 마음 속의 부처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이런 법문은 선종의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도리와 같은 것이다. 염불종인 정토종에서 말하는 ‘이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시심시불(是心是佛) 역시 같은 도리를 말하고 있다.

 

 


 

당나라 초기 건립된 화엄종의 조정. 산서성 오근산 화엄사. 이 지역에서 이통현 장자가 화엄경을 해석했다.

 

통현 장자의 위 4구게는 탐·진·치 삼독번뇌나 온갖 무명이 곧 부처라는 것이니, 파도가 바로 물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탐·진·치를 내놓고 따로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명번뇌 그대로가 부처라는 것이다. 마조 스님이 “탐·진·치가 바로 불성(佛性)이라”고 한 법문과 똑같은 말이다.

『기신론』에서는 이를 일심(一心) 또는 중생심(衆生心)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중생의 마음이 바로 진여이고 불성이고 법계라는 것이다. 『기신론』은 모든 법이 중생심에서 나왔다고 한다. 진여문, 생멸문이 모두 중생심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여래장이니 불성이니 하는 말과 달리, 중생심이란 명사는 중생에게 가장 친근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화엄경』은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등각(等覺), 묘각(妙覺) 등 범부가 보살이 되고 부처가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단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명이 본래 있는 게 아니라 그것 자체가 부처임을 깨닫는 것이다. 바다 위의 파도와 거품은 생겼다 사라진다. 바다는 곧 마음이고, 거품은 번뇌망상이다. 거품과 파도가 아닌 바다를 요달하는 게 깨달음이다. 그래서 영가현각 대사는 이 도리를 깨닫고 “무명의 참 성품이 바로 불성이요〔無明實性卽佛性〕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이로다〔幻化空身卽法身〕”하는『증도가』를 노래하기도 했다.

 

앎과 실천이 상응해야 조사라 한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들은 이 법문을 믿기도 힘들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사스님들과 통현 장자의 법문을 절대적으로 믿고〔信〕들어간다면 수행의 반은 성취한 것이나 다름없다. 절대적인 확신의 기반 위에 불법을 깊이 이해〔解〕하고, 삶 속에서 실천수행〔行〕한다면 성불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는 것이 고인들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불교는 신·해·행·증을 말하는데, 처음에 믿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앎과 실천을 통해 마침내 체득〔證〕하여 성불하는 것이다. 처음 믿음을 일으키는 단계는 범부이지만, 앎과 실천이 상응하는 단계에 이르면 선지식이라 할 수 있다. 달마 대사는 “부처의 마음종지를 밝혀서 ‘행’과 ‘해’가 서로 상응함을 조사라〔明佛心宗行解相應名之曰祖〕”고 하였다. 즉,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이 완벽히 합치되는 분을 조사(祖師)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다시 그 다음 ‘증’의 과정에 도달하면 비로소 성불하여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통현 장자도『신화엄경론』에서 신·해·행·증을 통해 도(道)에 들어가는 법을 자세히 설했다. 십신은 ‘신’이고, 십주는 ‘해’이며, 십행·십회향은 ‘행’이고, 십지·등각·묘각은 ‘증’에 해당한다.

 

부처님과 조사가 부재하고 선지식도 드물다는 요즘, 우리는 누구를 믿고 무엇을 의지하여 공부해야 할까. 부처님께서『열반경』을 통해 유훈을 남기셨듯이, “법(진리)과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과 자신에 의지해야 할 것〔法燈明自燈明法歸依自歸依〕”이다. 참 스승이 드문 말법시대에 수행자들은 진리의 말씀이 담긴 경과 논, 어록을 절대 소홀히 여기지 말고 부처님을 눈앞에 보듯이 여기면서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아울러 생각하지 않고도 알 수 있고, 배우지 않고도 능히 할 수 있는 사람의 본성인 양지·양능(良知良能)을 갖춘 자신의 본래심(本{來心)을 믿고 ‘새끼 부처’로서 자신감을 갖고 정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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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金聖祐

도서출판 비움과소통 대표. 경북 안동 생(生).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불교신문사에서 취재부 기자 및 차장, 취재부장을 역임. 현재 도서출판 비움과소통 대표와 넷선방 구도역정(http://cafe.daum.net/ kudoyukjung) 운영자로 활동하며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법음을 전하고 있다. 저서에『문없는 문, 빗장을 열다』,『선(禪)』,『선답(禪答)』등이 있다. 아호는 창해(蒼海ㆍ푸른바다), 본명은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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