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책 이야기]
책의 인연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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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정 / 2022 년 1 월 [통권 제105호] / / 작성일22-01-05 11:03 / 조회5,159회 / 댓글0건본문
성철스님의 책 이야기① 장서인과 장서목록
수행자들에게 성철 큰스님하면 ‘책보지 말라’는 말씀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는 선방의 수행자들에게 국한된 말씀일 뿐, 불교사상과 교리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출가하시기 전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쌀 한 가마니와 맞바꿀 만큼 책을 귀하게 여기셨고, 김병룡 거사가 기증한 불서는 말 그대로 ‘법계의 보물[法界之寶]’처럼 아끼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백련암 장경각에는 1만 권에 달하는 책이 빼곡히 꽂혀 있습니다. 그 중 고서古書 2천 2백여 책에 대해 동국대 학술원이 3년에 걸친 조사 끝에 2021년 『성철스님의 책』이라는 도록을 출판한 바 있습니다. ‘성철스님의 책 이야기’는 필자 서수정 박사가 동국대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ABC) 사업단 집성팀에서 2017년 8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성철스님의 책들을 조사하면서 겪었던 일화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 편집자 주
옛 책[古書]을 조사하다 보면 첫 장에 찍힌 장서인藏書印을 자주 마주한다. ‘책의 주인이 누구였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찾다 보면 그와 관련된 책 인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견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한다. 어느 학자는 ‘책이 책을 불렀다’는 표현을 쓴다. 나는 ‘책이 인연들을 불렀다’고 생각한다. 한 줄기를 잡아당기면 고구마가 줄줄이 달려 올라오듯이. 성철 스님의 백련암 책들이 그랬다.
책이 인연을 부르다
사실 성철스님이 생전에 소장했던 옛 책들은 공개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성철스님은 종교를 불문하고 우리 시대 우리 모두의 어른이자 깨달음의 스승이 아니신가. 스님이 읽은 책들이 스님의 사상과 깨달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장경각의 책을 만난다는 것은 선지식을 찾고자하는 이들에게는 행운일 것이다.
19세기 후반 궁궐에서 음식을 담당하는 관직에 있으면서 수행결사에 참여하며 중국에 가서 많은 불서를 구해와 출판까지 주도했던 혜월거사 유성종(1821~1884). 그가 스님의 책 속에 연결되어 있었다. 유성종 사후에 그의 사촌동생인 이재 유경종(1858?~?) 거사와 호은 김병룡(1895~1956) 거사의 만남 그리고 김병룡 거사와 성철스님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이어졌다.
이러한 사실들이 추적 가능했던 것은 성철스님의 책 속 장서인과 책을 기록한 도서목록, 책 곳곳에 남겨 둔 그분들의 메모 덕분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100여 년 이상 몇 사람을 거쳐 소장되었던 책임에도 불구하고 찢김이나 충식이 적고 보존된 상태가 너무나 양호했다. 책을 소중히 간직했던 그분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1700여 권의 책을 사사로이 소유하지 않고 무주상으로 성철스님에게 증여한 김병룡 거사의 그릇과 안목, 그리고 거처를 옮겨갈 때마다 심지어 전란에도 책을 소실하지 않고 잘 지켜온 성철스님의 노력이 감동일 수밖에 없었다.
김병룡 거사가 성철스님에게 증여한 책은 모두 한문이나 언해본으로 된 불교 고서이며 『증여계약서목』(사진 1)에 기록되어 있다. 1948년 9월 15일에 증여인과 증수인 두 분이 입증인을 두며 1,773책을 공식적으로 증여했다. 서목의 구성은 화엄부華嚴部·방등부方等部·반야부般若部·법상부法相部·법화열반부法華涅槃部·비밀부秘密部·선종부禪宗部·천태부天台部·정토부淨土部·대승율부大乘律部·소승율부小乘律部·아함부阿含部·대승논부大乘論部·소승논부小乘論部·휘집부彙集部·찬집부纂集部·전기부傳記部·호교부護敎部·서본참의書本懺儀·잡집부雜集部·별집경부別集經部·별경소부別經疏部·별휘부別彙部·별선종부別禪宗部·별경논부別經論部 등 25부로 크게 분류하여 해당 부의 약명略名 아래 일련번호 순으로 불서의 서명과 책 수를 기록해 두고 있다.
수다라총목록과 성철스님의 분류
실제 백련암 소장 불서에는 앞표지 우측 하단에 ‘華一’, ‘經九’ 등을 적은 작은 쪽지[첨지]들이 붙어 있다. 이것은 『증여계약서목』에 기록된 약명과 일련번호를 해당 책에 붙여둔 일종의 번호 표이다. 쪽지가 남아 있는 책들을 일일이 조사해 본 결과, 첫 번째 화엄부(華)부터 20번째 잡집부(雜)에 저록된 책들은 대부분 금릉각경처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각경처에서 간행한 불서들이었다.
21번째 별집경부(經)부터 25번째 별경논부(合)에 저록된 책들은 중국의 각경처 불서를 제외한 가흥대장경 불서와 명·청대 간행 불서 그리고 국내에서 간행하거나 필사한 불서들을 주제별로 분류해 둔 것이었다. 특히 백련암 소장본에 1923년에 간행된 『금릉각경처서목』(사진 2)이 남아 있으며, 서목에 저록된 금릉각경처 불서들도 실제 확인되었다. 1920년대 전후로 서목과 서목에 저록된 불서들을 김병룡 거사가 중국에서 입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철스님은 『증여계약서목』을 기록할 당시 각경처의 불서를 『금릉각경처서목』에 따라 분류하기도 했지만, 주제별 분류나 순서에서 위의 서목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스님이 불서를 분류하는 방식이 기존 서목과는 차별성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증여계약서목』을 작성하기 이전에 성철스님이 쓴 초고본草稿本도 확인되는데 『수다라총목록修多羅總目錄』이다. 김병룡 거사에게 증여받은 책의 목록은 연필로 기록되어 있는데 추가나 수정 사항들도 표시되어 있다. 또한 서목의 마지막 총 책 수를 기록한 뒤 중요한 내용임을 표시하기 위해서 인지 진한 검은색 펜으로 한문으로 쓰여진 후기後記가 있다. 그 내용을 풀어보면 “이 책은 호은 김병룡 거사가 기증한 수다라목록이며, 1947년 음력 8월에 희양산의 명찰인 봉암선굴에 봉안했다.”는 것이다. 그해는 성철스님이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걸고 문경 봉암사에서 결사를 맺은 해였으며, 봉암사로 갈 당시에 증여받은 책들을 함께 이관했다.
『수다라총목록』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1956년 7월 27일에 기록한 추가서목追加書目(사진 3)이다. ‘신新’이라는 약명으로 첫 번째 『원각경』 10책에서부터 44번째 박물관사진첩 2책에 이르는 44종 136책이 파란색 펜으로 기록되어 있다. 1,773책을 증여받은지 9년 후의 기록이며, 그해는 성철스님이 1955년 파계사 성전암으로 옮겨 온 이듬해였다. 또한 김병룡 거사가 6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해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김병룡 거사가 마지막까지 간직했던 책들마저 성철스님에게 기증했으며, 스님이 그때 받은 책을 『수다라총목록』에 기록해 둔 것으로 추정된다. 추가서목의 44종 136책 가운데 실제 ‘新’의 첨지가 붙어 있는 『선종영가집언해』, 『십현담요해언해』, 『종경록』, 『금릉각경처서목』 등 38종 129책이 확인되었다.
새롭게 발견된 삽지와 유언
성철스님이 남기신 서목을 통해 1948년에 증여받은 519종 1,773책 중 9종 19책을 제외한 대부분의 불서가 백련암에 현존한다는 사실과, 1956년에 추가로 기증받은 불서까지 확인되었다. 심지어 스님이 『증여계약서목』 안쪽에 꽂아 둔 작은 삽지도 몰랐던 사실을 알려준다. 12행의 광곽이 인쇄된 종이에 약체로 흘려 쓴 12종의 경론명과 그 해당 권수와 판수板數를 적고 그 끝에 판수를 합한 595라는 숫자가 연필로 적혀 있다(사진 4).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던 삽지에 기록된 내용이 중국 금릉각경처에서 간행한 『대승입능가경』(12판), 『능가아발다라보경회역』(212판), 『대승기신론 소기회본』(75판), 『주심부』(135판) 등 4종을 번각한 목판의 판수였으며, 해인사 사간판전에 수장되어 있는 판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기록이었다. 나머지 『정토감주』(54판), 『서방휘정』(66판), 『약사칠불경』(16판), 『아미타경언 해』(21판) 그리고 「여의주탑」 등 도상판圖像板 4판 등도 해인사 사간판전에 현존하는 목판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해인사에서 조사되지 않았던 이들 목판이 언제 어떻게 해인사 사간판전에 수장되었는지 그동안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 작은 삽지에 적힌 불서가 유성종과 유경종이 주도한 정원사淨願社와 연사蓮社에서 판각한 목판이었으며, 특히 4종의 금릉각경처 번각이 유경종과 김병룡 거사와 관련된 국내 판각불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성철 스님이 1947년에 책을 기증받은 후 삽지에 기록된 목판도 함께 기증받았으며, 스님이 1966년 해인사에 주석하게 되면서 이 책판을 해인사 사간판전으로 이운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철스님은 생전에 책들을 수장한 장경각의 출입을 제자들에게조차 쉽게 허락지 않으셨다고 한다. 책의 속세적 가치가 입소문이라도 나게 되면 쉽게 흩어질 거라 생각하셨던 것일까. 스님은 언젠가는 문도들에게 공표하리라 생각하셨던 ‘결정서決定書’(사진 5)란 제목의 메모 한 장을 『증여계약 서목』 안쪽에 남겨 두셨다. “퇴옹성철의 소장서적은 퇴옹 원적 후에 퇴옹 문도들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보호하여 개인의 관여를 불허하며 지금과 같이 계속하여 백련암에 보관한다.”는 글이다. 성철스님 자신이 결정인으로 밝힌 이 작은 메모 한 장이 더 없이 큰 스님의 유언으로 남아있다. 백련암 소장 책들을 조사하면서 만난 일련의 인연들이 우연이 아니라 책이 가치를 알아본 주인을 기다려 그 책들이 주인을 찾아간 느낌을 받았다. 어두운 눈이지만 불을 밝히는 마음으로 백련암의 책들을 다시금 찬찬히 들여다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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