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선문정로]
크고 둥근 거울 같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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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검(조병활) / 2021 년 4 월 [통권 제96호] / / 작성일21-04-05 09:53 / 조회6,607회 / 댓글0건본문
쉽게 읽는 선문정로10 | 대원경지大圓鏡智
[원문] 성철 스님 [옮김] 활인검
편집자 | 【번호】·【평석】·【강설】은 성철 스님이 직접 쓰고 말씀하신 것이다. 【10-1】은 제10장 제1절이라는 의미다. * 표시가 붙은 것은 보다 쉽게 풀이한 것이다.
【10-1】 ①위산潙山이 앙산仰山에게 말했다. 나는 대원경지大圓鏡智로 종요宗要를 삼아서 삼종三種의 생生을 출리出離하여야 하니, 소위 상생想生과 상생相生과 유주생流注生이다. 상생想生은 능사能思하는 망상妄想이 잡란雜亂함이요, 상생相生은 소사所思의 진경塵境이 역연歷然함이요, 미세유주微細流注는 함께 진애塵埃가 되느니라. ①潙山이 謂仰山曰 吾以鏡智로 爲宗要하야 出三種生이니 所謂想生 相生 流注生이니라 想生은 能思之心이 雜亂이요 相生은 所思之境이 歷然이요 微細流注는 俱爲塵埃니라. (①『人天眼目』, 『大正藏』48, p.321b)
* ①위산이 앙산에게 말했다. “나는 ‘크고 둥근 거울 같은 지혜’를 가르침의 핵심으로 삼아 세 가지 삶에서 벗어났다. 비교적 큰 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것[想生], 모습에 사로잡혀 사는 것[相生], 미세한 의식의 흐름에 사로잡혀 사는 것[流注生] 등이 세 가지 삶이다. 상생想生은 주관이 어지러운 것이며[塵], 상생相生은 객관에 뚜렷하게 사로잡힌 것이며[埃], 미세한 유주는 주관과 객관에 함께 사로잡힌 것이다.
이경미 그림. 풍경.
【평석】 제8第八 아뢰야식阿賴耶識인 미세유주微細流注를 멸진하고 진여자성을 통견하면, 곧 구경무심인 대원경지大圓鏡智가 현전하나니 이것이 대사각활大死却活의 본래면목이다. 이 경지鏡智는 여래의 과지果智로서 선교禪敎를 통하여 구경처이다. 이 경지鏡智를 성취하여야 견성이니 위산潙山뿐만 아니라 불조정전佛祖正傳은 전부 경지鏡智로써 종요宗要를 삼아서, 만약에 제8의 미세유주를 출리出離하지 않으면 현증원통現證圓通한 정안은 못된다. 이것으로서도 견성이 과상불지果上佛地임이 일층一層 명확하다.
* 아뢰야식의 미세한 활동을 전부 없애고 참다운 본성을 자각하면 궁극의 분별없는 마음인 ‘크고 둥근 거울 같은 지혜’가 나타난다. 이것은 크게 죽었으나 오히려 살아난 것으로 본래의 참다운 모습이다. 거울 같은 지혜는 수행의 결과로 나타난 지혜로 선문과 교문이 모두 궁극으로 삼는 바이다. 이 지혜를 성취해야 참다운 본성을 제대로 깨달은 것이다. 위산 뿐 아니라 부처님과 조사들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계승한 분들은 전부 ‘큰 거울처럼 깨끗하고 둥근 지혜’를 가르침의 핵심으로 삼는다. 제8 아뢰야식을 없애지 않으면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수행자가 아니다. 이것으로도 ‘참다운 본성을 체득함[見性]’이 바로 수행의 과보로 나타난 부처님의 경지임이 한층 명확하다.
【강설】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근본이 무엇인가? 대원경지를 성취해야만 견성이란 것이다. 위산 스님 역시 견성이란 제8 아뢰야식의 근본무명이 완전히 탕진蕩盡돼 구경각을 성취한 것이라야 참다운 견성이고 이것이 근본 종취宗趣임을 밝혔다. 대원경지大圓鏡智란 주관적인 상생想生과 객관적인 상생相生 그리고 일체망상의 근본이 되는 제8 아뢰야식까지 완전히 제거된 것을 말한다. 이것이 33조사를 이어온 우리 종문의 종취宗趣이고 수행의 극과이다. 『기신론』에 “보살 지위의 마지막인 10지까지 다해 극히 미세한 망념까지 멀리 여의면 자기 마음의 본래 성품을 꿰뚫어 보아 심성이 담연히 항상 머무르나니 이것을 구경각이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곧 대원경지와 같은 말씀이다. 따라서 근본무명까지 완전히 없애 대원경지가 현발해야만 견성이지 그러기 전에는 설사 10지·등각을 성취했다 하여도 도리어 병통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
【10-2】 ①그 진심眞心의 본원本源에 도달하지 못하면, 제8第八 미세微細인 마계魔界에 타락한다. ①未達其源하면 落在第八魔界니라. (①洞山初, 『古尊宿語錄』38, 『卍續藏經』118, p.649b)
* ①그 참다운 마음의 근원에 도달하지 못하면 제8 마계(마구니의 경계)에 떨어진다.
【평석】 가무심假無心인 제8 아뢰야의 미세유주도 마계魔界이니, 제6 의식의 추중망상麤重妄想은 더 말할 것도 없다.
* 임시적 무심無心인 제8 아뢰야식의 미세한 움직임도 마계인데 하물며 제6 의식의 거친 그릇된 생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강설】 동산수초洞山守初 선사는 운문문언 선사의 상수제자이시다. 제8 아뢰야식의 경계는 8지 이상 대자재 보살의 경계이다. 허나 동산 스님은 견성이 아닐 뿐더러 도리어 마구니의 경계라고 통렬히 경책하셨다. 그러니 추중망상도 끊지 못한 8지 이하의 경계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는 동산 스님만의 말씀이 아니다. 참다운 선지식들은 한 결 같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을 도모함에 있어 시초가 어긋나면 영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법이다. 공부를 하려면 시작할 때에 소견이 바로 서야지 소견이 바로 서지 못하면 끝끝내 어긋나고 만다. 서울 간다고 나섰다가 삼랑진도 못 가 서울에 도착했다고 떠벌리니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자기만 서울 땅을 밟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서울 길마저 막는 꼴이니 삼가고 또 삼갈 일이다. 자재 보살의 경지도 마구니 경계라고 매섭게 경책했는데 추중망상도 없애지 못한 해오解悟를 견성이라 여긴다면 이는 마구니 중에서도 아주 저급한 마구니라 하겠다.
【10-3】 ①담연湛然히 공공적적空空寂寂하여 원명부동圓明不動함이 대원경지大圓鏡智니라. ①湛然空寂하야 圓明不動이 卽大圓鏡智니라. (①『頓悟要門』, 『卍續藏經』110, p.848a)
* ①맑고 텅 비어 결함 없이 밝으며 움직임 없는 것이 ‘큰 거울 같은 깨끗한 지혜’이다.
【평석】 미세유주를 초출超出하여 구경무심을 증득하면, 육조의 말씀과 같이 원명상적조圓明常寂照한 무상無上 대열반이 즉 경지鏡智이다.
* 미세한 의식의 흐름에서 벗어나 궁극의 분별없는 마음을 증득하면 육조가 말한 것같이 ‘결함 없이 밝고 항상 고요하게 비추는’ 위없는 대열반, 즉 거울 같은 깨끗한 지혜이다.
【10-4】 ①갓난아기가 비록 6식을 두루 갖추고 있어 눈으로 능히 보고 귀로 능히 듣지만 일찍 6진六塵을 분별하지 못하여 호오장단好惡長短과 시비득실是非得失을 총부지總不知함과 같다. 학도學道하는 인사人士도 이 영해嬰孩와 같아서 영욕공명榮辱功名과 역정순경逆情順境이 그를 동요動搖하지 못하며, 눈으로 색色을 보되 맹인과 같고 귀로 소리를 듣되 농자聾者와 같아서, 여치如癡하며 사올似兀하여 그 심중心中이 동요하지 않아 수미산須彌山과 같다. 조작造作과 연려緣慮가 없어서 창천蒼天이 넓게 덮음과 같으며, 후지厚地가 넓게 받치는 것과 같나니 무심인 소이로 만물을 장양長養하여 여시如是히 무공용無功用 중에서 시공施功한다. 비록 이러하나 그 과굴窠窟을 도출跳出하여야 한다. 어찌 교중敎中에서 말함을 보지 못하였는가. 제8 부동지 보살第八不動地菩薩이 무공용지無功用智로써 임운任運하여 살바야해薩婆若海에 유입流入한다 하였으나, 납승은 여기에 도달하였어도 집착하여서는 불가하다. 『능가경』에 상생相生은 집애執碍요 상생想生은 망상이요 유주생流注生 인즉 망연妄緣을 추축追逐하여 유전流轉한다 하였으니, 만약 무공용지無功用地에 도달하였어도 오히려 유주생流注生 중에 있으니 제3第三 유주생상流注生相을 출리出離하여야 비로소 쾌활자재快活自在하다. 경에 말하기를, “급류수急流水를 바라보아도 염정恬靜함과 같다.” 하였으니, 해자孩子의 6식이 비록 무공용無功用이나 염념念念이 유거流去함이 급류수와 같으니 어찌하리오. ①如初生孩子가 雖具六識하야 眼能見하며 耳能聞하나 未曾分別六塵하야 好惡長短과 是非得失을 總不知라 學道之人도 要復如嬰孩하야 榮辱功名과 逆情順境이 動他不得하야 眼見色하되 如盲等하며 耳聞聲하되 如聾等하야 如癡似兀하야 其心不動이 如須彌山이니라 無造作緣慮하야 如天普蓋하며 似地普擎하나니 爲其無心故로 所以長養萬物하야 如是無功用中에 施功하나니라. 雖然恁나 又更須跳出窠窟하야사 始得다 豈不見가 敎中에 道하되 第八不動地菩薩이 以無功用智로 任運流入薩婆若海라 하나니 衲僧家는 到這裏하야 亦不可執着이니라 楞伽經에 云 相生은 執碍요 想生은 妄想이요 流注生則逐妄流轉이라하니 若到無功用地하야도 猶在流注生中이니 須是出得第三流注生相하야사 方始快活自在니라 經에 云 如急流望爲恬이라하니 孩子六識이 須然無功用이나 爭奈念念不停流가 如急流水오. (①『碧岩錄』8(제80칙), 『大正藏』48, p.206b)
* ①갓 태어난 아이가 비록 제6식(의식)을 갖추어 눈으로 능히 보고, 귀로 능히 듣지만, 눈·귀·코·혀·몸·의意 각각의 대상인 ‘여섯 가지 대상[六境]’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좋음·나쁨·장점·단점·옳음·그름·얻음·잃음 등을 전혀 알지 못한다. 진리를 깨치고자 하는 수행자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영광·굴욕·(부귀)공명·역정(逆情. 마음에 들지 않음)·순경(順境. 마음에 듦) 등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물질적 존재[色]를 볼 때는 장님과 같고 소리를 들을 때는 귀머거리처럼 어리석기 그지없어야 수미산처럼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조작이 없고 분별심이 없어 마치 하늘처럼 모든 것을 덮어주며 땅처럼 모든 것을 받쳐준다. (하늘의) 마음에 그릇된 생각이 없기에 만물을 기르며 이처럼 무엇을 한다는 생각 없이 작용한다. 비록 그러하나 다시 이 함정에서 벗어나야 된다. 『화엄경』 「십지품」에 “제8지 부동지에 있는 보살은 무엇을 한다는 생각 없는 지혜[조작 없는 지혜]로 자유로이 ‘지혜의 바다[薩婆若海]’에 흘러 들어간다.”고 나온다. 수행자가 여기에 이르러 역시 집착해서는 안 된다. 『능가경』에 “상생相生은 집착이요, 상생想生은 번뇌·망상이며, 유주생은 삿됨을 쫓아 윤회하는 것이다.”고 나온다. 무엇을 한다는 생각 없이 작용하는 경지에 이르러도 오히려 유주생에 있는 것이니, 반드시 유주생의 모습[流注生相]에서 뛰쳐나와야 비로소 유쾌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 『능엄경』은 “제6식은 급히 흐르는 물과 같지만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다.”고 했다. 갓난아이의 제6 의식이 비록 조작이 없으나 생각 생각이 머무름 없이 급하게 흐르는 물과 같음을 어찌하겠는가!
이경미 그림. 스님.
【평석】 제8 부동지 보살이 무공용無功用의 무심지無心地에 있으나 이는 아직 뇌야賴耶인 미세유주의 가무심假無心이니, 미세를 영단永斷하고 경지鏡智를 실증實證하여야 견성의 진무심眞無心이며 대활大活의 정안이다.
* 제8지인 부동지의 경지에 이른 보살이 조작 없이 일을 하고 그릇된 마음이 없는 경지에 있으나, 이는 아직 아뢰야식인 미세유주의 임시적인 분별없는 마음 상태에 있는 것이다. 아뢰야식을 영원히 단절하고 ‘크고 둥근 거울 같은 지혜’를 몸소 깨쳐야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분별없는 참다운 마음이며, 크나큰 삶을 영위하는 ‘눈 밝은 수행자[正眼]’이다.
【강설】 교가에서는 오매가 일여한 경계, 어린아이와 같은 대무심 경계에 이르면 애쓰지 않아도 살바야해에 이른다 하였으나 우리 종문에서는 대무심경계도 구경이 아니라 하였다. 도리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컴컴한 산속 귀신들이 사는 굴에 빠졌다[黑山鬼窟] 하여 경계하였다. 죽긴 죽었는데 다시 살아나지 못하니 산송장이나 진배없다는 것이다. 이는 동산수초 선사가 제8 아뢰야식의 경계를 마계라고 경계하신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말씀이다. 설사 어린아이와 같은 무심경계에 들었다 하더라도 아직은 제8 아뢰야식이 남아 있어 유주생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제8 아뢰야식은 워낙 깨끗하고 미세해 언뜻 보면 맑고 잔잔해 전혀 움직임이 없는 듯 보이나 깊이 관찰해보면 그 급박한 흐름이 조금도 쉬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오매에 일여한 8지 이상의 자재 보살 위位에 들었다 하더라도 이는 구경이 아니다. 도리어 수행인을 매몰시키는 마구니의 경계, 귀신의 소굴이니 여기서 다시 용맹심을 일으켜 근본무명을 끊고 진정한 무심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 전엔 종문의 종사가 아니며 눈 밝은 납자라 할 수 없다.
【10-5】 ①제8인 이숙식異熟識이 만약 공멸空滅하면, 곧 인과를 초월하여 바야흐로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전성轉成한다. 무구無垢가 동시에 발현한다 함은 불과위佛果位 중에서는 경지鏡智를 무구無垢라 하니 이것은 청정진여인 까닭이다. 경지鏡智로 상응하면 법신이 현현하여 시방진찰十方塵刹을 보조普照하여 이理와 지智가 일여하므로, 바야흐로 구경인 일심의 본체를 증득하는 것이니 이는 유식唯識의 극칙極則이며 여래의 극과極果이다. 밝게 관찰하니 이 제8식이 심잠深潛하여 난파難破하니, 차식此識을 사호絲毫라도 투과透過하지 못하면 끝까지 생사안두生死岸頭에 체재滯在한다. 고덕古德과 제조諸祖가 차제8식此第八識을 타파하지 않고서는 초불월조超佛越祖의 현담玄談을 하지 않았거늘, 금인今人들은 생멸심도 미망未忘하여 심지心地에 잡염雜染의 번뇌종자를 섬호纖毫도 정결케 하지 못하고서 문득 오도悟道라고 사칭하니 어찌 미득未得을 득得이라 하고 미증未證을 증證이라 함이 아니리오. 참으로 두렵지 않은가. ①異熟이 若空則超因果하야 方才轉成大圓鏡智니 言無垢가 同時發者는 以佛果位中을 名無垢니 乃淸淨眞如니라 謂鏡智로 相應하면 法身이 顯現하야 圓明普照十方塵刹하야 以理智가 一如하야 方證究竟一心之體니 此唯識之極則이며 乃如來之極果也라 諦觀하니 此識이 深潛難破하니 此識을 絲毫未透하면 終在生死岸頭事니라 古德諸祖가 未有不破此識而有超佛越祖之談이어늘 今人은 生滅도 未忘하야 心地에 雜染種子도 未淨纖毫하고 便稱悟道하니 豈非未得을 謂得하며 未證을 謂證이리오 可不懼哉아. (①憨山, 『八識規矩通說』, 『卍續藏經』98, p.591a)
* ①이숙식(주1)이 만약 사라지면 인과因果를 초월하여 비로소 ‘크고 둥근 거울 같은 지혜[大圓鏡智]’로 바뀐다. ‘대원경大圓鏡과 무구식無垢識이 동시에 일어난다.’(주2)고 말하는 것은 깨침의 경지를 무구無垢라 하는데 바로 ‘깨끗한 본체 자체[淸淨眞如]’이다. 대원경지와 상응해 법신이 나타난다는 것은 시방의 모든 곳을 남김없이 비추는 것을 말한다. 이치[理]와 지혜[智]가 하나 되어 비로소 ‘한 마음의 궁극적 근본[究竟一心之體]’에 오르니 이것이 ‘유식의 최고의 가르침[唯識之極則]’이자 ‘최고의 과보인 성불成佛[如來之極果]’이다. 자세히 보면 제8 아뢰야식은 깊이 감추어져 파괴하기 어렵다. 제8 아뢰야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絲毫未透] 결국은 삶과 죽음의 언덕에 머무르게 된다. 옛날의 뛰어난 조사들 가운데 제8 아뢰야식을 철저하게 없애지 않고 부처님이나 조사의 위치에 오르신 분들은 없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나타나고 사라지는 생멸심生滅心도 잊지 못하고 마음바탕에 있는 잡다한 종자를 철저하게 없애지 못했는데도 오히려 깨쳤다고 말하니, 이것이 어찌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하고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두렵지 않은가?
【평석】 감산憨山은 선교禪敎에 해통該通한 명말明末의 거장이다. 제8 미세유주를 영리永離하여 여래의 극과極果인 대원경지를 증득하여야 오도悟道며 견성임을 분명히 선설宣說함은 참으로 조계직전曹溪直傳을 상승한 희유稀有의 지식知識이다. 그리고 생멸망심도 미단未斷하고 오도悟道라 사칭함을 통탄함은 고금古今 수도인의 통병通病을 적파摘破한 쾌론快論이다. 그러니 추중과 미세의 일체 번뇌·망상을 탕진하여 구경무심인 경지鏡智를 실증하여 대휴헐大休歇의 고인전지古人田地에 도달하여야 한다. 제8 미세를 단진斷盡한 경지鏡智는, 대사각활大死却活한 무심 무념 무생 무주이며, 따라서 돈증원증頓證圓證한 구경정각인 돈오와 견성이다.
* 감산 스님은 선禪과 교敎에 두루 통달한 명나라 말기의 거장이다. 제8 아뢰야식을 완전히 없애 깨달음의 징표인 ‘크고 둥근 거울 같은 지혜[大圓鏡智]’를 증득해야 깨친 것이고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참으로 선문禪門의 올바른 가르침을 제대로 이은 매우 드문 선지식이다. 그리고 생겨나고 사라지는 생멸심生滅心 마저 끊지 못했음에도 깨달았다고 사칭詐稱하는 것을 통렬하게 비판함은 옛날과 지금의 수도인의 공통적 병통을 논파한 명쾌한 말씀이다. 그러니 거칠고 미세한 모든 번뇌와 망념을 모두 없애 궁극의 분별없는 마음의 경지인 ‘크고 둥근 거울 같은 지혜[大圓鏡智]’를 몸으로 증득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은 ‘옛사람의 마음자리[古人田地]’에 도달해야 한다. 제8 아뢰야식을 완전히 없앤 ‘크고 둥근 거울 같은 지혜[大圓鏡智]’는 크게 죽었다 살아난 무심·무념·무생·무주이며, 몰록 깨닫고 결함 없이 증득한 궁극의 올바른 깨침인 돈오頓悟와 견성見性이다.
【강설】 6식의 번뇌·망상 속에서 갖가지 사량 분별로 조작을 쉬지 않으면서 견성했다 점수漸修한다 보임保任한다고 떠드니 대자재 보살들의 경계마저 제8 마계라 하여 꾸짖은 조사들의 안목에 가당키나 하겠는가? 6식의 망상 경계에서 견성하고 돈오했다고 막말을 일삼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일본에서도 누구는 공안을 10개 깨치고 누구는 20개 깨쳐 견성하고 성불했다는 소리를 쉽게 하는데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마구니 경계를 참으로 여겨 소리 높여 떠들고 그런 터무니없는 말에 귀 기울이는 자들이 허다하게 많으니 장차 우리 불법佛法이 어디로 흘러갈까 걱정이다. 위산 스님, 감산 스님 같은 분들은 만고의 표본이 될 대선지식들이다. 이런 분들의 간절한 경책의 말씀을 귀감으로 삼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의 말을 따르겠다는 것인가?
주)_
1. 아뢰야식의 다른 이름. 과거의 업보에 의해 생겨난 결과로서의 식識.
2. 현장이 지은 「팔식규구송八識規矩頌」에 있는 ‘大圓無垢同時發’이라는 구절을 가리킨다. 감산이 「팔식규구송」을 해설한 것이 『팔식규구통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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