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빛의 말씀]
유념이면 중생이고 무념이면 부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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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4 년 5 월 [통권 제133호] / / 작성일24-05-04 23:47 / 조회1,974회 / 댓글0건본문
“이 법을 요오了悟한 자는 즉시 무념이니 억념憶念과 집착이 없어서 광망誑妄(주1)이 일어나지 않고, 자기의 진여본성을 사용하여 지혜로써 관조하여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견성이며 불도를 성취함이니라.” - 『단경』
망멸증진妄滅證眞(주2)한 구경무심을 또한 무념이라 한다. 이 무념이 즉 무생이니 즉 돈오이며 견성이며 성불이다.
이 『단경』의 내용은 『종경록』에서 육조스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육조스님께서 전하신 ‘이 법’이란 견성법을 말하며, 일체망념이 다 떨어진 무심을 곧 무념이라 한다.
“무념법을 철오徹悟한 자는 만법에 전부 통달하며 제불의 심심甚深한 경계를 통견洞見하며 불타의 지위에 이른다.” - 『단경』
돈오인 무념은 견성이며 제불경계諸佛境界며 구경불지이다. 그러므로 무념법을 요오了悟한 자는 만법에 다 통달하며 제불의 경계를 본다 하였으니, 만약에 무념법문에 정입正入하면 성불이 찰나경刹那頃에 있음을 알겠다.
“금강 즉 등각 이하로부터의 일체중생은 개실皆悉 유념有念이므로(주3) 중생이라 하고, 일체제불은 전부 무념을 증득하였으므로 불타라 호명呼名한다.” - 『종경록』
금강유정金剛喩定이며 금강무간도金剛無間道인 등각도 아직 극미세망념極微細妄念을 미단未斷한 고로 중생이라 하며, 등각이 금강심으로써 최미세념最微細念인 제8뢰야第八賴耶를 단진斷盡하고 묘각에 돈입頓入함을 견성 또는 성불이라 하나니 이것이 돈오이다. 그러므로 중생과 제불의 차이는 유념有念과 무념無念에 있다. 육조가 선설宣說한 무념정오無念正悟는 구경불지이니, 즉 원증돈증圓證頓證의 증오證悟이며 견성의 표본이다.
연수스님이 육조스님의 말씀에 근거해 일체망념이 다 소멸된 무념이 곧 돈오성불임을 밝혔다.
“내가 오조 홍인화상의 처소에서 한 번 듣고 문득 대오하여 진여본성을 돈견頓見하니라. 그러므로 이 돈오견성법으로써 세상에 유행流行하여 학도學道하는 자로 하여금 보리를 돈오하여 본성을 자견自見케 하느니라.” - 『단경』
이 돈오와 견성은 무념을 내용으로 하는 구경불지이다.
“오직 견성하는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출현하여 사종邪宗을 파쇄破碎하노라.” - 『단경』
불조의 정법은 견성에 있으며 견성은 불지佛地인 증오證悟이다. 그리하여 불조의 혜명을 계승한 정안종사는 돈오 즉 견성법을 정전正傳하고 기외其外는 전부 사종邪宗으로서 파쇄破碎한다. 이는 인아人我로써 타종他宗을 비방 배척하는 것이 아니요,(주4) 오직 정법을 수호하기 위한 자비의 발현發現이다.
전불후조前佛後祖가 심심상전心心相傳한(주5) 돈오견성법은 불조의 명맥命脈이요 정법의 골수骨髓이다. 기타 각종各宗은 수의방편隨宜方便의 일시권설一時權說에 불과(주6)하므로, 정법의 근본 입장에서 논할 때에는 사종邪宗이라 점파點破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에 방편가설方便假說을 실법實法으로 오집불사誤執不捨(주7)하면, 중생들이 차방편가설此方便假說에 계박繫縛되어 정법에는 영영 귀복歸復(주8)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를 통렬히 파쇄배격破碎排擊하고 근본정법을 선양하는 것이다.
육조스님께서 분명히 밝히시기를 “견성법만이 올바른 가르침이므로 다른 것은 파괴해 물리친다.”고 하였으니 견성법만이 정설이고 다른 것은 수시방편설隨時方便說(주9)이다. 이 말이 허튼 말씀이 아니다. 불법이란 이름으로 추구했던 수많은 배움과 수행들이 견성하고 보니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다고 토로한 선사들이 허다하다. 견성법을 바로 알고 나서 다른 교법을 보면 다른 것은 불법이 아니다. 지혜도 자비도 아니고 말짱 번뇌망상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실법이라 할 것은 견성법 하나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견성법만이 실법이다.”고 하는 이런 말도 실제로 눈을 바로 떠 견성하고 나서 할 소리이지 견성하지도 못하고 함부로 떠들 소리는 아니다.
“만약에 자성의 진정한 반야인 관조가 현전발기現前發起(주10)하면, 일찰나간一刹那間에 망념이 구멸俱滅(주11)한다. 그리하여 자성을 식득識得하면 일오一悟해서 즉시에 불지에 도달한다.” - 『단경』
망념이 구멸俱滅하면 자성을 명견明見하고 자성을 명견하면 이것이 정오正悟이며 무념이니, 지위와 계급을 경력經歷(주12)하지 않고 구경각인 불지에 돈입頓入한다. 이것이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의 묘결妙訣(주13)이어서, 타종他宗들의 추수追隨를 불허하는 선문의 특징이다.
“나의 이 법문은 무념으로 종취를 삼아서, 무상無相으로 체를 삼고 무주無住로 근본을 삼는다.” - 『단경』
견성법문인 무념정종無念正宗은 전불후조前佛後祖가 등등상속燈燈相續(주14)하는 무상無上의 혜명이다.
“무無라 함은 하사何事가 없음이며, 염念이라 함은 하물何物을 염念하는고.(주15) 무라 함은 상대相對의 이상二相이 없으며 진로塵勞(주16)의 망심이 없는 것이요, 염이라 함은 진여의 본성을 염念함이니, 진여는 즉시 염念의 본체요 염念은 즉시 진여의 대용大用이니라.”
- 『단경』
망심이 멸진하면 진여본성이 현전現前하나니 진여정념眞如正念이 무념이다. 무념이라고 하면 흔히 텅 비어 아무 생각도 없는 허무를 연상하는데 그런 편공偏空·악취공惡取空(주17)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 무無라 함은 일체 망념이 완전히 떨어진 것을 말하고, 염念이라 함은 진연자성의 본체가 나타남을 말한다. 비유하자면 무는 구름이 걷힌 것을 말하고 염은 해가 환히 비치는 것을 말한다. 구름이 걷히듯 일체망념이 완전히 제거되면 태양이 밝게 비치듯 자기의 본래 성품인 진여가 저절로 환히 드러난다. 따라서 진여의 정념正念은 무념이지 목석과 같은 것이 아님을 알라.
“만약에 진여본심 즉 자성을 식득識得하면 즉시 근본해탈이요, 해탈을 체득하면 즉시 반야삼매며 무념이니라.” - 『단경』
자재해탈과 반야삼매와 무생무념과 식심견성識心見性과 돈오원증頓悟圓證과 성불작조成佛作祖(주18)는 동일한 내용이니 구경무심의 별칭이다.
“어떤 것을 돈오라 하는고. 대답하되 돈頓이라 함은 일체망념을 단제斷除함이요, 오悟라 함은 오悟에 소득所得이 없음이니라.”
- 『돈오요문』
‘돈제망념頓除妄念하고 오무소득悟無所得’의 돈오는, 망멸증진妄滅證眞한 구경무심이니 불지무념佛地無念의 견성이다. 마조스님의 법을 이은 대주혜해大珠慧海 선사의 말씀이다. 일체망념이 단박에 자취도 없이 다 떨어지는 것이 돈이고, 일체망념이 떨어졌다는 생각 그 자취마저 없어진 것이 오다. 그것이 구경무심이고 성불이다.
“이 돈오문은 무엇으로 종宗을 삼고 무엇으로 지旨를 삼으며 무엇으로 체體를 삼고 무엇으로 용用을 삼는고. 대답하되 무념으로 종宗을 삼고, 망념이 일어나지 않음으로 지旨를 삼으며, 청정으로 체體를 삼고, 지혜로 용用을 삼는다.” - 『돈오요문』
망념을 돈제頓除하여 무념을 증득하면, 청정무구淸淨無垢한 반야대지般若大智가 낭연독조朗然獨照(주19)하나니, 이것이 선문정전禪門正傳의 근본종취다. 망념이 일어나지 않아야 무념이니 망념이 있으면 무념이랄 수 없다. 또 망념이 여전히 일어난다면 어떻게 청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표현은 달리 했지만 그 내용은 같은 것이다. 일체망념이 다 떨어져 청정해지면 지혜는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뽀얗게 앉은 먼지를 말끔히 닦아내면 거울의 밝고 투명한 빛이 환히 드러나는 것이다.
- 성철스님의 『신심명 증도가 강설』(장경각, 2001)에서 발췌.
<각주>
(주1) 여러 가지 수단으로 남을 속이려는 번뇌의 마음.
(주2) 번뇌를 사라지게 하고 진여를 깨달음.
(주3) “모두 마음 작용이 남아 있으므로”
(주4) “나와 남을 갈라놓고 남의 종지를 비방 배척하는 것이 아니요”
(주5)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주6) “형편에 따른 일시적인 방편설에 불과”
(주7) 잘못 알고 집착하여 버리지 않음.
(주8) 되돌아감.
(주9) 시기와 형편에 맞게 방편으로 하신 말씀.
(주10) 눈앞에 나타나도록 일어나게 함.
(주11) 함께 사라짐.
(주12) 차례차례 거쳐 감.
(주13) 묘한 비결.
(주14) 마음에서 마음으로 선지禪旨를 전하는 일을 세상을 밝히는 등불을 꺼트리지 않고 대를 이어 전해주는 일에 비유한 표현.
(주15) “‘무념無念’에서 ‘없음[無]’은 무엇이 없음이며 ‘생각[念]’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가?”
(주16)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서 객관세계인 6진의 경계를 따라 마음의 번뇌가 일어나서 피곤하게 되므로 번뇌를 진로라 한다.
(주17) ‘편공’은 공하다는 한편에 치우친 것을 말하고, ‘악취공’은 모든 것이 실재實在한다는 사상을 고집하는 이에게 그 잘못된 소견을 없애기 위하여 공空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공이라는 뜻으로 잘못 해석하여 불교의 본뜻에 맞지 않은 것을 말한다.
(주18)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됨.
(주19) 오직 이것만 밝게 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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