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책소개
"성철 스님의 탄신 100주념 기념!성철 스님의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 본지풍광설화』 제2권. 저자는 1967년 해인총림의 방장으로 취임한 후, 선종 정통의 법문 양식을 그대로 따른 상당법문을 펼쳤다. 그리고 저자가 자신의 상당법문을 정리하여 출간한 것이 바로 <본지풍광(本地風光)>이다.
<본지풍광>은 저자가 <선문정로(禪門正路)>와 함께 '부처님에게 밥값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반복적으로 깨달음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그러한 <본지풍광>을 재출간한 것이다. 원택 스님이 저자의 상당법문을 녹취하여 정리한 내용도 새롭게 담아내 의미 있다.
제2권에서는 <본지풍광>의 총100칙 중에서 제36칙부터 제91칙까지 수록했다. 또한 한국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선문염송(禪門拈頌)>에 실려 있는 공안을 기록했다. 저자의 상당법문이 설파되는 법회의 현장에 있는 듯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선종 역사를 아우르며 펼쳐지는 상당법문을 통해 선사들이 깨달은 인연을 깨우치게 된다. 양장본."
저자소개
"성철스님(1912-1993)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아직까지도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목차
"헌사36. 흥화난할
37. 동안가풍
38. 조주끽다
39. 마조불안
40. 구지일지
41. 단하소불
42. 북두장신
43. 선사기제
44. 조주삼불
45. 마조사구
46. 설봉별비
47. 흥화민덕
48. 조주감파
49. 운문호병
50. 덕산작마
51. 분양사자
52. 법안지렴
53. 향엄상수
54. 사자우해
55. 노조벽면
56. 백장야호
57. 조주대사
58. 향사일로
59. 곽시쌍부
60. 운문참회
61. 천지동근
62. 목주담판
63. 금우반통
64. 풍혈어묵
65. 증구성별
66. 현사백희
67. 현성공안
68. 수산불법
69. 운문법안
70. 협산경계
71. 암두도자
72. 체로금풍
73. 조주사문
74. 이류중행
75. 경청기원
76. 운문구우
77. 운문화타
78. 덕산득도
79. 밀암사분
80. 소산수탑
81. 앙굴산난
82. 진조감승
83. 세존불설
84. 덕산문화
85. 흥화촌재
86. 현사과환
87. 보자지격
88. 운문일구
89. 병정구화
90. 운문종성
91. 양기려자
낙수법어
1. 선림지중
2. 방함록서
3. 총재법어
4. 당십오일
5. 갑인하해
6. 육여사재
7. 을묘하해
8. 경신하해
9. 신유하해
후기"
책속으로
1. 덕산탁발德山托鉢 바리때를 들고【 수시 】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잡고 한참 묵묵한 후에 말씀하셨다.)
이렇고 이러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해와 달이 캄캄하도다.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가을 국화 누렇도다.
기왓장 부스러기마다 광명이 나고
진금眞金이 문득 빛을 잃으니
누른 머리 부처는 삼천리 밖으로 물러서고
푸른 눈 달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도리를 알면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거꾸러지며
이 도리를 알지 못하면 삼두육비三頭六臂이니 어떠한가?
붉은 노을은 푸른 바다를 뚫고
눈부신 해는 수미산을 도는도다.
여기에서 정문頂門의 정안正眼을 갖추면 대장부의 할 일을 마쳤으니 문득 부처와 조사의 전기대용全機大用을 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둘째 번 바가지의 더러운 물을 그대들의 머리 위에 뿌리리라.
(上堂하여 拈拄杖하고 良久云)
也恁麽也恁麽하니 天崩地壞日月黑이요
不恁麽不恁麽하니 嗚飛兎走秋菊黃이로다
瓦礫이 皆生光하고 眞金이 便失色이라
黃頭는 退三千하고 碧眼은 暗點頭로다
會得則七顚八倒요 不會則三頭六臂니 作麽作麽오
紅霞는 穿碧海하고 白日은 繞須彌로다
於此에 具頂門正眼하면 丈夫能事畢이라 便見佛祖의 全機大用이어니와 其或未然이면 更有第二杓惡水하야 撒在諸人頭上하리라
만약 여기에서 바른 안목을 갖춘다면 대장부의 할 일을 다 마친 것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노파심으로 사족蛇足, 즉 뱀의 발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 본칙 】
예부터 조사祖師 가운데 영웅英雄은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이라고 모두 말하니,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은 실로 천고千古에 큰 안목眼目이라 이는 총림叢林의 정론定論이다. 그중 덕산스님 밑에서 두 사람의 큰 제자가 나왔으니 암두스님과 설봉스님이다.
덕산스님이 어느 날 공양供養이 늦어지자 손수 바리때를 들고 법당에 이르렀다.
공양주이던 설봉雪峰스님이 이것을 보고 “이 늙은이가 종도 치지 않고 북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들고 어디로 가는가?” 하니, 덕산스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 곧장 방장方丈으로 돌아갔다.
설봉스님이 이 일을 암두스님에게 전하니 암두스님이 “보잘것없는 덕산이 말후구末後句도 모르는구나.” 하였다.
덕산스님이 그 말을 듣고 암두스님을 불러 묻되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 하니, 암두스님이 은밀히 그 뜻을 말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데 그전과 달랐다.
암두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기쁘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아는구나. 이후로는 천하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다만 삼 년뿐이로다.” 했는데, 과연 삼 년 후에 돌아가셨다.
自古로 祖席之英雄은 咸稱臨濟德山하나니 臨濟德山은 實是千古大眼目이니라 此則叢林定論也로다 其中德山下에 出兩大弟子하니 岩頭雪峰也라
德山이 一日에 飯遲어늘 自托鉢至法堂上이러니 飯頭雪峰이 見云 這老漢이 鐘未鳴鼓未打어늘 托鉢向什麽處去오 山이 低頭便廻하니라 峯이 擧似岩頭한대 頭云 大小德山이 不會末後句로다 山이 聞擧하고 喚岩頭하야 問호대 爾不肯老僧耶아 頭가 密啓其意하니라 山이 明日上堂에 與尋常으로 不同이어늘 頭가 撫掌大笑云 且喜老漢이 會末後句로다 他後에 天下人이 不奈何하리라 雖然如此나 只得三年이라 하니 果三年後에 遷化하니라.
* 덕산德山스님은 20세에 출가하여 처음에는 경과 율을 공부하였습니다. 처음 서촉西蜀에 있으면서 교리연구가 깊었으며 특히 『금강경』에 능통하여 세상에서 ‘주금강周金剛’이라고 칭송을 받았습니다. 스님의 속성俗姓이 주周씨였습니다. 당시 남방에서 교학을 무시하고 오직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하는 선종의 무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분개하여 평생에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금강경소초金剛經疏鈔』를 짊어지고 떠났습니다. 가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배가 고픈데 마침 길가에 한 노파가 떡을 팔고 있었습니다. 덕산스님이 그 노파에게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그 떡을 좀 주시오.” 하니, 그 노파가 “내 묻는 말에 대답하시면 떡을 드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떡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여 덕산스님이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노파가 물었습니다.
“지금 스님의 걸망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금강경소초』가 들어 있소.”
“『금강경』에 ‘과거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스님은 지금 어느 마음에 점심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점심點心 먹겠다.”고 하는 말을 빌려 이렇게 교묘하게 질문했습니다. 이 돌연한 질문에 덕산스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그렇게도 『금강경』을 거꾸로 외우고 모로 외우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떡장수 노파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다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이 근방에 큰스님이 어디 계십니까?”
“이리로 가면 용담원龍潭院에 숭신崇信선사가 계십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곧 용담으로 숭신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오래 전부터 용담龍潭이라고 말을 들었더니 지금 와서 보니 용龍도 없고 못潭도 없구만요.” 하고 용담 숭신선사에게 말하니 숭신스님이 말했습니다.
“참으로 자네가 용담에 왔구먼.”
그러자 또 주금강은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숭신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하루는 밤이 깊도록 숭신스님 방에서 공부하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오려고 방문을 나서니 밖이 너무 어두워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숭신스님이 초에 불을 켜서 주고 덕산스님이 받으려고 하자 곧 숭신스님이 촛불을 훅 불어 꺼 버렸습니다. 이때 덕산스님은 활연히 깨쳤습니다. 숭신스님께 절을 올리니 용담스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어째서 나에게 절을 하느냐?”
“이제부터는 다시 천하 노화상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금강경소초』를 법당 앞에서 불살라 버리며 말했습니다.
“모든 현변玄辯을 다하여도 마치 터럭 하나를 허공에 둔 것 같고, 세상의 추기樞機를 다한다 하여도 한 방울 물을 큰 바다에 던진 것 같다.”
그 후 후배들을 제접할 때는 누구든지 보이기만 하면 가서 몽둥이棒로 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덕산스님이 법 쓰는 것을 비유하여 ‘비 오듯이 몽둥이로 때린다’고 평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대중방을 뒤져 책이란 책은 모조리 찾아내어 불살라 버리곤 하였습니다. 그 당시 중국의 두 가지 대표적 선풍을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고 하는데 임제스님의 할과 함께 덕산스님의 몽둥이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제자로는 설봉 의존스님, 암두 전활스님 등이 있습니다.
그런 덕산스님 회상에서 두 제자가 함께 계실 때였습니다. 한번은 공양시간이 늦어졌습니다. 하도 때가 늦어지니까 덕산스님이 ‘공양이 왜 이리 늦는가?’ 해서 바리때를 들고 식당으로 나아갔어요. 당시 설봉스님이 반두飯頭, 즉 지금으로 말하자면 공양주 소임을 살고 있었습니다. 설봉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는 “이 늙은이야, 아직 북도 두드리지 않고 종도 치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무엇 하러 들고 나오느냐?”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자 천하의 덕산스님이 아무 말씀도 않고 머리를 푹 숙이고는 방장方丈으로 돌아갔습니다.
설봉스님이 이 일을 암두스님에게 말했습니다. 암두스님이 그 말을 듣고는 “덕산인지 뭔지 조실에 앉아있으면서 말후구末後句도 모르는구만.” 하였습니다. 말후구란 선종 최후의 관문입니다.
그 말이 덕산스님 귀에 전해졌어요. 그래 덕산스님이 암두를 불러 물었습니다.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
그러자 암두스님이 은밀히 덕산스님에게 그 뜻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시는데 과연 그 전과는 달랐습니다. 그러자 암두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기쁘다, 늙은이가 참으로 말후구를 알았구나. 이후로는 천하의 누구도 이 늙은이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삼 년 더는 못살 것이다.” 했는데, 과연 삼 년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 본칙 】
이것이 종문宗門의 높고 깊은 법문인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이다. 이 공안公案에 네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는 덕산 대조사가 어째서 설봉스님의 말 한마디에 머리를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갔는가, 진실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는가,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었을까?
둘째는 덕산스님이 과연 말후구를 몰랐는가, 말후구도 모르고서 어떻게 대조사가 되었을까?
셋째는 은밀히 그 뜻을 말하였다 하니 무슨 말을 하였을까?
넷째는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의 가르침에 의해 말후구를 알았으며, 또 그 수기授記를 받았을까? 그러면 암두스님이 덕산스님보다 몇 배나 훌륭하였단 말인가?
此是宗門向上牙爪인 德山托鉢話也라
此公案에 有四箇難點하니 初則德山大祖師가 爲什麽하야 雪峰一言之下에 低頭歸方丈耶아 實無對句能力耶아 且有他意耶아 次則德山이 果然不會末後句耶아 不會末後句而焉能作大祖師오 三則密啓其意云하니 道个甚麽오 第四則德山이 因岩頭敎示하야 得會末後句而又蒙授記耶아 然則岩頭勝於德山數倍耶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