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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 선문정로

저자·역자 강경구 출간일2022년 01월 25일
책정보페이지: 신국판, 1,016쪽판형: ISBN:9791191868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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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81년에 출간된 성철스님의 『선문정로』는 한국의 수행풍토가 선문의 바른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반성에서 촉발된 법문이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간화선 선사였던 성철스님은 ‘순수한’ 간화선의 수행전통을 바르게 정립하고, 그것을 바르게 실천하는 길을 제시하기 위하여 『선문정로』를 집필하셨다. 저자 강경구 선생은 『선문정로』에 대한 해설서를 쓰기로 마음먹고, ‘성철스님 따라하기’와 ‘성철스님에 대해서 말하기’를 실천하였다. 『선문정로』의 한 문장에서, 쉼표 하나와 마침표 하나에서, 혹은 저 넓디넓은 행간 속에서 스스로 성철스님과 동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되돌아보며 “왜?”, “어째서?”, “이 뭣고?”와 같은 시공을 끊어낸 질문과 긴 씨름을 하였다. 그리하여 ‘돈오원각론頓悟圓覺論’, ‘실참실오론實參實悟論’, ‘구경무심론究竟無心論’으로 ‘성철선’의 3대 종지를 정립하고, 마침내 10여 년에 걸친 『선문정로』 읽기를 마무리하고, 그 결과로 『정독 선문정로』를 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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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구성>
<선문정로> 19장 체제를 그대로 따르면서 각 장마다 1. 설법의 맥락, 2. 설법의 특징을 서술하고, 3. 『선문정로』의 ‘인용문 분석’으로, 성철스님의 인용문은 별색으로, 글자의 생략과 바뀜, 대체 등은 대괄호 [ ]와 동그라미 숫자를 이용하여 검정색으로 구분하여 표시하였다. 이어서 『선문정로』의 번역문을 싣고 저자의 현대어역을 실었다. 그리고 『정독 선문정로』의 핵심, 즉 ‘성철스님 따라하기’와 ‘성철선 실천하기’의 내용이 담긴 저자의 상세한 해설이 있다. 저자의 현대어역은 한문에 능수능란했던 성철스님의 한문투의 번역문을 한글세대가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했다. 또한 글자의 생략이나 바뀜 등은 [ ]를 이용하되 문맥과 뜻이 통하도록 했다. 이 책의 본문에 해당하는 [해설]에서는 인용문의 출전을 밝히고, 성철스님께서 간절하게 돈오돈수를 주장하신 이유를 설명하고, 인용문에 있는 동그라미 숫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분석하여, 성철스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자세히 살폈다.

저자소개
저자|강경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대한중국학회 회장과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부산불교방송에서 ‘서유기와 불교’를 주제로 라디오 강연을 했으며, 국제신문 종교칼럼(불교)을 집필했다. 저서로는 『두 선사와 함께 읽은 신심명』, 『평설 육조단경』 외 23권이 있고, 논문으로는 「『서유기』 화과산의 불교적 독해」, 「『선문정로』 문장 인용의 특징에 관한 고찰(1,2,3,4)」 등 70여 편이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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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벽해원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친구 따라 우연히 해인사 백련암에 갔다가 성철스님을 만난 인연으로 1972년 1월 15일 성철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백련암을 떠나지 않고 22년 동안 큰스님을 시봉하였고, 성철스님 열반 후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철스님기념사업과 불교 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2021년 10월에는 대한불교조계종단의 최고 법계인 대종사를 품수받았다. 현재 해인사 백련암, 산청 겁외사, 부산 고심정사 회주이며, 저서로는 『성철스님 시봉이야기』, 『성철스님 임제록 평석』 등이 있다.

목차
추천의 글┃벽해원택┃『선문정로』의 새 길이 열리다
머리말┃강경구┃바름으로 걸어 바름에 이르는 공부의 제안
일러두기

제1장 견성즉불 見性卽佛
제2장 중생불성 衆生佛性
제3장 번뇌망상 煩惱妄想
제4장 무상정각 無上正覺
제5장 무생법인 無生法忍
제6장 무념정종 無念正宗
제7장 보임무심 保任無心
제8장 오매일여 寤寐一如
제9장 사중득활 死中得活
제10장 대원경지 大圓鏡智
제11장 내외명철 內外明徹
제12장 상적상조 常寂常照
제13장 해오점수 解悟漸修
제14장 분파분증 分破分證
제15장 다문지해 多聞知解
제16장 활연누진 豁然漏盡
제17장 정안종사 正眼宗師
제18장 현요정편 玄要正偏
제19장 소멸불종 銷滅佛種
부록┃성철선의 이해와 실천을 위한 시론
색인┃서명·인명 목록 및 용어 찾아보기

책속으로
<제1장 견성즉불, 17쪽>
원래 선사의 말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행자 내면의 역학 작용을 염두에 두고 발화된다. 그러므로 선사의 말은 그 말을 듣는 당사자의 입장을 빼 버리면 죽은 말만 남게 된다. 성철스님이 ‘내 말에 속지 말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문정로』는 참선 수행자를 위한 지침서이지 성철스님만의 고유한 사상을 피력하기 위한 철학서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 각각의 문장들은 수행자를 윽박질러 옳고 그름의 차원을 벗어나게 하기 위한 고함이고 매질이다. 그런 점에서 『선문정로』는 미완성의 책이다. 수행 당사자가 채워야 할 빈칸을 남겨 놓은 과제물이다. 스승의 옆구리를 쥐어박는 기특한 대답들이 이 빈칸을 채울 때 『선문정로』는 완성되는 것이다. 성철스님이 비타협적이고 배타적이라면 모든 조사들도 비타협적이고 배타적이다. 그 가르침이 스스로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행자의 관념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설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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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오매일여, 377쪽>
우리의 논의는 성철스님이 숙면일여를 내용으로 하는 오매일여의 실경계를 체험하고, 그것을 투과하는 체험을 하였다는 최초의 진실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 그렇지 않다면 『선문정로』의 전체 설법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다시 문헌적 문제를 검토해 보면 전혀 다른 이해가 일어난다. 우선 성철스님이 옛 문헌을 편의적으로 생략하거나 재구성하여 인용하였다는 점을 살펴보겠다. 성철스님은 자신의 수행과 깨달음이 옛 불조들과 다르지 않음을 확신하는 입장에 있었다. 따라서 문장에 묶이지 않고 그것을 활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현대 학문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의 왜곡에 속하지만 옛 한자문화권에서는 흔히 일어났던 일이기도 하다. (중략) 흔히 술이부작述而不作의 핵심이 창작하지 않음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원래 ‘술述’은 옛 사람의 말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심화된 재해석과 새로운 관점의 제시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성철스님의 문헌 인용은 그런 점에서 술이부작의 전통에 맞닿아 있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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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다문지해 777쪽>
성철스님은 교와 선, 해오와 증오, 돈오와 점수와 같은 모순된 둘을 함께 인정하는 통합론을 거부한다. 그 대신 간화선이라는 용광로에 불교의 모든 수증론을 녹여내고자 한다. 그래서 모든 수증론을 논의의 장에 올리되 그 논의의 끝은 항상 활구참구의 실참을 통한 실오로서의 견성, 즉 구경원각에 대한 강조가 되는 것이다. 실참실오를 주장하는 성철선의 주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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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945쪽
『선문정로』는 그 설법이 부정과 비판과 배격의 언어로 진행되다 보니 이에 대한 논의 역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논쟁의 방식으로 전개된 감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보조스님을 겨냥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지 수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강력한 부정과 비판과 배격은 예외 없이 수행자의 내면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는 장애를 향한 것이다. 『선문정로』에 정통성의 측면에서 시비를 가려보자는 의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진정한 핵심은 선수행의 실천을 인도하는 안내서로써의 역할을 지향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옳음과 그름을 가리는 논의의 틀에서 벗어나 이에 대한 적극적 이해와 실천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머리말
“교수님 강의는 쉽고 재미있습니다.”
초기 고심정사 불교대학 강의에서 자주 듣던 말입니다.
“교수님 강의가 너무 어렵습니다.”
요즘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공부가 깊어지면 쉽게 표현되는 법(深入淺出)이라는데, 어쩌자고 자꾸 어려워진단 말인가?
이런저런 인연으로 성철스님의 전법 도량인 고심정사 불교대학에서 강의를 한 지도 대략 15년이 넘었습니다. 불법과 참선에 대한 이해와 실천의 수준이 교양 차원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는 주제였음을 생각하면 만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들어오는 강의를 덥석덥석 받아들인 것은 ‘이참에 불교 공부 한번 제대로 해 보자’는 동기가 심중에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고심정사 불교대학에서 진행한 강의를 돌이켜보면 『신심명ㆍ증도가 강설』, 『육조단경』, 『선문정로』, 『금강경』, 『백일법문』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성철스님의 저서를 가지고 진행한 강의였습니다. 그렇게 강의하면서 공부한 내용을 『두 선사와 함께 읽은 신심명』, 『평설 육조단경』으로 엮어낸 일이 있고, 『증도가』와 『금강경』의 초고가 제 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선문정로』에 대한 공부를 책으로 정리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알기에 이런 책을 쓸 용기를 낸 것일까? 이 명명백백한 선문禪門의 뜰에서 앎의 대상이 될 특별한 무엇이 따로 있을 리 없는데 말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공부를 더 해 갈수록 ‘알 수 없음’의 바다는 오히려 커져 갈 뿐입니다. 그렇다고 헛공부하고 있다고 엄살을 떨지는 않겠습니다. 불교 공부는 원래 까마득한 알 수 없음과의 맞대면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알 수 없음이 커지다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밤송이(栗棘蓬)가 됩니다. 손오공을 꼼짝달싹하지 못하도록 죄는 금강의 머리테(緊箍兒)가 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간절함의 화신化身으로 만듭니다. 펄펄 끓는 고기 솥을 핥지도 못하고 떠나지도 못하는 강아지의 비유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그 간절함이 우리를 지금 이 현장으로 불러내고 또 거듭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간절함만으로 끝난다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목마른 나그네는 오아시스를 만나 시원한 물을 마심으로써 목마름의 낭만을 완성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의 간절함은 깨달음으로써 그 의미가 완성되어야 합니다.
수행은 깨달음이 아니면 한때의 낭만이 되기 쉽고, 깨달음은 수행이 아니면 공허한 큰 소리이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선문정로』입니다. 『선문정로』는 어떤 기특한 경계 체험에도 머물지 않고 간절히 화두를 들어 그 알 수 없음과 맞상대하여 거듭 뚫고 나가도록 몰아치는 ‘방’이고 ‘할’입니다. 궁극의 자유에 이르기 전까지 어떠한 경계에도 묶이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모양 없음(無相)’이고, 알 수 없음과 맞대면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분별 없음(無念)’이며, 거듭 뚫고 나가도록 한다는 점에서 ‘머묾 없음(無住)’입니다. 6조스님의 세 가지 없음의 법문과 손뼉을 맞부딪치듯 서로 통합니다.
『선문정로』의 법문에는 두 개의 의미층이 발견됩니다. 마땅히 실천해야 할 수행의 차원과 할 일을 다 마친 대자유大自由의 차원을 함께 보여주고자 하는 법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초고를 다듬다가 원택스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성철스님은 『금강경金剛經』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사연 많은 이 구절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이 난다’로 해석했다고 합니다. “다들 그 마음을 내야 한다 라고 하는데, 나처럼 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철스님은 우리들이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는’ 길을 걸어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이 나는’ 자리에 도달하도록 안내하기 위해 『선문정로』를 시설한 것입니다.
나는 『선문정로』의 독서가 우리를 성철스님이 도달한 바로 그 자리로 이끄는 길 안내가 돼야 한다는 한다는 입장에서 이 법문을 읽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나는 『선문정로』가 하나의 철학사상이라기보다는 실참실오實參實悟의 경험을 압축한 실천론이라는 점을 확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철선性徹禪’이라는 용어를 들어 인용문 해설의 주된 기제로 삼았습니다. 실천론이라고 해서 이해와 논의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문禪門에서 중요한 것은 실천이고 체험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선문정로』는 단순하면서도 명백한 주제의 거듭된 변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책에서 거듭 말하는 ‘돈오원각론頓悟圓覺論’, ‘실참실오론實參實悟論’, ‘구경무심론究竟無心論’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성철선의 3대 종지에 대해서는 논문의 형태로 정리한 것을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실었으므로 1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읽어보아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어렵다는 평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쉬운 문제조차 어렵게 푸는 ‘교수의 악습’ 때문이라면 해결할 길이 없지 않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나를 기준으로 시비是非와 선악善惡과 미추美醜를 나누는 삶의 방식과 내용 자체가 선문의 길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알고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역설을 만나게 되는 것이 이 여정입니다.
그런데 알고 이해하는 일 자체가 깨달음의 장애가 됨을 알면서도 다시 그 앎과 이해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선적禪的 담론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철선에 대해 말하기를 실천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언어와 실상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운명적 간극을 거듭 확인하게 되고, 이로 인해 진실로 알고자 하는 간절함의 순도가 높아집니다. 그리하여 이 책이 성철선에 대한 이해를 넘어 성철선을 실천하는 현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려면 읽기는 수시로 멈춰야 하고 실천은 지금 당장 일어나야 합니다.
어차피 성철스님은 한마디밖에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한마디조차 지금 다시 물어보면 “내 말에 속지 마라.”라고 말끔히 부정될 수도 있습니다. 펼치면 팔만대장경이 되고 거두어들이면 한마디조차 부정되는 이 현장에 『선문정로』는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은 한 문장에서, 혹은 쉼표 하나와 마침표 하나에서, 혹은 저 넓디넓은 행간에서 우리 스스로 성철스님과 동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되돌아보기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왜?”, “어째서?”, “이 뭣고?”와 같은 시공을 끊어낸 질문이 바탕에 깔린다면 그런 금상첨화가 다시 없겠습니다.
『선문정로』에 대한 해설서를 쓰기로 마음먹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천천히 읽기와 당장의 실천을 기약한 출발이었지만 여전히 말과 생각은 넘치고 실천은 부족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주어진 좋은 인연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 미완의 책은 나오기조차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철스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는 일을 필생의 과제로 삼고 있는 원택스님의 간곡한 격려가 없었다면 이 책은 아마 10년이 더 지나도 기약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고심정사 경전반 학생들이 보여준 호감 어린 관심과 순수한 신심도 이러한 글쓰기와 탐구를 지속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장경각 정길숙 부장님으로부터 받은 도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맞춤법 교정이나 체제의 정리와 같은 전문 편집자로서의 도움도 컸지만, 교정 지시가 빼곡한 1981년 초판본의 복사 자료를 제공하여 성철스님의 본래 의도를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모든 원문을 확인하여 필요한 조언을 찾아내는 치밀함으로 원고의 빈틈을 메꿔주었습니다.
원고를 교정하는 중에 성철스님의 손상좌인 한 스님의 질문을 전달받았습니다. “『선문정로』의 바름(正)을 새로움(新)으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까?” ‘정正’ 자에 ‘새롭게 시작한다(始)’는 뜻이 있는 만큼 문자학적으로 그렇게 해석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이 질문은 간화선에 뜻을 둔 독자들과 함께 ‘바름이 곧 새로움’인 활구참구의 문으로 쑥! 들어가 보자는 큰 제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이 큰 질문을 이 책을 손에 들고 계신 모두에게 돌리고자 합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쉽고, 재미있고, 새로운 ‘선문정로’를 갖게 될 때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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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31일
이뭣고 연구실에서
강경구 두 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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