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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위상 찾자` 성철·청담 스님 60년 전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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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6-04 16:40 조회11,8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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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위상 찾자` 성철·청담 스님 60년 전 결의 [중앙일보]

봉암사 결사는 

조선 500년과 일제시대를 거치며 불교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승려의 신분은 천민이었고, 절집은 대부분 결혼한 대처승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경북 문경의 대승사에서 함께 수행하던 청담 스님과 성철 스님이 뜻을 모았다. "부처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1947년 가을에 성철.청담.자운.보문.우봉 스님이 문경의 봉암사에 모였다. 이들은 "부처님 당시의 수행가풍을 되살리자"고 결의했다.

성철 스님은 '부처님 법과 부처님 제자' 외에는 다 정리했다. 칠성탱화, 산신탱화 등 '비불교적 요소'는 모두 절에서 몰아냈다. 비단 가사와 장삼도 모아서 태워버렸다. 그리고 승복을 검소하게 바꾸었다.

스님에게 '삼배'를 올리는 것도 이때 생겼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정신도 따랐다. 스님들이 직접 나무하고, 농사짓고, 밥하고, 물을 길었다. 소작료를 거부하고, 신도들의 보시도 받지 않았다. 이 소문은 전국으로 퍼졌다. 전국의 수좌들이 몰려와 선방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결사는 오래 가지 못했다. 봉암사가 있는 희양산은 백두대간의 줄기다. 49년부터 빨치산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결국 50년 3월 동안거 해제 후 봉암사 스님들은 고성 문수암으로 수행처를 옮겨야만 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결사 대중은 흩어졌다. 그러나 봉암사 결사는 '한국 불교'를 다시 일으킨 역사적.상징적 사건으로 남아 있다. 봉암사 결사 스님 중 그동안 종정 4명, 총무원장 7명이 배출됐다.

현재 봉암사는 조계종 종립특별선원으로 선승들의 수행환경을 지키기 위해 25년간 산문을 폐쇄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
 2007.10.20 04:55 입력 / 2007.10.20 06: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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