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밥값한 책” 다시 읽기 [만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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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6-04 16:27 조회16,172회 댓글0건본문
“부처님께 밥값한 책” 다시 읽기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 - 선문정로
“완전한 깨달음 이전에 깨달았다고 하지 말라”
성철스님. 모든 종교를 초월한 현대인들에게 스님의 이름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듯, 20세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 추앙받고 있다.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언젠가 한 신문기자가 스님을 찾아 ‘산은 산, 물은 물’의 뜻을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스님은 “산을 산이라고 하고 물을 물이라고 하는데, 자네는 뭐라고 하는가?” 했단다. 스님의 깨달음에 대한 견해가 바로 나타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선문정로》는 성철 스님이 《본지풍광》과 함께 “부처님께 밥 값 했다”고 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저술이었다. 그 《선문정로》에 성철 스님이 강설한 육성을 담고 1,500여 개의 각주를 붙여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선문정로》로 다시 태어났다.
《선문정로》는 1981년 초판이 간행된 이래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한 관심과 애정 속에서 이 시대의 고전이 되었다. 하지만 한자가 그대로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 자체가 한문투여서 현대인들이 쉽게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은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선문정로》를 교재로 해인사에서 직접 강설한 성철 스님의 육성을 19장 중 17장을 실어 재출간했다.
성철 스님이 《선문정로》를 통해 전하려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스님은 강설에서 “전국 선방에 견성 못한 사람이 도리어 드문 것이 현재 한국불교의 실정이고, 이 자리에 앉은 선방 수좌들 역시 나름대로 견성에 대한 견해를 한 가지씩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흔히 참선하다가 기특한 소견이 생기면 그것을 두고 ‘견성했다’거나 ‘한 소식했다’고들 하는데 정작 만나서 살펴보면 견성하지 못한 사람하고 똑같다. 과연 무엇을 깨쳤나 점검해 보면 제 홀로 망상에 휩싸여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떠드는 것에 불과하다. …해탈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견성이 아니다. 이것이 《선문정로》의 근본사상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을 때라야 수행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철 스님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돈오점수’의 깨달음은 완전한 깨달음일 수 없다는 것이다.
“완전한 깨달음 이전에는 깨달았다고 하지 말라.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한결같이 설명하는 《선문정로》는 바로 진정한 깨달음과 진정한 수행을 위한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성철 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했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아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했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했고, 이후 18년 동안 퇴설당과 백련암에 머무르며 서릿발같은 선풍의 기강을 드높여 가야산 호랑이로 불렸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 퇴설당에서 세수 81세, 법납 58세로 열반했다.
하경목 기자
발행일 : 1998-01-27
작성일 : 2007-01-22 오전 9:20:56
작성자 : 하경목 / hkyungm@manbulshinmun.com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 - 선문정로
“완전한 깨달음 이전에 깨달았다고 하지 말라”
성철스님. 모든 종교를 초월한 현대인들에게 스님의 이름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듯, 20세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 추앙받고 있다.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언젠가 한 신문기자가 스님을 찾아 ‘산은 산, 물은 물’의 뜻을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스님은 “산을 산이라고 하고 물을 물이라고 하는데, 자네는 뭐라고 하는가?” 했단다. 스님의 깨달음에 대한 견해가 바로 나타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선문정로》는 성철 스님이 《본지풍광》과 함께 “부처님께 밥 값 했다”고 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저술이었다. 그 《선문정로》에 성철 스님이 강설한 육성을 담고 1,500여 개의 각주를 붙여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선문정로》로 다시 태어났다.
《선문정로》는 1981년 초판이 간행된 이래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한 관심과 애정 속에서 이 시대의 고전이 되었다. 하지만 한자가 그대로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 자체가 한문투여서 현대인들이 쉽게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은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선문정로》를 교재로 해인사에서 직접 강설한 성철 스님의 육성을 19장 중 17장을 실어 재출간했다.
성철 스님이 《선문정로》를 통해 전하려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스님은 강설에서 “전국 선방에 견성 못한 사람이 도리어 드문 것이 현재 한국불교의 실정이고, 이 자리에 앉은 선방 수좌들 역시 나름대로 견성에 대한 견해를 한 가지씩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흔히 참선하다가 기특한 소견이 생기면 그것을 두고 ‘견성했다’거나 ‘한 소식했다’고들 하는데 정작 만나서 살펴보면 견성하지 못한 사람하고 똑같다. 과연 무엇을 깨쳤나 점검해 보면 제 홀로 망상에 휩싸여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떠드는 것에 불과하다. …해탈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견성이 아니다. 이것이 《선문정로》의 근본사상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을 때라야 수행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철 스님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돈오점수’의 깨달음은 완전한 깨달음일 수 없다는 것이다.
“완전한 깨달음 이전에는 깨달았다고 하지 말라.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한결같이 설명하는 《선문정로》는 바로 진정한 깨달음과 진정한 수행을 위한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성철 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했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아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했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했고, 이후 18년 동안 퇴설당과 백련암에 머무르며 서릿발같은 선풍의 기강을 드높여 가야산 호랑이로 불렸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 퇴설당에서 세수 81세, 법납 58세로 열반했다.
하경목 기자
발행일 : 1998-01-27
작성일 : 2007-01-22 오전 9:20:56
작성자 : 하경목 / hkyungm@manbulshinm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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