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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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6-04 16:43 조회15,853회 댓글0건본문
[정진홍의소프트파워]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40년 전인 1967년 성철 스님이 해인총림의 초대 방장으로 취임한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 추위도 아랑곳 않고 참선에 용맹정진했던 선승들은 동안거(겨울 참선 기간) 때 성철 스님으로부터 일곱 차례에 걸쳐 법문을 들었다. 그 후 그 법문 내용은 성철 스님이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된 이듬해인 82년 ‘본지풍광(本地風光)’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성철 스님은 출간 직후 “그나마 부처님께 밥값 했다”고 말할 정도로 ‘본지풍광’에 대해 깊은 애정을 표했다. 하지만 ‘본지풍광’은 정통 선가의 화두와 게송을 다루고 있어 선승이 아닌 일반인이 읽기엔 아주 어려웠다. 한문 투로 전통적인 법문 형식에 따라 책을 구성했기에 난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최근 성철 스님의 상좌였던 원택 스님이 40년 전 녹음된 성철 스님의 육성 법문을 구어체 그대로 풀어 다시 한 권의 책으로 내놓았다. 그 제목인즉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다.
그 화두 같은 제목을 접하는 순간 나는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14년 전 열반에 드셨던 성철스님이 되살아나 “이 뭐꼬?”라고 질책하며 이 풍진 세상을 향해 장군죽비를 내려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장군죽비를 맞을 사람이 나 아닌 남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떠오른 사람은 마치 주식시장의 우회상장과도 같은 방법으로 경선 불복보다 더 질 나쁜 경선 파괴를 자행하며 스스로 만든 당을 떠나면서까지 대선에 급거 출마한 이회창씨였다. ‘둘도 없는 원칙주의자’ ‘대쪽’이라 불리던 이가 원칙이고 뭐고 다 집어던진 그 어이없다 못해 서글프기까지 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과연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투명세정의 선봉임을 자임하던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때마다 꼬박꼬박 1000만원, 1만 달러씩 상납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구치소에 수감됐다. 애초에 고결한 청백리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물전을 고양이에게 맡겼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는 법정에서 자신의 결백을 밝히겠다고 호언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에게 도대체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고 ‘창조경영’을 모토로 내건 삼성이 구시대적 행태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검사와 정치인들에 대해 떡값·와인·상품권 등의 온갖 물량공세를 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대목에서 도대체 무엇이 삼성의 본래면목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일반적 봉급쟁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100억원이 넘는 대가를 받으며 다년간 삼성의 법무팀장으로 일했던 이가 이제는 얼굴을 바꿔 마치 의사가 진료하던 자기 환자의 치부를 까발리듯 삼성의 어둡고 아픈 구석을 날 선 메스로 헤집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장본인인 김용철 변호사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고.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성철 스님이 40년 묵힌 육성으로 꾸짖듯 말하는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는 화두는 결코 남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폄훼하라고 만든 언어적 무기가 아님을 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를 향한 진솔하고 준엄한 질책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대체 우리는 과연 몇 가지의 얼굴과 면목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이중, 삼중, 아니 카멜레온처럼 그때그때 편의적으로 자신의 면목을 바꿔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어쩌면 너무나 오랫동안 스스로를 속여왔기에 그 자기 기만에 길들여지고 포박당해 되레 그것이 자신의 본래면목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너 나 할 것 없이 거울 앞에 서 보자. 그리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무엇이 나의 본래면목이냐’고.
정진홍 논설위원
<중앙일보> 2007년 11월 10일자
2007.11.09 18:50 입력 / 2007.11.09 20:37 수정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40년 전인 1967년 성철 스님이 해인총림의 초대 방장으로 취임한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 추위도 아랑곳 않고 참선에 용맹정진했던 선승들은 동안거(겨울 참선 기간) 때 성철 스님으로부터 일곱 차례에 걸쳐 법문을 들었다. 그 후 그 법문 내용은 성철 스님이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된 이듬해인 82년 ‘본지풍광(本地風光)’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성철 스님은 출간 직후 “그나마 부처님께 밥값 했다”고 말할 정도로 ‘본지풍광’에 대해 깊은 애정을 표했다. 하지만 ‘본지풍광’은 정통 선가의 화두와 게송을 다루고 있어 선승이 아닌 일반인이 읽기엔 아주 어려웠다. 한문 투로 전통적인 법문 형식에 따라 책을 구성했기에 난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최근 성철 스님의 상좌였던 원택 스님이 40년 전 녹음된 성철 스님의 육성 법문을 구어체 그대로 풀어 다시 한 권의 책으로 내놓았다. 그 제목인즉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다.
그 화두 같은 제목을 접하는 순간 나는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14년 전 열반에 드셨던 성철스님이 되살아나 “이 뭐꼬?”라고 질책하며 이 풍진 세상을 향해 장군죽비를 내려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장군죽비를 맞을 사람이 나 아닌 남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떠오른 사람은 마치 주식시장의 우회상장과도 같은 방법으로 경선 불복보다 더 질 나쁜 경선 파괴를 자행하며 스스로 만든 당을 떠나면서까지 대선에 급거 출마한 이회창씨였다. ‘둘도 없는 원칙주의자’ ‘대쪽’이라 불리던 이가 원칙이고 뭐고 다 집어던진 그 어이없다 못해 서글프기까지 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과연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투명세정의 선봉임을 자임하던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때마다 꼬박꼬박 1000만원, 1만 달러씩 상납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구치소에 수감됐다. 애초에 고결한 청백리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물전을 고양이에게 맡겼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는 법정에서 자신의 결백을 밝히겠다고 호언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에게 도대체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고 ‘창조경영’을 모토로 내건 삼성이 구시대적 행태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검사와 정치인들에 대해 떡값·와인·상품권 등의 온갖 물량공세를 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대목에서 도대체 무엇이 삼성의 본래면목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일반적 봉급쟁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100억원이 넘는 대가를 받으며 다년간 삼성의 법무팀장으로 일했던 이가 이제는 얼굴을 바꿔 마치 의사가 진료하던 자기 환자의 치부를 까발리듯 삼성의 어둡고 아픈 구석을 날 선 메스로 헤집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장본인인 김용철 변호사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고.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성철 스님이 40년 묵힌 육성으로 꾸짖듯 말하는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는 화두는 결코 남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폄훼하라고 만든 언어적 무기가 아님을 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를 향한 진솔하고 준엄한 질책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대체 우리는 과연 몇 가지의 얼굴과 면목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이중, 삼중, 아니 카멜레온처럼 그때그때 편의적으로 자신의 면목을 바꿔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어쩌면 너무나 오랫동안 스스로를 속여왔기에 그 자기 기만에 길들여지고 포박당해 되레 그것이 자신의 본래면목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너 나 할 것 없이 거울 앞에 서 보자. 그리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무엇이 나의 본래면목이냐’고.
정진홍 논설위원
<중앙일보> 2007년 11월 10일자
2007.11.09 18:50 입력 / 2007.11.09 20: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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