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문도회(대표 천제스님)와 불교신문(사장 수불스님)이 주최하고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스님) 부설 성철선사상연구원이 주관하는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제3차 학술포럼이 지난 9월23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현대 한국 사회와 퇴옹성철’을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포럼은 2013년까지 총 12회에 걸쳐 진행되는 대장정의 세 번째 마당으로, 성철스님이 해인총림 방장으로 역할을 하던 시기인 1970년대를 중심으로 스님의 사상과 역할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지난 9월23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제3차 학술포럼 모습. 김형주 기자 |
한편 4차 포럼은 오는 11월24일 ‘퇴옹성철과 종교의 현실 참여’를 주제로 진행되며, 탄신 100주년인 2012년에는 ‘퇴옹성철과 돈오돈수’를 주제로, 열반 20주기인 2013년에는 ‘퇴옹성철과 한국불교의 미래’를 주제로 각각 3월과 5월, 9월, 11월 총 4회씩 포럼이 펼쳐질 예정이다.
■ 기조발제 - 김성철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불교 본질 회복이 수행자의 역할”
불교 위상 제고위해 순수불교 건립 매진
1965년 한일협정, 1969년 3선개헌, 1972년 유신헌법, 1979년 10.26 등 1970년대 이후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세속의 일에 대해 일체 관심을 끊고 현실정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던 성철스님의 행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현대 한국 사회와 퇴옹성철의 위상과 역할’을 주제로 기조발제에 나선 김성철 교수는 “성철스님이 수행자의 본분을 오롯이 지켰던 이유는 당시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 땅에 떨어졌던 불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적극적인 사회 참여보다는 “산승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 불교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라는 인식 하에 수행자의 본분을 지킴으로써 ‘순수불교’를 되살리고자 했던 것이 스님이 생각이라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이어 김성철 교수는 이러한 성철스님의 생각은 기복적인 불공과 천도재 거부, 봉암사 결사, 동구불출 등 치열한 수행자의 길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또 김성철 교수는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때에 불교인들이 뭘 한 게 있느냐는 비판은 한반도 정치와 종교의 대외 종속성에 몽매한 단견”이라고 지적하며 “세계적인 정치적 종교조직인 가톨릭과 미국의 위력을 등에 업은 개신교였기에 신부와 목사들이 열정적인 이타행을 시현할 수 있었다”고 해석했다.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가톨릭, 개신교와 달리 불교의 경우 당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사회 참여가 아닌 ‘순수불교’를 건립하는 일이었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성철 교수는 “불교적 사회참여에는 어떤 정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상대에 따라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몸을 나투는 것”이라며 “정치적 격동기에 성철스님이 담당했던 역할에 대해서도 남의 잣대가 아니 이런 불교적 원칙에 준해서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성철 교수는 “성철스님이 보기에 당시에 한국의 출가자가 해야 할 일은 섣부른 사회참여가 아니라 불교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었다”고 규정하며 △장좌불와와 용맹정진 △스님에 대한 삼배의 정례화 △친견을 위한 3000배의 관문 △돈오돈수 이론의 제시 △선림고경총서의 출간 등 당시 스님의 행보는 “현대화와 함께 위기에 처했던 불교를 부흥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평가했다.
■ 발제 1 - 문무왕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원 박사
“성철스님 영향력, 참다운 원로에 대한 갈망”
불교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형상화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원 문무왕 박사는 대중매체 분석을 통한 성철스님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분석했다. 특히 문무왕 박사는 1993년 성철스님의 열반을 전후로 사회에 몰아닥친 ‘성철신드롬’을 “사회에 있어서 원로의 영향력과 그 영향력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적 상징성의 확대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문무왕 박사는 ‘퇴옹성철의 사회적 영향력에 관한 시론적 접근’을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사회적 현상이자 문화적 상징성으로서의 스님의 역할을 규명했다. 문무왕 박사는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부분은 성철스님과 관련된 사상적 측면보다는 대중매체를 통해 사회적 파장이 나타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영향력에 관한 문제를 살피기 위해 불교계 내부에서 이뤄지는 사상적 접근이 아닌 언론을 중심으로 한 대중 인식부분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문 박사의 주장이다.
문무왕 박사는 매년 <시사저널>에서 실시하고 있는 ‘한국 누가 움직이는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8년 0.7%의 지지율로 13위에 성철스님이 오르기 시작한 이래 2011년까지 스님의 영향력은 점차 증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현대 한국사회가 참다운 원로에 대한 갈망이 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무왕 박사는 “사회적 원로에 대한 갈증이 증대할수록 성철스님의 영향력이 증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성철스님의 사회적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실례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문무왕 박사는 “성철스님의 사회적 영향력은 불교라는 종교의 상징성과 맞물려 있으며 이는 성철스님이라는 인물에 투영된 불교에 대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면서 “이는 성철스님이 고심한 불교계, 선수행, 대중화 등의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중첩되며 스님의 영향력이 사회에 끼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문무왕 박사는 “성철스님의 사회적 영향력은 스님에 의해 구축된 이미지의 사회적 구현이며 스님의 법문과 열반을 계기로 한 이미지 구축은 완벽하게 불교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형상화 됐다”면서 “사회에 정신적 지표가 상실되어가는 시점에서 성철스님의 사회적 영향력이 증대하는 경향을 볼 때 스님이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스님(오른쪽)이 종합토론에서 총평하는 모습. 김형주 기자 |
■ 발제 2 - 최원섭 성철선사상연구원 전임연구원
“우리말 법어, 불교 현대화를 위한 노력”
은둔적 이미지 잘못…현대적 어휘 필요성 자각
성철선사상연구원 최원섭 연구원은 불교의 핵심을 현대 학문을 이용한 법어로 대중에게 전하고자 했던 성철스님의 의도에 대해 고찰했다.
최원섭 연구원은 ‘불교의 현대화에 담긴 퇴옹성철의 의도’를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성철스님이 종정에 취임한 이후 공식적으로 처음 발표한 법어는 1981년 초파일법어로 쉬운 우리말로 불교를 설명하는 현대적인 법어였다”면서 “이후로도 1993년 열반에 들 때까지 신년법어와 초파일법어를 우리말로 발표했다”고 밝혔다.
최원섭 연구원은 종정 추대 법어와 함께 수행, 현대학문의 세 가지를 성철스님을 평가하는 핵심단어로 규정했다.
최원섭 연구원은 “해인총림 방장으로서 안거 때 출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문은 한문으로 된 선종 전통의 상당법어 형식이면서도 종정으로서 일반 대중에게 발표하는 법어는 순우리말이라는 점에서 성철스님의 현대적인 안목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현대적인 법어가 불교를 모르는 일반인들을 염두에 두고 발언을 해야 하는 종정이라는 위치 때문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불교 현대화의 노력은 종정의 위치에 오른 1980년대에 들어서 새삼스럽게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게 최 연구원의 설명이다.
최원섭 연구원은 “성전암 동구불출 시기에 불교 전적과 현대 학문의 서적을 함께 보았다는 사실에서 이미 이 시기에 불교의 현대화를 위한 준비를 한 것임을 알 수 있다”면서 “성철스님이 불교를 현대화하는 데 노력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말로 불교 개념어를 표현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원섭 연구원은 “성철스님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은둔적으로만 비쳐져 세상물정에 관심이 없었던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늘 세간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서 “만일 현재 성철스님이 법문을 한다면 클라우드 서비스를 언급하며 데이터 저장방식을 설명하고 최신 어플리케이션을 시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교신문 2755호/ 10월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