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 금당선원 전경. 해제철에도 고요와 정적, 엄숙과 경건함이 주변 공간에 꽉 차 있었다. 김형주 기자 |
1940년 스님은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동안거를 했다. 1939년 은해사 운부암에서 하안거를 한 스님은 그해 동안거를 금강산 마하연에서, 1940년 하안거도 금강산 마하연에서 하고 동안거는 금당선원에서 했다. 여기서 스님은 오도(悟道)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대구 동화사에 갔다. 절 입구 큰 길 양쪽은 벚꽃이 만발하여 가히 벚꽃터널이었다. 맑고 하얀 꽃들이 활짝 피어 하늘을 가리고 간간이 부는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벚꽃이 필대로 다 피었다가 한잎 두잎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보며 내 인생은 언제 저렇게 밝고 환한 모습으로 무성했던 때가 있었는가를 생각했다. 사람도 저 꽃처럼 한 때는 화려했다가 결국은 스러져가는 것인데 내 삶 가운데서는 어느 때가 가장 밝고 환한 때였는가를 따져보니 별로 짚이는 때가 없어 서글펐다.
해제철이라 해도
선원의 출입은 엄했다
작은 문의 위력은
그렇게 대단했다
금방이라도 장군죽비의
싸늘한 소리가
들려올 것 같았다
…
혈맥을 서로 이어받은
종통은 제삼자가
바꾸지 못한다
선원 쪽문. 김형주 기자 |
소리죽여 문을 열고 발소리도 삼가며 선원마당에 들어섰다. 선방 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고요와 정적, 엄숙과 경건함이 주변 공간에 꽉 차 있었다. 금방이라도 장군죽비의 싸늘한 소리가 들여올 것 같았다.
성철스님은 이 선원에서 안거하며 도를 깨쳤다. 스님은 이후 우리가 여느 고승의 행적에서 보듯 누구를 찾아 자신의 공부를 드러내 보이고, 인가(認可)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스님은 생전에 “나는 누구의 법을 받았고 누구에게 전했다”는 말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스님은 오도에 대해, 견성(見性)에 대해 명확한 이론과 실천방법을 일러주었다.
스님은 “내 법을 누구한테 받아서 누구한테 전했다라는 말은 하지 말고 내 법을 알려거든 <본지풍광(本地風光)>과 <선문정로(禪門正路)> 두 권을 보라”고 했다. ‘본지풍광’은 스님의 상당법어집(上堂法語集)으로 1982년 펴낸 책(불광출판부 간)이며 ‘선문정로’는 이름 그대로 참선수행의 지침서로서 견성은 무엇을 말하며 참선수행은 어떻게 해야 하나를 명확하고 세세하게 밝혀 선문수행의 바른 길을 제시한 책(1981년 장경각 간)이다. 스님은 또 <한국불교의 법맥>이란 책(1976년 장경각 간)에서 법을 잇고 등불을 전하는 사법전등(嗣法傳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혀놓았다.
‘선문정로’에서 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선문(禪門)은 견성이 근본이니 견성은 진여자성을 철견(徹見)함이다. 자성은 그를 엄폐한 근본무명, 즉 제8아뢰야의 미세망념이 영절(永絶)하지 않으면 철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선문정전(禪門正傳)의 견성은 아뢰야의 미세가 멸진(滅盡)한 구경묘각(究竟妙覺) 원증불과(圓證佛果)이며 무여열반(無餘涅槃) 대원경지(大圓鏡智)이다.
이 견성이 즉 돈오(頓悟)이니 오매일여(寤寐一如) 내외명철(內外明徹) 무심무념(無心無念) 상적상조(常寂常照)를 내용으로 하여 십지등각(十地等覺)도 선문의 견성과 돈오가 아니다. 따라서 오후보임(悟後保任)은 구경불과(究竟佛果)인 열반묘심(涅槃妙心)을 호지(護持)하는 무애자재의 부사의대해탈을 말한다.
견성방법은 불조공안(佛祖公案)을 참구함이 가장 첩경이다. 불조공안은 극심난해(極深難解)하여 자재보살도 망연부지(茫然不知)하고 오직 대원경지로서만 요지(了知)하나니 공안을 명료(明了)하면 자성을 철견한다. 그러므로 원증불과인 견성을 할 때까지는 공안 참구에만 진력하여야 하나니 원오(圓悟)가 ‘항상 공안을 참구하지 않음이 큰 병’이라고 가책(加責)함은 이를 말함이다.
공안을 타파하여 자성을 철견하면 삼신사지(三身四智)를 원만증득하고 전기대용(全機大用)이 일시에 현전한다. 이것이 살활자재(殺活自在)하고 종횡무진(縱橫無盡)한 정안종사(正眼宗師)이니 정안이 아니면 불조의 혜명을 계승하지 못한다. … 그러나 개개가 본래 비로정상인(毘盧頂上人)이라 자경자굴(自輕自屈)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정안을 활개(豁開)하여 출격대장부(出格大丈夫)가 되나니 참으로 묘법(妙法)중 묘법이다. ….”
성철스님이 안거하며 도를 깨쳤던 동화사. 70년이 흐른 지금 동화사의 청명함이 스님의 오도송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한다. 김형주 기자 |
법을 전하고 받는데 대해 스님은 ‘한국불교의 법맥’에서 이렇게 말한다.
“승가에는 두 종류의 스승이 있다. 하나는 삭발을 허락하고 계를 주는 스승 득도사(得度師)이고 또 하나는 마음을 깨우쳐 법을 이어받게 해주는 스승 사법사(嗣法師)이다. 만약 수계한 스승에게서 마음을 깨우쳐 법을 전해 받게 되면 두 종류의 스승을 겸하게 되지만 다른 스승으로부터 마음을 깨우쳐 법을 전수받게 되면 법을 전해 받은 스승을 따로 정하게 된다.
법을 이은 스승의 계통을 일러 법계(法系) 법맥(法脈) 혹은 종통(宗統) 종맥(宗脈)이라고 한다.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목적은 불도(佛道)를 이루고 또 전하여 잇게 함에 있으므로 법의 스승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승가에서 서로 전해 받는 계보는 법을 잇는 것을 위주로 하는 법맥이 이어오기 때문에 이것을 일컬어 ‘법을 잇고 등불을 전함’이라고 한다. … 그리고 이 불법을 전승하는 것은 몸소 수기(授記)함을 이어받아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는 것(以心傳心)’을 생명으로 한다. 직접 수기함을 이어받지 않으면 법을 이어받고 마음을 전하는 것이 되지 않는다.
이는 법을 전해주고 법을 전해받는 당사자 사이에서만 결정되는 일이요, 제삼자는 인정하느니 안하느니 상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혈맥을 서로 이어받음(血脈相承)이라고 한다. 이는 마치 아버지의 피가 아들에게 전하여짐과 같이 스승과 제자(師資)가 주고받아서 부처님의 법을 서로 이어서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법맥을 전하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혈맥을 서로 이어받은 법맥 즉 종통은 제삼자가 변경시켜 바꾸지 못한다.”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 黃河西流崑崙頂 日月無光大地沈 遽然一笑回首立 靑山依舊白雲中 - 성철스님의 오도송(悟道頌, 도를 깨친 노래) |
■ 되새기는 성철스님 법어
中道가 부처님
중도(中道)가 부처님이니 중도를 바로 알면 부처님을 봅니다. 중도는 중간 또는 중용(中庸)이 아닙니다.
중도는 시비선악(是非善惡) 등과 같은 상대적 대립의 양쪽을 버리고 그의 모순, 갈등이 상통하여 융합하는 절대의 경지입니다. 시비선악 등의 상호 모순된 대립, 투쟁의 세계가 현실의 참모습으로 흔히 생각하지만 이는 허망한 분별로 착각된 거짓 모습입니다.
우주의 실상은 대립의 소멸과 그 융합에 있습니다. 시비(是非)가 융합하여 시(是)가 즉 비(非)요 비(非)가 즉 시(是)이며, 선악이 융합하여 선이 즉 악이요 악이 즉 선이니 이것이 원융무애한 중도의 진리입니다.
자연계뿐만 아니라 우주전체가, 모를 때에는 제각각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모두 일체(一體)입니다. 착각된 허망한 분별인 시비선악 등을 고집하여 버리지 않으면 상호투쟁은 늘 계속되어 끝이 없습니다.
만법이 혼연융합한 중도의 실상을 바로 보면 모순과 갈등, 대립과 투쟁은 자연히 소멸되고 융합자재한 일대단원(一大團圓)이 있을 뿐입니다.
악한과 성인이 일체(一體)이며 너는 틀리고 나는 옳다함이 한 이치이니 호호탕탕한 자유세계에서 어디로 가나 웃음뿐이요, 불평불만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대립이 영영 소멸된 이 세계에는 모두가 중도(中道) 아님이 없어서 부처님만으로 가득 차 있으니 이 중도실상의 부처님 세계가 우주의 본 모습입니다.
우리는 본래로 평화의 꽃이 만발한 크나큰 낙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비선악의 양쪽을 버리고 융합자재한 이 중도실상을 바로 봅시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원한 휴전을 하고 절대적 평화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삼라만상이 일제히 입을 열어 중도를 노래하며 부처님을 찬양하는 이 거룩한 장관 속에서 손에 손을 맞잡고 다같이 행진합시다.
- 1983년 부처님오신날 법어 -
[불교신문 2725호/ 6월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