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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성철스님의 자취를 찾아서- ② 출가 전 수행도량 대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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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03-22 11:28 조회16,6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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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출가 전 수행도량 대원사

출가 전 성철스님이 속인임에도 불구하고 참선공부를 위해 들어가 겨울을 났던 탑전. 펄펄 뛰며 경계하는 주지 스님을 오히려 나무라는 그 기상이 느껴지는 듯하다. 아래 작은 사진은 일주문에서 올라가다 본 대원사 전경.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참선수행 40여일 만에 ‘동정일여’ 경지에 들다

“참선공부 한다는데 웬 말이 많노”

속인 신분으로 탑전서 수행한다고

펄쩍 뛰는 스님을 오히려 꾸짖어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대원사(大源寺)는 성철스님이 출가하기 전 수행한 절이다. 스님은 이곳 탑전에서 참선 수행, 40여 일만에 동정일여(動靜一如)의 경지에 이르렀다. 스님은 출가 전 ‘개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는 화두를 들고 집에서 참선, 정진했다. 정진을 거듭하는 가운데 차츰 새로운 길을 찾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 하는 정진은 아무래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출가도 하지 않은 몸으로 대원사로 갔다. 당시 이야기를 당신께서 나중에 이렇게 들려주셨다.

“젊었을 때 사상적으로 이리저리 헤매다가 불경(佛經)을 보니까 아주 마음에 들더라 이거야. 그래서 참선하려고 대원사를 찾아갔지. 그때 대원사 탑전이 참 좋았어. 그래 거기 들어 가봤거든. 참선하기에 좋아 보이기에 안에 들어가 좀 있었지. 그런데 주지가 그걸 보고 펄쩍 뛰어. 본시 탑전이란 데가 스님들만 있는 곳이지 속인은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이야. 그래서 한판 했지. 너거들은 절에서 처자식 거느리고 살림 다 살고 떡 장사도 하지 않느냐. 그러고도 중이냐. 내가 참선공부 한다는데 웬 말이 많노. 절이 불교공부 하는 곳이지 살림 사는 곳이가. 그런데 얼마 안가 주지가 바뀌었지. 젊은 중이 주지대리인가 뭐를 맡았는데 그 사람하고는 그래도 말이 통했거든. 그래서 그 탑전에서 겨울을 보냈지.” (원택스님의 <성철스님 시봉이야기>)

스님은 이후 탑전에서 용맹정진 했다. 밤낮으로 열심히 정진했다. 누구의 가르침도 없었다. 오로지 스스로 확인하고 체득한 참선수행이었다. 스님 이야기를 또 보자.

“그 때만해도 지리산에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해친다는 소문이 자자했거든. 그래서 나도 호랑이밥이 될까봐 겁이 나서 밤에는 나가지도 못하고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정진했지. 하루는 갑자기 ‘내가 뭐 땜에 이리 겁을 먹는고’ 하는 생각이 들었지.

<사진> 방장산 대원사 일주문.

가만히 생각해보니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호랑이를 겁내어 떨고 있는 내 꼴이 우습더란 말이야.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 때는 먹히더라도 겁내지 말아야겠다 싶어 그 뒤부터는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잤지. 그래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었어. 그 다음부터는 호랑이를 안 무서워하게 된기라.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마음대로 나다녔지.”

일타(日陀: 1929~1999)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재미있다.

“성철스님은 대원사 탑전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나서 말씀하셨지. 입에 침을 튀기면서 설명하시는데 얘기를 하다 입에 든 밥숟가락을 확 빼면서 말하시는 거야. ‘그게 42일만이었어. 내가 42일만에 동정일여가 됐거든. 동정일여가 되니까 정말 참선 부지런히 하면 도인되겠다 싶데’ 늘상 얘기하시면서도 그 대목에서는 흐뭇해 하셨지.”

동정일여란 일상에서 화두라는 의심덩어리가 오나 가나 앉으나 서나 말할 때나 묵언(言)할 때나, 조용하거나 시끄럽거나 상관없이 머릿속에 가득한 그런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비구니 법일스님, 화재로 폐허됐던 도량

탑전부터 완공하며 대가람으로 일궈 내

대원사는 당신의 생가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이다. 겁외사에서 자동차로 약 30분가량 걸렸다. 지금은 포장이 잘 된 도로라서 가기가 어렵지 않지만 80년 전을 생각하면 그렇게 가기 쉬운 길도 아니었다.

지리산 첩첩산중에 있는 절. 대원사 가까이 갈수록 골짜기는 깊고 수풀은 우거져 그야말로 첩첩산골에 난 길 따라 갔다. 그 옛날엔 이 길을 걸어서 가고 왔을 게 아니냐고 생각하니 오늘의 이 길이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했다.

문득 소동파(蘇東坡: 1036~1101, 중국 북송의 문인으로 불교공부가 깊었다)의 글귀가 생각났다.

“골짜기 물소리는 부처님 말씀이요

저 푸른 산 모습은 어찌 청정한 부처님이 아니랴”

계성변시장광설(溪聲便是長廣舌)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

차창을 열고 계곡물과 푸른 숲 사이를 불어오는 바람을 마신다. 그 맑고 향기로운 바람에 부처님 말씀이 담겨 있음을 느낀다.

지리산 대원사는 언양 석남사, 수덕사 견성암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절을 둘러싼 경관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스러움을 마냥 보여주고 있다. 절에서 조금 올라가면 용이 100년간 살았다는 용소(龍沼)가 있다. 바위가 굴처럼 뚫려서 된 것으로 항아리 모양이다. 깊이는 약 5미터(m)정도란다.

또한 대원사 주위에는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과 관련된 지명이 이곳저곳 남아있다. 그가 소를 먹였다는 소막골, 그가 넘었다는 왕산(王山)과 망을 보았다는 망덕재, 군량미를 저장하였다는 도장굴(稻藏窟) 등이 오늘날까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천혜의 자연공간에 자리한 대원사는 해인사 말사(末寺)로 신라 진흥왕 때(서기 584년)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했다고 전하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처음엔 평원사(平原寺)라 불리었고 이후 조선 숙종 때 중암운권 선사가 대원암이라 개칭했으며 그 후 고종 때 구봉혜흔(九峰慧昕) 선사가 지금의 대원사라 개칭했다.

창건이후 화재와 재건이 거듭되었다. 임진왜란과 여순(麗順)사건(1948년)때 화재로 불타 폐허가 되었으나 1955년 이후 비구니 법일(法一)스님이 재건하여 오늘의 웅장한 대가람이 되었다. 법일스님(1904~1991)은 1936년 출가, 1937년 대원사에서 영암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1950년 효봉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1991년 (음)10월10일 새벽3시 입적했다. 세수88세, 법랍55세.

1955년 폐허가 된 대원사를 중창하기로 원력을 세우고 탑전을 시작으로 어렵고 어렵게 불사를 이어 나갔다. 진주에서 대원사까지 50킬로미터(km) 길을 걸어 다니면서 탁발하고 불사대금을 만들었다. 장마철이면 계곡의 물이 범람하여 한동안 길이 끊기기 일쑤였고 비가 그친 뒤에도 급류에 휩쓸려 가버린 길은 자취도 없었다. 허리까지 차오는 강물을 건널 때는 목숨의 위험도 각오해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불사는 1956년 여름을 지나는 동안 기둥감이 될 목재를 비롯해 재목들이 장만되었다. 그러나 당시 비구.대처간의 사찰 소유 싸움은 법정투쟁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대원사 중창불사 원력은 점점 스러져 갔다.

그러나 이를 굳건히 딛고 일어선 법일스님과 상좌들은 원력을 추슬러 다시 불사를 시작했다. 법일스님은 대웅전 중창보다 앞서 탑전부터 완공했다. 이어 천광전, 요사채 등이 들어서고 도반인 인홍(仁弘: 1908~1997, 석남사)스님.수옥(守玉: 1902~1966, 내원사)스님도 법일스님의 원력을 좇아 만인동참 정신으로 직접 탁발에 나서 불사를 도왔다.

지금은 19채의 건물이 4000여 평 위에 번듯이 들어서 그 웅장한 모습이 지리산의 ‘한 송이 연꽃’이 되고 있다.

이진두 / 논설위원

■ 되새기는 성철스님 법어

참다운 불공


집집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부모님입니다. 내 집 안에 계시는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거리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잘 받드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발밑에 기는 벌레가 부처님입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벌레들을 잘 보살피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머리 위에 나는 새가 부처님입니다. 날아다니는 생명들을 잘 보호하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넓고 넓은 우주, 한없는 천지에 모든 것이 다 부처님입니다. 수 없이 많은 이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이리 가도 부처님, 저리 가도 부처님, 부처님을 아무리 피하려고 하여도 피할 수가 없으니 불공의 대상은 무궁무진하여 미래겁이 다하도록 불공을 하여도 끝이 없습니다.

이렇듯 한량없는 부처님을 모시고 항상 불공을 하며 살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법당에 계시는 부처님께 한없는 공양구를 올리고 불공하는 것보다 곳곳에 계시는 부처님들을 잘 모시고 섬기는 것이 억 천 만배 비유할 수 없이 더 복이 많다고 석가세존은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불보살이 큰 서원이며 불교의 근본입니다.

우리 모두 이렇듯 거룩한 법을 가르쳐주신 석가세존께 깊이 감사하며 항상 불공으로 생활합시다. (1983년 5월 종정법어)

[불교신문 2705호/ 3월23일자]

2011-03-19 오전 9:58:08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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