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유물 봉안한 해월정사 봉훈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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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6-04 16:40 조회15,463회 댓글0건본문
성철스님 유물 봉안한 해월정사 봉훈관을 가다
육필.애독 경전등 전시…일력메모도 눈길
성철스님 생전의 문자향 그윽
각층 108평 설계 독특…31일 초청법회도
부산 해월정사가 조계종 전 종정 성철스님(1911~1993)의 유물을 봉안한 봉훈관(奉訓館)을 오는 31일 개원한다. 해운대에 위치한 해월정사는 성철스님의 수행처로 말년에 자주 들렀던 곳이다. 지난 22일 개원에 앞서 현장을 찾았다. 봉훈관 3층 시월전(示月殿)에 스님의 친필과 즐겨 읽었던 경전이 보관돼 있다. 특히 A4 용지 500페이지 분량의 육필이 눈길을 끈다. 평소 봉암사 결사의 유래와 활동에 관한 회고, 교리에 대한 나름의 주석, 불자들에게 남기는 법문을 틈틈이 적어두었다가 맏상좌인 천제스님(조계종 법규위원장.해월정사 회주)에게 남긴 것들이다.
때로는 편지지에 때로는 휴지에 때로는 옛 풍물이 된 ‘일력(日歷, 하루에 한 장씩 찢는 달력)’의 뒷장에 휘갈긴 펜글씨에는 수행의 향기가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천제스님은 “한국불교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성철스님의 사상과 풍모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불자들의 신심을 다지는 데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 여겨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一九四九年(1949년) 가을에 나는(三十六歲) 크나큰 幻想(환상)을 안고 聞慶(문경) 鳳岩寺(봉암사)로 갔었다. … 十年間(십년간) 藏經守護(장경수호)에 盡力(진력)하겠다는 鐵石(철석) 같은 約束(약속)이었다. 慈雲(자운)스님과 法雄首座(법웅수좌)도 함께 왔었엇다. 住持(주지)로는 靑眼老長(청안노장)을 모시고 십여(十如) 大衆(대중)이 同居(동거)하였다.’ 당신이 문경 김룡사에 주석할 때 1965년 8월22일자 일력 뒷면에 적은 메모다. 한국불교의 정법당간을 다시 세운 계기였던 봉암사 결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파악할 수 있다. 스님이 스스로 강구하고 제안한 공주규약의 전모와 이를 철저히 지키는 봉암사 대중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나타난다. ‘나는 下記(하기)의 共住規約(공주규약)을 초안(草案)하여 대중(大衆)에 提示(제시) 詳細(상세)한 說明(설명)을 가하였다. … 大衆(대중) 全體(전체)의 果敢(과감)한 努力(노력)으로 그 成果(성과)는 日就月將(일취월장)하였다.’
메모는 이때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선종의 초조 달마스님의 <혈맥론>을 주해한 수기(手記), 불교의 방대한 교리체계를 주체적인 관점에서 정리하고 각각의 이론마다 의의를 달리 매긴 ‘교상판석(敎相判釋)’도 눈에 띈다. 다만 순한문엔 데다 흘림체로 쓰여 있어 뜻을 판독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생전 스님의 얼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문자향(文字香)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소득이다. 천제스님은 내년 봉훈관을 완공하는 대로 스님의 메모를 번역, 정서해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시월전에는 스님의 친필이 한 장 한 장 액자로 표구돼 가지런히 배치돼 있다. 성철스님의 진영과 함께 스님이 법맥을 이은 용성스님과 동산스님의 진영도 나란히 걸렸다. 스님이 수시로 읽으며 뜻을 새겼던 <신수대장경> <속장경>과 같은 경전 역시 시월전 한편을 차지했다. 봉훈관은 총 4층 건물로 층별 크기는 320㎡. 평수로 따지면 ‘108평’이다.
해월정사는 10월31일 오전 10시 부산지역 스님들을 초청해 조촐한 법회를 봉행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봉훈관 개원과 함께 성철스님의 처소였던 고심당(古心堂)도 공개해 주목된다. 스님은 자신의 본성을 바로 보라는 취지에서 고심(古心) 혹은 고경(古鏡)이란 말을 자주 사용했다. 낡은 침상과 탁자, 손때 묻은 책이 빼곡한 책장이 자못 인상적이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대마도까지 보인다는 청명한 남해 바닷가에서, ‘옛 마음’이 불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 2371호/ 10월27일자]
2007-10-24 오후 3:12:35 / 송고
육필.애독 경전등 전시…일력메모도 눈길
성철스님 생전의 문자향 그윽
각층 108평 설계 독특…31일 초청법회도
부산 해월정사가 조계종 전 종정 성철스님(1911~1993)의 유물을 봉안한 봉훈관(奉訓館)을 오는 31일 개원한다. 해운대에 위치한 해월정사는 성철스님의 수행처로 말년에 자주 들렀던 곳이다. 지난 22일 개원에 앞서 현장을 찾았다. 봉훈관 3층 시월전(示月殿)에 스님의 친필과 즐겨 읽었던 경전이 보관돼 있다. 특히 A4 용지 500페이지 분량의 육필이 눈길을 끈다. 평소 봉암사 결사의 유래와 활동에 관한 회고, 교리에 대한 나름의 주석, 불자들에게 남기는 법문을 틈틈이 적어두었다가 맏상좌인 천제스님(조계종 법규위원장.해월정사 회주)에게 남긴 것들이다.
때로는 편지지에 때로는 휴지에 때로는 옛 풍물이 된 ‘일력(日歷, 하루에 한 장씩 찢는 달력)’의 뒷장에 휘갈긴 펜글씨에는 수행의 향기가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천제스님은 “한국불교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성철스님의 사상과 풍모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불자들의 신심을 다지는 데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 여겨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一九四九年(1949년) 가을에 나는(三十六歲) 크나큰 幻想(환상)을 안고 聞慶(문경) 鳳岩寺(봉암사)로 갔었다. … 十年間(십년간) 藏經守護(장경수호)에 盡力(진력)하겠다는 鐵石(철석) 같은 約束(약속)이었다. 慈雲(자운)스님과 法雄首座(법웅수좌)도 함께 왔었엇다. 住持(주지)로는 靑眼老長(청안노장)을 모시고 십여(十如) 大衆(대중)이 同居(동거)하였다.’ 당신이 문경 김룡사에 주석할 때 1965년 8월22일자 일력 뒷면에 적은 메모다. 한국불교의 정법당간을 다시 세운 계기였던 봉암사 결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파악할 수 있다. 스님이 스스로 강구하고 제안한 공주규약의 전모와 이를 철저히 지키는 봉암사 대중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나타난다. ‘나는 下記(하기)의 共住規約(공주규약)을 초안(草案)하여 대중(大衆)에 提示(제시) 詳細(상세)한 說明(설명)을 가하였다. … 大衆(대중) 全體(전체)의 果敢(과감)한 努力(노력)으로 그 成果(성과)는 日就月將(일취월장)하였다.’
메모는 이때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선종의 초조 달마스님의 <혈맥론>을 주해한 수기(手記), 불교의 방대한 교리체계를 주체적인 관점에서 정리하고 각각의 이론마다 의의를 달리 매긴 ‘교상판석(敎相判釋)’도 눈에 띈다. 다만 순한문엔 데다 흘림체로 쓰여 있어 뜻을 판독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생전 스님의 얼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문자향(文字香)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소득이다. 천제스님은 내년 봉훈관을 완공하는 대로 스님의 메모를 번역, 정서해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시월전에는 스님의 친필이 한 장 한 장 액자로 표구돼 가지런히 배치돼 있다. 성철스님의 진영과 함께 스님이 법맥을 이은 용성스님과 동산스님의 진영도 나란히 걸렸다. 스님이 수시로 읽으며 뜻을 새겼던 <신수대장경> <속장경>과 같은 경전 역시 시월전 한편을 차지했다. 봉훈관은 총 4층 건물로 층별 크기는 320㎡. 평수로 따지면 ‘108평’이다.
해월정사는 10월31일 오전 10시 부산지역 스님들을 초청해 조촐한 법회를 봉행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봉훈관 개원과 함께 성철스님의 처소였던 고심당(古心堂)도 공개해 주목된다. 스님은 자신의 본성을 바로 보라는 취지에서 고심(古心) 혹은 고경(古鏡)이란 말을 자주 사용했다. 낡은 침상과 탁자, 손때 묻은 책이 빼곡한 책장이 자못 인상적이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대마도까지 보인다는 청명한 남해 바닷가에서, ‘옛 마음’이 불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 2371호/ 10월27일자]
2007-10-24 오후 3:12:35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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