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맞은 ‘결사’ …아직도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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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6-04 16:40 조회15,958회 댓글0건본문
환갑 맞은 ‘결사’ …아직도 현재진행형
원철스님의 東語西話<37> 봉암사의 꿈
작년 여름무렵이었다. 보현보살의 성지인 아미산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천성 성도의 무후사(武侯祠)를 들렀다. 원래 제갈공명을 기리던 사당이었으나 명대(明代)에 유비의 위패가 합사되면서 관우 장비까지 함께 따라와 그야말로〈삼국지〉의 성지가 되었다. 천하에 큰뜻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그들의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한번쯤은 생각하기 마련이다. ‘…한 해 한 달 한 시에 태어나지 못했어도 한 해 한 달 한 시에 죽기를 원하오니 …’라는 맹세를 결연히 한 후 의형제를 맺고서 ‘왕실의 정통성 회복’이라는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을 함께 했다.
결사란 뜻이 맞는 사람끼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신라 때 발징(發徵)화상이 주도한 건봉사 만일결사는 31명이 육신등공(肉身騰空)하여 왕생했다고 전해지는 우리나라 결사의 효시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결사는 지눌(1158~12310)선사의 정혜결사(定慧結社)이다. 개경의 보제사(普濟寺)에서 열린 담선(談禪)법회를 계기로 동지 10여명과 함께 명리를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여 수행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출발한 것이다.
‘대의명분’ 없다면 협잡에 불과
60년전 초심, 오늘에 되살려야
결사란 혼탁한 시대를 맑히려는 원력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적으로 가장 의미있다고 할 수 있는 ‘봉암사 결사’는 조선의 억불정책과 일제시대를 거치며 세속화된 이 땅의 불교를 맑히기 위한 원력으로, 해방이후 뜻있는 선각자들에 의하여 정화결사운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아래 성철.청담.자운스님 등 20여명이 1947년 한국불교의 정초를 잡기 위한 3여년간의 결사였다.
성철선사는 1965 8.22 토요일 일력 종이 뒷면에 ‘크나큰 환상을 안고 봉암사로 갔다…… 공주규약 초안을 대중에게 제시하고 자세하게 설명하였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결사란 그야말로 ‘크나큰 환상’인 것이다. 어찌보면 꿈인 것이다. 꿈인줄 알면서도 몸부림쳐 보는 것이다. 그건 부처님을 향한 대의명분 때문이다. 대의와 명분도 없이 이익을 위한 결사는 누구도 결사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사상과 철학 그리고 비젼없이 자리와 이권을 위한 결사는 협잡이기 때문이다. 협잡과 결사의 차이는 결국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대의명분의 유무이다. 하지만 유비의 그 큰 대의명분도 결국 그를 삼국통일의 주인공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지 못했다. 봉암사 결사도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미완성으로 끝났다. 그래도 여전히 유비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봉암사의 꿈도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그 봉암사 결사가 환갑을 맞이했다. 불교가 안팎으로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결사60주년을 맞이하여 그 꿈을 다시 꾸어보는 것이다. 한사람이 꿀 때는 꿈이지만 모두가 꿀 때면 현실이 된다.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은 그 꿈을 이렇게 말했다. “모든 법은 본래 꿈인줄 알고 보라고 했다. 제대로 알고보면 꿈이 바로 현실인 것이다.”
원철스님 /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불교신문 2371호/ 10월27일자]
2007-10-24 오후 2:30:03 / 송고
원철스님의 東語西話<37> 봉암사의 꿈
작년 여름무렵이었다. 보현보살의 성지인 아미산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천성 성도의 무후사(武侯祠)를 들렀다. 원래 제갈공명을 기리던 사당이었으나 명대(明代)에 유비의 위패가 합사되면서 관우 장비까지 함께 따라와 그야말로〈삼국지〉의 성지가 되었다. 천하에 큰뜻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그들의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한번쯤은 생각하기 마련이다. ‘…한 해 한 달 한 시에 태어나지 못했어도 한 해 한 달 한 시에 죽기를 원하오니 …’라는 맹세를 결연히 한 후 의형제를 맺고서 ‘왕실의 정통성 회복’이라는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을 함께 했다.
결사란 뜻이 맞는 사람끼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신라 때 발징(發徵)화상이 주도한 건봉사 만일결사는 31명이 육신등공(肉身騰空)하여 왕생했다고 전해지는 우리나라 결사의 효시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결사는 지눌(1158~12310)선사의 정혜결사(定慧結社)이다. 개경의 보제사(普濟寺)에서 열린 담선(談禪)법회를 계기로 동지 10여명과 함께 명리를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여 수행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출발한 것이다.
‘대의명분’ 없다면 협잡에 불과
60년전 초심, 오늘에 되살려야
결사란 혼탁한 시대를 맑히려는 원력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적으로 가장 의미있다고 할 수 있는 ‘봉암사 결사’는 조선의 억불정책과 일제시대를 거치며 세속화된 이 땅의 불교를 맑히기 위한 원력으로, 해방이후 뜻있는 선각자들에 의하여 정화결사운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아래 성철.청담.자운스님 등 20여명이 1947년 한국불교의 정초를 잡기 위한 3여년간의 결사였다.
성철선사는 1965 8.22 토요일 일력 종이 뒷면에 ‘크나큰 환상을 안고 봉암사로 갔다…… 공주규약 초안을 대중에게 제시하고 자세하게 설명하였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결사란 그야말로 ‘크나큰 환상’인 것이다. 어찌보면 꿈인 것이다. 꿈인줄 알면서도 몸부림쳐 보는 것이다. 그건 부처님을 향한 대의명분 때문이다. 대의와 명분도 없이 이익을 위한 결사는 누구도 결사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사상과 철학 그리고 비젼없이 자리와 이권을 위한 결사는 협잡이기 때문이다. 협잡과 결사의 차이는 결국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대의명분의 유무이다. 하지만 유비의 그 큰 대의명분도 결국 그를 삼국통일의 주인공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지 못했다. 봉암사 결사도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미완성으로 끝났다. 그래도 여전히 유비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봉암사의 꿈도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그 봉암사 결사가 환갑을 맞이했다. 불교가 안팎으로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결사60주년을 맞이하여 그 꿈을 다시 꾸어보는 것이다. 한사람이 꿀 때는 꿈이지만 모두가 꿀 때면 현실이 된다.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은 그 꿈을 이렇게 말했다. “모든 법은 본래 꿈인줄 알고 보라고 했다. 제대로 알고보면 꿈이 바로 현실인 것이다.”
원철스님 /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불교신문 2371호/ 10월27일자]
2007-10-24 오후 2:30:03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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