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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간월도 간월암   2012-03-08 (목)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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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본 간월도. 썰물에는 길이 열리지만 밀물 때는 문자 그대로 수평선이 아득히 펼쳐진 망망대해의 외딴섬이다. 김형주 기자
 
성철스님은 1942년 충남 서산 간월도의 만공스님 토굴에서 하안거와 동안거를 지냈다. 스님은 1941년 예산 수덕사 덕숭총림의 선원인 정혜사 능인선원에서 동안거를 마치고 간월도의 간월암으로 갔다. 간월암은 수덕사 입구에서 23km 떨어진 곳에 있다.
지난 7월5일 간월도를 찾아갔다. 장맛비가 전국을 오르내리며 많은 피해를 입히던 때였다. 집중호우로 전국을 강타하던 장맛비가 잠시 주춤하고 모처럼 햇볕이 쨍쨍하던 날이었다. 날을 잡아도 참 잘 잡았다고 생각했다.
대웅전엔 무학·만공 두 스님의 영정…법당 앞은 망망대해
“간월암은 과거 피안도(彼岸島) 피안사(彼岸寺)로 불리며 밀물 때는 물위에 떠 있는 연못 또는 배와 비슷하다 하여 연화대(蓮花臺) 또는 낙가산(落伽山) 원통대(圓通臺)라 부르기도 했다. 고려말 무학(無學, 1327~1405)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쳤다 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 하였다.
이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만공선사는 이곳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리고 바로 그 후에 광복을 맞이했다고 전한다.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 때 섬과 육지로 변화되는 보기 드문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특히 주변의 섬들과 어우러진 낙조와 함께 바다위로 달이 떠올랐을 때의 경관이 빼어나다.”
절 입구에 세운 안내판의 글이다.
육지에서 절까지는 100m도 안된다. 필자 일행이 간월도에 갔을 때는 물이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육지 쪽에서 절에 가려면 물이 들어왔을 때는 쪽배를 타고 건넌다고 했다. 쪽배는 해병대 상륙용 보트만한 크기의 뗏목 아래 부기(浮器)를 몇 개 달아 물에 뜨게 한 것이었다.
부기는 어린이 물놀이용으로 쓰는 타이어 튜브 같은 것이었다. 이 쪽배는 15명이 정원이라 했다. 육지에서 간월암이 있는 섬까지 긴 밧줄이 매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쪽배를 타고 밧줄을 잡아당기며 배를 앞으로 가게 하여 바닷물을 건너 절에 간다. 물이 빠지면 사람도 차도 다니는 길이 열린다. 그래서 육지와 절이 때로는 물길로, 때로는 걸어서 가는 ‘변화의 길’이라 한 것일 게다.
   
간월암 대웅전.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홀연히 깨쳤다 하여 붙여진 ‘看月庵’ 현판에 눈에 띈다. 김형주 기자
 
간월암은 대웅전과 요사채로 단출한 암자였다. 법당 앞마당에는 200년 된 사철나무와 그와 맞먹는 수령의 팽나무가 있어 고찰로서의 모습을 일러준다. 이 절은 이름 그대로 토굴이지 대중이 지낼 도량은 아니었다. 대웅전 안에는 무학대사와 만공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법당 앞마당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문자 그대로 수평선이 아득히 펼쳐진 망망대해(茫茫大海)다.
지금 간월암은 중창불사 계획을 널리 알리고 있다. 대웅전 요사채 등 10여 당우(堂宇)를 중창하는 대작불사다. 절로 들어가는 솔밭은 넓은 주차장으로 이미 터를 닦아 찾는 이들이 이용하고 있다.
만공스님이 간월도에 암자를 짓게 된 연유를 알게 하는 글이 본지 2459호(2008년 9월13일자)에 실렸다. 당시 화계사 한주 진암스님(1924~)이 ‘염화실 법향’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서산 간월암은 원래 무학대사가 지어 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곳인데 무학대사가 떠나자 양반들이 절을 뜯어내고 그 자리에 묘를 만들었다.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만공스님이 서산군수를 불러서 묘를 이장하고 다시 절을 짓기로 했다. 당시 출가 전 사회경험이 많던 서해(瑞海)스님이 공사를 관리감독하기 위해 파견됐다. 거처할 곳만 만들고 천일기도가 시작됐다.
섬에는 약 40호정도 살았는데 일본말 하는 사람도 없었다. 젊은 사람은 징용에 끌려가고 나이 많은 사람도 보국대로 갔다. 서해스님은 묘안을 냈다. ‘간월암은 일본 천황을 위해 짓는 것이니 절에서 일하는 것도 징용이나 보국대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관공서 사람들을 설득했다. … ‘안면 면사무소에 가서 쌀 7~8가마를 배급 타왔어. 그렇게 서해스님은 언변과 교제술이 좋았어. 그러니까 만공스님이 그에게 절 공사를 맡겼지. 서해스님의 묘안대로 당시 주민들은 간월암 불사에 임하고 배급도 많이 주고 징용에도 안 가게 했지.’”
간월암은 이렇듯 곡절 많은 사연을 지닌 절이다.
이 한적한 외딴 섬에서 생식하며 두 철…
‘무생무위 대안락’ 해탈경계서 우유자재
성철스님이 이 암자에 가게 된 것은 만공스님이 배려라 한다. 당시 성철스님은 생식(生食)을 하고 있었다. 스님이 생식을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필자는 잘 모른다. 그러나 스님이 1941년 송광사 삼일암에 갔을 때 입장을 거절당한 이유가 생식하는 수좌였기 때문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수덕사 정혜사 능인선원에 있을 때나 간월암에 있을 때도 여전히 생식했음을 알 수 있다.
정혜사에서 성철스님이 청담스님과 함께 있을 때 청담스님은 성철스님을 위해 손수 솔잎을 따와 말려서 성철스님에게 건넸다고 한다. 청담스님이 도반을 아끼는 자상한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다.
   
간월암 경내. 200년된 사철나무도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김형주 기자
 
간월암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여러 수행자가 살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성철스님은 이 한적하고 외딴 섬에서 생식을 하며 두 철을 보냈다. 스님의 이 시절을 필자는 ‘오후보림(悟後保任)의 시절’이라 하고 싶다. 스님은 1940년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동안거 때 오도(悟道)하고 그 이듬해 정혜사에서 동안거를 한 후 간월암으로 거처를 옮겨 1년을 보냈다.
보림(保任)은 무생무위(無生無爲, 남도 없고 함도 없다)인 대안락(大安樂)의 해탈경계에서 우유자재(優遊自在)하는 것이다. 원오 극근(圓悟 克勤, 1063~1135, 중국) 선사는 <심요(心要)>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심중(心中)에 일물(一物)도 잔류하지 않으면 직하(直下)에 목석과 같은 무심인(無心人)이 되어서 우치둔올(愚痴鈍兀, 어리석고 우둔)함과 같아 승해(勝解, 알음알이)를 내지 않는다. 양래(養來)하고 양거(養去)하여(오고감을 잘 다스려) 생사(生死)를 관(觀)하되 심히 무사 한가로움과 같아 문득 조주.남전(南泉)과 덕산.임제와 더불어 동일한 견지(見地)에 서게 되니 간절히 스스로 보림(保任)하여 이 무생무위의 대안락한 경지에 단거(端居, 일상생활) 하느니라.”
또 이르기를 “일념불생(一念不生)하는 심오한 경계에서 활연대오(豁然大悟)하여 본래면목 즉 자성(自性)을 철견(徹見)하고 무심과 무사(無事)로 장양성태(長養聖胎, 성태를 잘 다스림)하는 것이 불조(佛祖)도 엿볼 수 없는 정안납승(正眼衲僧, 바른 안목을 갖춘 수행승)의 불가사의 한 ‘오후의 보림’이다.”
“오후(悟後)의 수행은 자성을 원증(圓證)하여 구경무심(究竟無心)을 성취한 후에 시작되나니 이는 자재해탈(自在解脫)이며 자재삼매(自在三昧)이다.”
성철스님의 간월암 시기에서 ‘오후보림’을 되새긴다.
되새기는 성철스님 법어  
마음의 눈을 떠라
불교란 것은 팔만대장경으로 그토록 많지만 마음 심(心)자 한 자에 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마음의 눈만 뜨면 일체 만법을 다 알 수 있는 것이고 삼세제불을 다 볼 수 있는 것이고 일체법을 다 성취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 바로 자성을 보는 것이고 견성(見性)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든지 노력해서 마음의 눈을 바로 떠야 되는데 그 가장 빠른 길이 화두입니다.
이 화두란 것은 잠이 깊이 들어서 일여(一如)한 경계에서도 모르는 것이고 거기에서 크게 깨쳐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다가 무슨 경계가 나서 크게 깨친 것 같아도 실제 동정에 일여(動靜一如)하지 못하고 몽중에 일여(夢中一如)하지 못하고 숙면에 일여(熟眠一如) 못하면 화두를 바로 안 것도 아니고 견성도 아니고 마음의 눈을 뜬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 근본표준이 어디 있느냐하면 잠들어서도 일여 하느냐 않느냐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부지런히 화두를 참구하여 잠이 꽉 들어서도 크게 살아나고 크게 깨쳐서 화두를 바로 아는 사람, 마음의 눈을 바로 뜬 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 1981년 음력 6월 보름
[불교신문 2737호/ 7월20일자]

11. 법주사 복천암 복천선원 
9. 덕숭산 정혜사 능인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