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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닦는 요긴한 편지글   2017-11-21 (화)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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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성철스님이 가려 뽑은 한글 선어록

마음 닦는 요긴한 편지글

-원오극근 스님의 원오심요

 

<해제>

解題

 

원오선사심요(悟禪師心要)벽암록(碧巖錄)으로 널리 알려진 불과(佛果) 원오극근(悟克勤, 10631135, 임제종 양기파) 스님에게 당시 법을 묻는 선승과 사대부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답서로 써 보낸 편지글을 모아 펴낸 서간집이다.

원오극근 선사는 팽주(彭州), 즉 사천성(四川省, 중국 서쪽 내륙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자, 서역으로 가는 관문이었던 촉[] ) 성도부(成都府) 사람으로 자()는 무착(無着), 속성은 락() 씨이다. 대대로 유학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절에 놀러 갔다가 느낌을 받고 출가하였다.

처음에는 문조(文照)나 민행(敏行, 1044~1100) 등의 법사에게 능엄경(楞嚴經)등 경론을 배우다가 심한 병을 앓고 난 뒤 문자공부를 반성하였다. 행각을 떠나 옥천승호(玉泉承皓, 1012~1092), 대위모철(大慕喆, ?~1095), 황룡조심(黃龍祖心, 1025~1100), 동림상총(東林常總, 1025~1091) 등 여러 선지식에게 법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임제종의 중흥조라 일컬어지는 태평산(太平山)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 선사를 찾아가 단련을 받고 인가를 얻었다. 1102(40)에 출신지인 성도(成都) 소각사(昭覺寺)에 주지하였고, 1124(62)에 변경(, 하남성[河南省] 개봉시[開封市])의 천녕(天寧) 만수사(萬壽寺)에 주석하였다.

원오스님은 밖으로 몇 대에 걸친 왕으로부터 신임을 받으며 안으로는 선불교 중흥을 위해 공안참구를 체계 있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대혜종고(大慧宗, 1089~1163), 호구소륭(虎丘紹隆, 1077~1136) 등 걸출한 선승들을 배출하여 임제선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원오스님이 살았던 11세기 중반에서 12세기 중반은 거란과 여진 등 이민족의 침탈과 내정의 실패로 송() 왕조가 위기에 처한 때였다. 특히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의 개혁의지(1069)가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정책대결로서의 신법(新法)과 구법(舊法)의 대립이 아니라 인맥만 남은 신당과 구당 세력이 쟁점 없는 싸움을 거듭하던 시기였다.

그런 가운데도 건국 초부터 역대 왕들의 귀의를 받아 오던 불교는 국가 권력의 보호 아래 대토지를 소유하고 귀족들과 교류하면서 어느 정도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1126년 송이 여진의 금에 패하면서 황제 휘종과 흠종이 금에 사로잡힌 정강(靖康)의 변 이후에 정치 무대가 강남(江南)으로 옮겨지면서, 이전 시대에 충의왕(忠懿王) 전숙(, 929~988)의 노력으로 불교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던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불교는 새로운 발전의 시대를 맞이한다. 이때 불교는 선(), 정토(淨土), 천태(天台)가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는데, 이 중 사천(四川) 출신 승려가 다수를 차지했던 임제종 양기파 선승들이 장상영(張商英, 1044~1122)이나 소식(蘇軾, 1036~1101) 등 사천 출신 고위 관료층의 귀의를 받으며 강남불교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임제종 선승들은 선불교 중흥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였다. 특히 그때까지 내려오던 선 참구법에 대해서 더욱 조직적인 설명체계를 세우는 작업을 하였다. 원오스님의 몇 가지 저술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대표적인 예이다. 공안 참구를 체계화한 것은 오조법연에서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오조법연은 자 공안을 참구하라고 강조하였다.

원오스님의 특징은 여러 조사들의 공안과 기연 언구들을 매 편마다 제시하긴 하나, 그것을 하나로 일관토록 하지 않고 여러 개의 공안들을 동시에 제시해 줌으로써 그것을 지표 삼아 구경(究竟)을 직하(直下)에 깨닫도록 강조한 점이다. 반면, 대혜종고에 와서는 오직 자 공안 하나만을 끝까지 참구하여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를 찾도록 강조하였다. 더러는 간시궐(幹屎)’ 등 다른 몇 개의 공안들을 동시에 제시하긴 하나, 주로 한 개의 공안으로 결판내도록 하는 간화선이 확립된 것은 대혜에 와서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법연-원오-대혜의 3()로 이어지는 간화선 확립 시기에 원오스님의 심요는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한 법어들이다.

원오스님의 저술 중에 이 심요는 평생 썼던 편지글을 제자들이 모아서 펴낸 책이다. 건염(建炎) 3(1129, 저자 67) 단하(丹霞) 불지유(佛智裕, 1085~1150) 선사에게 보낸 편지까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스님의 말년이나 사후에 편집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심요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하나같이 직지단전(直指單傳)의 종지를 드러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선문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교리적인 설명이나 고정된 형식에 얽매이지 말 것을 매 편에서 강조하였다. 옛 선지식들의 기연(機緣)이나 말씀들을 종지를 이해하는 착안점으로 제시하면서, 참선하는 납자의 본분자세나 선지식으로서 가져야 할 안목과 삶의 태도 등을 편지 받을 사람의 공부 정도와 그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가며 자세하게 지시해주고 있다.

특히 송대에는 사대부(士大夫)들 사이에 참선이 유행하였기 때문에 심요에서도 사대부들에게 주는 편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송대에 만들어진 다른 저술들과는 달리 심요에서는 재가와 출가를 막론하고 염불이나 기도, 혹은 당시 사회문제나 불교계에 있었던 사건 등에 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고 오로지 화두참선으로 일관된 이야기뿐이다. 그런 만큼 심요는 임제종 선승들 사이에 종안(宗眼)을 판가름하는 지침서로 읽혀 왔음을 알 수 있다. 대혜스님의 편지글을 모은 서장(書狀)도 형식상 심요와 닮은 점으로 보아 심요를 답습한 것으로 짐작된다.

심요에는 상권에 70, 하권에 73, 모두 143편의 글이 실려 있으며 이 중 사대부들과 나눈 편지는 42편이다.


성철스님 임제록 평석 
선림의 수행과 리더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