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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수행자를 죽비로 후려치다   2017-04-28 (금)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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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성철스님이 가려 뽑은 한글 선어록

 

참선 수행자를 죽비로 후려치다

박산무이 스님의 참선경어


 



해제 (解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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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경어(參禪警語)』는 『선경어(禪警語)』 또는 『박산참선경어(博山參禪警語)』라고도 하는데, 신주(信州) 박산무이(博山無異, 1575~1630) 스님이 참선에서 생길 수 있는 병통을 지적하고 후학을 경책하기 위해 지은 글이다.

박산(博山)스님의 법명은 대의(大艤) 또는 원래(元來)이며, 자(字)는 무이(無異)이다. 용서(龍舒, 지금의 안휘성 舒城) 출신으로 속성은 사(沙) 씨이며 명(明)나라 만력(萬曆) 3년(1575)에 태어나서 생후 7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16세에 출가할 뜻을 굳히고 금릉(金陵) 와관사(瓦棺寺)에 가서 『법화경(法華經)』 강설을 듣다가, 구하는 것이 문자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음을 깊이 느끼고서는 오대산의 정안(靜安) 통법사(通法師)를 찾아 출가하였다. 통법사는 지자(智者)의 지관(止觀)을 익히게 하니 5년 동안을 매우 열심히 수행하였다. 20세에 초화산(超華山)에 가서 극암 홍(極庵洪) 스님에게서 비구계를 받았다. 이때 아봉(峨峰)에서 조동종지(曹洞宗旨)를 펴고 있던 무명혜경(無明慧經, 1548~1618) 선사의 명성을 듣고 찾아갔다가 호미를 어깨에 메고 삿갓을 쓴 농부 모습의 선사를 보고서 문득 의심이 생겨 광택(光澤)으로 들어가 백운봉(白雲峰)에서 3년을 지냈다. 그곳에서 『심경지남(心經指南)』을 지어 스님께 바쳤으나 인가받지 못하고 더욱 정진하였다.

‘뱃사람 스님이 종적을 감추다[船子沒踪跡]’ 화두에 의정이 문득 일어났고 『전등록(傳燈錄)』을 보다가 ‘조주유불무불(趙州有佛無佛)’ 화두에 깨우친 것이 있었으나 인가받지는 못하였다.

그 후 혜경스님을 따라서 보방사(寶方寺)로 옮겨서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고 열심히 정진하던 중, 하루는 어떤 사람이 나무에 오르는 것을 보고는 마침내 지극한 도를 깨치니 천 근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이에 50여 리 떨어진 보방사로 날듯이 달려가서 혜경스님이 주는 공안(公案)에 송(頌)을 붙여 보이니 마침내 스님을 인가(印可)하셨는데, 그때 나이 27세였다.

그해 운서주굉(雲棲宏, 1535~1615) 스님의 제자인 아호(湖)의 양암광심(養庵光心) 스님에게서 보살계를 받고, 그 후 운서스님도 참례하였다.

만력 30년(1602) 28세에는 상좌인 만융 원(萬融圓), 조감원(照監院), 정수좌(正首座) 및 유숭경(劉崇慶) 등의 간청으로 신주로 갔다가 얼마 후에 박산의 능인사(能仁寺)로 옮겼다.

박산은 옛날 천태덕소(天台德韶) 스님이 개창한 도량이지만 이미 황폐된 지 오래였으며, 또 대중은 모두 육식을 하고 있었으니 명말(明末)의 혼란한 시대상을 보여준다 하겠다. 그러나 박산스님이 그곳에 살면서 아호광심(湖光心) 스님의 도움으로 계율을 다시 일으키고 거사들의 협력으로 도량을 새로 세우니 선(禪)과 율(律)이 함께 시행되었다.

만력 36년(1608) 무명혜경 선사가 건주(建州) 동암선사(董巖禪寺)에서 법을 펴시면서 대사를 초청하여 분좌설법(分座說法)을 하게 하셨다. 이후로 박산의 종풍(宗風)이 마침내 널리 퍼지니 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승속(僧俗)이 많아서 800명의 선지식(善知識)이라 불리었다.

이후로 앙산(仰山) 보림선사(寶林禪寺), 고산(鼓山) 용천사(湧泉寺), 금릉(金陵) 천계사(天界寺) 등 여러 곳에서 법을 펴 보이셨다.

한편 스님은 출가 이후로는 속가(俗家)의 집과는 연락을 일절 끊었으나 이미 그 도가 널리 알려지자, 비로소 스님이 아직 살아 있음을 알고 아버지께서 박산으로 찾아왔으니 참으로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만남이었을 것이다. 스님은 효도하는 마음에서 아버지에게 육식(肉食)을 끊도록 권하면서 1년 남짓 머무르게 하였다.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천계(天啓) 7년(1627)의 일이다. 이 일로 스님은 고향을 다녀왔는데, 길가에 늘어선 사람들이 스님에게 귀의하였으니 무릇 수만 명이나 되었다.

특히 천계사에서 박산으로 돌아올 때에는 여대성(余大成) 등이 대사와의 헤어짐을 지극히 슬퍼하고 아쉬워하자 이렇게 말하였다.

 

이 이별을 어찌 애석하다 하오

명년 가을에는 공(公)과 헤어질 것인데.

 

此別何定惜 明年秋乃別公耳

 

이것은 아마도 자신의 입적(入寂)을 예견함이었을 것이다.

숭정(崇禎) 3년(1630) 9월, 병을 보이시고 입적하려 할 즈음에 지은수좌(智誾首座)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오고 감에 자재하다 하시더니 어떠하십니까?”

대사는 붓을 들어 ‘또렷하고 분명하다[歷歷分明]’라고 크게 쓰고는 가부좌한 채로 입적하셨으니, 승랍 41년, 세수 56세였다. 저서로는 『참선경어』를 비롯하여 『염고송고(拈古頌古)』, 『정토시(淨土詩)』, 『종교답향(宗敎答響)』, 『종교통설(宗敎通說)』 등과 『신지설(信地說)』, 『사원록(四源錄)』, 『석류(錫類)』, 『법단귀정록(法檀歸正錄)』, 『잉록(剩錄)』 등 20여 권이 전한다. 제자로는 입실(入室)한 설관지은(雪關智誾) 등과 여대성(余大成), 황단백(黃端白), 유숭경(劉崇慶) 등이 있다.

『참선경어』는 상하 2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은 처음 발심한 납자에게 일러주는 참선 이야기[示初心做工夫警語], 옛 큰스님의 법문에 견해를 붙인 이야기[評古德垂示警語] 일부, 하권은 의 나머지와 의정을 일으키지 못한 납자에게 일러주는 이야기[示疑情不起警語], 의정을 일으킨 납자에게 일러주는 이야기[示疑情發得起警語], 공안을 참구하는 납자에게 일러주는 이야기[示禪人參公案警語], 참선게 10수를 일러주다[示參禪偈十首]로 나누어서 모두 120여 항목을 모았다.

수좌(首座) 성정(成正)이 편록(編錄)하고 신주의 제자 유숭경이 서문을 붙여서 만력 신해(辛亥, 1611) 무이스님이 36세인 가을에 간행한 것이다. 그 내용으로 보아 스님의 종풍(宗風)을 분명하게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선풍(禪風)을 짐작할 수 있고, 또 선대(先代)의 조주, 현사, 운문, 대혜스님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능엄경』, 『원각경』 등을 열람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전해지는 『참선경어』로는 무이스님의 입적 후 숭정(崇禎) 계미(癸未, 1643)에 사문 원현(元賢)이 서(序)를 붙여 간행한 『어록(語錄)』 6권 중에 수록된 『선경어(禪警語)』와 청(淸)나라 홍한(弘瀚) 등이 편집한 『광록(光錄)』 25권 중에 수록된 『선경어(禪警語)』가 있다. 그러나 청대의 『광록』은 그 체제가 상중하 3권으로 나누어져 있고, 또 부분적으로 누락된 항목이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말 경허성우(鏡虛惺牛, 1846~1912) 선사께서 『선문촬요(禪門撮要)』를 편집하면서 총 21장으로 나눈 가운데 제12장 『선경어(禪警語)』 편에 무이스님의 『참선경어』 중에서 약 40항목을 뽑아 수록하였으며, 백용성(白龍城) 스님께서 1924년 이것을 국한문역(國漢文譯)으로 출판하였다.

 

   



참선경어(參禪警語) 서(序)



 

경(警) 자는 깨어난다는 뜻이다. 또는 놀래킨다[驚]는 뜻이라고도 한다. 비유하자면 도둑이 큰 집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자. 이때 주인이 등불을 밝혀 놓고 대청마루[堂皇]에 앉아서 기침소리를 내면 도둑은 겁이 나서 마음을 놓지 못한다. 그러다가 조금 후에 깊은 잠에 빠지고 나면 그 틈을 타서 집안에 들어와 보따리를 다 기울여 털고 달아난다. 그러므로 경계가 엄한 성에서는 밤에 딱따기를 치면서 야경을 돌고, 군대의 진중(陣中)에서는 조두(斗)를 치면서 밤 경비를 한다. 그러므로 갑자기 사고가 생긴다 해도 아무 근심이 없게 되니, 이는 미리부터 경비를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생사라는 큰 근심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한없는 세월이 지나도록 깨지 못할 꿈이다. 더구나 6근(六根)이 도둑의 앞잡이가 되어 나날이 자기 집의 보배를 털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잘 깨달으신 선지식께서 경책해 주시는 뼈아픈 말씀이 없다면 종신토록 꿈에 취해서 끝내 깨어날 날이 없을 것이다. 이는 비단 잠들었을 때 주인노릇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낮에 눈을 뜨고도 계속 잠꼬대를 하는 격이다.

그러므로 박산(博山, 1574~1630) 대사께서는 자비로운 원력으로 훌륭한 의사가 되시어 일미(一味)의 불사약(不死藥)으로 식견이 좁고 아집이 센 중생들의 업병(業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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