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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冥樞會要)   2015-07-10 (금)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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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림고경총서> 2집


『명추회요(冥樞會要)』 출간

선(禪)의 백과사전인 『종경록』의 핵심만 모은 대표적 선서(禪書)
성철 스님 “세상에 내놓으면 후학들에게 큰 도움” 강조
원택 스님 번역 불사 발원 23년 만에 완성


1. 마음공부의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종경록』의 핵심이 담긴 『명추회요(冥樞會要)』 한글 번역본이 출간됐습니다.


2.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은 영명연수 선사의 『종경록』 중 회당조심 선사가 그 핵심만 가려 뽑아 엮은 『명추회요(冥樞會要)』를 한글로 옮겨 펴냈습니다.
이번 『명추회요(冥樞會要)』 발간은 한국 현대불교의 대선지식인 성철 스님이 생전에 발간한 총37권의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 시리즈의 2집으로 발간됐으며, 향후에도 『오등회원』을 비롯한 다수의 선서(禪書)들이 번역, 출간될 예정입니다.


3. 『명추회요(冥樞會要)』는 북송 시기 회당조심(晦堂祖心, 1025~1100) 선사와 그의 문인인 영원유청(靈源惟淸, ?~1115) 선사가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 선사가 지은 『종경록(宗鏡錄)』 100권의 요지를 상·중·하 3권으로 간행한 촬요본(撮要本)입니다.
『명추회요』라는 제목에서 ‘명추(冥樞)’, 곧 ‘그윽한 지도리’는 ‘마음’을 가리키는 말로, 이 책이 『심경록(心鏡錄)』이라고도 불리는 『종경록』에 나오는 마음을 둘러싼 여러 논의들의 요지를 모은 책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종경록』 100권은 영명연수의 가장 대표적인 저술입니다. 이 책은 100권이라는 많은 분량으로 인해 그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았으므로, 이후 『명추회요』와 같은 촬요본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종경록』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북송시기 각범혜홍의 『임간록』을 통해 살펴보면,
 
내 지난날 동오지방을 돌아다니다가 서호(西湖) 땅 정자사(淨慈寺)에 머물게 되었는데 살림채 동서편의 회랑 쪽에 웅장하고 화려한 두 채의 누각이 있었다. 그곳 노승이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명연수(永明延壽) 스님은 현수(賢首)·자은(慈恩)·천태(天台)의 3종(三宗)이 서로 얼음과 불같이 어울리지 못하여 불법의 완전한 뜻을 알지 못하겠기에, 문도 가운데 종법(宗法) 대의에 정통한 자를 선발하여 양 누각에 머물게 하고, 많은 경전을 널리 읽혀가면서 서로 의문점을 토론하도록 하였다. 스님 자신은 심종(心宗)의 거울이 되어 그들을 공평하게 달아주었다. 또한 대승경론(大乘經論) 60부와 인도·중국의 어질고 명망 있는 스님 3백 분의 말씀을 모아 유심(唯心)의 종지를 증명하였다. 그리고는 그것을 백 권의 책으로 완성하여 세상에 전하면서 『종경록(宗鏡錄)』이라 이름하였으니, 그 법보시의 이로움이란 참으로 크며 훌륭하다 하겠다.”

여기 나오는 정자사는 바로 연수 스님이 주석했던 영명사를 가리킵니다. 각범 스님의 활동 시기는 연수 스님 입적 후 약 150여 년이 지난 때이고, 인용문 역시 정자사의 노승에게 직접 들은 내용이므로, 위의 인용문은 『종경록』이 편찬될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잘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르면, 연수 스님은 당시 중국 불교를 대표하는 현수 스님의 화엄종과 자은 스님의 유식종과 천태 스님의 천태종의 3개 종파가 얼음과 불같이 어울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법의 완전한 뜻을 알지 못하는 점을 우려하여, 문도 가운데 종법에 정통한 자를 선발하여 서로 의문점을 토론하게 한 뒤, 자신은 심종(心宗)의 거울로써 그들을 공평하게 달아주었다는 것입니다.
각범 스님의 이 구절은 『종경록』의 제목 가운데 ‘종(宗)’과 ‘경(鏡)’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종경록』의 ‘종’은 다름 아닌 ‘심종(心宗)’이고, 연수 스님은 그 ‘마음의 종지’를 가지고 여러 종파들의 논란을 거울로 비추듯 공평하게 비춰주었다는 것입니다. 연수 스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승경론과 여러 스님들의 말씀을 인용하여 유심(唯心)의 종지를 증명하였는데, 이 점은 『종경록』 내에서 경론의 문구와 조사의 어록 등이 대량으로 인용되는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연수 스님이 직접 쓴 『종경록』의 「자서(自序)」에 따르면, 그는 『종경록』을 지은 이유를 단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일심을 종지로 들어 만법을 거울처럼 비춘다.” 또한 연수 스님은 『종경록』 안에서 “펼치면 백 권으로 확대되지만 수렴하면 일심(一心)으로 요약된다.”고 설명하는데, 이 언급은 『종경록』의 주요 내용이 마음을 둘러싼 채 전개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연수 스님은 법안종의 선사로서 기본적으로는 ‘불립문자 이심전심(不立文字 以心傳心)’을 강조하는 선종의 전통에 서 있습니다. 그러한 그가 100권이나 되는 분량의 『종경록』을 지었을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불교에서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는 언어와 문자로 드러내지 못하는 불가언설(不可言說)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이런 불가언설의 영역에 대해 방편의 시설이 없다면 수많은 이들이 이에 대해 접근하기 어렵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연수 스님은 언어와 문자가 진실 그 자체는 아니지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훌륭한 방편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언어 문자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님의 태도를 자교오종(藉敎悟宗), 교에 입각하여 종지를 깨닫는다고 부를 수 있습니다. 


4. 『종경록』을 지은 영명연수는 법안문익(法眼文益)-천태덕소(天台德韶)로 이어지는 법안종(法眼宗)의 3조로서 『종경록』을 포함하여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주심부(註心賦)』 등의 수많은 저작을 남긴 선종의 대 조사(祖師)입니다. 『경덕전등록』에는 『종경록』등 영명연수 선사의 저작들이 동시대의 고려 왕 광종(光宗, 925~975)에게까지 전해져 광종이 연수 스님 문하로 유학승 36명을 보내서 스님으로부터 직접 인가를 받고 고려로 돌아와 각기 한 지역을 교화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법안종의 선풍은 이후 중국보다 고려에서 더 성행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5. 고려 이후로는 불교계에서 영명연수나 『종경록』 등에 대한 관심은 더 이상 크게 보이지 않았지만, 『종경록』과 『명추회요』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퇴옹성철(退翁性徹, 1912~1993) 스님의 『선문정로(禪門正路)』에 나타납니다. 이 책에서 성철 스님은 “『종경록』 100권은 종문(宗門)의 지침(指針)으로 용수(龍樹) 이래의 최대 저술로써 찬앙(讚仰)된다.”라고 평가했으며, 『종경록』의 촬요본인 『명추회요』를 펴낸 회당조심에 대해서도 “회당(晦堂)은 역시 임제정전(臨濟正傳)인 황룡파(黃龍派)의 개조(開祖) 혜남 선사(慧南 禪師)의 상수제자(上首弟子)로서 불조(佛祖)의 정맥(正脈)으로 천하가 추앙(推仰)한 바이다.”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이번에 한글로 번역된 『명추회요』는 성철 스님의 이와 같은 평가를 바탕으로 상좌인 원택 스님의 원력(願力)에 의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6. 원택 스님은 『명추회요(冥樞會要)』 발간 과정에 대해 성철 스님과 나눈 대화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1993년 7월경에 있었던 일입니다.

“큰스님께서 선정해 주신 <선림고경총서>의 번역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 어록 번역을 1집으로 한다면 2집은 어떤 어록들로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이번 책들 번역한다고 그렇게 분주를 떨었는데 더 하기는 뭘 더 해! 고만해라.”

“그러시면 다른 것은 몰라도 큰스님께서 『선문정로(禪門正路)』 제1장 ‘견성즉불(見性卽佛)’에서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의 『종경록(宗鏡錄)』에 대하여 ‘『종경록』 100권은 종문(宗門)의 지침으로 용수(龍樹) 이래의 최대 저술로서 찬양된다. 회당조심(晦堂祖心) 스님은 항상 『종경록』을 애중(愛重)하여, 연로해서도 오히려 손에서 놓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이 책을 늦게 봄을 한(恨)한다>라 하고, 그 중에 요처(要處)를 촬약(撮約)하여 3권을 만들어 명추회요(冥樞會要)라고 이름하니, 세상에서 널리 유전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종경록』 100권은 너무 방대해서 번역하기가 어렵고, 후학들을 위해 『명추회요』 판본을 구해 다음번 어록 번역 불사(佛事)로 정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오등회원(五燈會元)』도 번역했으면 하는데, 큰스님께서 지남(指南)해 주셨으면 합니다.”

“영명연수 선사는 법안종 3세로 존숭받는 스님이고, 『종경록』은 어려운 책이다. 그러니 『명추회요』라도 번역해서 세상에 유포하면 후학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제. 그러나 제대로 번역이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등회원』은 남송(南宋) 시대의 사대부들 서가에 꼭 꽂혀 있던 전등서(傳燈書)인데, 힘들여 번역한다 해도 우리 시대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


7. 이렇게 성철 스님 열반이후 시작된 『명추회요』 번역 불사는 여러 학자와 전문가의 손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으로 23년만에 발간된 것입니다.
이번에 번역된 『명추회요』 3권의 저본은 일본 가경(嘉慶) 원년(1387)에 간행된 판본으로 고마자와 대학과 동양문고 등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번역불사를 시작한 이후 중국 종교문화출판사에서 출판된 『영명연수 선사 전서 상, 중, 하』를 추가로 참조하였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번역하는데 어려움이 컸던 ‘인용문과 인용문 속의 인용문장에 대한 인용부호와 표점’이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8. 『명추회요』는 『종경록』 100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마음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대답·인증의 묶음’들을 모두 인용하거나, 대답이나 인증의 부분만을 인용하기도 하지만, 내용은 대부분 마음(혹은 일심)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연수 스님은 『종경록』 100권을 크게 표종장·문답장·인증장의 셋으로 구분했는데, 『명추회요』는 『종경록』 가운데서 2권·35권·47권·53권·86권·87권·88권·97권의 총8권을 제외한 나머지 92권에서 골고루 내용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에 발간된 『명추회요』의 구성을 보면 ‘상’편은 종경록의 1~34권, ‘중’편은 36~67권 3판, ‘하’편은 67권 10판~100권을 각각 담고 있습니다.
(->차례 참조 요망)

특히 『명추회요』에서는 “부처님의 교법을 볼 때는 단지 문자 그대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낱낱 글자의 의미를 충분히 소화해서 자기 자신에게서 그것의 확연한 의미를 찾아야 하고, 또한 그런 말씀들을 만법의 근원인 진심(眞心) 혹은 일심(一心)에 정확히 계합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9. 성철 스님과 『명추회요』에 대해 살펴보면, 『종경록』에 대한 성철 스님의 관심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선문정로』에 잘 드러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현재 해인사 백련암에 소장된 5질의 『종경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5질의 『종경록』은 크게 두 계통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2질은 해인사 장경각에 소장되어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경록』의 목판본 및 그것을 저본으로 삼아 활자화한 <대정신수대장경> 48권에 수록된 『종경록』입니다. 이 중 목판본은 실물 크기 그대로 인출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나머지 3질은 18세기 중국에서 찍어낸 <가흥대장경(嘉興大藏經)>에 포함된 것으로 3질 가운데 2질은 목판 인쇄본이고, 1질은 그것을 붓으로 필사한 것입니다.
특히 이 <가흥대장경> 본 『종경록』은 김병용 거사가 성철 스님에게 기증한 도서에 들어 있던 것으로, 이 책이 조선에 수입된 이후 『종경록』의 목판본뿐 아니라 필사본까지 유통되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 두 계통의 판본을 비교해 보면, 『종경록』 자체의 내용은 변동이 없지만, 「표종장」과 「문답장」의 위치가 교정되어 있는 점, <가흥대장경> 본에 청의 황제였던 옹정(擁正, 1678~1735)이 쓴 서문이 덧붙여 있는 점 등의 차이가 있습니다.
성철 스님은 『선문정로』에서 『종경록』을 인용할 때 권수를 일일이 다 표시하였는데, 그 중 권1의 「표종장」 부분에서 문구를 인용할 때는 ‘標宗章’이라는 표시를 반드시 부가하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선문정로』에 나타난 『종경록』 「표종장」의 인용을 살펴보면, 그것이 옹정의 서문이 있는 『종경록』 판본의 체제와 일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철 스님이 『선문정로』를 저술함에 있어 『종경록』의 촬요본이 아닌 『종경록』 100권 전체를 열람해서 필요한 부분을 인용했다는 점, 그리고 『종경록』의 전체 구성에 있어서는 『종경록』 1권의 전반부를 「표종장」으로 보는 명대 이후 판본의 관점을 따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철 스님 역시 늘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거나 ‘마음의 눈을 뜨자’라고 하여 자신의 마음에서 진리를 찾을 것을 강조했는데, 이는 『종경록』의 촬요본인 『명추회요』를 통해 보다 깊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마음이 지닌 광대한 능력에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 이번 『명추회요』 발간과 관련해 원택 스님은 “성철 큰스님께서 『선문정로』에서 밝히고 있는 돈오돈수의 출발점을 『종경록』 「표종장」으로 삼고 계신다는데 새삼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중국불교사에 있어서 선교합일을 주장한 스님으로 규봉종밀 스님과 영명연수 선사를 들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규봉종밀 스님의 선교관을 점수로 혹평하며 따라서 그 논리를 따르는 보조국사를 비판하고 계십니다.
일본의 야나기 미키야스(柳幹康)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 중 일부를 몇 줄 축약 인용해 봅니다.

영명연수 선사는 당나라 시대의 다원적인 불교관을 재편하여 일원적인 불교관을 제시함과 더불어 후대의 사람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연수 선사의 불교사상은 일심(一心)이 만유(萬有)를 현출하고 만유는 모두 일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연수 선사에 앞서서 교선일치(敎禪一致)를 주장한 종밀(宗密, 780-841) 스님은 『원각경』에서 터득한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장하였다. 한편 연수 선사는 그 위에 돈오돈수(頓悟頓修)라는 경계를 세워서 각종 교설의 표면적 차이를 해소하였다. 연수 선사는 교설(敎說) 밖에 전해진 일심(一心)이 바로 불의(佛意)이며, 일체의 교설(敎說)은 그것을 가리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해석하였다.

『종경록』의 촬요인 『명추회요』의 번역 출간으로 ‘보조 국사의 돈오점수 비판’으로 국한되고 있는 한국불교학계의 ‘성철 불교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성철 스님께서는 선(禪)과 교(敎)를 부처님의 중도(中道) 사상으로 일관되게 논의하는 선사가 세상에 누가 있나? 하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명추회요』의 발간을 계기로 부처님의 중도(中道) 사상으로 선교(禪敎)를 설파한 『백일법문』, 수행론으로서 돈오돈수론을 천명한 『선문정로』, 중도관으로 역대 조사들의 공안들을 드러내 보인 『본지풍광』을 깊게 연구하여 한국 선교(禪敎) 학의 세계화를 향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랍니다.”고 밝혔습니다.


11. 원택 스님은 이와 함께 역경 불사가 좀 더 원만하게 진행되기를 희망했습니다.
“역경 불사는 역경가와 시간과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업이어서 어느 한 곳의 암자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조계종 종단이나 동국대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 가야 할 장기적 사업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낍니다. 최근에는 조계종 교육원과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 석・박사 역경과정을 공동으로 마련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한글로 잘 번역하여 온 세대가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번역불사야말로 불교 발전을 위한 백년대계의 불사입니다.”

『명추회요(冥樞會要)』
장경각 발간
(문의 : 02-2198-5372)

선문정로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