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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연]
불성생명의 인생관을 심어주신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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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근  /  1998 년 6 월 [통권 제10호]  /     /  작성일20-05-06 08:33  /   조회8,12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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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과의 첫 만남의 인연은 필자가 대학 1년생으로서 1965년 8월 여름방학 기간중이었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의 회원으로서 하기 수련회를 범어사에서 마치고 선배 구도회원들과 함께 선지식(善知識) 친견 법회의 마지막 일정으로 김용사(金龍寺)에 주석 중인 큰스님을 뵙게 되었다.

 

 

김용사에서 수련법회를 할 때, 큰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운력을 하고 있다.

 

 

우리가 큰스님을 친견하는 데는 조건이 따랐다. 그것은 부처님께 3천 배를 올리는 일이었다. 우리 일행은 범어사에서 일주일간 수련을 마치고 연이어 선지식 친견 법회를 10일간이나 하여 피로할 대로 피로해진 몸이라서 3천 배 예배를 올리는 일은 여간 힘 드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오직 큰스님을 뵙고 큰스님의 법력을 통해서 부처님의 지견을 체득한다는 희망의 일념으로 3천 배를 하였다. 예배 중 거의 모두가 3번씩이나 졸도를 거듭하였는데, 큰스님께서는 시자 스님에게 큰 양동이에 미숫가루를 타 가지고 오게 해서 손수 한 그릇씩 떠 주시며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그리고 회원들의 끈끈한 동지애로 간신히 통과의례를 마칠 수 있었다.

 

3천 배 예배 중 필자는 도(道, 진리)를 닦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귀한 길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되었다. 필자는 그 당시 큰스님께서 젊은 수행자 시절에 도를 체득하기 위하여 10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하셨다는 것을 들은 바 있었다. 우리가 3천 배 예배를 올리는데 3번 정신을 잃었는데 큰스님의 10년 장좌불와의 수행생활은 얼마나 고뇌에 찬 기나긴 자기와의 싸움이었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싸움터에서 백만 인을 이기기보다, 자기를 정복하는 자가 정말 위대한 승리자이다”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우치게 되었고, 그 후 큰스님에 대하여 경외심이 생기게 되어 나에게 닥치는 인생의 의문과 난관을 해결하기 위하여 큰스님을 거의 매해 방학 때마다 찾아뵙고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대학 1년생이었던 필자의 첫 의문은, “왜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나고 자기의 뜻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에 있었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자기가 지은 업이라고 하는 세력이 주체가 되어 그것을 인(因)으로 하고 다른 연(緣)을 만나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만유(萬有)는 인과응보의 원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모두 과거에 우리가 지은 결과라는 것을 자각하고, 누구의 탓이나 원망을 하지 말고 자기 과거의 악업을 참회하면서 밝은 지견의 원(願)을 세워 찰나찰나 선업을 쌓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지은 과보를 받는 시기에 대하여 금생(今生)에 지은 업의 과보를 금생에 받는 순현업(順現業), 금생에 짓고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그리고 금생에 짓고 차후생(次後生)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의 3기로 나눈다. 이 3시기로 나눈 순현·순생·순후의 업을 삼시업(三時業)이라고 하고, 이것들은 과보를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으므로 정업(定業)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금생에 업을 지었지만 그 과보를 금생에 받을지, 내생에 받을지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업을 부정업(不定業)이라고 한다. 우리 삶의 고(苦)와 낙(樂)의 과보는 모두 선악의 업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인과응보의 철리를 굳게 믿게 되었고 좋은 일이 생기면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새기고, 나쁜 일이 생기면 어느 누구의 탓이나 원망을 하지 않고 참회하면서 발원을 통한 밝은 생각과 표정으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이치를 이지적(理智的)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천에 옮기는 데 항상 어려움을 겪었고, 또 겪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명 즉 미혹(迷惑)의 탓이다. 무명 즉 미혹은 우리 인간의 심신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것이므로 번뇌(klesa)라고도 한다. 무명은 그 성격상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으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를 구생혹(俱生惑)이라고 하고, 후자를 분별혹(分別惑)이라고 한다. 구생혹은 사물을 밝게 보지 못하는 지견에 의하여 일어나는 번뇌이므로 미사혹(迷事惑)이라고도 하고, 과거생으로부터 몸에 배어서 끊기 어려우므로 둔사혹(鈍使惑)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에는 탐내는 마음〔貪〕, 성내는 마음〔瞋〕, 어리석은 마음〔痴〕, 잘난 체하는 마음〔慢〕, 의심하는 마음〔疑〕을 포함하고 있다. 분별혹은 진리에 무지해서 일어나는 번뇌이므로 미리혹(迷理惑)이라고도 하고, 후천적으로 불충분한 지식에 의해 생긴 것이므로 끊기 쉬워 이사혹(利使惑)이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자기 몸에 실체가 있다고 믿는 견해〔身見〕, 사후세계에 대한 그릇된 견해〔邊見〕, 인과에 대한 그릇된 견해〔邪見〕, 그릇된 지견을 옳다고 ! 고집하는 견해〔見取見〕, 금하고 있는 율(律)에 대한 그릇된 견해〔戒禁取見〕를 포함하고 있다. 이 열 가지의 무지, 즉 번뇌는 일체 번뇌의 근본이므로 근본번뇌라고 하고, 10근본번뇌에 따라서 일어나는 번뇌 즉 방일(放逸), 해태(懈怠), 불신(不信), 혼침 (昏沈), 도거(掉擧), 무참(無慚), 무괴(無愧), 분(忿), 부(覆), 간(慳), 질(嫉), 뇌(惱), 해(害), 한(恨), 광(誑), 첨(諂), 교(憍), 수면(睡眠), 회(悔) 등을 지말번뇌(枝末煩惱)라고 한다. 또 불교에서는 이름을 붙여 구별할 수 있는 번뇌의 수효가 108가지가 되므로 백팔번뇌라고 한다.

 

 

수련법회 학생에게 법사가 되어 생도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갔다. 뒷줄 왼쪽에서 일곱번째. 법복을 입은 사람이 필자다.

 

 

우리 인생은 무명 즉 번뇌로 말미암아 업을 짓고 그 업의 힘으로 과보를 받아 시간적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옮겨 다니고, 공간적으로는 천(天), 인간(人間), 아수라(阿修羅),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의 육도(六道)로 윤회한다는 것이다.

 

이런 윤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행법은 소승불교에서는 사성제(四聖諦), 대승불교에서는 육바라밀(六婆羅密)을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큰스님께서는 필자에게 후천적인 번뇌 즉 미리혹(迷理惑)을 끊기 위해서는 조석(朝夕)으로 108참회와 증도가(證道歌),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그리고 금강경(金剛經) 독송을, 선천적인 번뇌 즉 미사혹(迷事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참선을 하라고 당부하셨다. 필자는 큰스님의 이런 자비스런 가르침의 은덕으로 불교적 인생관을 확립할 수 있었다.

 

필자는 우리의 생명을 불성생명(佛性生命)이라고 정의한다. 불성생명은 형이상학적으로 영원 편재(遍在)하는 생명이며, 인식론적으로는 태양광명보다 더 밝고 빛나는 생명이며, 윤리적으로는 최고 환희 평화를 실현한 생명이다. 우리 자신이 불성생명이라는 것을 자각하면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보고 부처님께 불공(佛供)하는 마음으로 행동하게 된다. 필자가 성취하려고 원하는 것, 지금까지 애써 온 모든 것은 불성생명을 실현하는 일이다. 나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올바른 인생관을 가지도록 가르쳐 주신 큰스님께 고마움을 마음속 깊이 새긴다.

 

마하반야바라밀.
큰스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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