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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면, 도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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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글  /  2019 년 12 월 [통권 제8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35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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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글 불교작가

 

“무엇이 한 마디[일구一句]입니 까?”
“뭐라고?”
“무엇이 한 마디냐고요.”
“두 마디가 되었구나.”

 

일구一句란 진리를 한 줄로 요약한 것이다. 내게도 ‘일구’가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이다.’ 인생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죽고 언제든 죽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도 똑같고 언제를 살았어도 똑같다. 아무리 봐도 인생의 유일하고 확실한 정답은 죽음뿐이다. 보편적인 사실이고 검증 가능한 사실이다.

 

성공한 삶이든 실패한 삶이든 다 같이 공평하게 죽음으로 귀결된다. 다들 ‘어찌어찌 살다가, 죽었다.’ 이 한 줄로 졸아든다. 설거지통 수챗구멍이 하느님처럼 보인다. 죽음은 요절처럼 아무 때나 찾아오며 참살처럼 아무렇게나 찾아온다. 생각하지 않고 찾아오며 망설이지 않고 찾아온다. 죽음을 골똘히 생각한다고 죽음이 피해가는 것 아니다. 오히려 한번만 죽어도 될 거, 두 번 죽는다.

 

“무엇이 한 마디입니까?”
“그 한 마디만 붙들고 있으면 그대는 늙고 만다.”

 

괴로우면 생각이 많아지고 즐거우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괴로워서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져서 더 괴롭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아봐야, 잠에서 깨어나면 실제 만리장성은 없고 몸만 녹초가 된다. 많이 생각해봐야 꼬이기만 한다. 오래 생각해봐야 지치기만 한다. 목표를 이루려면 생각하지 말고 준비를 해야 한다. 미인을 얻으려면 생각하지 말고 도전 해야 한다.

 

달마 대사는 무심론無心論을 주창했다. 그의 대를 이은 선사들도 하나같이 무심을 이야기한다. 『조주록』 전체가,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무심에 대한 설명이고 비유이고 변론이다. 무심하게 살라는 것이다.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라는 것이다. 생각한다고 안 될 일이 되지 않는다. 생각한다고 오지 말아야 할 복이 오지도 않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든 해야만 뭐든 남는다.

 

“도道는 어디에 있습니까?”
“길은 담장 바깥에 있다.”
“그런 거 말고 큰 도요.” “큰 길은 장안(長安, 당나라의 수도)으로 통하지.”

 

살아갈 방도는 어디에나 있다. 끙끙 앓을 필요 없다. 집밖에만 나가도 길이 있다. 그 길을 걷기만 해도 나는 도가 된다. 길을 걸으면 바깥공기도 쐴 수 있고 이런저런 사람도 만난다. 운동도 되고 추억도 쌓인다. 풍경에 취하고 기회도 잡는다. 이처럼 길 위에 만법萬法이 있다. 집에는 심심함만 있고 마음의 집에는 두려움만 있다.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좀 나아진다. 막상 길을 걸으면 ‘길이 안 보인다’는 푸념은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

 

이 길만 걷다가 저 길을 걷게 되면 처음엔 망설여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또 어떻게든 걷게 된다.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걸어야 하고 아무튼 살아있으니까 걸을 수 있다. 흙탕길도 길이고 좀체 갈피를 못 잡겠어도 포기만 안 하면 걸어진다. 인생의 고난이 이와 같다. 시련은 하나의 길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죽기 전에는 아무 것도 끝나지 ‘못한다.’ 서울에 가고 싶으면, 시골길부터 출발해야 하고 감내해야 한다. 작은 길을 버텨내야만 큰 길에 이른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자만이 길을 걸을 수 있다. 살아있다면, 도다.
그렇다면 죽은 자들은 도가 아니라고 딴죽을 거는 놈들이 있을까봐 조물주는 ‘윤회’라는 장치를 만들어두었다. 개미로 태어나도 걸어야 하고 귀신으로 태어나도 걸어야 한다. 다리가 없는 나무로 환생하면 걸을 수 없다고? 그는 앞이 아니라 위로 걷는다.

 

“무엇이 청정한 절입니까?”
“두 갈래로 머리 땋은 소녀다.”
“누가 그 청정한 절에 삽니까?”
“그 소녀가 애를 배었군.”

 

복잡하게 생각하니까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하니까 인생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어릴 때는 인생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마냥 좋다고 걷는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면 갑자기 그 길에 이정표가 세워진다. 갈래갈래 찢어진 방향들이 마음을 찢어놓는다.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 남들이 많이 가는 길 쪽으로 떠내려간다. 아무리 봐도 훤히 뚫린 길인데, 겁이 나서 이 길이 아니라고 애써 부정한다. 세상 풍파 시달리며 길눈은 밝아지는데, 정작 갈 길은 잃어버린다. 가지 않아놓고 실패했다 투덜댄다. 그냥 가면 되는데 주저앉고 맨발로도 거뜬한데 신발 끈을 맨다. 길 위에 소득은 없고 궁둥이만 쌓인다. 창창한 미래 앞에 자꾸 무언가를 가져다놓으며, 스스로 앞길을 막아버린다.

 

“(수행하느라) 아침저녁으로 쉬지 않습니다.”
“승려 가운데는 그처럼 세금을 두 번 내는 백성이 없다.”

 

가장 아픈 생각 가운데 하나가 인생이 안 풀린다는 생각이다.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번번이 남보다 뒤처지고 언제나 제자리걸음이다. 어쩌면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내가 열심히 살 때 남들도 열심히 살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쉬지 않는다 해도, 점심에도 쉬지 않는 놈이 꼭 있게 마련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지만, 험담하고 음해하는 것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 한다면. 아무튼 노력의 가치에 이의를 제기할 순 있어도 노력의 총량은 어쨌든 명백한 사실이다. 결국 남들이 인정해주거나 방심하기 전까지는 절대 인생은 잘 풀리지 않는다. 중생들의 세계란 본디 경쟁과 상처로 굴러간다. 나 혼자만 살 수 있는 신천지가 도래하지 않는 한, 싸우고 견디고 기다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인간이 살아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게 죽음 그리고 세금이다. 그래도 세금은 한번만 내자. 생각도 한번만 하고 한번만 괴로워한다.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플 거, 힘들여 아프지 말고 공들여 죽지 말자. 나머지 힘은 오로지 쉬는 데에만 쓰자.

 

“제가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몹시도 힘을 들이는구나.”
“힘을 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부처가 되지.”

 

‘다른 길로 갔다면 난 행복했을까’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인디밴드의 노래가 있다. ‘다만 나는 지금 이곳에 없었을 것이다’라는 결론이 마음에 들어 자주 듣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너무 노여워하지 말라’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유명한 외국인의 시가 있다. 삶도 죽기 싫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나를 속인 것이다. 너무 미워하지 말자. 걸림돌과 디딤돌의 모양은 비슷하다. 적당한 자리에만 갖다 놓으면, 걸림돌이 디딤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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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글
곰글 1975년생. 연세대 철학과 졸엄.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9권의 불서佛書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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