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손가락 사이]
지옥에서 쫓겨난 어둠이 걸어간다
페이지 정보
최재목 / 2020 년 4 월 [통권 제84호] / / 작성일20-05-28 16:09 / 조회6,325회 / 댓글0건본문
최재목 / 시인. 영남대 교수
지옥에 동백이 피었습니다, 송이송이 지옥을
두 손 들고 찬송합니다
지옥에도 목련화가 집니다, 송이송이 지옥을
두 팔 걷고 내다버립니다
봄이 끝나면 그곳으로 주소를 옮길까 합니다
땅값이 오르기 전, 집 한 채를 사서
지옥을 잘 지키겠습니다
설마 그곳에도 불성이 있겠지요
제가 출가를 하겠습니다
뒷산에다 절을 짓고, 철새에게 백팔배를 가르칠 겁니다
돌들에겐 목탁 치는 법을, 밭 가로 흩날리는 비닐들을 끌어 모아,
참선에 몰두토록 하겠습니다
이만하면 지옥도 불국토라 할 만 하겠죠?
아, 그러면
저 극락이 설 자리는 또 어디인가요?
청도 운문사 내원암 가는 길에
도랑가로 내려가, 물고기 스님 세 분에게 묻는다
물속을 왔다 갔다, 금새 돌 밑으로 숨고
아무도 응대하지 않는다
불멸의 침묵이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구름도 몸이 무거워 밑바닥으로 내려와 눕는다
지옥도 짐이고, 극락도 짐이란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란다
들 것에 실려 떠나는 생각을 본다
내 생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로
떠나가는 그림자를 보았다
삭발한 허망을 붙들고 우는 신발을 쳐다보았다
지옥에서 쫓겨난 어둠이 터벅터벅 천국으로 걸어간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가야산에 흐르는 봄빛을 몇 번이나 보았던가!
지난 2월 16일 백련암에서 신심 깊은 불자님들의 동참 속에 갑진년 정초 아비라기도 회향식을 봉행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맞이하고, 저마다 간절한 서원 속에 한 해를 밝힐 공덕을 쌓아 …
원택스님 /
-
얼굴 좀 펴게나 올빼미여, 이건 봄비가 아닌가
여행은 언제나 좋은 것입니다. 예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지만, 마음속 깊이 잔잔한 기쁨이 물결칩니다. 숙소는 64층인데, 내려다보는 야경이 아름답습니다. 이 정도 높이면 대체로 솔개의 눈으로 …
서종택 /
-
말법시대 참회법과 석경장엄
『미륵대성불경』에서 말하길, 미래세에 이르러 수행자가 미륵에게 귀의하고자 한다면 먼저 과거칠불에게 예배하고 공양하여 과거업장이 소멸되고 수계를 받아야 한다. 신라시대부터 일반 대중은 연등회와 팔관회…
고혜련 /
-
봄나물 예찬
바야흐로 들나물의 계절이 도래하였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아주 작은 주말농장을 통해 수확의 기쁨을 누리면서 24절기에 늘 진심입니다. 『고경』을 통해 여러 번 언급하곤 했지만 절기를 통해 깨닫게 되는…
박성희 /
-
기도는 단지 참선을 잘하기 위한 방편인가?
참선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참선이란 수행법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수행법 중에 “오직 참선만이 가장 수승한 수행법이요, 나머지 다른 수행법들은 참선을 잘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